태백산맥 3부 분단과 전쟁 6,7권을 읽었다. 1949년 10월부터 다음에 11월까지 1년을 다루고 있다. 6.25발발 전후 상황에서의
이야기다. 최근까지도 회자되고 있고 그 후속조치가 논란이 되고 있는 '보도연맹' 사건의 묘사는 가슴을 벌렁거리게 한다.
정부주도로(논란이 많은 부분이지만) 반공교화단체를 만들어 좌익색출에 혈안이 되어 심지어 할당량까지 내려
마구잡이로 가입하게 한다음 초기후퇴시에 가입한 이들을 그 어떤 설명도 없이 집단학살해 버린 사건. 최소 이십만이
그렇게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니 경악스럽다. 그러니까 쌀주니까 지장찍으라고 하여 엄지에 인주 묻힌 옆집 삼돌이가
갑자기 뒷산에 끌려가더니 다음날 구덩이에 시체로 발견되었다면, 아니, 내 아들이, 남편이, 아버지가 갑자기 그런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지만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예고도 없이 짓밟히고 매장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증이 아닌가.  

열 명의 윗몸이 불빛에 드러났다. 
"발사!"
열 명의 윗몸이 불빛에 사라졌다.
"다음 줄!"
열 명의 윗몸이 불빛에 드러났다. ... 

이런 식으로 조정래는 그 학살의 현장에 유독 시간이 잇새로 새어나가지 않게 천천히 다가간다. 독자도 이 대목은
같은 말들이 열 번씩 반복됨에도 건너뛰지 않고 하나 하나의 문자를 잉끄려뜨리듯 눈 속에 박아넣게 된다. 그 만큼
충격적이고 살갗이 아프다. 가장 아픈 지점은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지향하지 않았던 그저 그대로 하루하루를
꿰어나갔던 평범한 양민이 역시 왜 그런지,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른 채 옆사람과 묶여 총성에 사라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덜 가지고 덜 배우고 그래서 주어진 체제 속에서 비판이나 반항없이 일상을 꾸려나갔다는 이유로. 

동란 초반 북이 우세했을 때 사회주의 해방촌이 몇 달간 건설되어 염상진 일행이 벌교로 귀향하는 대목.
그 혁명이라는 것에. 그 비현실적인 지향에 생명의 줄까지 매달고 어린애 마냥 좋아 날뛰는 그들에게
애달픈 연민이 든다. 결국 그 귀착점이 부패에 의한 자멸이고 돌아 돌아 결국은 다시 자본주의라는 결말이
예고되어 있어 더더욱. 

이런 긴 작품 속에서도 문장 하나 하나에 형형한 불빛을 점화한 작가에게 경탄을 보낸다. 다음 같은 문장. 

묽은 가을안개가 슬픔처럼 들녘 가득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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