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한 편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듣고 나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또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할

이야기를.

                                          괴테 <단편선>

-페터 한트케 <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


작가 페터 한트케는 괴테의 목소리로 자신이 할 이야기의 반향을 예고한다. 이 이야기는 분량면에서는 작고 깊이와 무게면에서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할 이야기"로 확장된다. 폴 세잔에 바치는 오마주라기보다는 세잔이 재창조해낸 생트빅투아르산 을 작가가 직접 오르며 그의 창조의 도구였던 언어와 그 언어로 표현해내고자 했던 사물들에 대한 "꿈꾸기의 선언"들이다. 번역자는 소설가 배수아다. 두 개의 언어가 하나의 다른 분야의 예술인 회화, 그것이 소재로 삼았던 그 장소와 조응하며 빚어낸 이야기의 절창이다. 





페터 한트케의 삶은 편린들처럼 끼어든다. 그에게 아버지는 두 명이었다.  어른이 되고서야 존재를 알게 된 생부, 무책임했던 계부. 글을 쓰는 그에게 독일인 아버지들은 애증의 대상이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하지만 명령의 순종의 형태로 거기에 복무해야 했던 역사적 비극은 차라리 부수적인 것이다. 그는 함부로 그들을 변호하거나 그들의 아들로서의 자신을 변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타인의 뿌리를 뽑는 일은 범죄 중에서도 가장 잔악하나, 자기 자신의 뿌리를 뽑는 일은 가장 위대한 성취이다.

-p.41


작가는 자신의 내면, 그의 삶으로 침잠하는 대신 세잔의 그림, 세잔이 사물을 봤던 방식, 세잔이 경험한 자연 그 자체에 몰입한다. 그의 언어를 투과한 언어들은 우리가 미처 가보지 못한 미지의 그곳을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만지고 냄새 맡고 느낄 수 있게 그가 사용한 언어들을 배수아는 자신의 언어의 망을 뚫고 우리에게 준다. 그렇게 독자들은 세잔이 연이어 그렸던 생트빅투아르산으로 들어간다.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이 어떤 실질적인 교훈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순간의 공간 이동 같은 경험을 통해 읽는 이들을 변화시킨다. 사물과 언어와 색채의 핵을 향해. 그리고 그의 귀환은 꿈결 갔던 그 체험을 현실로 돌려 놓는 책임을 잊지 않는다.


그후, 숨을 들이마시며 숲에서 멀어진다. 오늘의 인간들에게 되돌아온다. 도시로, 광장과 다리로, 부두와 통행로로, 스포츠 경기장과 뉴스로 되돌아온다. 종과 상점들로, 금빛 광채와 주름 잡힌 자락으로 되돌아온다. 집에는 한 쌍의 눈동자가 있는가?

-p.130


결국 이것은 사물의 본질을 통과한 후의 우리의 삶으로의 귀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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