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친구를 잃고 느낀 상실감을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었다. 슬프다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 친구 없이 나의 대학 생활을 얘기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마음 아팠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내 옆에 살며시 다가와 앉던 모습, 학교 앞 주점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 다들 얼굴이 빨간 고구마처럼 익어 신이 나서 목소리가 커지니 주인이 이제 그만들 마시라고 말렸던 일들. 좋아했던 남자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다 나의 무모함에 제동을 걸었던 시간들. 그리고 회사 앞에 와서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던 시간. 정말 크고 예뻤던 눈. 그 아이만 떠오르는 게 아니라 그 아이와 함께 했던 나의 청춘의 시간들이 자꾸 돌아와 마음을 찌르면 수시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나는 친구만 잃은 게 아니라 그 친구와 함께 보냈던 나의 시간을 송두리째 상실한 느낌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아픈 마음을 자꾸 얘기해도 전적으로 이해받을 수 없다는 게 더 슬펐다. 친구를 잃은 사람은 아직 없는 나이였다. 나는 때로 그런 사람들이 부럽다고 표현했다. 


고인만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던 자신에 대한 청년기와 유년 시절이 고인과 더불어 사라져버린 것이다.

- 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중

 














나는 비로소 나의 모호한 고통을 표현할 언어를 찾았다. 그건 나의 한 조각을 상실한 것과 같다는 것을 보부아르는 이야기한다. 이제 나의 친구가 기억하는 나의 모습은 이 세상에 없다. 친구가 생각했던 기억했던 나는 친구의 죽음과 더불어 사라져버렸다. 


보부아르가 육십대가 되어 고찰한 노년의 모습은 참으로 황량하다. 상실과 무너짐의 풍경은 수많은 예시로 충만하다. 아무도 공론화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 연령의 지대를 보부아르는 지독하게 탐사한다.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사회적으로 내면적으로 그 유한한 미래의 한계 속에서 상실과 허무의 풍경을 목도하는 노년에 대한 묘사는 적나라하다. 그래서 그런 종착점을 안다고 하면 우리의 지금은 대체 무슨 의미와 합목적성을 가질까. 결국 퇴락하고 허물어질텐데 우리의 현존은 어떤 가치를 지닐 것인가, 라고 반문한다면 보부아르에게도 명쾌한 답은 없다. 


자기의 행위를 '괄호 안에 넣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 진정함에 이르는 길이다. 진정성이란 거짓보다 더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나 진정성에 도달하게 되면 그때는 단지 그 사실을 기뻐할 일밖에 없다. 나이가 가져다주는 가장 가치 있은 바로 이것이다. 나이는 맹목적인 숭배와 환상들을 제거해준다. <중략> 나는 오래전부터 실존하는 인간에게 있어 존재의 탐구란 쓸데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였다. 

-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존재의 탐구'란 쓸데없는 일" , 참 허무한 얘기지만 왠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녀는 심지어 노년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기 보다 현실에 충실하라는 얘기까지 덧붙인다. 그녀 자신이 그렇게 정성을 기울여 만들어 낸 노년의 연구가 삶 그 자체를 향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인 것인지 독자를 위한 배려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천하의 프로이트도 처칠도 말년에는 실망스럽게 무너졌다. 겁을 냈고 울었고 폭발했고 이기적이었다. 훌륭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남들보다 열등해서도 너무 우수해서도 아닌 노년이라는 죽음 앞의 삶이 가지는 본질적인 존재론적인 그 모순과 결함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들을 추앙했던 대다수의 사람들도 이미 그들이 노인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물화시켰다. 이 시선은 부수적인 것이 아니었다. 보부아르는 그 노년의 존재적인 차원을 예리하게 간파한다. 


그녀의 <노년>에는 군데군데 사르트르가 잠입한다. 홀로 쓴 책이지만 사르트르가 여러번 왠지 다정하게 인용된다. 그리고 나는 내용을 떠나 그녀의 그런 행위가 마치 사르트르와의 사랑의 표현인 것 같아 싫지 않았다. 그 둘의 계약 결혼 관계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적어도 학문적 동지로서 그 둘의 소통은 남달랐던 것 같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대단한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찾지 못했던 그 희미하고 모호했던 것들이 좀 더 명료해지는 느낌을 갖는 것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아, 그랬던 거구나, 싶은 마음은 중독성이 있다. 너무 깊이 많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고 알 수도 없기에. 어쩌면 더 우울해지는 것도 같다. 그저 이 시간이 지나가고 기억이 희미해지면 다른 형태의 위로와 안도를 받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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