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B. 피터슨은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삶은 원래가 고해'라는 이야기, 소아 관절염으로 고생하며 키운 딸 이야기가 와닿았다. 뭐랄까, 진부하거나 가식적으로 보이지 않는 언변이 설득력이 있었다.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사변적이지 않고 그것에 따른 해석이나 평가가 고답적이지 않았다. 그의 종교적인 색채나 논쟁적인 발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오백 페이지가 넘는 분량은 그의 논쟁적인 입지를 닮았다.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은 기억할 만한 대목이 많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와 분석은 섣부른 이상주의, 기만, 위선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이기심과 권력욕, 악에 대한 시선의 깊이와 명료함도 놀랍다. 한 마디로 낭만을 박살내는 엄중한 태도가 인상적이다. 근래들어 삶에서 중구난방으로 일어났던 각종 유쾌하지 못한 일들이 전혀 개별적이지 않은 보편적인 삶의 속성과 연결되어 있음에 대한 깨달음이 왔다.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선다는 것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삶의 엄중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미다.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선다는 것은 혼돈을 질서로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인간의 유한성과 죽음을 모르던 어린 시절의 낭만이 끝났음을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린 시절의 낭만이 끝났음'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마음으로 인정하지는 못했던 듯하다. 혼돈과 무질서에 면역이 되어 있지 않았고 그것을 뚫고 나아갈 기량이 부족했다. 다소 직설적인 표현이 많아 때로 움찔할 정도다. 하지만 누군가는 옆에서 반드시 이런 조언들을 삶의 길목마다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인간으로서 삶을 산다는 일의 무게, 엄중한 책임은 흔히 쾌락과 편의주의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쉽고 즉각적인 쾌락, 보이는 것들의 화려함 속에 숨어있는 알곡과 실재에 대한 묘사가 적나라하다.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는 조언은 나를 저격했다. 


당장 편하자고 갈등 상황을 피하고 문제를 언어화하는 데에 물러서는 자세에 대한 비판도 기억해 둘 만하다. 욕망의 경주장에서 정작 놓치는 것들에 대한 지적과 의식적인 노력과 주의에 대한 각성은 날카롭다. 



아쉬운 점도 있다. 기독교 교리가 절대 해법으로 제시되는 대목과 페미니즘과 성차에 대한 의견은 편향적이라 불편한 부분이다. 많은 이야기를 깊이 있게 하려고 시도하다 제대로 된 완결을 짓지 못하고 성급히 마무리해 버릴 때도 있다. 결함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책인데 장점도 그 만큼 많은 책이라 읽어보면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버릴 건 버리는 비판적인 태도가 필요할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유튜브에 저자의 강연이 많으니 같이 찾아 함께 들어보며 읽는 것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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