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읽은 책.
<액스>는 실직한 살인자의 이야기이다. 아니, 실직해서 살인자가 된 자의 이야기.
그런데 그 살인자에게 무척이나 공감하게 된다는.... 게다가 그 살인자가 결국 잡히게 될까봐 소설이 끝나갈 수록 초조해진다는.
그렇다고 피의자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는 '스톡홀름 증후군'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인하여 인간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되면
어쩌면 우리 모두 깊숙히 숨기고 살았던 악마의 본성을 드러내 보일 수도 있다는 데서 오는
자조적인 공감이랄까.
<인생의 재발견>이 너무 길어서 이번 주는 다른 책은 많이 못봤다. 점점 바빠지는데...(그러면 안되는데, 자꾸 양에 집착하게 된다.)
말도 안되지만, 좋은 책이긴 한데, 너무 길어서 좀 원망스러웠다.
너 때문이야, 뭐 이런 느낌?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좀 재미없는 친구랑 놀다가 학원시간을 놓쳐서 학원을 못갔다고 그 재미없는 친구를 원망하는 듯한
9살짜리 철부지 같아 보이긴 한다. 같이 신나게 놀아놓고는 딴소리 하는 셈이다. 철딱서니 하고는.
영화<이터너티>를 봤다.
내가 어쩌면 이 영화를 졸지 않고 끝까지 봤는지 모르겠다.
상류사회의 세 여인이 아이낳고 잘 살다 죽는 내용인데
두말할것 없이 다산, 출산을 권장하는 영화다.
여배우들이 매력적이어서 넋을 잃고 봤지만, 어느 하나 공감되는 부분이 없었다.
요즘같은 시대에 누구를 타겟으로 하고 만든 영화인지 모르겠다.
찾아보니 2016년 영화다. 한 96년쯤 만들어졌다고 해도 욕을 하려고 했는데,
이쯤되면 어이가 없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찾아보니 이 영화는 프랑스 소설이 원작이라고 한다.
뭐 물론 삶과 죽음으로 순환하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근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 가치를 무척이나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도 알고있고.
그런데 <호모 데우스>의 출현은 점치고 있는 이 시대에 가족과 생명의 탄생이, 그리고 가족이라는 시스템이 우리가 계속 유지켜나가야 할 인류의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정말 옳은 방향성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미장센이 훌륭한 영화였다고 평하기로 하자.(진짜 아름다운 영화였다. 그래서 안 졸고 끝까지 봤는지도 모른다.)
헌데 이 영화의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배경이 상류층이어서인게 아닌가.
주인공 세 여인이 하층민이었다면
여인들의 삶이 아이를 낳고 먹여살리고 늙어서도 계속 빈곤에 허덕이고, 자식들에게 짐이되고 이런 삶이었다면
과연 줄줄이 낳아 놓은 자손들을 그렇게 아름답게 표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삶을 노동과 희생, 소모가 아닌 순환과 숭고함으로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었을까.
큰 의미 없이 본 영화였는데 쓰고 나니 길어졌다.
이번 주는 <청춘의 문장들>을 읽을 것이다.
많이는 못 읽을 것 같다. 바쁘기도 하고, 요즘은 글을 좀 더 열심히 쓰려고 한다.
일기도 다시 쓰고 있다.
<청춘의 문장들>의 한 챕터 읽어보았다.
참 좋았다.
글이란 이런 것이지. 이쯤되야 글이지, 싶다.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나는 왜 그런 능력을 못 가진 걸까.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나같은 사람도 끄적이도록 만드는
막 글이 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그런 글들이었다.
그리고 봄에 읽으면 정말 좋은 글들이었다.
몇 장 읽지 않았는데도, 이번 주는 <청춘의 문장들>로 행복해 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난다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만나는 것 만큼 힘들다. 물론 책 쪽이 좀 더 쉽기는 하지만.
자료실 앞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다가 지난 비에 많이 떨어졌다.
여하튼, 삶을 다시 정돈해야하는, 봄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