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보레 씨, 당신이 이 메시지를 허튼소리로 받아들이는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요지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회사에서 붙여준 전문가들의 요지도 그게 아니었을 거고요. 이 메시지의 요지는 바로 이겁니다. 당신은 일자리가 아니다."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지?
그는 여전히 답답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일자리와 동일시합니다. 데보레씨. 마치 사람과 일자리가 동일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직장을 잃으면 그들은 마치 스스로를 상실해 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존재 가치의 상실.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좌절감 말입니다. 그렇게 자학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들이 앗아간 건 내 인생입니다. 내가 아니고요. 그들은 내게서 융자를 갚을 능력, 아이들을 돌볼 능력, 아내와 좋은 시간을 보낼 여유를 앗아갔습니다. 직장은 직장일 뿐입니다. 직장은 내가 아니라고요."
(p.299-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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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물과 같은 것인가. 그 큰사랑이 내리내리 아래로만 흘러간다. 그런 줄도 모르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라 집을 떠나고 어린 새들은 날개를 퍼덕여 날아가는 것이다.

(28p, ‘내리 내리 아래로만 흐르는 물인가, 사랑은‘ 中)

봄을 기다릴 때, 내가 읽는 책들은 주로 시집들이다. 봄에 읽는 시의 원형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당시다. 시인들이란 모자란 것, 짧은 것, 작은 것들에 관심이 많은 자들이니 계절로는 덧없이 지나가는 봄과 가을을 지켜보는 눈이 남다르다.

(28p, ‘갠 강 4월에 복어는 아니 살쪘어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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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읽은 책.

<액스>는 실직한 살인자의 이야기이다. 아니, 실직해서 살인자가 된 자의 이야기.

그런데 그 살인자에게 무척이나 공감하게 된다는.... 게다가 그 살인자가 결국 잡히게 될까봐 소설이 끝나갈 수록 초조해진다는.

그렇다고 피의자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는 '스톡홀름 증후군'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인하여 인간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되면

어쩌면 우리 모두 깊숙히 숨기고 살았던 악마의 본성을 드러내 보일 수도 있다는 데서 오는

자조적인 공감이랄까.

 

<인생의 재발견>이 너무 길어서 이번 주는 다른 책은 많이 못봤다. 점점 바빠지는데...(그러면 안되는데, 자꾸 양에 집착하게 된다.)

말도 안되지만, 좋은 책이긴 한데, 너무 길어서 좀 원망스러웠다.

너 때문이야, 뭐 이런 느낌?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좀 재미없는 친구랑 놀다가 학원시간을 놓쳐서 학원을 못갔다고 그 재미없는 친구를 원망하는 듯한

9살짜리 철부지 같아 보이긴 한다. 같이 신나게 놀아놓고는 딴소리 하는 셈이다. 철딱서니 하고는.

 

영화<이터너티>를 봤다.

내가 어쩌면 이 영화를 졸지 않고 끝까지 봤는지 모르겠다.

상류사회의 세 여인이 아이낳고 잘 살다 죽는 내용인데

두말할것 없이 다산, 출산을 권장하는 영화다.  

여배우들이 매력적이어서 넋을 잃고 봤지만, 어느 하나 공감되는 부분이 없었다.

요즘같은 시대에 누구를 타겟으로 하고 만든 영화인지 모르겠다.

찾아보니 2016년 영화다. 한 96년쯤 만들어졌다고 해도 욕을 하려고 했는데,

이쯤되면 어이가 없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찾아보니 이 영화는 프랑스 소설이 원작이라고 한다.

뭐 물론 삶과 죽음으로 순환하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근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 가치를 무척이나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도 알고있고.

그런데 <호모 데우스>의 출현은 점치고 있는 이 시대에 가족과 생명의 탄생이, 그리고 가족이라는 시스템이 우리가 계속 유지켜나가야 할 인류의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정말 옳은 방향성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미장센이 훌륭한 영화였다고 평하기로 하자.(진짜 아름다운 영화였다. 그래서 안 졸고 끝까지 봤는지도 모른다.)

헌데 이 영화의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배경이 상류층이어서인게 아닌가.

주인공 세 여인이 하층민이었다면

여인들의 삶이 아이를 낳고 먹여살리고 늙어서도 계속 빈곤에 허덕이고, 자식들에게 짐이되고 이런 삶이었다면

과연 줄줄이 낳아 놓은 자손들을 그렇게 아름답게 표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삶을 노동과 희생, 소모가 아닌 순환과 숭고함으로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었을까.

 

큰 의미 없이 본 영화였는데 쓰고 나니 길어졌다. 

 

이번 주는 <청춘의 문장들>을 읽을 것이다.

많이는 못 읽을 것 같다. 바쁘기도 하고, 요즘은 글을 좀 더 열심히 쓰려고 한다.

일기도 다시 쓰고 있다.

<청춘의 문장들>의 한 챕터 읽어보았다.

참 좋았다.

글이란 이런 것이지. 이쯤되야 글이지, 싶다.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나는 왜 그런 능력을 못 가진 걸까.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나같은 사람도 끄적이도록 만드는

막 글이 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그런 글들이었다.

그리고 봄에 읽으면 정말 좋은 글들이었다.

몇 장 읽지 않았는데도, 이번 주는 <청춘의 문장들>로 행복해 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난다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만나는 것 만큼 힘들다. 물론 책 쪽이 좀 더 쉽기는 하지만.

 

 

자료실 앞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다가 지난 비에 많이 떨어졌다.

여하튼, 삶을 다시 정돈해야하는,  봄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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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도파민을 생성케 하는 일시적인 행복이 아니라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장기적인 목표를 추구하는데서 오는 행복을 말한다. (...) 에우다이모니아는 사람이 각자에게 주어진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의미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15~16p.)

죽음과 상실에 대한 실존적인 두려움으로 대표되는, 교과서적인 중년의 위기를 경험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게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중년은 인생의 골짜기라기보다는 산 정상에 가깝다. 나는 또한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중년의 특징인 고통과 건망증, 상실, 수모, 비극 따위를 성숙하게 바라본다는 점을 알게됐다. 그들은 대개 자조적 태도를 취할 줄 알고, 자신에게 없는 것이나 성취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진 것으로부터 의미를 이끌어 낼 줄 안다.(41p.)

장수에 가장 도움이 되는 성격은 외향성이나 낙천성이 아니라 신중함이었다. 신중한 사람들은 위험한 행동을 삼가는 것이다. 또 다른 반직관적 통찰이 과로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지도 모르겠다. 바로 스트레스가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마치 아침식사로 과일과 요구르트 대신 달걀과 베이컨을 권하는 것처럼 말도 안 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스트레스는 참여감을 고취시켜 활기찬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준다. 일이 많은 직업을 가진 ‘일개미‘들이 일을 싫어하거나 지겨워하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았다. 프리드먼과 마틴은 이렇게 주장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목표를 이룬 뒤에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며, 열심히 참여하고 일하는 것이 곧 장수한 이들의 특징이다. 오래 산 사람들은 스트레스 때문에 일찍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떄문에 고된 일을 회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였다!"(47p.)

"내가 처음 이 연구를 시작했을 때 그들은 막 중년에 들어선 참이었지요. 이혼한 사람도 꽤 있었는데, 나는 이혼을 불안정하고 신경증적인 성격, 관계를 쌓아가는 데 적합하지 않은 성격을 입증하는 증거로 봤어요. 그런데 내 책의 편집자가 그러더군요. ‘조지, 당신은 이혼을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오랜 세월 사랑하며 살아가는 게 좋다고 이혼이 나쁜 건 아니에요‘라고요."
그 편집자의 말이 옳았다. 마지막 책을 쓸 때쯤 베일런트는 가장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들 중 일부는 진정한 사랑을 만나기 전에 두세 번의 결혼을 경험했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51p.)

스턴은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그 미만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보다 치매에 걸릴 확률이 절반가량 더 적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복잡한 일(건설 노동자나 수위보다 관리직이나 변호사)을 하는 것도 치매에 걸릴 위험을 절반으로 줄였다.
스턴은 이렇게 말한다. "이 2가지를 한데 합치면, 학력과 직업 성취도가 낮은 사람들은 학력과 직업 성취도가 높은 사람들에 비해 치매나 알츠하이머에 걸릴 확률이 4배 가까이 높습니다."(89p.)

"(...)내가 어떤 사람을 나의 가장 친한 친구로 생각하는데 그 사람은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될 때 그 관계가 몹시 불편해진다는 거야. 힘의 불균형 떄문에 그렇게 된다는 거지. 이런 경우 2가지 방법 중 하난를 택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어.(...) 더 열심히 노력해서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거나 아니면 다른 친구를 찾아보는 거." (137p.)

1960대까지의 결혼생활은 부부간의 동반자적 협력과 사랑을 바탕으로, 뚜렷한 성 역할을 가지고 자녀 양육 위주로 돌아갔지만 이제 그런 시대도 끝났다. 오늘날의 부부는 정서적인 면이나 일과 사랑 등 모든 면이 충족되기를 원하며, 자신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배우자가 도와주기를 바란다고 핑클은 말했다. 그는 이것을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위계이론 중 가장 높은 단계에 비유했다. 우리는 배우자의 본질, 즉 그를 특징짓는 꿈과 소망, 내적 갈등을 깊이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1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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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재발견>을 읽고 있다. 내가 읽기 싫어하는 종류의 책인데. 두껍고, 다양한 사례만 가득하고 사례에 비해 결론은 좀 빈약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마음을 흔드는 구절들도 있고, 놀랍게도 새롭게 알게된 것도 많다.

한마디로 읽은 만한 책이다. 막 재미가 있는게 아닐 뿐.


요즘은 책을 많이 못 읽었다.

주범은 게으름과, 막 돋아나는 새싹으로 느낄수 있는 봄기운과 웹툰 <외모지상주의> 때문이다.

인구에 회자되는 만화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니,

한 번 손 대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는게 흠이다.

꽤 오래전부터 연재된 모양인데, 난 이제 정주행이다.

이제 100화를 좀 넘게 봤더니 슬슬 비슷한 레파토리가 지겨워 지려고 하는데, 

여하튼 주인공의 비밀이 밝혀질 때까지는 계속 볼 것 같다. 좀 자제하면서 아껴봐야하는데....


좋은 소식이 있다면, 다음 주에는 더 많이 읽을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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