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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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도서실에서 책을 정리하다 한 출판사에 있는 선배에게 갑자기 전화를 했다. 그 선배가 만든 책에서 오자를 발견한 탓이었다. 선배와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안부도 챙기기 전에 선배가 만든 책의 오자에 대해 떠들었다.
'아니, 이게 초판 1쇄면 그냥 넘어가는데, 2쇄거든요? 그런데도 오자가 나왔어요...'

선배는 알고 있었다고, 고치라고 했는데 안 고쳐진 모양이라고 더듬거리면서 고맙다고 덧붙이고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맙소사.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몇 년만에 선배에게 전화를 해서, 막무가내로 선배가 만든 책의 오자 발견을 떠들다니... 정신이 들고 나니 낯이 뜨거웠다.

한 후배에게 작년에 빌렸던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 시키기>. 펼치기 전엔 좀 부담스러웠는데, 일단 펼치니 나를 귀찮게 하는, 나의 독서를 방해하는 많은 일들에 짜증이 났다. (좀 미안하긴 하지만 아이들도 포함이다. 애들아, 정신 나간 에미를 용서하려무나.) 어쨌든 책을 손에서 놓기 싫었다.

교묘하게 지적 허영심을 토로하는, 허영심인 줄은 알지만 결코 벗어버리고 싶지 않은... 그런 점이 공감이 갔다. 나도 내 서가를 갖고 싶다. 영문학은 시대순으로, 미국문학은 작가순으로 정리를 해야 할 만한 그런 서가. 이 또한 허영심이리라. 그 허영심을 적당히 만족시켜주는 사서라는 직업에 감사한다.

언젠가는 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다락방 가득히, 내가 좋아하는 책을 꽂아두고, 누군가에게 방해받지 않은 채 그 안에서 편안하게 독서를 하다 생을 마감하는 꿈을 꾼다. 생각만으로도 아름다운 나의 老年이여!

뱀발 하나.
이 책, 후배에게 돌려주기 싫어졌다. 다시 사려고 하니 초판이 아니라서 더 그랬다. 그래서 후배에게 온갖 아양(을 가장한 협박)을 떨었다. 나 이 책 안 돌려줄 거라고... 울며 겨자먹기로 그 후배, 그럼 선배가 가지세요... 했다. 앗싸!

뱀발 둘.
뒤집힌 따옴표를 하나 발견하곤, 너무나 즐거웠다. 아마 초판이어서 남아 있었겠지. 저자와 같은 악취미를 가진 것이 정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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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99% 엄마의 노력으로 완성된다 - 가정학습 이론편
장병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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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저 낳기만 하면 나는 엄마가 되고, 아이들은 저절로 자라는 것인 줄로만 알았던 철없는 나는 이제야 발등에 떨어진 불 때문에 절절 매고만 있다. 그래서 늘 이런저런 육아서들을 보면서 이럴까 저럴까 헤맨다.

그렇지만 아들 셋을 모두 서울대에 넣었다는 사람의 책도, 아이가 알아서 미국의 명문대학에 들어갔다는 사람의 책도, 아니면 아이가 영재로 자라고 있다는 책들도 나에게 크게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모두 결과론적으로 아이가 잘 되었기 때문에 그 엄마들의(혹은 아빠의) 육아법이 빛나는 것이었지, 만일 아이가 사회의 눈에 그럴 듯하게 자라지 못했다면 그 부모의 육아법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장병혜 박사의 책도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 책을 집었다. 혹시 내가 좀 베껴볼 만한 내용은 없을까 싶어서.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그의 글은 자신감이 넘치고 인생 또한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부모는 늘 아이의 정신적인 스승으로 서야 한다는 멘터論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얘기였고, 아이들을 비교하지 말고 장점만 찾아서 칭찬해주라는 얘기도 공감이 가는 얘기였다. 일본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집안일을 돕던 사람에게 학원을 다니도록 했다는 얘기는 감동스럽기도 했다.

정말 부담스럽고 다소 과장이 섞인 말인 듯하지만, 아이는 99% 엄마의 노력으로 완성된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서울대 합격자들을 보니, 전업주부의 자녀가 취업주부의 자녀보다 몇 배나 많았다지... 물론 전체 전업주부와 취업주부의 퍼센티지를 계산한 수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끔은 아이에게 온전히 정성을 쏟지 못하는 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정말 부담스럽다. 왜 온통 엄마 탓인가. 지들 낳아주고 먹여준 것도 어딘데, 왜 온통 엄마탓인가. 잘 되면 지들 덕이고, 못 되면 엄마 탓인가. 왜 온통 엄마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것으로 몰아세우는가 말이다.

이 시대, 이 땅에서 엄마가 된다는 게 그렇게 죄를 짓는 일인가 말이다. 이 나이가 되도록 내 앞길도 몰라서 이리 헤매는데... (애 많이 낳게 하려면 돈만 몇푼 쥐어주면 된다는 위정자들의 발상은 정말이지 한심 그 자체이다. 물론 그 돈도 내가 셋째 낳았을 때 좀 주지... 하는 생각도 있지만)

하루종일 일하고 들어와서,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을 하다 보면, 그 밥 먹을 힘도 없을 때가 있다. 아이들에게 말 한마디 붙이기 싫은 날도 있다. 남들보다 편한 일을 하는데도 그렇다.

아, 난 엄마가 맞을까? 이런 판국에 내가 어떻게 아이들에게 멘터가 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볼 때는 자느라 바쁜 내가... 어쩌랴.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엄마 탓이 아니라고 생각해주기 바란다. 엄마 잘못 만난 지들 팔자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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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사건들을 거치면서, 학교도서관 사서로서의 매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대망의 2004년엔 열심히 놀아보리라, 나를 위해 살아보리라 다짐을 했었다.

당연히, 재계약은 안 하겠노라고, 좋은 사람(교장선생님 말씀 잘 들을 사람) 찾아보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새 사람을 찾지 않는다. 그리고 재계약을 하자고 자꾸 말한다. -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나를 예뻐해서 혹은 나를 믿어서, 그리고 내가 능력이 있어서는 절대로 아니라는 걸. 벌써 나를 잘 파악해버린 거다. 밟으면 꿈틀 하다가, 좀더 세게 밟으면 그냥 깨갱해버리는...

새학기엔 학부모도우미도 뽑지 않겠다고 말한다. 사실 그 중간에서 괴롭기는 했었다. 그렇지만 도움을 받는 것도 컸다. 내가 알지 못하는 자료를 많이 찾아주었고, 무엇보다도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주었다. 자잘한 청소부터 힘쓰는 일까지...

도우미도 없이 운영을 하려니, 그나마 몇달이라도 우리 도서실 물을 먹어본 내가 필요했을 것이리라. 새 사람을 뽑으면, 새로 적응하는 데 한달은 걸릴테니...

그렇지만 나는 벌써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었다. 지쳤고, 쉬고 싶다.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좋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쉬기 위해 너무 많은 계획을 세워버렸다.

(그리고 이건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나 그만 둔다고 선생님, 학생들에게 선물도 다 받아버렸다. 그런데 쪽팔려서(!) 어떻게 다시 나온단 말인가!)

어떤 엄마는, 그럼 돈을 더 많이 달라고 하라고 얘기한다.

행정실 모 선생은 나에게 근무시간을 줄여달라고 얘기하란다.

도서도우미 했던 엄마는, 그럼 교장선생님께 도서실에 터치하지 말고 전권을 달라고 얘기하란다.

정작, 나는...

도장을 정말 찍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가 달리려고 마음먹었던 호수공원, 아이들과 함께 치려고 사둔 피아노책, 읽고 싶었던 책들이 몽땅 쌓여 있는 책꽂이... 이런 것만 눈에 아른거린다.

아, 인생 꼬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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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에 있다 보니, 참 다양한 종류(?)의 선생님들을 뵌다.
어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도 걸핏하면 아이들을 도서실로 쫓아(!)버리고 본인의 행정업무를 하시기도 하고, 어떤 선생님은 실기시험 대기실 정도로 사용하신다. 물론 그 반 아이들은 도서실과 휴게실의 구분을 잘 하지 못한다.

모두 그렇다고 하면 선생님들은 억울해하시겠지만, 어쨌든,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아이들을 보면, 어느 반인지 대충 알 것 같으니까.

심지어는 특별활동시간에 독서부를 담당하시는 선생님께서, 아이들만 도서실로 보내버린다.
독서지도가 어디까지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도서실에 그 선생님이 계시지도 않으니 다른 지도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은 대충 한 10분쯤 앉아있다 그냥 가버린다.
아마 특별활동수당(있는지 제가 직접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은 선생님이 챙기시겠지?

많은 선생님들 중에, 내가 정말 존경하게 된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나이는 나보다 훨씬 어린, 20대 총각선생님이신데, 우리 학교가 첫발령지란다.


6학년을 맡고 계시는데, 이 선생님은 도서실에 아이들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꼭 함께 오신다.
그리고 40명이나 되는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맞는 책을 직접 골라주셨다.

막 사랑에 빠진 듯한 여자친구에게는 '첫사랑'을,

책이라고는 죽어라고 읽기 싫어하는 남자친구에게는 셜록홈즈를,

책을 좀 읽었다 싶은 친구에게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공부는 잘 하는데 사회를 힘들어한다 싶은 친구들에게는 역사소설을...

보고 있는 내 마음 속에서 감동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그래서 그 선생님은 나한테 팍! 찍혔다(!)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선생님을 지켜봤다. 아시나 몰라, 우리 학교에 스토커 아줌마가 있다는 걸...ㅋㅋ

가만히 보니, 그림책을 무지무지 많이 읽고 좋아했다.

우리 도서실에 그림책만 따로 모아둔 서가가 있는데, 항상 그 앞을 왔다갔다 하시는 거다.
여쭤봤더니, 완전히 그림책 전문가이다 ^^ 아이들 데리고 그림책 읽으면서 그림그리기 수업도 한단다. 미술 전공이시랜다.

엊그제는 뭔가를 복사해서 가지고 가시는데, 대장금 노래를 가지고 단소수업을 하기 위해 복사한 대장금 악보였다. 오선지 악보가 아니라 궁상각치우 뭐라고 쓰인 그 국악 악보.

그 반 엄마들에게 물었더니, 그렇다고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그냥 따라가는 선생님도 아니란다. 특히, 공부 못하는 건 봐줘도 예의 없는 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으신단다. 그래서인가? 그 반 아이들이 도서실에 올 때는 꼭 깍듯이 인사하고, 떠들지 않고, 의젓하다.

엄마들이 보는 자리에서 아이들을 벌을 준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엄마나 아이나 티끌만큼도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았단다. 이유가 있었다나?
내가 아이들을 키워봐서, 그리고 학교에 몇 달 근무해봐서 아는데, 아이들도 받을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자, 이쯤에서 본심을 밝힐까?

내가 그 선생님을 찍었던 이유는...
뭐 나한테 시집 안 간 동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
내년에 도서실 담당좀 해주시라고 부탁드리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내가 근무해보니, 일용직 사서교사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하시는 분이 바로 도서실 담당교사였다.

담당교사의 의욕이 도서실을 살리고 죽이고... 했다. (물론 교장선생님의 의욕과 '바른' 정신이 더욱 중요하지만 -.-)

그래서 엊그제... 진지하게 부탁했다.
물론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선생님께서 도서실을 맡겠다고 하시고, 의욕적으로 해주시면 안 되겠느냐구...

그랬더니, 그 선생님...
내년에 옮기신단다. 아주 작은 학교를 지원할 거라고 하셨다.

헉, 엄마들 난리 났다.
그 학교가 워디여... 나 따라갈껴...

그리고 또 한 가지, 담당교사는 자기가 맡겠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위에서 정해서 내려온단다.

너 이거 해, 너 저거 해. 그럼 그냥 따라 하는 거란다. 윽~

이래저래 내가 학교를 그만 둘 이유가 계속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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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4-03-29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으신 선생님이시네요. 일부러 작은 학교로 가시는 것도 그렇고...

호랑녀 2004-03-30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일부러 찾아오셔서 인사하시더군요. 꼭 한번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음... 될까 모르겠습니다.
정년퇴임하실 때까지 늘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구요.
 

우리 학교는 반마다 돌아가면서 학교 앞 청소를 하는 게 있다.
아침에 한 30분쯤 일찍 나가서 아침자습 안 하고 봉지에 쓰레기를 주워담는다.  어떤 아이들은 제법 열심히 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10리터들이 쓰레기봉투를 가득 채우기도 한다. 평소에 보면서, 참 대견한 아이들이 많다고만 생각했었다.

오늘 아침, 아이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러 가는 길에 마침 아는 3학년 여자아이를 만났다.

나 : 어머, ** 참 착하구나. 수영아(우리 딸), 언니 참 착하지? 수영이도 놀이터에서 놀 때 쓰레기 아무 데나 버리면 안돼?

** : 너두 크면 이런 짓 해야돼. 참 안됐다.

나 : 이런 짓? 착한 일에는 짓이라고 안해.

** : 착한 일이면 선생님들이나 하세요. 우린 추워 죽겠어요.

나 : @#$(*&&^%

그냥 날씨 탓만이 아니라 몹시 추워졌다. 슬퍼졌고.
아이가 잘못이 아니라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이라고 느끼도록 한 선생님들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부모 탓이거나...

공부가 문제가 아니다. 바르게 키우는 거, 내가 바르게 사는 거...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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