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사건들을 거치면서, 학교도서관 사서로서의 매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대망의 2004년엔 열심히 놀아보리라, 나를 위해 살아보리라 다짐을 했었다.

당연히, 재계약은 안 하겠노라고, 좋은 사람(교장선생님 말씀 잘 들을 사람) 찾아보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새 사람을 찾지 않는다. 그리고 재계약을 하자고 자꾸 말한다. -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나를 예뻐해서 혹은 나를 믿어서, 그리고 내가 능력이 있어서는 절대로 아니라는 걸. 벌써 나를 잘 파악해버린 거다. 밟으면 꿈틀 하다가, 좀더 세게 밟으면 그냥 깨갱해버리는...

새학기엔 학부모도우미도 뽑지 않겠다고 말한다. 사실 그 중간에서 괴롭기는 했었다. 그렇지만 도움을 받는 것도 컸다. 내가 알지 못하는 자료를 많이 찾아주었고, 무엇보다도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주었다. 자잘한 청소부터 힘쓰는 일까지...

도우미도 없이 운영을 하려니, 그나마 몇달이라도 우리 도서실 물을 먹어본 내가 필요했을 것이리라. 새 사람을 뽑으면, 새로 적응하는 데 한달은 걸릴테니...

그렇지만 나는 벌써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었다. 지쳤고, 쉬고 싶다.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좋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쉬기 위해 너무 많은 계획을 세워버렸다.

(그리고 이건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나 그만 둔다고 선생님, 학생들에게 선물도 다 받아버렸다. 그런데 쪽팔려서(!) 어떻게 다시 나온단 말인가!)

어떤 엄마는, 그럼 돈을 더 많이 달라고 하라고 얘기한다.

행정실 모 선생은 나에게 근무시간을 줄여달라고 얘기하란다.

도서도우미 했던 엄마는, 그럼 교장선생님께 도서실에 터치하지 말고 전권을 달라고 얘기하란다.

정작, 나는...

도장을 정말 찍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가 달리려고 마음먹었던 호수공원, 아이들과 함께 치려고 사둔 피아노책, 읽고 싶었던 책들이 몽땅 쌓여 있는 책꽂이... 이런 것만 눈에 아른거린다.

아, 인생 꼬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