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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쇼 선생님께 ㅣ 보림문학선 3
비벌리 클리어리 지음, 이승민 그림, 선우미정 옮김 / 보림 / 2005년 3월
평점 :
1.
손으로 꾹꾹 눌러 글을 써본 게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편지는 벌써 몇 년 전부터 이메일을 이용하게 되었고, 일기도 컴퓨터에 쓴다.
아, 가계부마저 (가끔) 컴퓨터에 쓰게 되었으니, 손으로 하는 일이라고는 아이들 수학 문제집 채점해주는 것, 가끔 아이 일기에 댓글 써주는 것, 시장갈 때 메모하는 것 정도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언제 편지를 써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잘 깎인 연필로 꾹꾹 눌러서 편지를 써 보고 싶어졌다. 일기도 쓰고 싶어졌고.
2.
책의 맨 처음 편지는 주인공인 리 보츠가 작가인 헨쇼 선생님께 이렇게 쓴 것이다.
우리 담임 선생님이, 선생님이 쓴 책을 읽어 줬어요. 개에 대한 얘기인데 아주 재미있었어요. 우리 모두 입을 헤 벌리고 들었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쓴 편지이다. 내가 감동받은 부분은 이런 거다. 담임선생님이, 2학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얼마나 재미있게 읽어줬으면 입을 헤 벌리고 반 아이들이 듣는다.
아이는 3학년이 되어서 스스로 그 책을 읽어본다. 자기가 지금까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두꺼운 책이었단다. 여러 챕터로 나뉜 책이었다.
중편 혹은 단편 동화를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읽어주셨던 것이다. 유치원도 아니고 1학년도 아니고, 2학년이었다. 날짜가 5월이었으니 미국의 학제를 생각한다면 2학년이 다 끝나갈 무렵인 듯하다.
우리 아이들 2학년 때... 난 어떻게 해줬나. 책을 읽어주기는커녕, 스스로 읽고 독서록 쓰라고 늘 채근했을 뿐이었다. 반성한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얼마나 복 받은 놈들은 이런 담임선생님을 만날까.
3.
리 보츠는 맛있는 반찬을 자꾸 훔쳐가는 도시락 도둑을 잡기 위해 도시락에 경보기를 단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가면서 스스로 연구해서 경보기를 만든다.
(엄마, 누가 자꾸 도시락 반찬을 훔쳐가요.
뭐? 도대체 니네 학교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친다니? 엄마가 선생님에게 전화할게.
이런 식의 해결이 아니다.)
드디어 경보기를 단 날, 기대했던 도둑은 오지 않고, 정작 점심시간이 되자 경보기를 울리면서 열어야 한다.
끝까지 도시락 도둑은 잡지 못한다. 물론 경보기 덕분에 그 다음부터는 아예 도시락 반찬을 훔칠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만, 난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가 좋다. 만일 도둑을 잡았다면 어떻게 했겠는가. 그 아이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또 리 보츠의 마음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경보기가 울려 교장선생님에게까지 알려졌지만 그 누구도 도시락 반찬을 훔쳐가는 도둑에 대해 떠들어대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그 도둑을 잡겠다고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참 마음에 든다.
4.
어린이작품집에 실릴 작품을 공모한다. 상을 받으면 작품집에 실릴뿐만 아니라 동화작가를 만나 함께 밥을 먹을 기회를 준다. 정말 훌륭한 상 아닌가. 자기가 즐겨 읽던 책의 작가를 만나는 것이 상이다.
상품권(요즘 아이들이 받아오는 상 중에 제일 흔하면서도 마음에 제일 들지 않는다)도 아니고 장난감도 아니고 책도 아니고, 작가를 만날 기회라니. 이런 창의적인 선물을 주는 공모전 어디 없을까.
게다가 헨쇼 선생님은 눈이 반짝이는 젊은이란다. 아, 난 헨쇼 선생님이 나이 지긋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5.
작가에 관하여.
책을 다 읽고 나서,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책을 썼는지 궁금했다. 작가 이름은 비벌리 클리어리(헨쇼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작가가 어릴 때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셨고, 작가 자신도 대학을 졸업한 뒤 어린이 책 사서로 일했단다.
역시... 훌륭하다.
이런 사서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내가 다시 사서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아이들 좀 키워놓고 다시 사서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나이가 좀 들어서,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뒹굴 수 있는 그런 사서선생님. 좀 두꺼운 동화책이더라도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슬금슬금 아이들의 반응도 살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