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긴 놀랐던 일이야 많다. 최근의 동남아 지진도 그렇고...

지극히 사적으로, 10월 말이던가, 학교를 그만 둘 무렵... 아들놈 얼굴이 다소 우울했다. 그런데 나도 학교를 정리하느라 한참 바쁠 때라 자꾸만 아이들의 일을 뒤로 미루게 되었다. 다음달부턴 학교 그만 두니까 그때 아이들을 챙겨야지, 며칠만 기다려다오...

그런데 결국 아들놈이 상담을 청해왔다. 아니, 밥 먹다 그냥 뚝뚝 눈물을 흘렸다.

일주일에 세 번,  영어학원에 다니는데... 엄마가 좀 데려다주고 데려오라는 거다.  것두 함께 다니는 다른 놈이랑 둘이.

무슨 소리냐고 캐물었더니...

나 참, 다른 놈들이 자꾸만 때리고 괴롭힌단다.

엄마가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이것이 문제의 해결은 아닌 것 같다, 자꾸만 피하면 결국 또 문제는 터진다, 그러니 해결해보자... 고 얘기했다.

함께 차를 타는 놈들이 늘 집중적으로 한 놈을 때리는데(그러니까 이놈과 자기를 함께 데려다달라는 거였다), 우리 아들도 함께 때리도록 강요를 한단다. 혹시 동참하지 않으면 자신도 맞을까 봐 눈치를 보면서 자기도 때리는 척 한 적도 있단다. 가끔씩은 자기가 맞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평소에 맞는 놈도 자기를 떄린단다.

너무나 너무나 놀랐다. 스스로 자책도 하고... 아이를 생각하니 정말 안스러웠다.

지금은 두어 달 지나서 안정이 되었지만, 그 당시엔 정말 때리는 집에 쫓아가서 난리를 칠까, 영어학원에 쫓아가서 난리를 칠까, 학교에 가서 때리는 놈 담임에게 얘기를 할까... 정말 별의 별 생각을 다 했다.

담날 아침 일찍, 함께 맞는 놈의 집에 전화했다. 그 엄마는 전혀 모르고 있었고, 다만 장난이 심하다고 하더라고... 했다. 우리 아이가 그런 걸로 고민한다고 얘기했더니 아이에게 묻고는 나에게 아이가 장난이라고 얘기한다고, 자기네 아이는 스트레스를 안 받으니 괜찮다고... 한다. 그리고 때리는 놈(평소에 내가 학교에서 늘 보는 놈인데 굉장히 예의바른 데다 카리스마가 있는 놈이었다. 담임의 총애도 대단한 놈이었다) 엄마가 만만치않으니 얘기를 하려면 아주 잘 준비해서 하라고... 나에게 충고했다. 전력이  있다는 것이다.

영어학원에 전화해서 학원차량에서 매일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대책이 무엇인지 전화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결국 쫓아갔다. 부원장이시라는 분이 나와서, 안전요원을 배치할 수도 없고, 기사 말로는 아무 문제 없다고 했으며, 더 조사한 후에 연락 주겠단다.(연락 없다, 아직도)

학교에서 때렸던 놈 중 제일 고학년인 놈을 불러 물었다. 장난이었단다.

그러니 결론은... 때린 놈도 장난이었고 맞은 놈도 장난이라는데, 중간에 끼어서 바보같은 울 아들놈만 마음고생을 하는 거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난... 늘 때리는 놈이 정해져 있고, 늘 맞는 놈이 정해져 있는데 그게 어떻게 장난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주로 맞는 놈도 스트레스가 없다니... 내가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어보였다.

결국, 울 아들은... 평소에 가고싶다던 유도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영어학원 끝나자마자 바로 학원차를 탈 수 있는 곳이 있기에, 그곳으로 보낸다. 영어학원 차량에 탑승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난 격투기 쪽 학원을 늘 싫어했는데, 결국 아들놈 소원대로 되었다...ㅠㅠ 수영이나 농구나... 뭐 이런 운동을 하면 얼마나 좋냔 말이다...

또 한 놈... 맞고도 스트레스 안 받던 그 성격 좋은 놈은... 늘 게임기를 가져온단다. 아이들이 그 게임기 주변에 몰려들어서 그 후로는 그런 '장난'이 없나 보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아들놈이 산타에게 편지를 썼다. 무슨무슨 선물을 받고싶다는 얘기 끝에, 반성할 게 있다면서,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일을 자기가 막지 못하고 오히려 가끔 자기도 끼었던 것을 정말로 반성한다고 썼다.

두 달이 지나고서야 눈물이 나왔다. 무능하고 알량한 이 에미의 모습을 자책하는...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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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12-30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는 당사자가 장난으로 인식하니까 괜찮다고 볼 수 있을지.... 때리는 아이도 맞는 아이도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그런 것일까요? 각설하고, 호랑녀님의 아드님은 정의의 사도로 클 것 같아요.^^(유도를 배우면 자기를 보호할 능력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요?)
-아참, 평민이라는 단어를 쓴 건 아영이가 아니고 한 반의 다른 아이랍니다.

로드무비 2004-12-30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도 초등학교 입학하는데 걱정이 많습니다.

호랑녀님은 그래도 최근까지 학교 도서관에서 근무하셨잖아요.

분위기는 최소한 파악하고 계실 것이고.

학교 입학 전에 전문영어학원 보내야 한다느니 법석을 떠니

그런 광경을 보며 마음이 무겁습니다.

남자아이들 같은 경우는 폭력 문제도 장난이 아니군요.

많이 놀라셨겠어요. 그래도 최선의 노력을 하셨네요 뭐.

그것만 해도 장하십니다.

가을산 2004-12-30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가끔 아이들이 더 무서울 때가 있어요. 아무 생각없는 '장난'이 더 큰 상처를 주는데...

자기 뿐 아니라 맞는 친구까지 걱정해 주는...그런 심성을 가진 아이는 흔치 않답니다.

호랑녀님 아들은 사려깊은 아이로 자라날 것 같아요.


진주 2004-12-30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격투기는 싫어하지만, 남자아이(여자아이도 포함해서)는 반드시 호신술을 익혀야 한다는 게 남편의 지론이에요.

특히, 남자애들은 중학생 정도가 되면 몸싸움이 심한가 보던데, 자기몸을 방어할 힘과 의지가 아주 중요하대요..

호랑녀님의 눈물에 제 맘도 아파오네요.

아흑, 남의 일이 아녀..이건..

반딧불,, 2004-12-30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의 일이 아니다에 동의 합니다.

얼마나 힘드셨을지...



무엇이 옳은 지는 모르지만, 최소한의 방어는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아들내미가 여려서 저도 신경이 쓰입니다.

여린 마음에 맺힌 상처는 많이도 오래가는데....잘 다독여주세요.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다른 엄마의 문제처리 방식이 참 맘에 안드네요.

어떻게 그렇게 다른 식으로 해결 할 수 있는지...

마태우스 2004-12-30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부모가 개입되면 고자질했다고 또 때리고 그러는데, 호랑녀님 경우는 그래도 잘 해결된 듯 싶네요. 장난이라.... 한명이라도 장난이 아닌 걸로 느낀다면 그건 장난이 아닌 거겠죠.

숨은아이 2004-12-3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한 사람이 괴로워한다면 장난이라도 멈추는 게 옳죠. 성희롱 문제도 그렇잖아요. 가벼운 장난이라도 듣는 사람이 불쾌하고 모욕감을 느낀다면 그건 성희롱이에요. 아드님의 양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전에도 느꼈지만, 호랑녀님 아드님은 정말 멋져~!)

호랑녀 2004-12-30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투기 운동... 제가 안 시키려는 이유는 안 되는 놈은 영 안 되더라는 생각 때문이랍니다 ㅠㅠ 태권도를 배웠는데, 심사보는 날 온 식구가 갔더랬습니다. 대련을 하는데, 상대가 멀리 있을 때는 무지무지 손발을 뻗다가, 상대가 다가오니... 멈추더군요. 선천적으로 때리지 못하는 놈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ㅠㅠ

제 방법 역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아니었죠. 때리는 놈 불러다가, 당하는 놈이 기분 나쁘면 그건 더이상 장난이 아니지 않겠느냐고 얘기했는데, 그 후로도 늘, 그놈이 울 아들에게 보복할까봐 두려웠습니다.

네가 형이고, 울 아들놈이 널 좋아하니 내가 널 부른 거라고, 너만 믿는다고, 후배들이 신사답게 행동하도록 네가 좀 도와줘라고... 부탁한다고 얘기했는데, 어쨌든 그놈도 학원을 떠나고, 같은 학년, 카리스마 있던 그놈도 학원을 떠났대요. 유치원부터 다녀서 영어를 무지 잘 했다나 어쨌다나...

울 아들넘은... 아직도 늘, 저놈이 커서 사람구실이나 할 수 있을까 염려되는 상태입니다 ㅠㅠ

진주 2004-12-31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제가 아들키우면서 두 번의 폭력 피해가 있었는데, 다행히 잘 해결했답니다만...

저를 비롯하여 호랑녀님이나 댓글 다신 다른 분들이나 아이 키우면서 공통된 고민거리가 폭력인 것 같은데 우리 아이의 경우를 한 번 이야기하면서 지혜를 나누고 싶군요...

새해에 제가 페이퍼 한 번 올리겠습니다.

진주 2005-01-01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페이퍼 올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