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유용주 지음 / 솔출판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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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은 자기가 어려움에 처했을때 이런 말을 종종 하곤한다. `야. 너보다 훨씬 어려운 사람 많어. 지금의 네 상황보다도 훨씬 어려운 이들을 생각해봐. 넌 지금 행복한거야.` 정녕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아서 인지 자기가 위로의 배역을 맡게 되었을때는 너무나 잘 외어지는 대사중 하나이고 그 만큼 부족한 희소성으로 인해 듣는 배역에서는 그다지 중한 글귀로 들리지 않는다. `소 귀에 경읽기`까지는 되지 않더라고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린다` 정도랄까?

나 역시 나름대로 어린시절은 힘들게 보냈다고 생각한다.(아. 물론 지금도 어리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집도 한때는 매일아침 가족의 생사여부가 걱정되는 낡은 연탄불에 우리가족의 따스함을 맡겼고. 서서하는 부엌일은 꿈에도 꾸지 못한 오로지 튼튼한 우리 어머니의 허리만 밑던 재래식 부엌이 있었고 비오는 날은 넑직넑직한 대야를 네다섯게 필요로 하던 여유로운 구멍을 가진 천장이 있었고 모든 고기는 해로운것이라 설파하며 가족들을 채식주의자로 전향시키려던 호사스런(?) 금전이 있었다.

물론 이 정도의 아픔이야 우리보다 훨씬 못사는 사람, 훨씬 어려운 사람에 비할바가 아니라는 생각은 수 많은 3잎크로바 열풍의 생각속에 독보적인 4잎클로바 생기듯 가끔은 하였다. 그래도 그 무슨 자랑이나 되는치, `나도 어려운 시절 많이 겪었어. 나도 크면 이 밑바닥 인생이 무언가 도움이 될거야.`라는 참으로 오만 방자한, 메추리 타조알 품듯한 사리분별 못한 생각만 하였다. 진정한 어려운 생활이란, 그런것을 극복하는 생활이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흔히 어려움을 겪고 크게 성공한 자서전적 성격의 책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지만 이 유용주 시인님의 글은 자서전적 성격이긴 하나 크게 성공한 사례라기 보다는 자기의 삶에 달관한 자기의 삶자체를 문학뿐이라고만 여기며 모든것을 아우려 지내는 자세가 엿보인다. 모든 부류, 모든 매체, 모든 관계에서 지금의 삶을 극복하라. 예전의 초라하던 너의 모습은 이제 버려라.라고 떠들어 대지만 유용주 시인은 오히려 앞으로 더 어렵게, 더 나누며, 더 힘들게 사리라 다짐한다. 말이야 쉽지? 아니다. 삶이 있기에 경험이 있는게 아니라 경험이 있기에 삶있든 유용주시인께서는 먼저 행동을 취하며 그것을 말한것이라 본다. 앞으로의 밝아올 생활에 부푼 기대를 안고 살아가다 실망의 찬맛을 보는것 보다 앞으로 더 어렵게 살며 오히려 지금 이 순간 이 순간이 더없이 달고 따뜻한 순간이라 여기며 살아가기. 그래서 나도 살아가리라.

모 cf카피중 `힘들게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문구가 대 히트다. 나는 남들이야 어떻든 의미를 이렇게 해석해 본다.`힘들게 일한 만큼 보상을 바래라` 당연히 힘들게 일했으면 그에 합당한 보상이 와야 성에 차고 도리라 여긴다. 하지만 진정 이땅에 힘들게 일하고 떠나기는 커녕 오히려 매몰당하는 베짱이보다 개미가 많은 이 시대에, 유용주 시인은 `힘들게 일한 당신 더 힘들게 일해라.`라는 문구로써 삶의 의미와 의욕을 되새겨 준다고 믿는다.

부디 이 책을 읽은 많은 분들이 다시금 되새기며 자기만의 제목으로 탈바꿈하길 바랍니다. 접속사 `그러나`는 `그래서`로, 조사 `는`은 `도`로. 모두들 되뇌어 봅시다. 그래서 나도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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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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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가지 읽으면서 단한가지 흠이 잡히지 않았다면 마지막 해설부분의 나름대로 일본을 잘 분석한 책이란것에 전적으로 동의할수 있을것 같다. 일본인들의 그 엄청난 추진력이라든지 극단적 단결력등, 그 행동의 문화적 배경을 서양인의 입장에서 그 정도 밝혔다면 이 `나름대로`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상 반박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도대체 이 저자의 `효`에 관한 생각인 인정은 커녕 면박을 주고싶은 마음을 금할길이 없었다. 그 `효`란 부분이 나오기 전부터 `온``온`거리며 사람사이의 관계를 완전 금전적 경제관계로 보는 태도도 싫었지만-저자는 그런 모습을 일본만이 아닌 동양의 모습으로 보며 은근히 멸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막상 `효`에 접어들어 `효`란 부모님에게 받은 만큼은 꼭 갚아야 하기때문에 어쩔수 없이 해야만 하는것이라는 것을 설명할때는 하마트면 책을 덮을뻔 했다.

이 부분 역시 저자는 일본뿐만이 아닌 동양의 한 면모인듯 은근히 비추어 내며 그렇지 않은 미국은 대단한 나라라는 것을 뻐기고 있어 보였다. 동양이 그렇듯 아니든 또는 미국이 대단한 나라이든간에 한 나라의 - 비록 난 일본은 좋아하지는 않지만- `효`에 관한 생각을 그렇게 기계적으로 본다는것은 `이 사람 인간맞어?`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충분했다.

그 `효`부분은 나에게서는 옥의 티라고 하고 싶다. 그 부분만 없었다면 `음. 나름대로 일본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었네.`라는 자기만족의 발언을 했겠지만 그 옥의 티 때문에 차마 저자에 대한 경멸의 생각을 떨쳐 버릴수 없다.

나름대로는 물론 서양인이라는 한계적 조건속의 나름대로는 공을 세운 책이라 하고 싶다. 하지만 미국이 최강이라는 사고에 잡혀 있으면서 쓴 책이 과연 너무나 객관적이다라는 찬사까지 받을 필요가 있을까하는 의문도 든다.(물론 `인텔리`들이 객관적이라고 했으면 객관적이다. 하찮은 지식실조 서민들은 거기에 이의를 제시할 마이크가 없다.) 그리고 그 `효`에 대해 서술했던 지극히 버쩍 마른투의 서술은 나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이 책을 덮으며 다른사람에게 과연 이 책을 읽어라고 권하겠는지 의문이 든다. 시일이 지나면 권하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당분간은 `금서`일것 같다. 원래는 서평은 적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감정적으로 나올것 같아) 도저히 내 마음속의 응어리로 남아있는부분은 흥분의 더듬병속에서 거칠게 나타나더라도 세상속으로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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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즐거움 (양장)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 / 김영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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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나는 보통 메모란것을 하지 않는다. 그다지 뛰어난 머리도 아니지만 다 읽고 정리해서 쓰기 보다는 머릿속에서 정리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적으로 메모장에 몇자 끄느적 거렸다. 생각의 정리라기 보다는 책 내용을 옮긴 거였다.

`창조하는 즐거움, 기쁨. 그것은 자기 속에 잠자는 재능이나 자질을 찾아내는 기쁨, 자기 자신을 보다 깊이 인식하고 이해하는 기쁨이 아닌가 생각한다.`

`창조하는 인생이야 말로 최고의 인생이다.`

` 소심심고(素心深考) 소박한 마음으로 돌아가 깊이 생각하라!`

'어떤 것이든 창조되고 나서야 비로소 의미가 생기고 스스로 걷기 시작한다.`

메모지에 있던 것중 눈에 띄는 데로 포획하여 옮겨 놓았다. 아무렇게나 휘갈겨 뒤죽박죽 섞여 있는 메모의 그 참맛은 이렇게 획일화된 규격에 맞추어 적어야 하는 방법과는 이질감이 있어 아쉽지만 어쩔수는 없다.

학문은 즐겁다. 평소에 난 학문이란 것은 즐겁고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학문은 즐겁되 대세에 따른 먹고 살기 위한 학습은 즐겁지를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펼치던 순간에도 `학문은 즐거워? 흥. 그래 먹고 사는데 지장없고 주위 걱정없는 사람에게 학문은 즐거울 지라도 학습은 괴롭다!` 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전의 생각을 여기에 적어놓은 것 조차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학문이든 학습이든, 그리고 그것이 자기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피치 못할 것이든 아니든 즐거운 것이다.

소위 인생은 짧다고 한다. 길어야 100년일 것이고 평균 수명은 70~80세 정도라고 한다. 이 짧은 인생에 자기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 버린다는 것은 어째 모순적이지 않을까? 우리는 자기자신을 여러 방법으로 발견을 하곤 하지만 이렇게 학문으로써 자기자신의 내면 깊숙함을 발견하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고 찬란한 일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학문은 즐거운 것이고 천재든 바보든 학문, 학습을 함으로 조금씩 나를 알아가는 그 야릇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학문의 즐거움. 현재 이 책은 양장으로도 나와 있으나 내가 본 책은 도서관 후미진곳에 쳐 박혀 있던 구판이다. 그 책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 또는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를 판가름하는 기준으로 우리같은 보통사람은 책을 세워서 보이는 종이의 색깔을 살핀다. 나 역시 무의식 중에 책을 똑 바로 세워서 종이의 자태를 살폈다. 느낌은 닥종이 같다는 거다. 실제로 닥나무가 뭔지도 잘모르며 닥나무로 만든 종이가 있는지 있다면 무슨 색깔이진도 잘 모른다. 하지만 웬지 닥종이 같다는 어감이 어울릴 만큼 누렇게 색이 바랬다. 그저 세월만 흘러 색이 변질한것이 아닌 그만큼의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가서 인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그런 종이의 색깔을 보며 처음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던 나의 머릿속에는 색다른 감회가 찾아 들었다. 뭐라고 딱 집어 말하기 힘든 무언가가 말이다.

`입시란 제도여건하에 학문, 학습이란것은 그저 시대의 산물이며 나의 일생에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갖게끔 하는 요즈음. 오랜기간동안 빛바래며 여러 사람에게 설파했을 그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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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학계의 노벨상 수상자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9-11 22:07 
    학문의 즐거움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김영사 전반적인 리뷰 知之者不如好之者요, 好之者不如樂之者니라.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2005년 9월 13일에 읽고 나서 떠오르는 구절이었다. 論語의 옹야편에 나오는 문구로 모르는 이가 없을 구절이다. 사실 배움의 끝은 없기 때문에 앎 자체에 집중을 하면 그것은 집착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물 흐르듯이 배움 그 자체를 즐기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광해군 - 역사인물 다시 읽기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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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은 수능 30여일을 남긴 여러분들을 위해 특별 강연자를 모셔서 강연을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수능을 몇일 남기지 않은 여러분에게 이런 시간을 빌게된것에 대해 먼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전 오늘의 강연을 광해군에게서 빌어오고자 합니다.웬 광해군이냐고요? 여러분들이 대학을 가기전 꼭 숙지했으면 하는것이 있어서죠. 자!그럼 여러분들이 광해군하면 떠오르는것이 뭘까요?'

'중립외교입니다!''대동법을 시행했어요''동의보감도 나왔죠'

'네, 그렇습니다. 의외로 많이 알고 계시는듯 하군요. 옛날에는 광해군하면 폭군을 먼저 떠올리곤 했죠. 선조 임금들에게 붙이는 `조` `종`이 붙지 않고 `군`이 붙은것만 보아도 이해할수 있죠. 그나마 역사바로 알기 운동같은것을 통해 교과서에나마 광해군을 폭군으로 몰지 않고 그래도 중립외교정책 같은 업적을 밝혀놔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얼마전에 학생때 배우던 국사책을 펼쳐 보았습니다. 물론 광해군에 대해 보려고 말이죠.그런데 그것을 찾는순간 전 웃음이 나와버렸죠. 국사책 구석에 광해군은 다만, `중립외교정책을 폈다`라는 단순한 말 한마디에 그치고 바로 인조반정으로 넘어가버리더군요. 현재는 얼마나 개정이 된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만큼 광해군이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애궂은 시간만 허비한 무능한 왕임을 의미할까요? 아닙니다.이것은 우리가 우리나라에서 숭배하는 영웅주의 사상에 크게 물들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올림픽같은 국제대회에서 종종 외국매스컴은 이런 말들을 합니다. `왜 한국선수들은 은메달, 동메달을 따면 씁쓸한 표정을 짖는지 모르겠다. 물론 금메달을 못딴 아쉬움은 있겠지만 세계의 은메달, 동메달은 대단한 의미를 지니는데 말이다.` 한번쯤은 들어 보셨죠? 네. 우리나라 인식의 문제점중 하나가 승자 아니면 패자란것이죠. 승자는 크게 숭배받되 패자는 암흑의 구렁텅이 속으로 치부되어 버리죠. 광해군도 결국은 역사속의 패자로써 대접을 받은거죠. 업적이야 어떻든 결과는 반정으로써 쫓겨 났으니까요.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는 세계화 시대. 소위 윈윈전략이라는 표어를 내걸며 세계각국과 접촉을 시도 합니다. 그런데 외적으로는 윈윈이지만 내적으로는 윈로즈를 명확히 구분하여 치부하다뇨. 안타깝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런 광해군을 패자로써 보지는 말아야 할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우리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원동력입니다. 선의의 경쟁을 하십시요. 선의의 경쟁이란 내가 `윈`할때 상대는 `로즈`하는 것이 아닙니다.진정한 선의의 경쟁이란 서로 `윈윈`할때를 일컫음 입니다.여러분 광해군은 비록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이루지 못하고 고진고래(苦盡苦來)를 겪은 비극의 인물이지만 우리는 결과만 놓고 볼것이 아닙니다. 광해군은 고진(苦盡)상황에서 정말로 부단이 노력하였습니다. 광해군은 그 어려운 왜란의 과정을 정말 열심히 극복하여 우여곡절끝에 왕위에 등극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위에 올라서도 태만하지 않고 민심을 위해서 노력하는가 하면 외국 열강들속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정말 슬기롭게 대처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우리는 이런 과정, 노력에 중점을 두어야 할것이지 결과에만 집착하여 패자라는 단어를 만들어 내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결과는 비록 인조반정이란 치욕적인 상황에 끝맺음을 했지만 그 부단한 노력과정을 중히 여긴다면 역사속의 패자란 말은 있을수 없습니다.

이 한마디로 오늘의 강연을 끝내고자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까지 열심히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제 평가할 일이 남았습니다. 이제까지 열심히 노력해온것이 중요한것입니다. 결과에 너무 치부하여 이제까지의 노력에 허무한 의미를 부여하지 마십시요. 어딜가나 이제까지 노력의 과정에 큰 의미를 부여하시며 사신다면 이 나라의 장래는 밝을 것입니다. 얼마남지 않은 수능 열심히 준비하시고 바쁘신 여러분 시간내어 들으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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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F
박승배 지음 / 대현문화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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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독특한 소재로 독특한 구조를 가진 싱그러운 소설을 만난 기분이다. ESP라는 용어와 함께 약간의 신비적요소와 추리적 요소. 최근에 입맛을 잃은 나의 구미를 당기기에는 너무나 싱싱했다.

인터넷 문학상1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중 한명인 무라카미 하루키씨에게 바친다는 수상소감을 듣고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냥 읽고자 하는 욕망이 나를 사로잡았고 읽지 않고는 배길수가 없을것 같았다. 책을 읽기 전의 구입과정에 약간의 개인적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때문에 이 책에 더운 큰 애정을 가지게 한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사실 이 소설의 양파트(part)적 구성에는 혼란스러움이 많이 따랐다. 두명의 주인공으로 진행해 가는데 그 두사람이 연관이 있는데 내가 너무 급하게 책을 음미 해서 인지 연관이 있다는것은 인정하되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매치가 되지를 않았다.

그리고 안타까운 점 한가지 더. 이 작품의 평가에도 나와 있듯이 이 소설이 종반역을 치달으면서까지 무엇을 나타내고자 한것인지가 뚜렷하지 않았다. 시도와 노력은 정말 훌륭했지만 결과까지는 그렇지 못한것 같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한가지의 테마를 잡고 그 테마를 연상시키게 하는 방법도 아닌것 같았다. 그냥 말 그대로 허무하게 끝났고 무엇을 연상시키게도 하지 않았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것이었다.

결과의 아쉬움을 뒤로하고서라도 오랜만에 독특하고 살아있는듯한 소설을 읽음에 관해서는 후회의 여지가 없다. 어렵게(?) 손에 들어온 만큼 그 기대에 상당히 부응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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