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즐거움 (양장)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 / 김영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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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나는 보통 메모란것을 하지 않는다. 그다지 뛰어난 머리도 아니지만 다 읽고 정리해서 쓰기 보다는 머릿속에서 정리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적으로 메모장에 몇자 끄느적 거렸다. 생각의 정리라기 보다는 책 내용을 옮긴 거였다.

`창조하는 즐거움, 기쁨. 그것은 자기 속에 잠자는 재능이나 자질을 찾아내는 기쁨, 자기 자신을 보다 깊이 인식하고 이해하는 기쁨이 아닌가 생각한다.`

`창조하는 인생이야 말로 최고의 인생이다.`

` 소심심고(素心深考) 소박한 마음으로 돌아가 깊이 생각하라!`

'어떤 것이든 창조되고 나서야 비로소 의미가 생기고 스스로 걷기 시작한다.`

메모지에 있던 것중 눈에 띄는 데로 포획하여 옮겨 놓았다. 아무렇게나 휘갈겨 뒤죽박죽 섞여 있는 메모의 그 참맛은 이렇게 획일화된 규격에 맞추어 적어야 하는 방법과는 이질감이 있어 아쉽지만 어쩔수는 없다.

학문은 즐겁다. 평소에 난 학문이란 것은 즐겁고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학문은 즐겁되 대세에 따른 먹고 살기 위한 학습은 즐겁지를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펼치던 순간에도 `학문은 즐거워? 흥. 그래 먹고 사는데 지장없고 주위 걱정없는 사람에게 학문은 즐거울 지라도 학습은 괴롭다!` 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전의 생각을 여기에 적어놓은 것 조차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학문이든 학습이든, 그리고 그것이 자기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피치 못할 것이든 아니든 즐거운 것이다.

소위 인생은 짧다고 한다. 길어야 100년일 것이고 평균 수명은 70~80세 정도라고 한다. 이 짧은 인생에 자기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 버린다는 것은 어째 모순적이지 않을까? 우리는 자기자신을 여러 방법으로 발견을 하곤 하지만 이렇게 학문으로써 자기자신의 내면 깊숙함을 발견하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고 찬란한 일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학문은 즐거운 것이고 천재든 바보든 학문, 학습을 함으로 조금씩 나를 알아가는 그 야릇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학문의 즐거움. 현재 이 책은 양장으로도 나와 있으나 내가 본 책은 도서관 후미진곳에 쳐 박혀 있던 구판이다. 그 책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 또는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를 판가름하는 기준으로 우리같은 보통사람은 책을 세워서 보이는 종이의 색깔을 살핀다. 나 역시 무의식 중에 책을 똑 바로 세워서 종이의 자태를 살폈다. 느낌은 닥종이 같다는 거다. 실제로 닥나무가 뭔지도 잘모르며 닥나무로 만든 종이가 있는지 있다면 무슨 색깔이진도 잘 모른다. 하지만 웬지 닥종이 같다는 어감이 어울릴 만큼 누렇게 색이 바랬다. 그저 세월만 흘러 색이 변질한것이 아닌 그만큼의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가서 인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그런 종이의 색깔을 보며 처음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던 나의 머릿속에는 색다른 감회가 찾아 들었다. 뭐라고 딱 집어 말하기 힘든 무언가가 말이다.

`입시란 제도여건하에 학문, 학습이란것은 그저 시대의 산물이며 나의 일생에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갖게끔 하는 요즈음. 오랜기간동안 빛바래며 여러 사람에게 설파했을 그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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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학계의 노벨상 수상자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9-11 22:07 
    학문의 즐거움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김영사 전반적인 리뷰 知之者不如好之者요, 好之者不如樂之者니라.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2005년 9월 13일에 읽고 나서 떠오르는 구절이었다. 論語의 옹야편에 나오는 문구로 모르는 이가 없을 구절이다. 사실 배움의 끝은 없기 때문에 앎 자체에 집중을 하면 그것은 집착이 될 수 있는 것이고 물 흐르듯이 배움 그 자체를 즐기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