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 - 트럼프의 귀환, 놓쳐서는 안 될 정책 변화와 산업 트렌드
김광석 외 지음 / 이든하우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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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런식으로 판매하면 안됩니다. 책제목만 트럼프 당선된 뒤 확정하고 책 원고는 트럼프가 될지 해리스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미 마감된 내용이네요. 시류에 편승하기만 하려는 듯한 제목으로 독자를 현혹해서는 안됩니다. 누가될지 모를 상황의 내용이란건 명확히 밝히고 출간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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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질투
프리돌린 쉴라이 외 지음, 조현천 옮김 / 열대림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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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이런말을 합니다. "여자와 남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터지만 저는 후자쪽이었습니다. 고등학교때부터 절친하게 지내온 친구가 한 명 있기 때문이지요. 그 친구를 한 번도 여자로 생각해 본적이 없거니와, 그녀와의 우정에 참으로 뿌듯해 했습니다. 그런데도 친구란 있을 수 없다고 단정지어버리는 저 문구가 얼마나 가당찮았던지요.

얼마전입니다. 간간히 연락을 주고 받던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긴걸 알았습니다. 직접 들은게 아니라 조금 섭섭한 마음이 고개를 치켜 드는걸 과감히 뒤통수 한대 쥐어박고 기절을 시켰지요. 왜 저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는지, 저에겐 굳이 자랑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어떤건지는 모르겠지만 - 하긴 그런 자랑을 하는 사이는 아니였군요. 그래도 처음에는 놀랬습니다. 쉽사리 남자친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던 친구였거든요.

아, 이렇게 주위에 모두 자기의 짝들이 하나하나 생긴다는 소식들에, 새삼 기뻐하기도 했지만, 이제 이렇게 나도 늙어간다는 데에 약간은 우울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도 놀라움 다음에는 어김없이 우울감이 찾아오더군요. 커피하나 빼들고, 혼자 난간에 서 있는 시간이 부쩍 늘기 시작했고, 책보다가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는 저를 보고 놀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횟수도 늘어났습니다. 

하루가 흘러가고, 나는 그자리에 있고, 이틀이 가고, 여전히 나는 그곳에.. 

우울감에 찌들어 갈수록 저는 정체되어 갔지만, 세월은 아랑곳하지 않고, 잘도 가더군요. 세월은 화살같다고 하다지만, 좀 같이 가면 좋으련만. 아,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제가 서있는 곳과 현실은 벌써 일주일이나 차이가 나버린 것이었지요. 뭔가가 꼬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이 핑계, 저 핑계. 그저 그냥 만나지 못해서 어떤 목적을 하나 두고서 만났습니다.  그녀의 컴퓨터가 말을 듣지 않는다군요. 그래서 대충 손을 봐주겠다는 명목으로 그렇게 가깝다고는 할 수 없는 그녀의 집으로 가기로 한 것이지요. 뭐가 어찌 되든 그냥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녀의 집으로 가서 컴퓨터를 고쳐주고, 밖에서 밥을 얻어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차시간이 늦어서, 얼른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타는 버스가 끊어져 시내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야만 했습니다. 혼자 우왕자왕 하고 있을 때, 시내버스를 잘 타지 못하는 저를 위해 제가 타야 할 버스를 지적해 주는 그녀를 보지 못하고 있다가,

"뭐해? 저 버스야!"

 뒤늦게서야 보고 급하게 버스에 뛰어 올랐습니다.

"간다"

그렇게 한마디를 툭 남겨둔채 버스는 출발했습니다. 그동안 참 할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인데도 어떤 목적을 가졌다는데에서 후회가 치밀어 올랐지요. 그렇게 말이 안나와서 괴로웠던 적은 또 없었던 적 같군요. 시내버스로 지나치는 풍경들이, 어둠에 묻혀가는 풍경들이 저하고는 딴세상처럼 느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길.

오늘따라 좌석은 만원입니다. 저들은 어디를 그렇게 다녀 오는 것일까요? 제 옆자리에는 술에 만취한 한 아저씨가 온 몸을 휘저으며 괴로워 하고 있었습니다. 신음을 내뱉는 그가 그다지 보기에 유쾌하지 않아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알았지요. 제가 왜 그렇게 우울했던지, 왜 갑자기 말문이 그렇게도 막혔던지. 눈을 감고도 계속 들려오는 신음소리는 옆에서 괴로워 하는 아저씨의 찌푸린 상이 아니라 제 마음이 신음하는 소리임을 알았습니다. 돌아오는 내내 이어폰을 크게 틀어놓았습니다. 아무 생각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버스를 내리니 빗방울이 한방울씩 떨어집니다......


김연수는 이런말을 했었다.

"질투란 숙주가 필요한 바이러스와 비슷하다. 질투란 독립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랑에 딸린 감정이다. 주전선수가 아니라 후보선수라 사랑이 갈 때까지 가서 숨을 헐떡거리면 질투가 교체선수로 투입된다. 질투가 없다면 경기는 거기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13세기 사람 앙드레 르 샤플랭은 "질투하지 않는 자는 사랑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했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130p>

아, 누가 대체 남자는 질투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남자도 인간이다. 오죽하면 질투하지 않는 자는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이 다 나오랴. 나 역시 이렇다 할 사랑은 해 본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투란 감정은 쉽사리도 느끼면서 살아왔다. 가만히 보면 질투는 사랑이라는 숙주를 필요로 하는게 아니라 그저 마음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스며들수 있는 지독한 바이러스인지도 모른다.

뜻하지 않은 나의 질투를 발견해버린 나는 참 괴로웠다.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고, 마음 속 꾹꾹 눌러담아 놓을 수 밖에 없는 그 감정이 요즘들어 나에게 너무 친근하게 구는 것이 너무도 불편했다.

그래서 집어든 소설이 <그 남자의 질투>다. 사실 <사랑이라니, 선영아>를 본 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책이기도 한데, 그 당시에만 해도 그저 관심만 있었다 뿐이지, 크게 나를 끄집어 당기지 못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나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나의 이 질투의 괴로움을, 나의 이 질투의 부끄러움을 나 말고도 누군가도 하고 있다는 위로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 남자의 질투>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소설이다. 한가지 있다면 모두 질투를 하고 있는 남자들이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냥 그들의 질투 이야기고, 그 이야기가 끝이다. 무슨 문학적 장치라던지, 사람을 놀래키는 반전이라든지, 인생의 동아줄이 되는 교훈도 없다. 그저 여기도 질투, 저기도 질투. 질투를 양껏 하고 있는 남정네들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조금은 위험하다.

도대체 이 따위 이야기를 왜 적어 놓고 뭐하러 보는데? 사랑의 아름다움, 아픔을 말하고자 하는건가? 너무 밋밋한데?

라는 지적이 쉽사리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존재의의는 그런 목적의식을 지니고 이것을 보는 사람에 있지 않다. 그저 '즐기기'위한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이 책의 의의다.

누구나 사랑의 아픔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터고, 또 질투의 기억도 가지고 있을터다. 그것을 추억으로 가지느냐 치욕으로 가지느냐는 순전히 개인적 문제다. 사랑하는 이가 다른 남정네와 웃고 있는 모습을 질투하는 모습은 피식웃음지어지는 추억이기도 하고, 저때의 기억은 나에게는 아픔으로만 남을 것이다. 하지만, 추억이든, 치욕이든, 아픔이든 그 질투를 미처 쫓아내버리지 못하고, 간간히 자신과 어떤 만남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 그 부류중의 한 사람이 나고, 이 소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한 소설이었고, 또 나를 위한 소설이기도 했다. 질투의 아기자기함을 즐기든, 질투의 덧없음을 즐기든, 질투의 파괴성을 즐기든, 질투의 유치함을 즐기든, 그런 질투에 대한 기억의 파편을 마음속 어딘가에 놓아 두고, 그저 질투를 기꺼이 만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다.

내가 봤을 때는 이책의 문체는 특별히 아름답지도 않았고(상당히 마음에 드는 단편이 있긴하다.) 이야기 자체가 특별하다거나, 따로 사람의 주목을 끌만한 소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질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질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제도 내일도 질투를 하지만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리고 나역시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런 그들이 민망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그들에게서는 결국 웃음을 찾아 볼 수는 없었다. 나에게도 웃음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질투는 역겨운 것이 아니고, 지금 나는 그녀의 진정한 행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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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09-13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책보다 님의 스토리가 더 얘기가 될것만 같은....차라리 님이 한번 써보셔도...^^;;;

_ 2004-09-1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저도 적다보니 애초에 짧게 적으려 했던 글이 무진장 길어져 그만둘까했는데, 아까워서 그냥 올렸습니다. 해서 카테고리도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로 바꾸었지요. 어차피 서평이 아닌 리뷰야, 책에 대한 소개의 목적도 있지만, 되돌아보면서 자기자신도 아우르는것도 있기에, 그냥 그대로 썼습니다. ㅎㅎ;; (그래도 좀 길죠? >_<)

잉크냄새 2004-09-13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투는 특별한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 오감으로 느끼는 감각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태일것 같아요. 단지 그것이 표출되는 방식이 사람에 따라 다른것 같습니다.
그래서 님의 글 [ 질투는 사랑이라는 숙주를 필요로 하는게 아니라 그저 마음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스며들수 있는 지독한 바이러스인지도 모른다 ] 는 말이 동감이 가나 봅니다.

_ 2004-09-13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튼 바이러스는 괴롭죠ㅠ_ㅠ
저 글. 차분한 마음에 적어야 하는데, 이어폰으로는 데쓰메탈을 끼고 정신없이 적었더니
하, 어지럽군요. 위에 부분만 따로 떼어 페이퍼로 옮길까 생각도 ^^;;;
 
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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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여러 가지 소중한 것을 계속 잃고 있어. 소중한 기회와 가능성, 돌이킬 수 없는 감정. 그것이 살아가는 하나의 의미지.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는, 아마 머릿속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을 기억으로 남겨두기 위한 작은 방이 있어."


무슨말 보다 그저 '하루키다운 소설'이다가, 이 책의 배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을 가진 문장일듯 하다. 비록 하루키를 읽고, 그와 어떤 방향이라도 소통을 하였고, 또 하고 있는 이들끼리만 통하는 문장이겠지만, 그 어떤 문장보다도, 이 책은 하루키스럽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리라 느껴진다. 도대체 하루키다운게 뭐냐고? 글쎄,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내가 느끼는 하루키의 하루키스러움은, 자기만의 내면속에 웅크리고 있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그런 연기(煙氣)들을, 직접적으로든, 아니면 메타포를 통해서든 참으로 묘한 내면의 울림을 통해 표현함에 있다. 누구든지 생각하곤 하는, 나만의 진지함과 내 주변의 진지함. 그 세계의 진지함. 그 진지함의 갈퀴로 사람들의 마음속 찌꺼기들을 여기저기 긁어주는데서 느끼는 신선함과 상쾌함을. 난 그것을 하루키 소설이 던져주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다 좋은데 말이지, 그의 인물들은 정말 지나치게 진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무슨 한마디 한마디가 그렇게 진지할 수 있지? 평상시에 우리의 대화가 그렇게 진지한 것이었나? 가식같단 말이지."

분명,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신만의 진지한 내면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무슨 고민과 생각이 있어도 당신을 만나서는 그저 시시콜콜한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한숨으로 헤어진다. 그 한숨을 바라보라. 우울하고, 고민이 있고, 삶이 고달프고, 또는 사랑에 빠졌을 때,.그때 우리가 절실히 바라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털어놓고 싶은 심정이다. 이 가슴속에서 썩어문드러지고 있는 감정을 아무데나 휙!휙 던져버리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우리는 평상시의 얼굴이라는 봉투속에 이 썩어가는 감정들을 하나, 둘 쌓아놓기만 한다. 하지만 더이상 그 평상의 얼굴이라는 봉투속의 감정들이 넘칠무렵, 그 악취가 자신의 사위를 감싸고, 터지기 직전에 이르러서야, 그제서야 울며불며 외친다. "나.. 괴롭다니까!!"



우리는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 어떤 '격식', '의식'을 차리려고 한다. 사실, 소설속의 인물들이 그 진지함을 전혀 방해받지 않고 술술 내뱉을 때, 오히려 그 원활함에 하지 않아도 될 고민과, 상처를 받을지 모르지만, 우리처럼 가슴이 미어 터질때를 기다리는, 즉, 어떤 "때"와 어떤 "격식"을 차린다는 것은 가식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주보는 서로가 상대의 얼굴에서 고민의 자취를 느끼고 있을때, 그럼에도 어떤 격식이 터뜨려지지 않음을, 그 폭발을 기다리는 것은, 알고도 모르는 척. 그게 사실 진정한 가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키 소설의 인물은, 결코 가식적이지 않다. 그래도 껄끄로워 보인다면 가식적인 우리의 모습을 비웃는 것 같은 그들에게서 느끼는 어떤 불편함이다. 

지금 나 자신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이 진지하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진지하고, 필사적으로 먹이를 달라 조르는 금붕어도 진지하고, 저기 끓고있는 라면 또한 진지하다. 그 무엇도 자신의 진지함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하루키의 인물은 우리의 내면에 뭉쳐져 있는 진지함들을 그저 밖으로 끌어내온 죄밖에 없다. 

<해변의 카프카>는 그런 소설이다. 숨기지 않고, 나를 드러내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다만, 이 <해변의 카프카>의 세계는 진지한 사실성속에 비사실성 - 비현실성을 가지고 진행한다. 그 비현실성이 가지는 메타포의 의도야 이해가지 않는바가 아니지만, 분명 실제의 삶을 배경으로 전개하는 데 있어서는 다소 부조화가 일지 않을 수 없다. 이건 SF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이외수"씨의 초기작들이 도인의 세계와 지금의 세계를 한데 혼합하여 마치 현실인양 표현하는 것처럼,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이외수씨 소설을 SF라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건 조금 다르다. 그 책들은 신비적인 또는 도가적인 내음을 소설전반에 퍼뜨리며 서서히 그런 세계를 드러내는데 비해, <해변의 카프카>는 마치 현실인양 그려놓고 도저히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으로 폭격을 퍼붓는다. 대체 환상주의 소설도 아니고, 사실적이라는 하루키의 소설이 왜 이런거야? 이거 무슨 소설이야? 분명 나도 그건 느끼면서 읽었다. 도저히,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허무맹랑한 구조로 나아가는 이 소설의 발자욱들을 분명 나는 느끼고 있었다.

내가 하루키의 소설을 즐기는 이유중의 하나가 리얼리즘이라는 것은 말한바 있다. 하지만 내가 즐기는 그 현실성은 하드보일드도 아니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묘사력의 화려함도 아니다. 내가 즐기는 리얼리즘은, 뻔히 아닌줄 알고 있는데도, 그래야 하는곳이 그곳에 있고,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뻔뻔한' 하루키의 진행법이다. 나는 이렇게 비현실도 현실처럼 읊어내는 하루키를 즐기는 것이고, 그래서 굳이 따지지 않는다. "아니 KFC할아버지는 통닭 이제 안팔아요?", "거기, 별장이 어딨지? 대체 그런 숲이 어딨어?" "거기 천국이야? 버뮤다야? 말도안돼."



이 책을 하루키의 가장 위대한 소설로까지는 보지 않지만, 하루키로서는 괜찮은 소설 하나 썼다는 생각을 한다. 분명, <상실의 시대> 만큼 사람의 마음을 끄집어 당기지는 못했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만큼의 충격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이 둘을 절충했다고나 할까. 이 두 작품의 장점들을 섞어 놓았다는 생각은 문득 들었다.

즉, 이 <해변의 카프카>는 그저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자기의 마음에 동시에 두고 있는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소설이라고 본다. <상실의 시대>만을 떠올리며 보는 이는, 이 복잡하고 기이한 배경에 거부감을 느낄터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만을 떠올리며 보는 이는, 이 소설의 밋밋함에 실망감을 금치 못할 게다. 하지만 이 둘을 다 마음에 지니고 본다면, 이 두가지의 하루키적 특징을 맛 볼 수 있을터다.

그 둘과 동행한다고 이 책이 반드시 좋아 보일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좋지 않게 보는 시선들을 살펴보았을 때, 분명 그 둘 중 - <상실의 시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 어느 하나만의 추억을 가지고 이 책을 평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될 터이다. 그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것들이 주었던 너무도 강렬하고 자극적인 맛은 사람에게 집착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맛을 즐기는 것 못지 않게, 왜 간혹 섞어 먹는 재미도 만만치 않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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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sta 2004-09-11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0년대 초 까지만 해도 <난 왕가위가 좋더라><난 하루키를 읽어>라고 말하면 좀 멋져보이던 시절이었죠.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말이 진부한 느낌까지 안겨주는 지금, 저는 여전히 하루키를 좋아합니다. 아직은 평가를 보류하고 싶은 몇몇 일본 작가들 무리에 하루키까지 포함시키는 건 좀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해변의 카프카>에 악평 일색이라는게 좀 씁쓸하던 차에 호의가 느껴지는 리뷰를 읽으니 마음이 먼저 반가와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

_ 2004-09-11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놓고 하루키에 대해 알은체하며 그게 독서의 깊이를 말해주는 양 말하는 사람들을 볼때면, 그렇게 하루키를 우상화시키는게 오히려 그의 글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사람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상실의 시대에서는 정말 지나치게 큰 충격을 받은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는 정말 즐기고픈 작가로서 하루키를 접하고 있지요^^
 
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소설향 18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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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을 타고 가던 어느날. 홀에는 댄스파티가 벌어졌다. 아, 타이타닉을 떠올리지는 말길. 온갖무게를 가지고 연주를 하고 있는 이도 없고, 온갖 귀금속을 부적인양 몸에 붙이고 화려한 드레스로 왈츠를 추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우리의 춤판이다. 유람선에서는 꼭 왈츠를 추란 법은 없다.

어떤 모임을 가진 사람들인지,  40인지 50대인지 모두 여자뿐이었다. 술마시고 춤추고 웃고 흥겹다. 부어라 마셔라. 마셨으면 흔들어라. 흔들어라. 으쌰으쌰. 저기있는 당신도, 귀막고 있는 당신도 다같이 으쌰으쌰.

그사이, 그 꽃밭에, 그 화사만발한 꽃만의 향연에 불청객 수컷 벌 한마리가 난데없이 끼어든다. "이봐, 이봐, 너무 즐거운거 아냐? 나도 끼워 달라구, 같이 놀아보세."

아무리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한국이지만, 그 거침없는 꿀벌의 대시에는 꽃들도 조금은 기분이 상했나보다. 꽃님들은 그를 과감히 내친다. 감히, 혼자 꿀맛을 보려는 특권을 누리려면, 예의를 보여라는 거다. 꽃잎도 좀 닦아 주고, 화분도 좀 옮겨주고. 응? 이에 그 남자, 먹다 남은 음식을 치우고, 술을 날라오고, 서빙을 자처한다. 저좀 잘 봐주세요. 네? 네? 이정도면 꿀 한방울 값은 안될까요? 네? 네?

유람선 위. 의자에 앉아서 이모습을 내려다 보던 김연수. 그는 이 장면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단다..

"사랑 따위는 하지 않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이 없다면 소주를 살 일도, 노래를 부를 일도, 춤을 출 일도 없을 텐데."....

내가 요즘에 가장 싫어하는 CF가 하나 있다. 인기가 있는지 시리즈물로 제작되고 있는 어떤 마트 선전인데, 거기에는 여자1명과 남자2명이 나온다. 그런데 그 남자 2명이 이 여자 한명을 무지나 좋아하나 보다. 서로 여자의 관심을 끌려고 온갖 오도방정(! 너무 나를 그렇게 보지는 말길.) 을 떨고, 그 방방거림에(!)따라 그 여자는 이리갔다 저리갔다. 흔들흔들 한다.

난 저 CF가 정말, 너무, 극히나, 절대적으로 싫었다. 젠장, 사랑이라는 게 저런거야? 어떤 인간이 사랑은 쟁취하는거야!라며 한대 쥐어 박아버리고 싶은 웃음을 짓더니,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며 골빈 웃음을 짓더니 정말 그런건가? 쟤들 도대체 뭐하는 거야? 저렇게까지 사람에게 잘보이려고 노력을 해야 하고, 저렇게 진땀을 빼야 하나? 사랑은 헌신이라고는 하지만, 저건 그게 아니잖아? 지금 뭐야?

라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흥분하고 있을 때, 니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거야라는 면박을 당하고 있을 때, 저 김연수의 생각을 봤다. 사랑따위 안할 수 없냐니? 저 작가 제정신인거야? 어떻게 대놓고 저런 말을 할 수 있지? 근데, 그런데 말야. 이거 너무 반갑잖아.

그랬다. 일단 소설의 내용이 뭐든, 김연수가 썼던 아니든 간에, 나는 나의 혼자만의 생각에 턱하니 들어 맞는 어떤 코드를 하나 찾은 것이다. 나는 정말 이 책에, 이 글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갈릴레오가 지구가 돈다고 하는데도 안돈다는 다른이들때문에 돌아버리고 있을때, 옆에서 누가 "잘했어요, 맞아요. 지구가 돌아요~" 했으면 얼마나 좋아했으랴? 그가 누구든 분명 와락 끌어 안았을 것이다. 나도 그와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발단 전개 절정 결말. 세상사가 다 이런 아치 모양의 다리를 건너가는 게 아니겠니? 그러니까 이렇게 길게 설명하는 거지. 여름 매미가 가을 단풍을 알 턱이 없지. 너는 연애도 제대로 못 해본 어리보기라서 잘 모르겠지만, 낭만적 사랑도 마찬가지야. 너는 사랑이 발단하고 전개되어 절정에서 영원할 것 같니? 결말은 영원히 유예될 거라고 생각하니? 천만의 말씀. 천 년의 사랑이든 만년의 사랑이든 한 번 지나가면 사랑은 잊혀져.' 50p

주인공 광수는 결혼직후,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한송이 꽃의 꺾임때문에 의처증 같은 심정으로 자신의 결혼이라는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그녀가 누구였고, 과거는 어떤것인지. 그리고 그 돌아봄이 이 소설의 주 사건이다.  진우라는 인물은 처음의 작가의 생각과도 같이 사랑에 대한 회유와 염세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사랑따위 하지말라는 주의는 아니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영원하지도, 꼭 아름다운것만큼은 아니다라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

이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이 두명이 다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이다. 이 둘의 대화가 주를 이루고, 나머지 인물은 거의 부수적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선영이가 있다. 꼭 내가 싫어한다는 CF와 구성이 비슷하다만, 그 CF와 이 소설의 차이점을 말하자면, 한개는 내가 무척이나 싫어한다는 것이고 나머지 한개는 20대 초반의 나의 인생에 새로운 시각을 하나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당연히 후자다.

다만 알아둘 것은 작가가 "사랑따위 안 하고 살 수 없나"하고 했고, 거기서 내가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 해서, "나는 영원히 사랑따위 믿지 않고, 사랑을 증오하리라"라는 것을 얻었다는게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런 것이었다면 "엄마, 나 100점 맞았어요"라며 자랑스레 내가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며 호언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사랑의 파탄소설이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사랑에 대한 불신의 모습이 역력히 비치는 진우조차도 사랑을 원망하는 척 하지만, 그의 내면을 보면 어쩌면 그도 사랑을 그리워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는소설이다.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 123p 라고 하지만,

꽃에는 입술이 없지만 자신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사랑에는 혀가 없지만 네가 누구인지 먼저 알아 내라고 종용한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저마다 위대한 개인으로 자란다. 거울에 비친 그 위대한 개인을 사랑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향해 단호한 어조로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지구에서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느냐는 미 우주항공국의 업무지만, 우리가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느냐는 스스로 대답할 문제다. 그건 우리가 얼마나 자신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느냐, 혹은 우리가 얼마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80 - 81p

라고도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분명 작가의 생각은 사랑따위 집어춰라!는게 아니란걸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는 사랑에 대해 불신하는 진우의 모습에서 겉으론 강한척(?)하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사랑을 갈망하는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나같은 - 사랑, 천만에!! - 사람에게도 사랑이라는 불씨를 당겨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난 바로 딱히 그와 같지는 않지만 그에 반응하는 나의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어느날, 친구와 카페에 앉아서 얘기하던 중, 나의 사랑의 처절한 몸부림이라는 시각을 보고, 친구가 한마디 해 주었다.

"물론, 맞아. 그런 모습이 그렇게 보이고 나도 그렇게 보여. 그런데 말야 웃긴건, 그렇게 생각을 하고, 또 그런 말을 내뱉고, 그렇게 조언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랑을 하지 않았고, 또 하지 않고 있다는 거지. 사실 그들은 사랑에 대해 많은 것을 알은 척하지만, 실제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어."

그때 딱히 나는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전혀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없거니와, 정곡을 찔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는 철없는 나에게는 어떤 확고한 시각 하나로 나를 고정시키기 보다는 다양한 시선으로 나를 둘러쌀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실망하더라도 덜 실망하고, 상처 받더라도 덜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또하나의 시선을 얻게 된 것이었다.

분명,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나 아닌 다른 인간을 사랑한다는 그것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고, 상대방의 결점을 결점으로 보지 않고, 자기자신으로 안으려는 모습이 아름답다. 시끄럽다. 그래, 사랑 그건 아름다움 그자체다. 내가 아무리 궁시렁 거려봤자. 불변의 진리다. 이의 있는사람?

그도 그럴 것이, 온통 사랑을 찬양하고 있는 것들의 홍수 뿐이다. 물론, 사랑의 아픔을 노래하고 그 아픔의 힘들고, 아려옴을 말하는 이도 있지만, 결국 귀결은 그래도 그 사랑은 아름다웠다거나, 그래도 나의 앞날에는 사랑이 존재하리라는 것이다. 즉,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이다. 사랑은 당신의 주위를 언제나 빙빙, 끝없이 돈다는 것이다. 이런 무대에,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지 않고, 오늘부로 서기로 했답니다.라고 지껄였다간은, 보기좋게, 아니 별로 보기에는 좋지 않게 뺨 한대 맞을게다.

항상 그 찬양일색이라는 것에 불만이었던 나는, 처음에 그런 불만을 달래고 싶어 이 책을 집었다. 왜 우울할 때는 더 우울한 영화를 본다거나, 음악을 듣는다거나 하여 펑펑 울어버리는게 조금은 시원할때도 있지 않은가? 나도 딱 그 심정이었다. 혼자만의 꿍꿍이로 앓던 나의 마음에 "사랑, 꺼져라"는 내용으로 나를 위로하리라며 집어 든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나같은 이들을 슬쩍 유혹하여 집어들게 하고서는, 다른 안경하나 턱 하니 씌워 버리는 김연수, 그는 대단한 작가다. "어? 나는 전혀 그런 생각이 아니었어. 사랑은 정말 아니란 말이지." 설령, 그가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썼고, 내가 착각의 자유를 맘껏 누린 꼴이 되었더라도, 이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참으로 나의 마음을 끄는 소설이다. 한 사람에게 또 다른 시선을 가져다 주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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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4-09-08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고 갑니다..추천 쭉~~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xx일 x시 xx분께 xx시 xx구 xx동 x아파트 x모씨 집 안방에서 x씨가 선풍기를 켜 놓은 채 숨졌습니다.

밀폐된 방안에서 타임조절도 하지 않은 선풍기바람만을 씌우며 잠에 들게되면 선풍기의 바람때문에 잠든 사람은 결국 산소부족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반드시 선풍기는 방문을 열든 창문을 열든 공기를 통하게 해놓고 이왕이면 타임을 맞춰 놓고 잠드는것이 좋다.(좋다? 목숨을 생각한다면 이 좋다라는 표현이 부적절 할 수도 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나는 여전히 선풍기를 켜놓은채 잠을 잔다. 어제라고 별 다를바 없이 나는 선풍기를 켜 놓고 잠에 들었다. 다만, 평상시와 다른 한가지가 있다면 방문을 모두 닫아 버렸다는 것이다. 보다싶이 나는 알고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계속 켜놓으면 어쩌면, 아니 '재수 없으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어젯밤 내 좁은 모든 방문과 창문을 닫고 선풍기를 부러 켜놓은채 잤다. 뒷생각은 없었다. 죽는 것도 사는것도 아무생각이 없었다. 그저 컴퓨터로 강의를 평상시와는 다르게 12시까지 듣고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서 1시간 더 책을 보고, 물도 마시지 않고 그냥 그렇게 선풍기를 켜고 불을 끄고 누웠다. 2분뒤, 난 갑자기 벌떡 일어나 열려있는 창문을 닫아버리고 다시 그렇게 누웠다. 멍한 상태. 사위는 조용했다. 선풍기는 여전히 휭휭 잘 돌아갔다.

쿵! 쿵! 쿠쿠쿵!

누가 나의 방문을 계속 잡아 흔든다. 벌떡 눈을 뜬 나는 '누구지?' 아, 초대형 태풍 한분이 친히 한반도까지 행차를 하신다더니, 그분의 행차소식이었구나. 지랄병이라도 걸리셨는지 정말 요란스러우시군요. 그런데 내 방문은 뭐가 좋다고 저렇게 오도방정을 뜰며 나를 깨우는 건지 원..한대 쥐어 박아버려?...

잠깐, 잠깐. 나는 여전히 선풍기를 틀어놓고 잤고, 여전히 새벽에 잠을 한번 깼다. 평상시와 전혀 다를게 없이 똑같았다. 그러고 보니 방문과 창문을 닫았다는 일상의 자그마한 변화는 나의 큰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것보다, 태풍을 먼저 생각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 문득, 놀라움을 느꼈다. 젠장, 또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죽어버렸다면 지금 글을 쓰고 있지도 않겠지. 아, 대신 매스컴 한번 탈지도 모르지. 경남 모모에서 모씨가 선풍기 바람에 궁시렁궁시렁 씨부렁씨부렁..죽지 못해 사는건지, 안죽어서 살고 있는건지..알수가 없다.

"그럼, 그게 핵심이야. 그해의 리그에서 삼미 슈퍼스타즈가 <자신의 야구>를....그 <자신의 야구>가 뭔데?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야. 그것이 바로 삼미가 완성한 <자신의 야구>지. 우승을 목표로 한 다른 팀들로선 절대 완성할 수 없는 - 끊임없고 부단한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의 결과야." 251p

얼마전 서울에 잠시 갔을 때, 친구와 함께 서점에 들른적이 있었다. 그때 그 친구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어보았냐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아니, 난 야구를 전혀 좋아하지도 않고, 야구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어. 지금 구단은 물론, 지금 박찬호가 소속된 팀 이름도 모르는 판국에 무슨 야구고, 무슨 삼미냐, 삼양 라면은 안다."

근데 그게 아니란다. 이 책은 야구를 전혀 몰라도 볼 수 있는 책이란다. 그 뿐만 아니라, 너무 재미난 것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의 삶에 하나의 방향점이 되더라는 것이었다. 뭐야, 난 이 책이 '삼미슈퍼스타즈'를 알고 있는 사람만이 봐야, 그 시대를 알고 있는 사람만이 봐야 공감할 수 있는 책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보지?

새삼 내가 살아있음을 자각하며 아침을 맞이하고 있을때, 마침 저 생각이 떠올랐다. 삶의 방향점이라.. 그래 어쩌면 지금의 나에겐 어떤 지표가 필요할지 모른다. 설령 이 책이 "야구선수, 나처럼 하면 한달만에 된다!!"고 포효하고 있을지라도 나는 무엇이라도 지표가 필요했다. 살아 남기위해 그 무언가를 잡을 지푸라기라도 절실했다. 그리고 이 책을 잡고, 그 친구의 말을 믿고 그 자리에서 내쳐 다 읽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과연 이게 말이 될법한 소리냐. 프로야구선수란 사람들이 이래도 스포츠맨 정신에 위배되지 않느냐. 모른다. 야구하는 사람 자기 잡기 싫고 치기 싫다면 할 수 없는 거지 뭘 바라겠느냐. 다만, 저 말이 인생에 던져주는 바는 어지간한 바보가 아닌 이상은 다 알아 차릴 것이다.

굳이 힘들려 낑낑대며 살지 말자는 것이다. 어차피 다들 힘든 인생이다. 저기 저 엘리트층에 있든 밑에서 소주잔이나 기울이고 있든 다같이 힘든 삶인데 뭣하러 힘들여가며 애써, 더 힘든 삶을 자초하냐는 것이다. 그래, 사실 이 책은 별거 없다. 특이한 유머스런 문체와, 마치 작가 자신의 삶인양 읊어 내는 그 자연스러움에는 정말 머리가 쭈삣 설 정도지만, 우리에게 던져주는 바는, 왜 그리 바쁘게 사느냐는 것이다. 왜 그리 힘들게 사느냐는 것이다. 뭐가 부족해서, 뭐가 불만이라서? 이거다.

"헛소리 마라. 삶의 실패자들이 자위적으로 내뱉어나는 그 자족적 자세가 속도가 생명인 지금의 이 프로시대에 먹힐줄 알아?"

그래, 그들은 실직자, 무직자, 부상자 등등 흔히 낙오자로 불리우는 사람들의 집합체이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낙오자일까? 그들이 과연 실패자일까? 분명 지금 나의 눈으로도 그들은 인생의 실패자들이다. 하지만 누구를 기준으로 그들은 낙오자이고 또 실패자인지. 지금 나의 시선은 어디에 고정되서 그들을 내려다 보는건지. 

왜 그들은 '삐까번쩍' 프로올스타즈와 경기를 하며 '씨익'하고 웃어 주었을까? 미쳐서? 전혀. 이 책이 흔히 인생의 저변에 있는 자들을 위한 소설이라는 말이 많지만, 사실 진정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당신은 실패자가 아니다!! 나는 실패자가 아니다!!

라는 말이다. '좌절하지 마세요.' '힘들어도 참아요.' 따위의 위로가 아니다. 왜 좌절하고 앉아 있고, 뭐가 힘드냐는 거다. 당신이 당신을 잘못된 곳으로 이끌고 있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느냐는 질책이다.

사랑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는 왜그리 삭막한 인생을 살고 있느냐는 소리를 듣고, 미래를 열심히 준비중인 친구에게는 왜 그렇게 나태한 삶을 살고 있느냐는 말을 듣고, 동창에게는 삶을 왜 그렇게 힘없이 사느냐말을 듣고, 결국 아버지에게는 호로새x라는 말을 듣게 되었...되었..되었..되었다. 룰루랄라. 지금 내가 즐거워 보인다면 나는 정녕 미친것이다.

무척이나 어지러운 나의 삶과 시선에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분명 또다른 인생의 지표하나를 나에게 전해주었지만 큰 조력자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비록 내가 가고자 하는 삶과,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부합하는 지표는 아니었지만, 내가 믿고 따를 그 지표가 되지는 않았지만, 나의 마음 속 어딘가에서 무언가 잠시 꿈틀 했다는 것은 느낀다. 그 잠시 꿈틀거림에서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고, 또한 내가 살아있음에 기쁨을 느끼고 있음을 깨달았다..

현실에 만족하는 것이 아닌 자기자신에게 만족하는 삶. 문득 호어스트 에버스의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가 떠오르지만, 그의 유머가 치즈같이 담백함으로 우리를 끌어들인 소설이었다면 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유머는 담배와 같이 텁텁하면서도 사람을 깊게 빨아들이는 맛이 있다.

잠깐, 그러고 보니 롯데라는 팀이 만년꼴찌라는 프로구단으로서는 상당히 명예로울수 있는 문구를 달고 다닌단다. 그럼에도 롯데는 제법 많은 고정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들이 롯데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왕년에는 잘했기에? 언젠가는 잘하리라는, 개천에서 용나는 꼴을 바라며? 대리만족이라도 느껴볼려고? 아니면, 삼미와 같이 프로의 세계에서도 보란듯이 너와 나, 우리의 삶을 재현하고 있기에? 후, 뭘까? 그들은 어떤 야구를 하고 있지?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숙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 숙제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남아 있는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를 희마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공을 치고 던질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고, 어떤 야구를 할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278 - 279p

솔직히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분명, 삶은 전진하기만은 아깝고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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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y 2004-09-07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기억하실지..^^
서재 그만두신거 되게 섭섭해 했었는데 접속하는 순간 리뷰가 올라왔다고 알려주네요.
다시 님의 리뷰 읽을 수 있어 너무너무 반가워요.

진/우맘 2004-09-07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 전에 굉장히....감동하며 읽었더랬어요.
음....퍼가도 되려나? 그럴게요.^^

로드무비 2004-09-15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발마녀님도 이 책 리뷰를 아주 재밌게 쓰셨더라고요.
시간 나실 때 꼭 한번 읽어보세요.^^

_ 2004-09-1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하얀마녀님께서 백발마녀라고도 불리우시는군요 ^^;;
지금 당장 읽어보러 가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