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노암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아침이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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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가능성으로 생각하는 것은 교육 역시 하나의 가능성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교육이 모든 것을 해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약간의 것을 성취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략) 교육자로서 우리가 도전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는, 역사적 관점에서 세계의 변혁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어, 지금처럼 경직된 자세를 버리고 좀더 정직하고 좀더 인간적인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29쪽에서 재인용)-29쪽

현재의 교육모순 속에서 프레리, 지루, 촘스키 등이 말하는 비판 정신과 가능성이란 양면에서, 우리가 역사의 참여자가 되어 "이 세상을 덜 차별적이고 더 민주적이며, 덜 비인간적이고 더 정의로운 세상으로 만드는데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다(p. 29).-29쪽

학교는 사회의 지배계급, 즉 부와 권력을 장악하고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만들어진 기관이기 때문에 "젊은이의 교화(敎化)를 책임진 기관"이다. 따라서 아이들은 교육의 장인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권력집단, 주로 기업집단을 옹호하도록 사회화된다. 이러한 사회화 과정에서 아이들은 부와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으면, 결코 오래 버틸 수 없다는 쓰라린 교훈을 얻게된다(pp. 33-34). 이처럼 아이들은 학교 교육을 통해 길들이기의 과정으로 편입된다.-33-34쪽

"하지만 요즘의 학교는 민주 교육을 유난스레 강조해서 오히려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민주적이 아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이상을 가르쳐야 한다고 난리법석을 피우는 것이 아닐까요? 다시 말해서 학생들에게 실천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학교라면, 구태여 민주주의에 대한 상투적인 구호를 학생들에게 주입시킬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p. 46) 따라서, 아이들이 "스스로 민주주의의 본질과 그 역할을 발견하도록 유도할 때, 진정한 학습이" 일어날 것이며(p. 47), "학교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화를 학생들에게 주입시키기보다는 민주주의를 몸으로 체험하도록 해주는 현장이 되어야" 한다(p. 54).-46-47,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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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지음), <<핵심만 골라 읽는 실용독서의 기술>>, 21세기북스, 2004.

기업의 사원 교육을 대행해주고 자기 계발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일종의 컨설팅을 해주는 사람들은 꽤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이들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 펴내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정확하게 측정된 수치는 없지만 이들이 끼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수준 정도가 아니라 막대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기업가는 이들에게 의뢰하여 노동자를 교육하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은 자극을 받거나 결심을 하게 된다. 소극적으로는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들이 제시한 방법을 실천하며 적극적으로는 그 자신 성공 이데올로기의 신봉자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쓴 책으로 반복적인 자습을 한다.

성공이데올로기 전파 체제는 산업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구축되어 있다. 생산성본부나 능률협회 등에서 내놓는 강좌들의 목표는 표면적으로는 노동자의 '자기 계발'이나, 기업에서 비용을 들여 실시하는 교육이 오로지 노동자만을 위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기업가는 핵심적인 이윤창출 요소인 노동력의 질을 높이고, 그들의 지식을 늘려 더 많은 것을 얻고자 이러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육의 목표는 기업가를 위한 이윤창출이다.

자유기업센터 소장과 자유기업원 원장을 지내고 지금은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을 하고 있는 공병호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직장인들을 상대로 '다음 중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을 적어 보시오' 라는 설문을 하면 상위를 차지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강준만은 몰라도 공병호는 안다는 것이다. 그는 산업교육 강사를 넘어, 과거의 이력을 보건대 철저한 자유시장주의를 옹호하고 전파하는 이데올로그이기도 하다. 이런 그가 제시하는 독서법은 그가 밝히고 있듯이 독서법을 다룬 책들에서 얻어낸 정보를 재정리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선가 한번쯤은 본듯한 내용이고 딱히 해악을 끼칠만한 내용은 담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유용한 방법과 제안이 아주 풍부해서 굳이 다른 책을 참조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면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독서의 기술'을 가르쳐 주고 있을 뿐이니 무해한 것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가 생각하는 독서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내가 책읽기를 좋아하고, 이를 권하는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한가지는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독서야말로 정보와 경험을 조직화해서 시장에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지식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독서 목적은 아주 간단하다.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지식의 창출'이다. 읽어야 할 책은 이 목적에 부합되는 방향에서 선정된다. 세상의 모든 책이 읽을 가치가 있으나 목적이 다르면 똑같은 책에서도 얻어내는 것이 다를 것은 분명하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논어論語를 읽으면서도 공병호는 '공자의 리더십', '논어에서 배우는 인재경영' 만을 생각할 것이라는 말이다.

독서의 방법 역시 시장적 가치 창출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의 것이 채택된다. 그는 방법을 제시하기에 앞서 독자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필자와 마찬가지로 늘 시간에 쫓기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런 분주한 생활 속에서 부지런히 책을 읽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 그러면서 그는 "기존의 독서 방법을 다룬 책들은 속도감을 요구하지 않는 환경에서 생활하는 전문가들, 이를테면 문인이나 교수들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에 삶의 현장에서 매일매일 삶을 일구어가는 사람들의 수요와는 거리가 있는 경우도 많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속도감', 이것이 핵심이다. 산업교육 강사들은 입만 열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라는 말들을 한다. 그런데 정말로 세상이 날마다 변하는가? 자신이 오늘 직장에서 수행하고 있는 업무는 어제의 것과 다른가? 육개월 전의 것과는 전혀 다른 능력을 요구하는가? 독서를 빨리 해야할만큼 '지식'이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가? 이런 물음에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직장인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공병호와 동종업계 종사자들은 '현대의 직장인은 바쁘다. 아니 바빠야 한다'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깔고 들어간다. 자주 반복해서 듣다보면 한가한 이들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들 정도이다.

속도감이 강조되면, 그것으로부터 귀결되는 독서법은 하나 밖에 남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처럼 "핵심만 골라 읽는 실용독서", 구체적으로 말하면 "새로운 독서법의 포인트는 정보를 읽는 속도와 빠른 속도를 유지하면서 건져 올리는 정보의 양과 질을 동시에 획득하는 방법" 뿐이다. 실용독서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공병호의 이 책을 핵심만 골라서 읽었다. 275페이지를 읽는데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핵심 부분에 밑줄이나 옆줄을 치면서 여백에 뭔가를 적어 넣으면서 읽었어도 그렇다. 이정도면 읽는게 아니다. 스캐닝scanning이라 해야 정확하겠다. 저자 스스로도 자기는 수없이 많은 책을 읽는다고 여기저기서 강조하고 있는데, 그렇게해서 만들어낸 것이 고작 이렇게 스캐닝 독서만 해도 되는 책이라는 점이 놀라울 정도다.

어쨌든 시장에서 유용한 가치창출이라는 목적과 속도감있는 책읽기라는 방법이 결합되면 책읽기도 "독서경영"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독서경영을 할때 독자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공병호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두뇌 속에 양질의 정보를 많이 입력하면 할수록 여러분은 정보를 가공해서 멋진 상품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 '멋진 상품'이라고? 독자가 자본가라면 이윤을 만들어 내어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멋진 상품일 것이고, 그가 노동자라면 자본가의 이윤 창출에 기여하는 노동력이라는 원자재로서의 상품일 것이다. 따라서 공병호가 제시하는 독서의 본질적 목적은, 부지런히 책 읽고 많은 지식을 습득해서 재빠르게 돌아가는 자본의 순환 사이클에 양질의 지식 원자재를 공급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공병호는 그람시가 말하는 '유기적 지식인' -- 또는 '기능적 지식인' -- 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람시에 따르면 자본주의 기업가는 자신들의 이익을 조직화하고 더 큰 권력을 얻고 더 많은 통제력을 갖기 위해 자신들의 곁에 산업 기술자, 정치경제의 전문가,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법률체계의 조직가를 창출해낸다. 이들 지식인들은 자본의 이익에 철저하게 복무하기 위해 사회에 개입한다. 그리고 이들이 사회에 개입하는 방식 중의 한 사례를 공병호에서 볼 수 있다. 그는 그 자신이 자본에 의해 이용되는 지식인이면서 대중을 자본이 먹기 좋은 떡으로 재형성 해주고 그 과정에서 떡고물을 먹는다. 그는 자신을 "지적인 사업가"라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마름'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가 '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펼치는 언설들이 끼치는 해악은 상상할 수 없을만큼 크다. 신경 바짝써서 경계해야 할 무리들은 바로 이들인 것이다.

http://armarius.net/ex_libris/archives/000210.html

대학시절 내내 전공에서 빗겨났던 이유를 대변해주는 듯하여, 옮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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