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리스쿨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지음, 공양희 옮김 / 민들레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967년 메리 루(M. Leue)가 뉴욕 주의 알바니 시 중심부에서 시작한 프리스쿨에 관한 이야기로, 프리스쿨의 역사, 모습, 삶의 기본을 이루는 요소인 공격성, 성, 인종과 계급, 영성과 같은 주제를 다룬다. "공동체로서의 학교의 한 모델이 되고 싶다는 것"과 “자유와 존중이 동의어이듯 ‘삶’과 ‘배움’이 동의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증명해 보일 것”이라는 말에서 이 학교의 성격을 부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몇 가지 공감하는 바를 소개하면,
우선, ‘단순하고 소박하게Keep it Simple'라는 이 학교의 표어에서도 확인되듯, 참교육(요즘 표현으로 대안교육)이 많은 돈과 세련된 학습도구, 정교한 교수방법과 평가방법을 최우선 조건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이다. 곧 프리스쿨의 사명 중의 하나는 첫째, 교육에는 돈이 많이 든다(프리스쿨에서의 학생 일인당 교육비는 뉴욕 주 평균의 약 사분의 일이다), 둘째 고도로 세련된 학습도구(이 학교는 중고 현미경 몇 개와 물려받은 개인용 컴퓨터 여섯 대로 잘 해 나가고 있다)와 다방면에 걸친 전문화된 훈련받은 교사가 필요하다, 셋째 표현력이 풍부하고 세련되게 읽고 쓰는 것은 고도로 정교한 교수법과 평가방법론에 달려 있다는 세 가지 신화의 정체를 폭로하는 것이다.
둘째, 이 학교가 주는 메시지는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동기에서 공부할 때, 그리고 지성이 있고 책임 있는 존재로 존중받을 때, 바깥 세계와 격리되지 않고 활기 넘치며 사랑으로 충만한 환경 속에서 마음대로 활동하고 질문할 수 있을 때 가장 훌륭하게 배운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자유 속에서 자기 자신을 알게 되고,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에게 진정으로 속하게 될 때, 놀랄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학업을 성취해 내기 때문에, 일반 학교에서 보내는 그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은 확실히 무의미한 것이 된다.” “배우거나 자라기를 포기하는 아이들은 극히 드물다. 단지 온몸을 묶어 놓을 때 배움과 성장이 매우 어려울 뿐이다.”
셋째,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준다’는 education(교육)의 참 뜻에 따라 교육하는 것이 다름 아닌 대안교육이고 참교육임을 다시 한번 전해준다. “모든 아이들의 내부에는 언젠가는 경의와 충만함으로 피어날 하나의 씨앗이 아직은 딱딱한 껍질 속이지만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는 희망”이 있으며, 우리는 그 씨앗을 키우고 보호하는 일에 결코 무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프리스쿨이 계속 ‘해 나가면서 이루어 가려’는 것이다. 이 점은 아래의 대목에서 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에게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개념의 경계가 사라지는 바로 그 지점을 적절하게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어휘가 긴급히 필요하다. 서구 과학의 낡은 패러다임인 원인과 결과 법칙으로는 더 이상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행하는 대단한 무엇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여러 수준에서 일어나는 상호간의 공동작업의 한 형태라고 인식하게 된 지점에까지 우리의 이해가 확장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 전 같으면 학생들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지금은 그 지식과 기술이 (학생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어 일깨워지기를 기다린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더 이상 교사가 원인이며 학생은 학습과정의 결과물이라는 오래된 학교교육의 대 전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
넷째, 본래 “문제아는 없”으므로,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창조적 배출구를 찾아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현대의 과학적 진단 방식에 의해 부정적으로 평가받는 수많은 아이들이 보이는 반항은 무지나 성적불량이 아니라 고집스런 개체성과 비순응성이다. 그것이 죄가 되는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뿐이다라는 점을 이 책의 글쓴이인 크리스는 고등학교 때 이미 배웠다고 말한다. 공격성의 문제는 신뢰, 공동체 정신의 형성을 통해 해결할 수 있으며, 스스로 갈등해결 방식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 외,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대부분의 현대 학교가 가지고 있는 통제와 감시, 측정이라는 학습 환경은 온갖 통제의 덫 없이는 어떤 건설적인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두려움과 불안을 말없이 전해준다.”라는 말 역시 살펴볼만한 대목들이다.
마지막 덤으로, US에서 현재 계속되는 대안교육운동이라는 것이 ‘단 하나의 방식’만을 교조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흐름이 있다는 사실 역시 확인할 있을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반대하는 것이 현재의 ‘어떤’ 교육인가에 있을 것이다.
US에서 현재 자리를 잡았거나 새롭게 시작되고 있거나 이 넓은 영역에 걸쳐 있는 대안교육의 다양성은 실험을 하고 있는 학교나 가정의 숫자만큼이나 가지각색이다. 예를 들어, ‘인간적인’, ‘자유의’, ‘열린’, ‘새로운’, ‘대안의’, ‘전일적인’, ‘민주적인’, ‘공동체적인’ 같은 말들이 이 다양한 형태의 학교들이 걸치고 있는 형용사들이다. 어떤 이들은 좀더 조직적이고 또 몇몇은 창조성과 자유로운 표현에 역점을 두며, 또 어떤 이들은 사실상의 민주적 과정을 중시한다. 어떤 이들은 완강할 정도로 비정치적인데 반해 일부는 이런저런 정치적 실천과제를 갖고 있기도 하고 좀더 학업 우선의 방향성을 띄고 있는 학교들도 있다. 이러한 다양성이 바로 미국인들의 교육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해방운동을 하나로 묶어주는 원칙이며, 온갖 철학과 이데올로기가 제 나름의 빛을 비추는 이 넓은 스펙트럼을 아우를 수 있는 단 하나의 테마는 바로 ‘교육을 하는데 올바른 방법이 단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이다(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