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뒤주

1762년(영조 38년) 5월 사도세자가 영조의 명에 의해 뒤주 속에 갇혀 질식해 죽었다. 영조는 손수 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고 뒤주의 뚜껑을 닫고 자물쇠를 채웠다. 그것도 모자라 널빤지를 가져오게 하여 못을 박고 동아줄로 묶었다. 세자는 뒤주속에서 8일을 견뎠지만, 끝내 굶어죽었다. 이는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얼마 전에 텔레비젼에서 콘돔을 가리켜 '고무 장화'라는 은어를 사용하길래 문득, 어느 문학가가 '고무뒤주'라는 표현을 썼던 기억이 났다. 문란한 성문화를 비판하고자 하는 뜻이었는데 아비가 아들을 뒤주 속에 가두어 굶겨 죽인 지난 날의 사건과 별 반 차이가 없는 듯 하다. 하나의 은유적인 표현이지만 현대판 뒤주 사건으로 보아도 무리가 아닌 듯 하다.

"심슨 가족"을 만든 제작사의 또 다른 작품 "퓨쳐라마"에서도 이와 비슷한 에피소드를 본 적이 있다. 주인공들이 어느 행성에서 묘하게 생긴 열매를 발견했는데 먹어보니 너무나 맛이 있었다. 모든 승무원들이 미친듯이 이 열매를 먹고 우주선 가득 실고 지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식품사업자에 의해 전 지구인들에게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런데 그 행성으로 부터 따온 열매가 어느 날 갑자기 하나의 생명체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 열매는 다름 아닌 다른 행성인의 태아였던 것이다. 성장을 위해 그 행성에서 육아되던 것을 주인공들이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이후의 얘기는 만화적 상상력에 맡긴다.

"퓨처라마"에서나 '고무뒤주' 얘기 처럼 움직이지 않는 작은 미물의 생명에 대하여 의외로 우리는 무감각하다. 그것이 생명체로써 보여질 때만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나 보다. 인간의 특이한 습관이라고 여겨지는 쾌락추구의 힘은 다른 생명체에게 크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게 되는 순간 그 위험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뭐, 그렇다고 채식주의자가 되자거나 금욕주의자가 되자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 또한 때로는 자연의 섭리를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써 생존한다는 일은 참으로 피곤한 일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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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된 버릇...

아마도 인터넷 서점의 구매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라 얘기하기가 쉬울게다. 그러나 이러한 습관은 나의 어릴 적부터 시작한다고 얘기하는게 옳을 듯 하다. 어릴 때 나에겐 놀 꺼리가 많았다. 초등학교 이사올 때 우리 집 이삿짐 더미에서 내 장난감이 제일 큰 쌀가마 포대로 2포대가 넘게 나왔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 많았던 것이 책이다. 그림책은 디즈니 동화 전집 부터 유명 출판사의 백과사전까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넓었던 마루에 책을 쌓아놓고 그 안에서 장난감 놀이를 할 만큼 두 가지는 정말 많았다.

어릴 적 친구들이랑 하는 놀이 중에 하나가 백과사전 펴 놓고 퀴즈 놀이를 하는 것이다. 당연히 백과사전을 줄줄줄~ 외워댈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할만큼 똑똑했다는 뜻은 아니고, 그냥 잡다한 지식을 갇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탓인지 책에 대한 소유욕이 강하다. 읽지도 않으면서 사모으는 버릇이 있는 것이다. 물론 사다 놓고 읽지 않은 책은 거의 없다. 언제가는 읽고 말지만.......인터넷 서점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버릇은 여지 없이 발휘되고 있다. 이유는 4만원 이상 구매시 택배비를 안 낸다는 이유에서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그 금액을 맞추기 위해 이것저것 잡다하게 사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몇 권을 소개(?)하자면........
마르셀 푸르스트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랭크 바움 - 오즈의 마법사(전 14권 완결)
J.R.R. 툴킨 - 반지의 제왕, 실마릴리온

'잃어버린 시간...'은 만화책까지 구매를 했는데 정작 1권도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 오즈의 마법사는 7권까지 읽었는데 그 다음 권부터는 의례적으로 신간 발매할 때마다 구매만 해 두었다. 이제 14권 완간하였으니 마저 읽어볼 참이다. 반지의 제왕은 의외로 전반부가 지겨웠다. 영화는 흥미진진하지만 문체가 딱딱해서인지 읽기가 싶지 않았다. 물론 읽기 시작하면 손을 못 땔만큼은 되겠지만서도........'해리포터' 시리즈가 그런 경우였다. 전 권을 사다 놓고 근 반년만에 읽기 시작해서 일주일만에 해리포터 10권을 다 읽었으니까.

위와 같은 버릇 때문에 집에 책이 수북히 쌓여있는 집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어렸을 때는 친구들이랑 동화책을 교환해서 많이 읽었다. 메어리 포핀즈나 북유럽권의 동화책은 쉽게 구할 수 없었는데 잘 사는 친구 집에서 전집을 발견하곤 자주 들락거리며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친구에게 추리소설을 빌려주었다. 또 우리 집을 개축할 때 어머니가 고물상 주인을 불러 내 소설과 학습서를 덩어리채 넘겨주었기에 집안에 책이 많지는 않다.

언젠가 책을 소개하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에서 피천득씨의 서재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의외로 그 분의 서재에 꽂힌 책은 많지 않더라는 것이다. 즐겨 읽는 몇 권의 영문서와 낡은 사전류가 있을 뿐이었다. 진정한 문학가에게는 거창한 서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 담긴 책이 중요한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P.S. 2003년 5월 26일 18:30:37 에 적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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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 작가주의 감독의 한계성

작가주의 감독의 한계는 깊이 보다 넓이에 있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곽재용 감독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두가지 부류일 듯 하다. '엽기적인 그녀'의 그 감독, '비 오는 수채화'의 잊혀진 감독. 두 작품의 경계는 너무나 명확하다. 시간적인 갭도 10년이 넘을 뿐만 아니라 지독한 멜로와 엽기 코믹극이라는 극명한 코드로 분류된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감독에게 잊혀지지 않을 만큼 의미를 부여할 만한 작품인 듯 하다. '비 오는...'는 수채화톤의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준 대표적인 멜로물의 하나이며 그 당시 비교적 괜찮은 흥행성적으로 2편 제작까지 이어졌던 작품이며, '엽기적인...'은 오랜만에 메가폰은 잡은 감독의 정상의 자리에 복귀시켜 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클래식'은 '비 오는...'쪽에 가까운 영화이다. 어쩌면 재탕이라고 불러도 뭐라고 하진 않을 듯 하다. 아마도 공백기간 동안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가 아니었나 싶다. 남성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여성으로 하여금 "이것이 정통 멜로가 아닌가?" 라는 의미심장한 화살을 날릴 만큼 감동의 눈물이 주루룩~ 흐르는 작품이다. 1인2역을 맡고 있는 물 오른 배우 손예진의 연기도 무척 좋았고, 몇 편의 작품을 통해 꾸준히 좋은 이미지를 쌓고 있는 조승우의 연기도 괜찮다. 그리고 시트콤 '논스톱'의 히로인인 조인성의 이미지 메이킹은 제작 말미의 불미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썩 어울리는 배역이었다. 조인성의 역할 비중에 대하여 시나리오 준비 미비로 판단하기 보다는 너무나 많은 걸 보여주고 싶은 감독이 관객과 제작자의 힘에 눌려 결국 들어내고만 아쉬운 설정이 아닌가 싶다. 물론 132분이라는 긴 상영시간 조차 적다고 얘기하면 지나친 논리일 것이다. 역시 곽재용 감독은 영화판 보다는 문학쪽이 더 어울리는게 아닌가 싶다.

'클래식'은 그의 첫 작품처럼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영상미와 그 영상에 어울릴 만한 아름다운 선율 그리고 해당 배역에 적합한 산뜻한 신인급 배우들의 연기. '클래식'은 이런 그의 장기를 제대로 담아낸 영화이다. 파헬벨의 "캐논"이 흐르면서 시작 되는 첫 장면은 옛 기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선율과 파스텔톤의 영상을 담아 내고 있다. 어디서 본 듯 한 그리고 다소 촌스러운 장면은 주인공의 대사처럼 "클래식"이라는 미명하에 모든 걸 장식해 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예전 처럼 멜로 영화라고 해서 심각함을 강조하기 보다 곳곳에 코믹스러운 장면을 삽입하여 다소 지겨운 감을 없애려고 노력(?)한 것이다.

걱정스러운 점은 감독의 행보이다. 10년 전에 '비 오는...'으로 인기를 얻어 2편까지 제작했지만 멜로물의 한계로 당시 힘 없는 감독의 입장에서 수년 동안 조용히 지내야 했던 그가 단 한 편의 영화로 부활한 것이다. 그리고 그에 힘입어 2편 제작을 하겠다고 한다. 과거 '비오는...' 1편과 2편 사이에도 실패한 작품(묘하게 3명이 주인공인 이미연, 김민종, 이경영 주연의 '가을여행')이 있었고, 이번에도 '클래식'이라는 작품이 끼여있다. 그렇다고 '클래식'을 '가을여행'에 비교하는 것이 무리일게다. 다만 걱정스러울 뿐이다.

멜러물을 좋아한다면 연인과 함께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하지만 2월말에 개봉하는 '국화꽃 향기'가 한 수 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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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 향기 - 국화꽃 향기는 무슨 향기?

동명의 소설이 히트하여 영화화된 그저 그런 멜러 영화라고 한다면 욕 먹을까? 허구의 세계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인데 작가의 이웃집에 사는 사람의 실화라고 한다. 세상에는 소설이나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나 보다. 아님 우리 인생 자체가 소설이나 영화인가?

한 사람을 마음 깊이 오래동안 갖고 산다는 것은 가슴 아프고 고달픈 역정이다. 오감 중 가장 강하는 것은 시각이지만, 오랫동안 남게 되는 것은 향기인 듯 하다. 아마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잊지 못하고 마음 속에 고이 간직하게 된 것도 그 이유가 아니었을까? 또한 국화꽃이라는 설정도 작가가 한 것이지 모르지만 다소 죽음을 상징하는 꽃이 아니던가? 작가가 유난히 매정스럽게 느껴진다.

그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있을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지금쯤은 무엇을 보고 있을지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게 아직도 변함없다면....... 요즘 세태에 자칫하면 스토커로 몰리기 쉽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 만큼 그를 향한 사랑을 넘어서 이해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런 관계라면,....... 비록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그 상황에 그 사랑은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이었을까?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그가 존재하는 한 마냥 기다리는 사랑.........
국화꽃 향기에서 나는 무슨 향기를 맡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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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슈미트 - 슈미트 씨에 대한 보고서

역시 요즘은 외화 제목을 그대로 쓰는게 당연스럽게 생각하나 보다.
'어바웃 슈미트'는 <슈미트 씨에 대한 보고서>라는게 딱!일 듯 하다.

첫 장면부터 영화 내내 그의 일상을 지켜보는게 우리의 임무다.
똑딱 거리는 시계와 방안 가듯 채워진 상자들 속에 나이든 중년의 남자는 모던 타임즈의 채플린 처럼 인생의 쳇바퀴 속에 살아왔을 뿐이다.

시중에 가장 많은 자기계발 서적, 인생지침서, 인생철학서를 보면 전부 슈미트씨와 같은 삶을 강요하고 있다. 성공하고 싶은가? 그럼 이 대열에 합류하라! 늦으면 당신은 실패자다.

슈미트씨는 갑자기 부인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인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삶을 바꿔볼까 한다. 그러나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 만다. 그게 인생을 살아온 비법이었기 때문일까?

자신의 가장 절친한 친구가 수십년 전에 자신의 부인과 피운 바람에 속상해 하고, 사기꾼 같은 사윗감이 못 마땅해 귀여운 자기 딸과 헤어지게 하려 하지만 결국에 그냥 그게 사는 법이 아닐까? 부족하고 잘 못 되어 있어도 그게 선택이었다면 그것도 인생일 것이다.

하나 느낀게 있다면 역시 여자 보다 남자의 독신주의는 추천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좀 놀라운 장면은 캐시 베이츠의 누드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상상하고 볼 필요는 없다. 잭 니콜슨의 가장 추한 모습과 적나라한 모습을 함께 감상할 수 있을 뿐이다. 남의 인생살이에 관심이 많다면 이 보고서는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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