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즐긴다는 것도 한두번이지, 사람이 너무 외롭게 되면 이성을 잃게 될 소지가 있다. 타지에서 외롭게 홀로 유학생활을 하다보면, 누군가 외로움을 달래주는데 홀딱 넘어가서 나중에 내가 왜 그랬을까 싶은 선택을 해버리기도 하듯.

청춘은 스러져가고 밥하는 기계로 전락하여 외로움이 뼈에 사무칠 때 20살 아래의 누군가와 데이트를 즐기고 그러다 위험한 사랑에까지 이르면, 그게 누구 탓일까? 얼간이 같은 남편 탓일까, 아니면 외로움을 주체 못하고 줄줄 흘려버린 아내 탓일까. 그도 아니면 결혼한 여자에게 데이트를 신청한 그 젊은 사내 탓일까.

무조건 여자에게만 비난을 퍼붓던 시대는 슬슬 사라져 가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덮어놓고 여자 탓만 했으니 이제는 이 모든게 다 남편 탓이라고 한다는 건 억지다. 관계란 상호작용이거늘, 결국 원인은 셋 모두에게 있다고 본다.

소설과 영화가 좀 다르긴 했지만 <도쿄 타워>에서 요시다는 자신의 엄마와 바람이 난 동급생인 코우지에게 분노의 감정을 삭이지 못하면서도 이상한 말을 한다. 코우지는 미혼이므로 상대를 선택할 자유가 있으니 죄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딸인 자기도 있고 남편도 있는데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며, 엄마만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난 속으로 그게 말이 되나? 아주 이상한 논리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혼이면 상대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데에는 동감한다. 하지만 상대가 결혼 사실을 속인것도 아니고 주부이고 더구나 동급생의 엄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코우지가 먼저 유혹해 시작된 관계인데, 그런 코우지에게는 잘못이 없다니. 미친게 아닐까?

코우지와 요시다의 관계는 그저 동급생일 뿐이었으니 코우지에게 느낀 분노 보다는 엄마에게 느낀 배신감이 훨씬 컸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런 식의 결론은 어이가 없다.  

사랑이란 것이 이성을 배제하고 너무나도 감정적으로만 치닫게 되도 문제가 생기지만 또 마찬가지로 여기에 이성이 지나치게 개입하면 그건 더 이상 사랑이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서로에게 얻게 되는 이해득실을 따지고 그것이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중심이 될때 이미 그건 철저히 비즈니스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린 연인과 데이트를 즐기다가도 밥 때가 되면 저녁 밥을 해야 한다며 서둘러 돌아가는 주부의 모습은 그나마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한다기 보다는 결혼의 룰을 지키면서, 전업주부니 최소한 남편 귀가전에 저녁 밥은 지어놔야 한다는 그것에 따르기 위한 것일 뿐이다. 거기에 사랑이란 건 없다. 아울러 그런 룰을 지켜야만 지금과 같은 데이트가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고급스런 셀렉트 숍을 열게 해주고, 안락한 집과 편안한 생활의 바탕을 제공해준 남편 대신에 이제 겨우 대학생일 뿐인 어린 남자를 선택할 수 있는 건 무모함이나 한 때의 열정으로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그 반대는 현명함인가? 그런 남편을 선택한 건 정말 잘한 일이고 그래서 그런 결혼 생활을 어떻든 잘 이끌어 나가는 것이 현명한 일인가?

<해피엔드>가 나왔을 때, 아줌마들끼리 모여서 영화를 보며 극장에서 온갖 욕을 해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기가 있는 유부녀 역할의 전도연이 주진모와 애정행각을 벌이는 장면에서 저런 쳐 죽일X, 미친X 라고 욕을 해댔다는 이야기. 그러고 보니 좀 궁금해졌다. <도쿄 타워>를 보면서 일본의 아줌마들은 어땠을까. 주인공이 애 엄마가 아닌 건 아마 그녀들의 격분을 좀 누그러뜨리기 위한 장치였나?

전에 외국인 친구가 일본에 갔다가 아내가 남편에게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면서 한국도 그러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부르는 말에 사실 '어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잘은 모르지만 아마 일본에서도 젊은 부부들은 서로 그렇게 부르지 않는 경우가 많을 거라고 답했고 한국에서는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여전히 남편은 윗사람이라는 개념이 바탕에 깔려 있긴 하다고 했다.

시집 식구들에 대한 호칭은 도련님, 아주버님, 아가씨, 형님 이런 식인데 처가집 식구에 대한 호칭은 처형, 처제 이런 식이라고.  그리고  도련님이나 아가씨라는 호칭은 사실 예전에 종들이 양반 주인어른 자제를 부를 때 쓰던 호칭이었으니 주인님이란 개념이 그렇게나마 남아 있긴 하다고 설명했던 것 같다.

이런 개념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종이 주인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 저런 불륜 행각까지 저지르다니 이는 입에 거품물고 소리소리 지르고도 남을 일이지 싶다.

흠, 그러니까 결론은 시작이 잘못된거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녀들이 시작이, 결혼 생활의 시작부터 잘못이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았다면 20살 아래의 연인이 결혼 생활에 끼어들 틈이 없었을 것이고, 설사 그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탄력이 좋은 고무줄 처럼 그들은 곧바로 원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걸고 선택하게 된 사랑은 처음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 선택 자체가 잘못이었다고 할 수 밖에.  아울러 지금 그녀의 선택의 결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생은 공평하다고 여겨진다. 내일 너의 마음이 변한다 할지라도 지금 나는 너를 사랑해. 이보다 더 완벽한 말이 어디 있으랴.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야클 2005-11-27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도쿄타워>때문에 얘기들이 많군요. 솔직히 연상녀에는 예전부터 별로 관심이 없는지라 20살차이라는 설정이 너무너무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재미있게 읽고갑니다. ^^

이리스 2005-11-27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같이 영화본 사람도 그러더군요. ㅎㅎ 근데 그건 남자들 생각이지 여자들 입장에선 그렇게 비현실적인건 아니랍니다. *^^*

하늘바람 2005-11-27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20살차이 도쿄 타워 함 봐야겠어요

마태우스 2005-11-27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40대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날이 있을 겁니다^^
구두님/추천하고 갑니다. 어떻게 미모와 훌륭한 글솜씨를 모두 갖출 수 있었는지요?

이리스 2005-11-28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 넵 ^^
마태님 /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