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카스텐 (guckkasten) - Tagtraume [EP]
국카스텐 (Guckkasten) 노래 / 오이일이뮤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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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카스텐의 음악은 그 자체가 하나의 주술이다. 이들은 마치 제의를 집행하는 사도들 같다. 주문 같은 가사를 내지르는 보컬의 중성적인 음색은 절대적이며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의 목소리는 막힘없이 세계의 저편과 연결된다. 우리는 그들의 음악에 복종함으로써 원시성을 체험한다. 이제까지 들어본 국가스텐의 곡들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이 음반에 수록된 <붉은 밭>이 제일 인상깊다. '복종함으로써 원시성을 체험할 수 있는' 최적의 음악이라고 주저없이 장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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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 석연치 않은 결말 [Mini Album]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노래 / 붕가붕가 레코드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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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때 자주 들락거리던 인터넷 사이트 중에 국내 젊은 미술작가들이 모여서 활동하는 무슨 사이트가 있었다. 작품 판매 활로를 마련하고자 작가들이 직접 본인들 작품을 가지고 주기적으로 옥션을 여는, 신진 미술작가들의 자발적인 연대 조직 같은 사이트였다. 사이트 메뉴 한쪽에는 이백 명이 넘는 회원들 각각의 이름으로 작품갤러리 게시판이 마련되어 있어서 작가별로 작품을 열람해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 조문기라는 작가가 있었다. 유머러스하고 명랑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불온하고 음흉한 느낌을 주는 그림을 그리는 독특한 작가였다. 웬만큼 독특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 무수한 작가들 중에서 이름을 기억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가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이하 불쏘클)의 조까를로스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서야 알았다. 둔하게도 나는, 동일인임을 알고 나서야 그의 작업에서 음악과 그림이 짝을 이루는 주제를 몇 개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마도로스 K의 모험>이라는 노래를 만들면서 <분홍상자의 귀환>을 그리기도 하고, <이발소> 연작을 그리면서 <이발사 데니얼>을 작곡하기도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동시적인 작업이 계속 이어지면 좋을 것 같았는데, 얼마 전에 조까를로스는 그동안 자신의 음악 활동이 한 마디로 ‘인간대포쇼’였다고 회고하고 돌연 은퇴를 선언해버렸다.

“(...)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었던 / 이도 저도 아니었던 내 일상은 / 사람들의 환호에 취해 나도 몰래 / 더 큰 포신에 몸을 맡기게 되었다 // 섬광은 눈부시고 폭음에 놀라 / 몸을 가눌 수 없는 짜릿한 속도로 / 누구보다 높이 올라 귀를 막으며 / 꿈꾸듯 황홀한 안식을 느끼네 // 나는 알고 있어 잠시 정지해 / 마지막 포물선 끝이란 걸 / 이제 여기까지 오른 영광만큼 / 초라하게 추락하는 나의 마지막 쇼 / 하늘만 바라보고 날아왔지만 / 착륙할 곳을 찾지 못했네 / 떨어지는 나를 우연히 보게 되면 / 모른 척 해주겠니“ -인간대포쇼 中에서

불쏘클의 음악에 단순히 희극적인 요소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면, 노래마다 지문처럼 스며있는 페이소스 때문일 것이다. 때때로 지나치게 장난스런 이들의 음악은, 듣기에 따라서는 본질적인 비감을 감추기 위한 의도적인 훼이크처럼 느껴지기마저 한다. 그래서 이들의 음악은 '고질적 신파'(1집 제목)다. 그동안의 밴드 활동에 대한 회고이자 음악인으로서의 자기규정이기도 할 <인간대포쇼>는 이러한 고질적 신파의 정점을 보여준다. 불쏘클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누군들 목이 메지 않을 수 있을까. 그는 정말로 자신의 쇼가 초라하게 추락하게 될 것을 염려했나 보다. 넌지시 번복을 암시하는 은퇴 선언 말고는 적당히 우아하게 착륙할 만한 지점이 보이지 않았나 보다. 아니, 그렇다 해도 은퇴를 선언하는 마당에 이런 가사를 적는 건 또 무슨 신파란 말이냐. 

신파를 단순히 오락이나 유희로서 다루는 듯 하다가도 때로 여지없이 드러나고 마는 뼛속깊이 처절한 (그래서 갑자기 과도하게 진정성이 있어버리는) 신파적 감수성이라든지, 회화 작품에서 시종 느껴지던 불온하고도 음울한 음모론적 분위기가 내게는 이 사람만이 지닌 독특한 개성이자 예술적 재능으로 느껴진다. 신파와 불안의 정서도 사람에 따라서는 재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든 철학적 사유를 촉발시킨다는 점에서 그런 기분들은 예술가에게는 유머와 해학적 센스보다도 훨씬 더 값진 재능인지 모른다.

아무튼 불쏘클은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풍문에 따르면 우리들의 조까를로스는 이제 미술작가로서의 본업에 좀 더 충실하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이건 마치 한때 문학판을 뒤흔들어놓고 이만하면 되었다 싶을 때쯤 무심히 손 털고 떠나버린 김승옥 선생의 수법과 다를 게 뭔가. 실로 석연치 않은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현재로서는 이 미니앨범이 불쏘클의 마지막 음반이지만, 은퇴를 번복하는 진정한 '석연치 않은 결말'이 언제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니 우리는 결코 '인간대포쇼' 제2막에 대한 기대를 잃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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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코 SE - 아웃케이스 없음
마이클 무어 감독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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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료를 민영보험에 의존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보험 혜택을 받는 일이 몹시 까다롭다. 이윤을 추구하는 보험회사들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의사들은 수술을 자주 거부할수록 보험회사로부터 인센티브를 받기도 한다. 이 영화는 국가가 자신이 담당해야 할 기본적인 역할마저 시장에 위임했을 때 사회가 얼마나 비정해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국민의 건강권마저 철저히 자본 논리에 맡겨두고 있는 미국과 같은 환경에서는 시장의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민간 차원의 움직임(이를테면 의료생협과 같은 자생적인 연대조직) 또한 활발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게 된다. 국가가 의료를 책임지지 않는 환경에서 개인들은 실제로 어떤 전략을 마련해서 적응해 나가고 있는지 그 구체적인 모습이 궁금해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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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백승욱 옮김 / 창비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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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시대가 자본주의 세계경제체계에서 미지의 새로운 체계로 옮겨가는 이행기가 될 것이라는 월러스틴의 분석을 접하고 나면, 맑스의 이론이 여전히 유효할 수 있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윤리적인 당위가 아니라 인식론적 당위에서 그런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월러스틴은 세계체계가 이행기에 접어들면서 국가가 더 이상 예전만큼 세계체계의 조정기제로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되고, 국가의 기능이 무력해짐에 따라 개인들은 자신들의 지역적 안전을 스스로 구축하는 '고대적 해결책'을 강구하게 될 것이며, 그 결과 폐쇄적인 소규모 지역 공동체가 발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맑스 역시 최종적으로는 계급과 국가의 소멸, 그리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를 전망하지 않았나. 물론, 진보사관에 따라 선형적인 발전도식을 적용해서 생산양식이 점진적으로 다음 단계로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본 점이나 소수 권력집단의 독재를 필연적이고 정당한 절차로 파악한 점 등 맑스의 이론에서 세부적으로 비판이 끼어들 만한 여지는 많다. 그럼에도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후 도래할 사회에 대한 맑스의 최종적 전망은 이 책을 읽을수록 의미가 있어 보인다.

과연 인류 역사의 흐름에서 사회주의 공산국가의 성립과 몰락은 하나의 에피소드(혁명의 동력이었던 반체계적인 민주주의에의 열망이 냉전시대 발전논리에 따라 결국 점진적 자유주의로 수렴됨으로써, 냉전시대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단일한 세계체계가 유지되었던 현실)였는가, 아니면 거대한 이행을 예고하는 맹아적 증후였는가. 현재의 우리로서는 가늠할 길이 없다. 그것은 사후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평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가의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만일에 도래할지 모르는 사건, 즉 우리가 아는 세계가 종언할 경우를 위해 우리는 후자의 경우 또한 진지하게 고찰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모든 사상이 그렇겠지만, 맑스 역시 언제든 미래적인 사상으로 재조명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맑스 뿐만 아니라, 맑스와 불화했던 아나키스트 푸르동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는 맑스와 달리 필연적인 이행기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마저 인정하지 않았다. 반혁명세력으로부터 혁명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국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긴 맑스주의 사회주의자들과 달리, 그는 인간과 생명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국가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고 혁명이 이루어지는 즉시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력한 국가가 혁명의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혁명의 목적을 배신할 것”이라던 푸르동의 날카로운 예언은 러시아의 역사가 증명해 주었다.

러시아 혁명은 왜 실패하고 말았을까. 월러스틴은 볼셰비키들이 '이중의 속박'이라는 딜레마를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즉, 볼셰비키들이 근대적 국가간체계를 전복하고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일단 기존 체계의 권력을 탈취해야만 한다. 정치 조직인 그들로서 이것은 곧 ‘국가조직 내에서의 권력 장악’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들은 기존 체계를 전복한 게 아니라, 외려 부르주아나 군주를 대신하는 국가조직의 새로운 수장으로 등극하는 격이 되어 결국 세계의 변혁은 불가능해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결국 소비에트 연방은 실질적으로 국가자본주의로 전락함으로써 자신들이 그토록 부숴뜨리고자 했던 체계와 똑같은 모습이 되어버렸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러시아 혁명 정권은 결국 똑같은 괴물이 되어 근대적 세계체계인 국가간체계에 완벽하게 통합되었다.  

볼셰비키의 딜레마와 한계가 그런 것이었다면, 아나키스트들에게는 이런 난점이 있지 않았을까. 자신의 뜻과 이념을 사회에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 힘, 즉 실질적인 정치권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은 민중에게 강제력을 발휘해서 혁명을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고 조정해 나아가려는 권력조차 거부했다. 모든 강압적 권력 행사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그들이 내세우는 그들 자신의 정체성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에게는 뜻은 있었지만 힘은 (그들이 스스로가 거부했기 때문에) 없었다. 이들의 딜레마, 즉 아나키스트들은 어떻게 정치화될 수 있는가, 어떻게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아나키즘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오늘날의 여러 사회운동집단에게도 여전히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는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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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시대라고 하면 뭔가 화려한 느낌부터 들지만, 그 시절 북유럽의 화가들은 결코 그런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들은 열렬한 환희와 신비스런 황홀경으로 비이성적인 천상의 판타지를 조장해내지 않았다. 대신 일상과 이웃과 자연을 차분하고 정밀하게 그렸다. 그래서 그들이 그려내는 인물의 형태는 피렌체 화가들의 그것보다 드라마적인 요소가 부족하고, 색채는 베네치아 화가들보다 훨씬 단출하다. 그러나 그들은 정직하고 엄격하며, 검소하고 겸허했다. 수수한 절제미 사이로 날카롭게 빛나는 그들의 이성을 나는 사랑한다. 그림을 통해 전해져 오는 냉엄하면서도 소탈한 그들의 정신 세계 앞에서 나는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북유럽에서 활동했던 화가 렘브란트에 대해 곰브리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렘브란트의 위대한 초상화들에서는 실제 인물과 직접 대면하여 그 사람의 체온을 느끼고, 공감을 구하는 그의 절박함과 또한 그의 외로움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렘브란트의 많은 자화상에서 보아서 잘 알고 있는 그 예리하고 침착한 눈은 인간의 마음속을 곧바로 꿰뚫어보는 것 같다. (...) 이탈리아 미술의 아름다운 인물상에 익숙한 사람들은 렘브란트의 작품을 처음 볼 때 때때로 충격을 받곤 한다. 왜냐하면 그는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으며 심지어는 노골적으로 추한 것까지도 피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카라바조와 마찬가지로 렘브란트 역시 조화와 아름다움보다는 진실과 성실성을 더 중요시했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p.423~424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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