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손도손 모여서 탱고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참 즐겁다. 이런 얘기라면 두 눈 빛내가며 밤새도록 이어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동경하는 아르헨틴 마에스트로, 그들의 춤 스타일, 좋아하는 악단, 좋아하는 곡, 춤 출 때의 자세, 아브라소의 느낌, 요즘 밀롱가의 동향, 연습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할 것인지 등등 끊임없이 샘솟는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들.
후각을 압도하는 종이 냄새. 아름다운 규칙에 따라 광활하게 진열된 다양한 장르의 책들. 좀비처럼 살다가도 서점에 가면 내 눈은 별안간 용맹한 육식동물의 눈이 된다. 이 모든 걸 다 안아보고 싶고 펼쳐보고 싶은 욕심. 연인의 귓불을 매만지듯 한 장 한 장 귀퉁이를 쓸어넘기며 활자로 압축된 온갖 방면의 세계를 탐사해보고픈 호기심. 밀롱가에 가도 그렇다. 저마다 고유의 춤 스타일과 몸선과 에너지를 가진 땅게로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서점에 갔을 때랑 똑같이 내 눈은 육식동물의 그것이 된다. 심장이 뛴다 춤추고 싶어서. 저마다 고유의 온도와 색깔과 파장을 지닌 이 눈부시게 다채로운 영혼들을, 뛰는 심장으로 샅샅이 느껴보고 싶어서.
춤은 말을 안 해서 좋다. 도서관도 절도 산도 밀롱가도, 말을 안 하거나 적게 하니까 좋다.
아따니체 훈또스. 좋았다 너무나.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감사했다. 행복의 여진이 이튿날까지 지속될 정도로. 나는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오로지 탱고 출 때만 백프로 마음을 여는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이 열릴 때는, 정말이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격해져서, 온몸으로 간절히 떨면서, 그렇게 추는 거 같다. 이런 맛에 사람들이 탱고에 귀의하는구나, 충성을 맹세하고 온갖 정열을 바치는구나, 그렇지 않을 수가 없겠구나, 싶다.
로버트 그린의 <유혹의 기술>의 한국여성용 버전이라고 해야 하나. 거의 표절에 가깝게 옮겨온 부분도 보이기는 하지만 나름 현지화(?)된 유혹의 기술이 흥미롭게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