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두더쥐 한 마리가 햇볕 좀 쬐러 지상으로 나왔다가 난데없이 누군가의 따끈따끈한 똥을 뒤집어쓰고 만다. 웬 봉변인가. 화가 난 두더지, 온갖 짐승들을 차례로 잡도리한 끝에 이웃집 개 한스가 한 짓인 걸 알아낸다. 낮잠 자는 한스의 머리 위에 작은 똥을 누고는 그제야 땅속으로 돌아가는 두더지, 에게 묻고 싶다. 꼭 그렇게 해야만 속이 후련했냐? 아기들한테 반복적으로 보여주기엔 너무 더럽고 집요한 복수극이 아닌가 싶지만, 이미 우리 아기는 똥은 똥으로 갚는다는 함무라비 정신에 깊이 매료되어버렸다.
아직 말 못하는 아기들이 선호하는 책의 기준은 뭘까. 아기들의 머릿속에 들어가보지 못하니 심리를 완전히 헤아리진 못하겠다. 우리집 아기는 이 분이 쓴 책들을 다 좋아한다. 난 글쎄, 고리타분한 그림체가 영 별로인데. 인물 의상이라든지 동물 묘사가 마치 관념에 찌든 조선시대 남종문인화 같지만 아기가 좋아하니 어쩔 수 없다.
스타일과 패션을 논하고, 호기심과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온갖 진기한 장소와 물건들을 소개하며, 아가씨들의 고민을 쾌활하게 상담해주던 지난 책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표지와 제목부터 워낙 담백하고 수수해서 같은 저자 맞는지, 출간 연도는 언제인지 재차 확인했을 정도. 이 반전의 매력에 빠져들어 읽다보니 새벽이다. 입면이 다채로운 사람은 흥미롭다. 눈비비고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벨디브 사건에 대해 찾아보게 된 영화. 역사 속 비극이 내 가족과 내 삶의 현재 그리고 미래와도 정교하게 얽혀있음을 적당한 수위로(지나치게 교훈적이진 않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