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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53
강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0월
평점 :
한 마디로, 이해할 수가 없는 시집이다. 여타 시인들이 자연과 조응하는 순간을 섬세한 언어로 포착해서 그들 자신이 샤먼의 후예임을 드러낼 때 혹은 샤먼을 흉내낼 때, 이 시인은 직접 샤먼으로 변신해서 샤먼의 언어로 노래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서정적이지 않고 차라리 주술적이다. 지극히 원초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무당이 신내림 상태에서 뱉어내는 요설같은 이런 시를 대체 문명의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원초적 감수성이라고는 희박한 내가 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알아들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집의 화자는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시집은, 화자의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짐에도 도무지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어 무어라 애도하기가 퍽 난감한, 그런 시집이다. 한없이 모호하고 기이한, 그러면서도 절박하고 고통스런, 흡사 짙은 안개 속에서 누군가 울부짖는 비명 같은 시집. (이 시집을 읽은 후 우연히 시인이 쓴 산문 몇 편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시를 쓴 시인이라고는 도저히 짐작치도 못하게, 산문에서 만난 그는 너무나 '정상적'이었다. 그는 정말, 샤먼 같았다.)
평론가 신형철은 강정의 시가 "인간과 짐승의 이종교배"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 독특한 이종교배의 시에 대해 그는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첫째, 지금 발화하고 있는 '것'은 '서정적 화자'라는 안온한 심급이 아니라 어떤 비인간적 에너지의 덩어리다. 둘째, 인간이기를 그만두었으므로 인간적 상상이 아니라 우주적 망상이 시를 이끌어간다. 셋째, 인간 아닌 어떤 것의 망상적 발화가 아름다운 모국어일 수 없겠거니와, 실상 그의 문장들은 일종의 외국어에 가깝다."
다른 건 몰라도 단 하나, 시마(詩魔)의 존재를 믿는다. 네루다의 말처럼 그것은 겨울에서든 강에서든 어느 날 불쑥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 시는 쓰지 않고 씌어진다. 강정 시인의 시들이, 아니 강정이라는 시인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아래 옮겨 적어본 시 <노래>는 이 시집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시다. 못 쓰는 게 아니라 안 쓰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대중을 위한 립서비스(?) 차원이었을까. 시집 한 구석에 너무나 정상적인(!) 시 한 편을 꽂아넣은 시인의 내심이야 모르겠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집의 작품 가운데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시가 바로 이 시다.
노래
강정
숨을 뱉다 말고 오래 쉬다보면 몸 안의 푸른 공기가 보여요
가끔씩 죽음이 물컹하게 씹힐 때도 있어요
술 담배를 끊으려고 마세요
오염투성이 삶을 그대로 뱉으면 전깃줄과 대화할 수 있어요
당신이 뜯어먹은 책들이 통째로 나무로 변해
한 호흡에 하늘까지 뻗어갈지도 몰라요
아, 사랑에 빠지셨다구요?
그렇다면 더더욱 살려고 하지 마세요
숨이 턱턱 막히고 괄약근이 딴딴해지는 건
당신의 사랑이 몸 안에서 늙은 기생충들을 잡아먹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저 깃발처럼,
바람 없이도 저 혼자 춤추는 무국적의 백기처럼, 그럼요 그저 쉬세요 즐거워 죽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