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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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평론가를 알게 된 것은 김소연의 시집에서다. 시집 끄트머리 해설을 여간해선 안 읽는 내가 유일하게 밑줄 치며 읽었던 해설, 그게 그의 글이었다. 난해한 이론과 현학적 수사로 무장한 권위적인 평론이 아니라, 새로 핀 꽃을 꽃이라 불러주는 애정어린 평론이 있음을, 그토록 눈부시게 매혹적인 평론이 있음을 그의 글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왜 우리가 문학을, 그것도 한국문학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가 자명해진다. 그래서 이 책은, 한겨울에 곶감 빼먹듯 아껴가며 읽어야 할 평론집이다. 아래는 소위 '미래파' 시들에 대한 저자의 입장이다. 이런 구절을 읽을 때마다 밑줄 그으며 환호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누군가 거기에 있다. 여하튼 있을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저런 부류는 도대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존재의 '필연성'을 이해하는 이만이 그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 것이다. '당위성'을 먼저 내세우는 이에게 그 존재는 한낱 '우연성'의 얼룩으로만 보일 것이다. (...) 시인들이 거기에 있을 때, 비평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필연성을 인식하고 가능성을 예감하는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이미 도착했을지도 모를 미래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한국시의 다채로운 미래를 위해, 우리는 한국시의 권리장전인 첫 페이지에 이런 위악적인 문장을 적어두려 한다. 당분간은 시인들이여, 비평가들이 하지 말라는 일, 바로 그 일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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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5 0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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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문학과지성 시인선 353
강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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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이해할 수가 없는 시집이다. 여타 시인들이 자연과 조응하는 순간을 섬세한 언어로 포착해서 그들 자신이 샤먼의 후예임을 드러낼 때 혹은 샤먼을 흉내낼 때, 이 시인은 직접 샤먼으로 변신해서 샤먼의 언어로 노래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서정적이지 않고 차라리 주술적이다. 지극히 원초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무당이 신내림 상태에서 뱉어내는 요설같은 이런 시를 대체 문명의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원초적 감수성이라고는 희박한 내가 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알아들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집의 화자는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시집은, 화자의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짐에도 도무지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어 무어라 애도하기가 퍽 난감한, 그런 시집이다. 한없이 모호하고 기이한, 그러면서도 절박하고 고통스런, 흡사 짙은 안개 속에서 누군가 울부짖는 비명 같은 시집. (이 시집을 읽은 후 우연히 시인이 쓴 산문 몇 편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시를 쓴 시인이라고는 도저히 짐작치도 못하게, 산문에서 만난 그는 너무나 '정상적'이었다. 그는 정말, 샤먼 같았다.)

평론가 신형철은 강정의 시가 "인간과 짐승의 이종교배"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 독특한 이종교배의 시에 대해 그는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첫째, 지금 발화하고 있는 '것'은 '서정적 화자'라는 안온한 심급이 아니라 어떤 비인간적 에너지의 덩어리다. 둘째, 인간이기를 그만두었으므로 인간적 상상이 아니라 우주적 망상이 시를 이끌어간다. 셋째, 인간 아닌 어떤 것의 망상적 발화가 아름다운 모국어일 수 없겠거니와, 실상 그의 문장들은 일종의 외국어에 가깝다."  

다른 건 몰라도 단 하나, 시마(詩魔)의 존재를 믿는다. 네루다의 말처럼 그것은 겨울에서든 강에서든 어느 날 불쑥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 시는 쓰지 않고 씌어진다. 강정 시인의 시들이, 아니 강정이라는 시인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아래 옮겨 적어본 시 <노래>는 이 시집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시다. 못 쓰는 게 아니라 안 쓰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대중을 위한 립서비스(?) 차원이었을까. 시집 한 구석에 너무나 정상적인(!) 시 한 편을 꽂아넣은 시인의 내심이야 모르겠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집의 작품 가운데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시가 바로 이 시다.  

노래 

                                             강정 

숨을 뱉다 말고 오래 쉬다보면 몸 안의 푸른 공기가 보여요
가끔씩 죽음이 물컹하게 씹힐 때도 있어요
술 담배를 끊으려고 마세요
오염투성이 삶을 그대로 뱉으면 전깃줄과 대화할 수 있어요
당신이 뜯어먹은 책들이 통째로 나무로 변해
한 호흡에 하늘까지 뻗어갈지도 몰라요
아, 사랑에 빠지셨다구요?
그렇다면 더더욱 살려고 하지 마세요
숨이 턱턱 막히고 괄약근이 딴딴해지는 건
당신의 사랑이 몸 안에서 늙은 기생충들을 잡아먹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저 깃발처럼,
바람 없이도 저 혼자 춤추는 무국적의 백기처럼, 그럼요 그저 쉬세요 즐거워 죽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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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 밑에 한참을 앉아 어린 담쟁이들이랑 봄볕 쬐다 들어왔다. 바람 불어 머리칼이 이파리처럼 나부낄 때 봄철에 움트는 것들이 무슨 마음인지 알았다. 그것은 실컷 낮잠자다 깬 얼룩무늬 고양이의 마음이다! 그리고 또 알았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긴 계절이 졌다는 것을. 짐승 같던 계절이 다시 오지 않을 계절이 졌다는 것을. 애달프고 그리워할 것도 없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게 졌다는 것을. 그러나 시절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쌓여가는 것이라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무늬가 되었더라. 암팡진 꽃씨처럼 흩어져 양지바른 곳에 뿌리 내리고 또 한 철을 그렇게 살아가겠더라. 봄이다. 거역할 수 없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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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1호 - 창간호 다언어 문화이론 및 번역 총서 흔적 1
문화과학사 편집부 엮음 / 문화과학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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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은 각국의 지식인들이 필자로 참여하고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곳곳에 동시적으로 발간되는 잡지라고 한다. 직접 구해 보지는 못하고 일부만 복사본으로 읽어보았는데, 그 중 펭 치아의 <보편적 지역- 변화하는 세계에서의 아시아 연구>라는 글은 ‘지역학’이라는 학문을 주제로 한 글로, 지역학이라는 게 있는 지도 몰랐던 나로서는 이 글 자체가 무시무시한 ‘수면의 지역학’이었다.  

네이버에서 ‘지역학’이란 것을 치면 이렇게 나온다: 어떤 특정 지역에 대한 타자성의 인식 아래 그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에 대한 전반적인 혹은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 활동을 총칭. 엄밀히 말해서 ‘지역학’이란 용어보다는 ‘지역연구’가 더 정확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지역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고유한 방법론이 부재하고, 지역 연구의 특성상 다른 분과 학문 즉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의 방법론과 연구 성과를 이용해야 하는 실정에 있기 때문이다. 지역연구는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략적 필요에 의해 미국에서 제일 먼저 발달해 왔다. 그러던 것이 전쟁의 종결과 함께 순수한 학문의 분야로써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결론적으로 지역연구란 그 지역의 언어를 바탕으로 각각의 분과학문의 방법론과 연구 성과를 이용하여 그 지역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 업적을 쌓는 것으로 정의내릴 수 있을 것. 

펭 치아는 분과학과 지역학이 보편자-개별자 구도를 이루어 상호 작동하는 양상을 주목하면서, 지역학이 현지조사를 거쳐 비-서구라는 타자를 포획해 오면 분과학은 포획된 타자를 자기 방식으로 소화해 버리는 이러한 학문적 메커니즘이야말로 서구유럽이 타자를 인식하는 지극히 헤겔스런(?) 태도라고 비난한다. 헤겔적 시각에서의 보편성이란, 언제나 개별자 가운데 제일 힘세고 포악한 하나가 나머지 다른 개별자들을 무참하게 포섭 장악하는 방식으로써만 전유될 수 있는 성질인 바, 이런 점에서 보편 이론의 정립을 목표로 하는 (그리고 그것을 비-서구에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데 사용하는) 모든 분과학문은 어디까지나 ‘자기 위주’의 절대정신을 구현하려는 지극히 이기적인(?) 지식 가공 방식인 것.

문제는 이런 방식이 선진적이고 정통적이고 일반적인 학문 연구 방식으로 전 세계에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비-서구로서의 아시아는 언제나 서구에 기반을 둔 학자들에 의해 가공되어야 할 원자료, 원천이 되고 만다. 비-서구 출신 아시아 학자들이 자신의 출신 지역을 연구하기 위해 ‘원주민 정보제공자’로서 서구로 유학 오는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까닭이다. 왜 그들은 자기네 사회를 서구 지식의 구조와 방법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되어버렸나.

펭치아는 ‘보편-특수’라는 코드로 인간의 활동을 인식하는 것이 결코 절대적인 학문 방식은 아님을 강조하면서 개별자 위에 군림하는 것으로서의 보편자의 개념 또한 파기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보편성을 데리다의 사유를 빌려 “특수한 영토적 신체들 혹은 지역들 간에 공유하는 중단 없는 운동 속에서 거듭 절합되고 재정의되는” 것으로 새롭게 정의한다. 보편성은 어떤 한 특수한 개별자에 의해 전유될 수 있는 정태적인 실체가 아니라, 각각의 개별자들의 끊임없는 연쇄에 의한 계열화 운동, 개별자들의 중단 없는 공유 운동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편은 '수렴'되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 하나의 '모범', '전범'으로서의 가치로 전환된다. 이렇게 펭 치아는 헤겔적 색채가 강했던 기존의 낡은 보편-특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면서 앞으로의 아시아 연구에 있어서 서구적인 보편성의 유령을 몰아낼 것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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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 아래 잠들다 창비시선 229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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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  

                               김선우 

세상에서 얻은 이름이라는 게 헛묘 한 채인 줄
진즉에 알아챈 강원도 민둥산에 들어
윗도리를 벗어 올렸다 참 바람 맑아서
민둥한 산 정상에 수직은 없고
구릉으로 구릉으로만 번져 있는 억새밭
육탈한 혼처럼 천지사방 나부껴오는 바람 속에
오래도록 알몸의 유목을 꿈꾸던 빗장뼈가 열렸다
환해진 젖꽃판 위로 구름족의 아이들 몇이 내려와
어리고 착한 입술을 내밀었고
인적 드문 초겨울 마른 억새밭
한기 속에 아랫도리마저 벗어던진 채
구름족의 아이들을 양팔로 안고
억새밭 공중정원을 걸었다 몇 번의 생이
무심히 바람을 몰고 지나갔고 가벼워라 마른 억새꽃
반짝이는 살비늘이 첫눈처럼 몸속으로 떨어졌다
바람의 혀가 아찔한 허리 아래로 지나
깊은 계곡을 핥으며 억새풀 홀씨를 물어 올린다 몸속에서
바람과 관계할 수 있다니!
몸을 눕혀 저마다 다른 체위로 관계하는 겨울풀들
풀뿌리에 매달려 둥지를 튼 벌레집과 햇살과
그 모든 관계하는 것들의 알몸이 바람 속에서 환했다
더러 상처를 모신 바람도 불어왔으므로
햇살의 산통은 천 년 전처럼
그늘 쪽으로 다리를 벌린 채였다
세상이 처음 있을 적 신께서 관계하신
알 수 없는 무엇인가도 내 허벅지 위의 햇살처럼
알몸이었음을 알겠다 무성한 억새 줄기를 헤치며
민둥한 등뼈를 따라 알몸의 그대가 나부껴 온다
그대를 맞는 내 몸이 오늘 신전이다

시집 첫머리에 실린 시다. 어떤 시집을 막론하고 첫 번째로 실린 시들은 언제나 압도적이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시인이 가장 하고 싶던 말, 그리고 시인의 지문이 가장 선연하게 찍혀있는 시가 대체로 첫 번째에 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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