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의 메리 스튜어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이마고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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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츠바이크의 문장들은 세월이 흘러도 구식으로 느껴지지 않고 변함없이 아름답다. 문장마다 스며있는 인간과 역사에 대한 통찰 때문일 것이다. 깊이 있는 미문의 울림이 시공을 초월함을 가령 이런 구절이 증명한다. 지금 읽어도 무릎을 치게 된다.  
 
"(...) 그러므로 메리 스튜어트와 엘리자베스 사이의 싸움이 미래와 세계의 편[엘리자베스]으로 결정되고, 과거와 낭만을 추구하는 여왕[메리 스튜어트]의 승리로 끝나지 않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엘리자베스와 더불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역사의 의지가 승리한 것이다. 이미 끝나버린 형식들을 공허한 껍질처럼 뒤에 버리고, 언제나 새로운 것에서 자기 힘을 시험해 보는 것이 역사의 의지인 것이다. / 엘리자베스의 삶에는 세계에서 자기의 위치를 확보하려는 한 국민의 에너지가 구현되어 나타나있다. 반면에 메리 스튜어트의 파국에는 화려하고 영웅적으로 죽어가는 기사도가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 싸움에서 각자 자신의 의미를 완성했다. 현실주의자인 엘리자베스는 역사에서 승리했고, 낭만주의자인 메리 스튜어트는 문학과 전설로 승리했다."

 

츠바이크가 애정을 가지고 복원해낸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는, 낭만적 열정과 용기있는 결단력을 지녔으되 감정적 충동으로 경솔한 판단을 내려 비극을 자초하는 인간이며, 재주 많고 총명하며 인문주의적 교양을 두루 갖추었으나 시야가 좁고 욕망에 눈멀어 슬기롭지 못한 인간이다. 그러나 그녀는 또한 진탕에 굴러도 꼿꼿한 자존심을 버리지 않는, 고귀하고 강인한 인간이기도 했다. 랭보가 말했듯 흠 없는 영혼이 어디 있을까.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 같은 이 어리석은 영웅을 츠바이크는 분신처럼 쓰다듬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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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선 버터플라이 - Nine Days or a Million
3호선 버터플라이 노래 / Beatball(비트볼뮤직)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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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와 무의미의 중간지대에서 건져올린 듯한 구절들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가사가 마치 멜로디 위에 찍힌 기하학적 문양의 패턴 같다. 나른하고 아름답고 신비롭다. 이들의 에고이즘은 내부로부터 견고하고, 그래서 불안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따듯하고 자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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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그림에서 찾은 13개 퍼즐조각
박정자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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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인상파의 선구로 등극하게 되는 영광과는 상관없이 정작 마네 자신은 끝내 살롱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다. 무려 <풀밭에서의 점심>을 그려놓고 감히 그것을 살롱전에 출품했던 마네의 행동에서 짐작되는 것은 문턱을 밟고 선 인간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망설임이다. 그리고 그 망설임의 시간들을 먼 발치서 곰곰이 헤아리다 보면, 전형성의 경계를 뛰어넘어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는 예술 본연의 욕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한 평범한 인간의 초상이 뭉근한 아픔으로 전해져 온다. 마네는 자신이 혁명의 깃발을 치켜들고 있는 줄도 모른 채 고독하게 혁명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어라 자세히 설명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그리는 것이 옳다고 믿었을 마네. ‘확신할 수 없음’ 속에서도 감각이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윤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마네. 마네의 진정한 위대성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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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의 팡세 - 김승희 자전적 에세이
김승희 지음 / 문학사상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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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과하여 허풍의 조짐이 보이는 글은 촌스러움을 넘어 민망하다. 어떻게 이 책이 22쇄나 찍힐 수 있었을까. 80년대 문학적 감수성이란 것이 전반적으로 이렇게 느끼했던 모양일까. 감수성에 있어서 가히 꽃무늬와 레이스와 분냄새로 점철되어 있는 것만 같은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결행했다는 두 번의 자살미수조차도 생을 로코코 풍으로 치장하기 위한 연극적 퍼포먼스 같아 쉽게 동정이 가질 않는다. 심술궂은가. 그러나 만약 하루키가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장담컨대 한 페이지를 채 다 못 읽고 온몸이 오그라들어 영영 펴지지 못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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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낭 브로델 - 지중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e시대의 절대사상 21
김응종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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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어느 독서모임에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 대해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열심히 발제를 준비해 갔건만 ‘재미나게 각색된 한편의 거대한 시나리오 같은 이론’이라는 박한 평가를 얻어들었던 기억이 난다. 수긍할 만한 반박이다. 월러스틴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브로델의 역사관 역시 맑스주의 역사관 못지 않게 작위적일는지도.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 브로델의 장기지속 모델을 적용하여 섣부르게 미래를 전망하려는 시도란, 확인된 우연들로부터 선험적 법칙을 짜맞추려는 도박사의 오류에 불과한 것인지도.

 

이 책 역시 비판적 견지를 유지하면서 브로델의 저작들을 소개하고 있다. 가령 저자는 ‘사건-구조-콩종튀르’의 체계로 구성되는 브로델의 역사관에 대해서, 구조를 이루는 사건과 '먼지'(브로델의 표현)에 불과한 사건들을 구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만약 그런 구분이 임의적이라면 구조 및 콩종튀르 역시 주관적인 설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유럽의 세계-경제가 팽창한 것이 식민주의 무역 등 외적인 힘의 도움을 받아서가 아니라 고유의 역동성에 근거한 내적인 힘의 축적 덕분이었다는 브로델의 논리에서 유럽중심주의적 사관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러 결점에도 불구하고 브로델의 역사관을 과거와 현재가 나누는 '또 다른 형식'의 대화로 받아들여볼 수도 있지 않을까. 부정적인 의심과 편견을 잠시 제쳐두고, 역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적용해보고자 한 시도, 불연속적이고 분절적인 구분에의 시도에 의의를 두어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특정 관점에 따른 역사의 해석을 놓고 타당성 여부를 검증하는 일보다 더 심도있게 주목할 만한 것은, 어떤 새로운 관점과 제안과 해석이 당대인들에게 의미있게 받아들여지고 그에 파생하는 새로운 사고가 촉발되어 궁극적으로 기존의 관념 체계가 변화를 겪기 시작하는 그런 현상 자체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합성'이 다소 불투명하더라도, 파급력과 영향력을 갖춘, 다시 말해 '기능성'을 갖춘 지식이라면, 그 역시 진리를 구성하는 한 조각의 퍼즐로서 인정해야 할 것이다.

 


+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는, 브로델이 상업-산업-금융이라는 성장에 따른 단계별 이행으로 자본주의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브로델은 자본주의의 핵심적 특징을, 최대 이익이 보장되는 형태라면 상업이든 금융이든 어떤 영역이나 민첩하게 ‘미끄러져 들어가’ 그것을 독점의 수단으로 삼는 자본의 능력에서 찾고 있다. 즉, 자본주의는 마치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T2000처럼 상업의 모습으로도, 산업의 모습으로도, 금융의 모습으로도, 독점이 가능한 영역이면 어디든 존재하는 것. 그런 점에서 브로델은 특정 단계에서 독점이 자유경쟁을 대체하면서 자본주의의 성격이 전환된다는 맑스의 이론적 전망을 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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