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의 힘 -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도 역시 마지막에 이르러 독서를 권하고 있다. 특히 오래 전 죽은 자와의 대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온한 상상력을 풀가동시켜 뇌라도 남모르는 해방을 만끽하게 만드는, 주로 전복적 에너지 가득한 책만 좋아하다가 (뜬금없이?) 사회 질서와 규칙을 수호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고 관리하고 운용하는 업무의 일선에 서 있는 사람의 글을 읽으니 나도 모르게 그동안 구닥다리 쯤으로 치부하고 있었던 유럽 계몽주의 시대의 가치와 덕목들이 새삼 커다란 존재감으로 심각하게 와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하녀의 일기
브누와 작코 감독, 뱅상 랭동 외 출연 / 비디오여행 / 2015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매력적인 여배우를 발견하는 건 일상의 낙 중 하나. 요근래 발견한 레아 세이두가 이 영화에 주연으로 나온다길래 일부러 찾아봤다. 악마적 장난기를 머금은 샐쭉한 입술, 우수를 드리운 반항기 다분한 눈매, 냉소적이었다가도 문득 환하게 웃을 때 얼굴 가득 정오의 분수처럼 솟구치는 생기- 이런 것들이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듯. 이 여자는 시크하지 않다. 시크를 넘어서 발랑 까졌다. 청춘의 발칙한 기상이 느껴지는 얼굴! 영화 보는 내내 뭔가 줄거리가 LP판 튀듯이 튄다고 느껴졌는데 알고보니 원작 소설이 있었더라. 러닝타임이 좀 더 길었으면 석연치 않게 넘어가버린 사건들이 보다 자세하게 그려졌을 텐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은,

                  -이인원

 

 

눈독들일 때, 가장 아름답다
하마
손을 타면
단숨에 굴러 떨어지고 마는
토란잎 위
물방울 하나


아니 그래도, 그래도 말이야 눈독에 머물지 않고 덤벼들어야지. 야생의 짐승이 그렇듯이, 호기심으로 빛나는 발톱을 세우고, 격정과 충동에 휩싸여 야수처럼 덤벼들어야지. 산산이 부서지는 날카로운 이슬에 온가슴이 찢기더라도 파국을 향해 용맹하게 돌진해야지. 모든 류의 관조 취미는 늙음의 표식이다. 그것이 그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되어도 결국은. 이라고 며칠 전에 썼다가 어제 우연히 어떤 책에서 (어느 일본 소설가의 작풍 변화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이런 대목을 읽었는데

 

(...) 욕망이 대상에 도달하고 그곳에서 힘을 다한 후 남겨진 것은, 언제나 쾌락의 절반은 익살맞고, 절반은 끔찍한 껍질에 불과하다는 사실일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의 작품이 성공한 것은 <벨벳의 꿈>(1919)이나 <인어의 슬픔>(1917)에서 주체와 욕망의 대상이 두꺼운 유리로 가로막혀 있는 것처럼, 욕망이 불완전하게 끝나는 때이다. 욕망은 언제나 대상과의 간극 바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관서 지역으로 이주한 이후, 다니자키는 욕망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것, 욕망을 어디까지나 지연시키고, 그 지연을 쾌락으로 만드는 것을 선택한다. 그것은 직접성에서 간접성으로의 전환이다. 눈부신 빛에서 그림자로 가라앉는 모호한 형태로 전환하는 것. 순간적으로 부여되는 선정적인 이미지에서, 대상을 만지작거리는 맹인의 손가락 끝으로의 전환. (...) 그는 그렇게 해서, 자기 자신의 마조히즘을 완성하는 것이다. -158쪽, 구라카즈 시게루,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 中에서

 

의도적으로 욕망의 충족을 지연시키면서 쾌락을 얻는 관조 취미는 늙음의 표식이 아니었군. 마조히스트의 생활 양식이었군. 늙은이든 마조히스트든 그런 식의 변태적 금욕주의는 나를 질리게 만든다. 사랑은 눈독 들이는 게 아니라 덤벼드는 거다. 사랑은 기투(企投f)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여수 화태대교 건너 화태도 들어가 월전교회 목사님이 주도하시는 예배를 드리고 왔다. 이날의 설교 주제는 불안에 관한 것이었는데 말씀을 간추리면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가. 그러나 불안은 우리가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조건이다. 불안하지 않다는 것은 안주한다는 것이고 운동성이 결여된 채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불안을 감당하며 늘 경계에 머물러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라. 인간으로서 살아있어라. 오직 살아있는 인간만이 불안하고 불안한 인간만이 하나님을 찾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