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구멍 / 홍영철 

멋대로 하세요.
나는 당신 것이에요.
옷을 벗기시든지
주무르시든지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그러나 사랑하진 말아요.
밑지는 건 당신이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 그것만은 안 되겠네요.
심각한 척도 마세요.
그냥 우리 편하게 지내요.
자, 가까이 오세요.
아니, 가까이 오시든지 마시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당신의 욕망 앞에 나는
순진한 창녀예요.
나는 의미 없는 작은 구멍이에요.
즐거움도 아픔도 모두 껴안는
그런 작은 구멍이에요.
멋대로 하세요, 당신.
나는 나의 것도 너의 것도
그의 것도 아무것도 아니예요.  

이제야 알겠다, 창녀야. 나의 비극은 너를 사랑한 것이었구나. 네 날카로운 입꼬리가 희미하게 들릴 때마다 나는 발정 난 짐승마냥 신음하였으나 내가 바친 순정은 한갓 통속적인 멜로에 지나지 않았구나. 나에게 한 가지 죄가 있다면 지나치게 구구했다는 것이리. 네 앞에서 나는 늘 작은 농담에도 분개하는 소년이었네. 핏발선 눈을 하고 아무데로나 돌진하는 소년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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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양 2011-03-21 20:07   좋아요 0 | URL
어익후야, 저는 오늘이 춘분인 줄도 몰랐네요. 이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사는 걸 보면 저는 창녀를 겉으로만 사랑하나봐요:P

근데 이 시집 정말 보석 같아요. <시간의 구멍>만 옮겨적기엔 이 시집에 실린 다른 시들에게 미안할 정도로요+_+
 

"신성을 이야기하기에 정의-공리-정리-증명으로 이어지는 <에티카>의 서술 방식은 다소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과연 기하학적 증명이라는 서술 형식이 신의 섭리라는 내용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오히려 첨단 그래픽 영상 예술이라든가 신비로운 시적 잠언, 혹은 오랜 종교적 수행에서 얻은 영성 체험과 같은 형식을 통해서 훨씬 효과적으로 그것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강렬한 엑스터시의 상태에서 환상적으로 신을 체험하는 것보다 오히려 감정의 고조없이 냉철하고 분석적으로 (스피노자식 접근법으로) 신성을 헤아리는 편이 일상에 내재하는 신성을 지속적으로 느끼며 살아가기에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예전에 수유너머에서 <에티카>를 읽을 때 고병권 선생님과 식사하며 나누었던 이야기다. 서가에서 단 한 권의 책을 꺼내라면 망설임 없이 <에티카>를 선택할 것이라고 하시던 선생님은 강독 시간 내내 너무나 즐겁고 신나하셨다. 선생님의 강의는 언제나 기쁨과 열정으로 가득했지만 특히 <에티카>에서 최고조였던 것 같다. 선생님의 <에티카>는 양장으로 되어 있지 않은 오래된 판본이었는데(서광사, 1990) 그렇게 너덜너덜한 책은 난생 처음 봤다. 어찌나 여러 번 펼쳐보셨는지 책 귀퉁이가 닳아지다 못해 아예 버선코처럼 들려서 가만히 놓아두어도 저절로 펼쳐지려고 막 기지개를 펴는, 무슨 정체모를 생물체 같은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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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1-03-17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끊임없이 반복한 책은 '기지개를 펴는 생물체'로 둔갑(?)하는군요.^^ (약간 으스스한데요) 고병권 선생님이 닳도록 읽은 책이 스피노자라는게 좀 의외인데요. 니체라면 모를까^^ 스피노자의 신에서 종교체험이 나오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 보았습니다.^^; 곧 원자로가 곧 폭발할 것처럼 보도가 나오던데, 내일은 목도리로 얼굴과 손 발을 꽁꽁 감싸야 할 듯 합니다. 몸 조심하세요...^^(이건 좀 이기적인가요...)

poptrash 2011-03-18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병권 선생님이 닳도록 읽은 책은 맑스일 것도 같은데. ㅎㅎ 저도 한 번 듣고 싶네요.

수양 2011-03-18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독 때마다 나눠주신 핸드아웃만 모아도 책 한 권 나올 거 같아요. 아마도 언젠가는 스피노자에 대한 책도 내시지 않을까요^^
 

주체가 비참한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중개자. 지젝은 물신주의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그러나 지젝은 물신주의를 단지 현실도피적인 행동으로만 여기지는 않으며, 오히려 물신주의로부터 영웅적이고도 실존적인 행위의 가능성을 읽어낸다. 물신주의는 “텅 빈 상징적 형식에 대한 허황된 고집"이지만, 언제든지 “도전적인 상징적 행동”으로 전화할 수 있다.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텅 빈 형식 자체를 고집하는 행동은 오히려 내용에 충실하다는 표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때의 물신주의는 주체가 극한적인 상황에서 실존적 태도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것의 한 예로 지젝이 들고 있는 것이 1953년 시베리아 노동 수용소에서 발생한 노동자 파업이다. 당시 진압을 명령받은 군인들은 농성 중인 노동자들에게 무자비하게 총을 쏴댔지만 노동자들은 총에 맞아가면서도 대오를 이탈하지 않고 숭고하게 죽어갔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혼비백산하지 않고 의연하게 죽어갈 수 있었던 까닭은 농성 내내 그들이 주문처럼 합창했던 노래 덕분이었다. 그들에게 노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중단해서는 안 될, 죽음 앞에서도 매진해야 하는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 행위였다. 그러니까 시베리아의 노동자들은 노래 부르기라는 어떤 하나의 강력한 물신주의적 행위를 통해 실존적 주체성을 확립했던 셈이다. 

사람마다 물신의 대상은 다양할 것이다. 농부에게는 자연이, 자본가에게는 돈이, 광신도에게는 성상이, 얼리어답터에게는 신제품이, 그리고 내게는 아무래도 책이 물신의 대상인 것 같다. 왜냐하면, 책이 나의 현실에 아무런 효과를 불러일으키지 못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서 독서활동에 지적 유희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 거의 위악에 가까운 거부감을 드러내면서도, 나는 여전히 책읽기라는 이 텅 빈 상징적 형식에 대한 허황된 고집을 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완독한 책을 내 나름의 분류법에 따라 서가에 가지런히 진열해놓고 공연한 만족감을 느끼는 일종의 성화(聖化) 작업 역시 결코 중단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젝이 말한대로 물신주의적 태도가 상황에 따라서는 도전적인 상징적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라면, 책에 대한 나의 병적인 물신주의에서도 어떤 조그만 미지의 가능성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자기합리화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물신주의의 긍정적 잠재력에 대한 지젝의 이야기는 여전히 흥미롭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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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7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17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17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10kh 2014-05-2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네요^^
 
지젝이 만난 레닌 - 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슬라보예 지젝.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레닌 외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모든 이데올로기적 명령의 명시적 메세지는 그것이 함의하는 암시적이고도 외설적인 이면의 메시지에 의해 강화되고 보완되고 유지된다. 따라서 우리는 금기를 통해 욕망을 읽듯이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그것의 외설적 보충물을 파악할 수 있다.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역시 이러한 접근이 가능한데, 관용을 강조하는 다문화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이데올로기가 실제로 과도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은 절대로 관용할 수 없는 혐오스런 타자이다. 그래서 관용을 중시하는 이데올로기적 명령이 실질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지나친 향락의 과시로 너를 역겹게 하는 혐오스런 타자를 사랑하라'는 실로 난감한 주문이다.

자유주의적 주체는 자신을 이중구속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도무지 난감하고 가혹한 이같은 이데올로기적 명령에 대해 어떤 식으로 대처할까. 그는 타자가 자신에게 관용을 보이는 한에서만 그에게 관용을 베푸는 방식으로 이데올로기의 요구에 순응한다. 때문에 자유주의적 주체는 자신에게 관용을 보이지 않는, 다시 말해 ‘타자’라는 이름에 근본적으로 부합하는 ‘진짜 타자’에 대해서는 철저히 불관용적이다. 결국 역설적이게도, 타자에 대한 관용의 태도를 내면화시키면 시킬수록 자유주의적 주체의 심중에는 ‘진짜 타자’인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근본주의적' 분노가 고조되어 가는 것이다.

주체로 하여금 이렇게 양가적이고 분열증적 감정을 낳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의 이중구속을 극복하기 위해 주체가 저항하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지젝은 ‘자기파멸적인 행동’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자기 계발을 강조하는 이 사회에서 지극히 반-계발적으로, 디오니소스적으로 살아버리는 주체의 행위, 모두가 자본을 축적하여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회에서 자발적인 가난을 지향해버리는 주체의 행위,  치열한 경쟁이 당연시 되는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도태를 열망하는 주체의 행위 등을 이 책에서 지젝이 말하는 ‘자기파멸적 저항’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지젝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도착으로 표현되는, 주체의 이러한 맹목적이고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행동 속에 오히려 체제의 구멍을 환기시키는 어떤 해방적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지젝은 이와 같은 주체의 행동이 ‘혁명적 성격’을 갖기 위해서는 이것이 결코 ‘근본주의적’인 방식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도착적으로 보일지라도 결코 근본주의적이지는 않을 것. 여기서 근본주의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대타자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도구화하는 행동 일체를 말한다. 즉, 지젝이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다: 대의를 위해 자신을 소외시키지 않을 것, 그 어떤 대의명분도 내걸지 않고, 거기에 아무런 의존도 하지 않고, 오로지 명분 없이 저항할 것. 우리는 명분 없이 저항함으로써 비로소 저항의 상황을 스스로 즐길 수 있게 된다. 이때의 저항은 결코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헤매는 비장한 종류가 아니며,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유희이고 짜릿한 축제이다.

대의에 의존하지 않고도 저항할 줄 아는 주체, 자신을 수단화 시키지 않는 주체, 저항의 상황 자체를 즐기는 진정으로 해방적이고도 혁명적인 주체. 이러한 주체가 되기 위해 지젝이 가정하는 전제 조건은 일단 주체 자신이 이데올로기적 질서의 잉여적 지위에 처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방적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자유 의지에 의한 것이든 구조적인 메커니즘에 의한 것이든 일단 그 자신이 좀처럼 정의되지 않는 사회의 불편한 잉여이자 사회의 상징체계를 교란하는 오점의 지위에 놓여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존재 자체가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부조리'일 것. 그리하여 그 자신이 어떤 하나의 이데올로기적인 체계 안에서 어떻게든 배제되고 응징되고 억압되어야 할 불편한 존재일 것. 

이러한 존재의 조건 속에서 주체는 자신을 향해 ‘파괴적인 행동’을 감행함으로써 비로소 해방적 주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주체의 자기파괴적 행위는 기존의 이데올로기에 익숙해져 있던 자들에게 일순간 당혹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들로 하여금 이렇게 끔찍한 상연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 자체와 직접적으로 대면하도록 만든다. 다시 말해 해방적 주체는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자들의 일상을 순간적으로 교란시켜 그들이 ‘실재계적 순간’과 마주하도록 이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해방적 주체'에 가장 근접한 인물을 한국 현대사에서 찾자면 단연 전태일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대의를 수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기를 파멸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잊혀진 대의를 환기시켰다.  

소외된 자의 자기파멸적 감행, 이는 곧 ‘마조히스트의 자기 고문’인 것인데, 이것이 야기하는 효과와 의의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마조히스트의 자기 고문은 사디스트 목격자에게 만족을 주기는커녕 좌절만 안겨주며, 마조히스트를 다스릴 권력을 빼앗는다. 사디즘은 지배 관계를 포함하며, 마조히즘은 해방을 향한 필수적인 첫 단계다. 우리가 권력 기제에 종속될 때, 이러한 종속은 언제나 그리고 그 정의상 어떤 리비도의 투자에 의해 유지된다. 종속 자체가 그 나름의 잉여 향유를 만들어낸다. (...) 우리는 단순하게 지적인 사유만으로는 종속을 없앨 수 없다. 우리의 해방은 어떤 육체적 공연으로 상연되어야 한다. 나아가서 이런 공연은 분명히 마조히즘적 성격을 띠어야 한다. 자신을 되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상연해야 하는 것이다.”[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마조히즘-사디즘적 관계를 근본적으로 끊을 수 있다는 것](440)

어떠한 대의명분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욕망에 근거하여, 극단적으로 자기 파멸적인 행위를 감행해 나가는 주체, 그러한 행위를 통해 일순간 실재계적 순간을 열어젖힘으로써 기존의 이데올로기적 질서의 붕괴와 자멸을 야기하는 주체, ‘행동화된 유토피아적 순간’으로서의 해방 운동을 주도하는 주체, 해방 운동 자체를 하나의 마조히즘적 카니발로서 향유하는 주체, 경건하지도 비장하지도 엄숙하지도 않고, 차라리 광적이고 잔혹하고 난폭하며 지극히 향락적인 주체. 이것이 곧 ‘지젝이 만난 레닌’의 한 가지 모습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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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1-03-1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석한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수양 2011-03-14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은 너무나 발랄하고 거침없이 사유를 전개해 나가는데 저는 그걸 허겁지겁 따라가려니 숨이 벅차네요. 헉헉대며 적은 '부분적' 리뷰인데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사전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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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은 어느 날엔가 이 시인의 책 <마음사전>을 펼쳐놓고 우리가 멋대로 '마음사전 놀이'라고 명명한 어떤 놀이를 해본 적이 있었더랬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마음에 얽힌 낱말들을 말 그대로 사전처럼 풀이해놓은 대목이 있는데, 예컨대 그 사전에 따르면 '설렘'은 '뼈와 뼈 사이에 내리는 첫눈'이고 '슬픔'은 '생의 속옷'이며 '한숨'은 '나의 궁리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이런 몇 개의 문장들을 읽고 탄식하며 무릎을 치는 것으로 부족해서, 우리는 각자가 아직 읽지 않은 항목들을 가지고 퀴즈 놀이를 해볼 생각까지 했던 것이다. "최승자 시인의 말대로, 청춘의 트라이앵글 중 하나. 청춘 이후로는, 유일한 정신적 구호품"인 이것은 무엇일까요? 정답, 그리움. 맞아도 한 잔, 틀려도 한 잔을 들이켜가면서 이 놀이는 한동안 지속되었는데, 그러면서 우리는 마음학교의 학생이 되어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 둘 알아가는 것이었다. 왜 그때는 그렇게 행복했고 왜 그 행복은 또 그토록 불안했으며 그 불안은 어째서 조금은 달콤하였던가를. 그러니까 마음이 몰랐거나 모른 척했던 삶의 소이연들을.   -김소연 시집, <눈물이라는 뼈>에 실린 신형철의 해설 中에서 

문학의 심약함이, 그 자폐적 순수성이 지겹다고 함부로 떠벌이곤 했으면서도, 나는 내심 문인들이 즐겼다던 이 '마음사전 놀이'를 질투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사전>을 구태여 찾아 읽지는 않았던 것인데, 이는 문학이 지겨워서가 아니라 명백히 나의 게으름 탓이리라. 그러던 차에 지난 주말 우연히 이 책을 선물로 받게 되었으니 신기한 일이다.  

딱히 특별한 날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내가 상 받을 만한 기특한 일을 해낸 것은 더더욱 아니었으므로 이는 필경 나의 게으름을 다그치는 선물이 아니겠는가, 하고 제멋대로 상상을 하면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마음사전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마음이 달아올라 결국, 이 책을 선물해준 이에게 장문의 문자메세지를 보내고야 말았다. <마음사전>에 대한 독후감은 내가 보낸 이 문자메세지로 갈음해도 충분할 것 같다.       

"<마음사전> 참 좋다. 시인의 글은 그것이 어떤 형식을 띠든 나를 안달하게 하는 것 같다. 그들이 지어내는 텍스트들은 마치 봄철의 공중을 조용히 떠다니는 치명적인 꽃가루와 같아서 읽는 이로 하여금 언제나 격한 문학적 알러지 증세에 시달리게 만든다. 행간에 멈춰서서 자꾸만 눈 비비고 재채기 하느라 이 책 몹시 더디게 읽고 있지만, 아- 그럼에도 이토록 곱디 고운 책을, 이토록 곰곰이 언어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는 책을, 이토록 낱말의 구석구석을 핥고 쓰다듬고 다정하게 애무하고 있는 책을, 나 이리도 쉽게 함부로 읽어버려도 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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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8 1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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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8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