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에 결혼하고 지금도 신혼여행중인 동생이 그리스에서 자기 홈피에 사진을 올렸다.

참 세상이 언제 이렇게 편리하게 되었나..

그리스에 있는 섬이라는데.. 포카리스웨트 광고의 배경이기도 한. 산토리니.

정말 그림같은 곳이다...직접 눈으로 보고 있을 동생이 부럽군.

난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갔는데 .. 그 한적한 길을 드라이브 하던 기억이 나는군.  아무걱정없이 보낸

행복하기만 한 기간이었다.

아직 동생이 결혼을 했다는 실감이 잘 안난다.

같은 아줌마로서 앞으로 수다 떨 일이 더 많아지겟군.ㅎㅎ

 

 

음..사진이 안보이네..

http://imag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dt_iphoto&query=%BB%EA%C5%E4%B8%AE%B4%CF&sort=0&scp=0&c=2&qt=df&xc=&rec=&top=1

산토리니 보고 싶으시면.여기루..가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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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은 달려온다
신동준 글 그림 / 초방책방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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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우리 주위에서 볼수 있는 그대로의 버스. 지하철. 시내의 모습을 볼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참 좋네요. 지하철의 표지판도 모두 그대로 이고. 버스의 외관도 그렇고...특히 제가 결혼전에 3호선을 이용했던터라 더욱 반가웠지요.^^

사람을 지하철 승처권으로 표현을 한 점이 특이해요. 사람이 옷을 입은것처럼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답니다.

지하철로 내려가는 계단 아랫부분을 왜 옷과 신발을 오려붙였나 했더니 지하상가에 주로 옷과 신발 파는 가게가 많아서 이렇게 표현했나 봅니다.

글은 두페이지에 한문장 정도로 짧고 표현도 꼭  시처럼 느껴집니다.

쉬-익 히-익 슈웅-. 지하철이 떠난다./ 사람들은 꿈꾸고 지하철은 달린다./ 눈부신 강물 위를 건넌다./ 누구는 남아있고 누구는 내린다. 빠르게 천천히 비껴가는 사람들 열차를 갈아탄다.

며칠전 서울의 광화문을 지날 일이 있었는데 그림책에서 본 이순신 장군 동상이며 세종문화회관. 광화문을 우리 아이한테 알려주느라 제가 바빴지요.^^

이 작가의 다음 그림책이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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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yjay >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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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 2004-05-05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화기에 귀를 댄 토끼가 넘 귀여워서 퍼올수 박에 없었다.^^

반딧불,, 2004-05-06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사랑스럽습니다^^

원영맘 2004-05-06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바니안인가 하는 인형인가보죠?
얘들, 귀엽긴 하던데, 쪼끄만 녀석들이 좀 비싸더군요.
악세사리(?)류도 갖가지~ 수집하는 사람들 돈 꽤나 드나보데요?
귀엽습니다, 정말.
 

결혼전에 교보에서 우연히 이책을 발견하고는 넘 맘에 들어 비싼 가격임에도 망설임없이 구입했다. 그림만 쓱쓱 넘겨보고는 책꽂이에 꽂혀있지만 했지만 언젠가는 보리라..하던 책이다. 소장하고 있다는거 만으로 그냥 뿌듯한 그런책이다.ㅎㅎ

한준이가 교육방송에서 하는  "톡톡 보니 하니"를 즐겨본다.  어느날 보니 "만화로 보는 기계의 원리"라는 만화가 하길래 유심히 보니  이책에서 본 메머드가 나오는것이다. 책을 뒤적여 보았더니 만화와 유사한 그림이 있고...

아. 그 책을 이렇게 만화로 만든거구나..책보다 더 쉽게 풀어서 만든거 같다.

외국만화라 다시보기가 안될줄 알았는데 교육방송에 가보니 다시보기가 된다.

방송은 5시 40분 정도부터 10여분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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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밀키웨이 > 그림은 내 영혼을 만나기 위한 순례 - 김점선

대학을 졸업하고, 나 자신의 의지로 살아야 하는 때가 되었을 때, 나는 죽음 밖에는 떠오르는 말이 없는, 낙오자가 되어 있었다. 머릿속에는 잡념과 잡지식 만이 썩은 지푸라기처럼 쑤셔 박혀 있는 아웃사이더가 되어 있었다.
학교 다니는 일 외에는, 아무 준비가 안된 미숙아인 채로 졸업을 당했다. 나는 그런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 공부를 더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외쳐댔다. 그리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아버지가 한숨을 쉬면서 등록금을 줬다. 그렇게 큰소리 치고 들어간 대학원에서 한 학기만에 제적당했다. 맘에 안 드는 과목을 수강 거부했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나를 가르치던 미국인 선생님이 나의 제적을 안타까와하면서 동료와 일할 기회를 주었다. 통역 일을 했다. 행복하지 않았다. 돈을 많이 받았지만 모으지 않았다. 다시 죽음과 마주섰다. 나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 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림! 그림을 시작했다. 하루종일 그렸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림 그리는 일뿐인 것처럼 그렇게 살았다. 행복했다. 제대로 된 길을 찾은 기쁨을 느꼈다. 다시 회화 전공으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때 내 나이는 27살이고 지금부터 31년 전 일이다. 아버지는 나를 금치산자 취급을 했다.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할 만큼, 나는 헝클어진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럴 때 엄마가 나섰다. 무조건 나를 지원했다. 열심히 그림 그리고 학교 다니는데 그것만으로는 예술가가 안 된다고 했다. 결혼을 해서 인생의 쓴맛을 이겨내고 나서야 진정한 예술가가 된다고 했다. 맞는 소리 같아서 결혼했다. 집 나온 청년과 이름도 나이도 묻지 않은 채 결혼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의 행동에 경악했다. 아이도 생겼다. 매우 가난했다. 우리가 굶는다고 해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내가 일부러 굶는 줄 알았다. 재미나 멋으로. 그럴 때 사는 길은 극도로 아끼는 것이다. 어쩌다 5만원 주고 그림 한 점을 팔면 정부미만 사고 반찬 사는 데는 돈을 한푼도 안 썼다. 동네에서 얻은 된장에 산에서 캐온 풀은 넣고 끓여서 먹었다. 그림 그릴 캔버스도 돈을 아끼려고 광목을 사다가 합판에 붙여서 그렸다.

그런 그림을 모아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림이 꽤 팔렸다. 일년 먹을 쌀을 사고 물감과 광목을 살만할 돈이 생겼다. 작업실이 따로 있을 리가 없다. 지붕에서 물이 새는 좁은 셋방에서 살았다. 그 시절에 그린 그림은 제일 큰 게 30호를 넘지 않는다. 100호 짜리 캔버스에 그림 그리는 게 꿈이었다. 비만 오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고인 물을 버리느라고 밤을 새야 했다, 그럴 때 멍히 물을 바라보느니 그림 그리면서 밤을 샜다. 내가 살던 마을의 산과 들에 대해서 환하다. 어디에 무슨 나물이 있는지 언제 어떤 먹을 만한 풀이 나는지를. 그 마을에서 산을 식량창고로 생각하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그림 그리다가도 하루에 한시간 쯤 은 산을 헤메면서 반찬감을 구해야 했다. 그렇게 살면서도 해마다 거르지 않고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꼭 일년을 버틸 만큼씩의 돈을 벌었다. 내 행동은 변함이 없는데 차츰 그림이 더 많이 팔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100호 캔버스를 100개나 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해마다 전시회를 연다. 전시회는 내가 먹고살 돈을 버는 길이면서 또한 그림을 보여주는 기회이다. 그림은 경건한 예배다. 자신의 영혼을 만나기 위한 순례다. 내 영혼은 하늘이 내게 내린 숙제다. 평생 풀어나가야 할 대상이다. 내 영혼 속에는 가깝게는 나와 나의 부모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멀리는 구석기시대의 내 조상의 경험까지도 흔적으로 남아있다. 나는 내 영혼의 시각화에 몰두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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