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의 책들이 좋다.
하나씩 하나씩 읽어가면서 아직은 읽어야 할게 더 많음을 기뻐한다.
처음으로 읽었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임펙트가 워낙 강해 찾게 된 로맹 가리
은근 중독증세를 보인다. 아직은 이렇게 본 책 보다 봐야 할 책이 더 많아 행복한 작가!
지금 유럽의 교육을 읽고 있는데 제목만 들으면 완전 무슨 교육서적 같아 평소와 달리 역자 후기를 먼저 봤다.
그리고 봤다.
자살하면서 남긴 로맹 가리의 유서를.....
결전의 날.
진 세버그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상심한 마음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다른 데다 호소하도록 초대받는 법이다.
사람들은 아마 신경쇠약 탓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 신경쇠약이라는 것은 내가 성인이 된 이후 계속되어왔으며, 내 문학적 작업을 완수하게 해주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인가? 아마도 <밤은 고요할 것이다>라는 내 자전적 작품의 제목과, '사람들이 달리 더 잘 말할 줄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내 마지막 소설의 마지막 말 속에서 대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로맹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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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젠장! 멋지잖아.
내가 이 세상에서 할 건 다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저 당당한 자신감.
저런 유서를 남겼는데도 사람들은 왜 1년 전에 자살한 진 세버그때문이라고 말들을 했을까?
(진 세버그는 영화배우였으며 로맹 가리의 전부인이기도 했다.)
김학철 선생님이 예전에 갈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시면서 스스로 곡기를 끊고 영면에 드셨다.
멋있었다.
며칠 전에 본 역사e에서 이회영 선생이
예순 여섯의 일생으로 답했다. 라고 했다.
머리가 띵 울릴 정도로 멋있었다.
지난 달에 영화 <지슬>을 봤다.
가장 슬펐던건 이들의 죽음이 너무 허무해서였다.
왜 죽는지도 모르고, 뭔가 의미를 남기지도 못하고, 따뜻하게 잡아주는 손 하나도 없이 그냥 그냥 죽어갔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죽음.....
깨놓고 말하면 나이가 든다는 건 죽음에 가까워지는 거다.
아! 죽을 때 멋있고 싶다.
로맹가리처럼, 김학철, 이회영처럼........
사는 동안 멋있었던 적이 한번도 없던 나같은 사람이 죽을 때 멋있어 보이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