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호퍼의 작품세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는 본격적으로 그림에 착수하기 전에 제계적이고 치밀한 준비 작업을 거치지만 걸고 계산적이지 않으며,
자신이 감정적으로 보다 친밀감을 느끼는 오브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내적경험과 회화적 관섬 사이의 화합을 지향하고, 시신과 그림을 일 지시키려 노력하며, 문명화 과정 중에 파묻혀 버린 진정성에 이르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구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싶어한다. - P14

호퍼는 언뜻 불안정해 보이는 회화적 요소들에서 출발해서 마침내 신세계라는 경험의 장(場)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역할을 직접 겨냥하는 상징체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그리고 도상학적 기법의 고정된 기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때마다 새로운 투사를 통해서 다양하게 표현되는 회화적 요소들은 바로 이 상징체계에서 나온다.  - P23

"모든 예술활동의 처음이자 끝은 내안의 세계를 통해서 내 주위에 세계를 다시 만들어내는 일이다.  - P28

1920년대 말 호퍼는 집이나 풍경, 도회지 정경을 인간적 삶의 관점에서 재현한다.  - P43

호퍼가 후기로 갈수록 작품에 내재하는 육체직 · 성적 팬태즘을 부재(不在)의 방식으로 은밀하게 회화적 복합체로 변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P52

문제의 핵심은 이 그림과 이 그림이 재현해내는 것 사이의 관계에 있지 않고, 현실에 대한 리얼리즘적 재현이 사실은 환상일 따름이란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실상 리얼리즘적 재현이란 개인의 능력을 뛰어넘은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도 질서정연하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복구해내려는 허구에 뿌리를 둔 환상이다. 호퍼의 후기작들은 순수한 현실에 대한 이와 같은 허구성을 꼬집는 반발의 의미를 간과하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 P63

눈으로 보는 바를 그리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기억 속에간직하고 있는 바를 그리는 것은 훨씬 더 훌륭한 일이다. 이는 상상의 힘이 기억과 결합함으로써 변모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화가는 자신을 구속하는 것, 즉 필연적인 것만을 다시 만들어낼 뿐이다. 기억과 창조성은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자연이 부과하는 억압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 P67

얼핏 리얼리즘에 충실한 듯이 보이는 호퍼의 회화는 복제가 가능한 현실을 단순히 재현해내지 않고, 언제나 순수 경험세계를 뛰어넘는 재구성을 지향한다. 호퍼가 자주 재현해내는 그림 속 그림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전반적 회화 작업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복제해내는 대신에 빈 공간을 창조해낸다. 그럼으로써 그의 작품은 현실에 대한 지각이나 지각하는 능력 자체에서 드러나는 단절을 부각시킨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호퍼의 작품은 침묵의 메타포로 설명되곤 한다. 말이란 말해지지 않은 부분과 침묵의 지배를 받는 부분이 있다. 호퍼의 회화도 공개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부분이 은밀하게 구심점을 이룬다. 전반적으로 호퍼의작품은, 분명한 의미로써 해석되는 회화적 상황을 측량할 길 없는 깊디깊은 심연속으로 밀어 넣는 독특함을 보여준다.
- P85

호퍼의 회화 작업은 표현적 형태를 추구하면서도 반드시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려 하지는 않는 독특한 시각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보여준다. 이렇게 볼 때 호퍼의 회화는 현실을 상상력과 기억의 힘을 빌려 변모시키고자 했던 에드가 드가와 궤를 같이 한다.
- P86

호퍼에게 리얼리즘이란단 한번도 눈에 보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냄을 의미한 적이 없었다. 호펴는 순수한 회화적 재현을 전혀 신뢰하지 않을뿐더러, 매 작품마다 복제와 상상력, 재현과 구성 사이에 즉각적인 상호연관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실과 결부된 여러 회화적 요소들과, 또한 이것들을 함께 엮어내는 시선의 현실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만이 호퍼의 회화가 제시하는 현실을 설명해준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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