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토로 여기 살아왔고, 여기서 죽으리라
나카무라 일성 지음, 정미영 옮김 / 품(도서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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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 코로나 이전 몇 번 다녀온 이 곳은 교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우치(우지)시에 있다. 녹차밭이 유명한 그 땅 어느 한 모퉁이에 교토 군전투기비행장공사 강제이주자들의 집촌이 웅크리고 있다.


20년 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어, 오사카에서 홀로 배낭을 짊어진 채 버스와 기차, 그리고 뙤약볕에 길을 걸어 그곳을 찾았다. 하늘을 맑았고 바람은 가벼웠지만 마을은 오래되었고 한적했으며 무거운 적막이 나그네 발걸음을 잡았다 놓았다 했다. 입구에서부터 이곳이 생존을 위한 투쟁을 울타리 삼아 살아가는 곳이라는 글귀를 경전삼아 마을로 들어선다. 낯선 단독자가 몸하나 배낭하나 메고 느닷없이 찾아온 방문이 그들에게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노로의 책임자는 온 몸으로 환영해주었다. 마을을 둘러보도록 안내해주는 손과 발에서 누군가는 이 마을 안의 이야기를 마을 밖으로 꺼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흐르는 듯했다.


그 짧은 방문 이후 나는 두 번 더 그 마을을 방문했다. 그 틈에 마을 어른들은 더 보이지 않고 그 마을의 지도자가 노로의 어른에서 젊은 지도자로 새롭게 바뀌었다. 나의 마지막 직접 방문은 이후 초등, 중학교 아이들과 '세계관학교'라는 제목으로 함께 다녀온 것이었다. 그 때 이 평범한 마을에서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솔깃했고, 그곳의 어른들은 이 고국의 어린 아이들이 이 마을을 찾아온 것에 대해 혈육이 방문한 것처럼 살갑게 대해주었다. 그 때 그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쉼없이 감사하다며 말해주었다. ‘누군가가 그들을 기억하고 찾아주었다는 것그것이 전부였다.


그 후로도 몇 번 영상과 이야기로 그 곳 소식을 간간히 전해 들었다. 거주지 강제 이전 문제와 보상 문제는 난항을 겪고 있었고, 우리 정부와 일본 기업 사이에 팽팽한 줄다리기도 일본쪽으로 유리하게 흐르고 있었다. 마을은 그대로이고, 역사도 그대로인대 그 당연한 책임을 감당해야 할 사람과 기업만 더 비겁한 방법을 찾고 있다. 나는 그것이 그 때나 지금이나 마음이 아프다. 아니 숱한 철거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며 잘 버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평화로움을 유지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슬픈 일이다. 어쩌면, 그 땅을 되팔고 사들여 자기 세계를 견고히 하려는 이들은 시간이 흘러 이 지역이 자연스럽게 도태되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우토로 관련 방송이 나오던 날, 함께 보던 아이도 슬프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물었다. ‘저 곳을 다녀왔는데 기억하냐?’. 아이는 기억이 날 듯, 아닐 듯 하단다. 너무 어릴 적 기억이라서, 그래도 이제 청년이 된 아이는 그 날 그 방문에서 보았던 마을 구석구석을 잊지 않고 있다. 방송에서야 숱한 구호들이 빠진 낭만의 장소만이 흐르고 있을 때 그 방송 너머 드러나지 않았던 슬픈 장소들을 아이는 잘 기억해주고 있었다. 뙤약볕에 마을 골목을 걸으며 마을 우물과 하수구, 공사장 식당의 스러진 지붕, , 굳게 닫힌 문 등이 마치 나의 집처럼 선명하다는 듯 잘 떠올려주었다. 오래전부터 철저히 망각의 장소이자, 고립의 장소를 살려내는 일은 기억이라는 것도 아이들을 통해 다시 깨달았다. 그래서 나도 그곳을 다녀온 후, 홀로 그 기억들도 찾아보고, 공부도 해 봤지만, 그것 이상으로 내가 해낼 수 있는 일들은 많지 않았다. 아쉬운 채로 그 기억만을 유지한 채 이제까지 흘러왔을 뿐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러운 것은 유투브같은 매체에 우토로라고 한번 치기만 하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세계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나의 망각의 강은 여지없이 깊고 길게 흐르고 있지만.

 

최근 반갑게 우토로 여기 살아왔고 여기서 죽으리라(글 나카무라 일성, 정미영 옮김. 도서출판 품, 2022)가 출판되었다. 표지부터 내가 걸었던 그 길, 그 옛 기억을 되살려준다. 그 속깊은 사정을 내가 다 알지 못해서 늘 아쉬웠지만, 그 마을을 책으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책 내용은 인터뷰를 기본으로 한 우토로마을의 역사다. 증언과 취재가 어우러져서 글은 고발문 같이 건조하지만, 이 마을에 얽힌 역사를 생각하자면, 이것도 매우 아름다운 고발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일교포 3세인 저자가 마을을 드나들며 애쓴 흔적들이 역력하다. 저자의 이런 말은 이 책에서 우토로를 다시 기억하는 이유가 명확해진다.

 

집필을 마치고 사람은 말로써’, 특히 먼저 떠난 이들에게서 받은 말로 만들어지는 존재임을 새삼 느낀다. 집필 작업은 그, 그녀들과 나의 한 갈무리를 의미한다. 그 헛헛함이 집필 지연의 원인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문자로 다시 태어난 증언들이 한 사람에게라도 더 많이 가 닿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나 자신도 남겨진 이로서 그 분들에게 받아든 말을 자아내 가고 싶다.”(314)

 

마지막 표현 자아내다는 안에 들어있는 것을 실을 뽑듯이 뽑아낸다는 뜻이니 채록하고 들었던 글들을 더욱 생생하게 수를 놓을 일을 다짐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모든 역사는 증언자와 채록하는 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말과 글의 조각보로 이어지는 것 같다. 우토로의 역사를 전혀 모르던 내가 그곳을 찾아가겠다는 마음이 든 것도 누군가의 글이었으니 말이다. 이 짧은 글도 나 역시 이 책에 담긴 우토로의 이야기가 조금 더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저자의 마음과 같기 때문이다. 덧붙인다면, 이런 책이 남겨지는 가장 큰 이유는 우토로 마을을 살리겠다는 뜻 너머 세계 어디서든 사람이 사람으로서, 생명이 생명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이유가 너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우토로 마을이야기에 담긴 우토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읽는다.

 

"너희들도 말이다. 더는 기죽지 말고, 고개 들고 앞을 보고 걸어. 살아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가게 돼. 우리도 쭈-욱 그렇게 살아왔어. 이제부터라니까, 안 그래?"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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