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부력 - 2021년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승우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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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가 이승우님의마음의 부력(문학사상, 2021)'보았다.' 그런데 나는 평소 그의 소설들을 일부러 찾아 읽는 것은 아니다. 그가 등단한 이래 몇 권 읽어보긴 했지만 아직도 낯설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가 '관념'을 현실처럼 써내기 때문이다. 사실, 현실을 관념처럼 써낸 글은 어느 정도 따라 읽어낼 수 있지만, 관념을 애써 현실로 바꾸어 매조지한 글은 아무래도 나의 독서 습관만으로는 잘 따라가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현실과 무관하다 싶으면 굳이 따라 읽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앞섰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써냈다는 평가를 받는 소설의 작가들은 이런 평가가 달갑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런 사소한 비평이라도 소설이 감당해야만 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써내는 것도 쉽지 않고 내 마음에 있는 어떤 뭉특한 감정을 살갑게 글로 입혀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것을 읽는 내가 괜한 이질감을 느낄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은 소설이라고 평가받을 때 가장 슬픈 듯하다. 이번 글도 처음에는 사실 그랬다.

 

2.

소설 마음의 부력은 계간문학과사회(33(1), 2020. 봄 호, 68-97.)에 게재되었던 단편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부력'이라는 말이 한참 마음에 걸렸다. 얼핏 보아도 '부력''뜨는 힘'이다. 물론 '뜨게 하는 힘'일지, '떠 있는 힘'일지를 판단하긴 쉽지 않다. 혹시나 뒤이어 덧붙여진 평론(소설가 정용준)을 따라 '중력에 반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뜨려는 힘'이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할지도 모른다.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이 '부력'을 자기 방식으로 잘 해석해낼 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지점에 안전하게 닿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소설이 끝났을 때 더는 그런 해석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력은 '뜨게 하든', '떠 있든', '뜨려 하든' 어떤 것이든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중력에 반하는 거센 저항이라한들 상관없었다. 소설에서 이 부력은 가라앉는 마음을 오히려 수직으로 끌어올려 주는 힘, 삶을 떠받쳐주는 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부력'을 위로 끌어올려주고 아래서 받쳐주는 힘', '아래로 끌어 당기려 힘을 거슬러 위로 향하게 하는 힘'으로 이해했. 무엇보다 이 부력은 몸을 뜨게 하는 힘이 아니라 마음을 그렇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낯설었으나 곧 의심없이 공감했다.

 

3.

나는 이승우님의 소설이 어떤 '관념'에 뿌리 깊은 터를 두고 있다고 생각을 오랫동안 해오고 있다. 그런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사실 그 관념이 무엇인가보다도 그것의 소재/재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었다. 생각해보면, 그의 관념은 '사랑'을 다루는 것 같다. 특히 신이 인간에게 베푸는 사랑이다. 따지고 보면, 그의 작품이 단지 소설 아닌 소설인 이유도 신이 베푼 사랑을 인간의 관점에서 쓰려는 의지가 강한 것에서 비롯된 듯하다. 이런 쓰기는 아마도 그 몸 속에 형질이 되어버린 '신학'과 그것이 육화된 '철학'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중에서도 히브리인들의 이야기는 그가 천착하는 소재 중 하나인 것 같다. 이 고대 글에 나타나는 신과 그가 선택한 사람들의 사랑 관계가 그의 관념을 바닥으로부터 지배함으로써 오늘날 자기 글로써 이 시대의 '인간'을 다독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작가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4.

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편애받으면서 편애하며 자기 존재감을 강화하는 것 같다. 동시에 누군가의 편애를 자신이 받아내는 것을 감당할 수 없으면서, 반대로 누군가를 편애해야 하는 짐을 지고 살아가는 존재인 것도 같다. 그러니 사람은 누구에 대해서도 심지어 자신에 대해서도 편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아는 존재이리라. 아쉽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면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다. 모두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받는 이는, 자기 때문에 누군가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사람을 사랑한다. 그 순간 마음에 이해할 수 없는 짐을 중력처럼 갖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한다. 그런데 사랑을 하는 이는 사랑을 받는 자의 부채감을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사랑받는 이가 사랑을 하는 이와는 전혀 다른 부채감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니 모든 사랑하는 이는 자신이 선택한 그 사랑으로 인해 사랑받는 이가 마음의 중력에 짓눌려 살아간다는 것을 한번쯤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야곱과 에서라면 사랑받는 야곱이 가진 짐이 그러하고, 야곱과 에서와 리브가라면, 야곱을 사랑해 준 어머니 리브가가 짊어진 부채가 그럴 것이다. 그들 사이를 가로질러 삶의 얼기설기 엮어 놓은 야훼 하나님이 에서에게 가진 사랑빚은 또 어떠할까. 그렇베 보면 소설 마음의 부력은 그런 사랑받는 이가 가진 채무 같은 중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은총이다. 작가는 작은 가족을 상정하고 그 단순한 관계 속에서도 강하게 일어날 수 있는 '사랑의 채무''그려낸다. 무엇보다, 그는 '사랑을 받는 자'가 갖고 살아가는 빚을 자유롭게 하고, '사랑을 베푸는 자'가 스스로 짊어진 채로 살아가는 채무도 아예 해방시키고 싶어한다.

 

5.

소설을 읽어가는 내내 먼저 삶을 마감한 나의 가족들이 떠오르는 것은 나이 탓일지 모른다. 등장인물들과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마치 내가 살아가는 어떤 이야기와 다르지 않고, 그들 사이에 일어난 에피소드가 나에게 일어났거나 일어날 어떤 사건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그 이야기 속에서 이제는 이 세계를 떠나 귀천한 나의 어머니가 나에게 가지고 있을 그 어떤 '부채감'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그도 행복했을 것이라는 생각보다도, 그가 나에게 모든 것으로 다 사랑했어도 아직도 사랑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마음을 가진 채 저 하늘로 돌아갔을 것 같은 생각이 마음을 휘저었다. 사랑받는 이가 가질 수 있는 부담이야 그렇다해도, 사랑하는 이가 스스로 짊어지고 살아갔던 그 사랑 부채를 나는 왜 한 번도 살며시 들어 올려주지 못했는가 말이다. 그 마음을 들어 올려 줄 힘을 조금만 베풀었더라도 그는 어쩌면 가장 자유로운 몸으로 이 세계를 떠나갈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6.

나는 소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일은 늘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관념 가득한 소설이 나의 현실이라는 것을 직감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비록 저자가 새겨 둔 관념이 슬픔 가득한 이야기였지만, 소설을 읽고 나니 오히려 그 슬픔이 나를 떠받치는 힘이라는 것을 알았다. 작가가 2021년 이상문학상(44)을 수상한 직후 남긴 글에서 나는 그 보이지 않는 힘이 위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의 부력>은 남긴 말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된 남은 사람들, 그 말들에 붙들려 상실감과 자책감에 시달리게 된 이들의 마음을 훑어본 소설입니다. 남은 사람들이 남긴 사람에게 늘어놓는 뒤늦은 변명 같은 소설입니다. 그러나 남긴 사람을 향한 이 변명들이 실은 남은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어찌 감출 수 있겠습니까?"(116)

"나는 되어진 일에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힘의 활동을 주목하는 성향의 사람입니다. '애쓰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애쓴 것이 반드시 이뤄지는 것도 아니라는 세상의 이치'를 모르지 않습니다. 애쓴 만큼 이루지 못하기도 하고, 애쓴 것보다 더 얻기도 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은 일하는 사람의 의무지만, 그 일의 성취는 일한 사람의 권리가 아닙니다."(116)

 

하여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변명 같이 늘어놓은 이야기에 오히려 감사한다. 내 마음에 남아있을 어떤 부채감을 수용하고 그것을 갚아내는 삶을 열심히 산다는 것이 내가 건강하게 살아지는 힘이며, 멋지게 사라지는 한 이유가 될 수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시인 이상을 생각하면 이 문학상이 더 진중하게 발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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