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열림원, 2021)-에 대한 독서나눔 후기

 

0.

지난 2, ..

산길을 오르는데 동행했던 한 분이 내려서는 길에서 거친 숨을 고르며 말을 꺼냈다.

제가 요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었습니다.”

"그럼 시간 내서 한번 독서 나눔 시간을 가질까요?"

그렇게 줌으로, 어느 주일 저녁에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이 글은 그 나눔과 나의 후기를 덧붙인 것이다.

...

 

려진 대로 이 책은 삶의 끝을 기다리는 한 사람과

그를 인터뷰하는 사람이 주고받은 말들을 담아둔 결과물이다.

책은 반나절이면 순삭할 정도로 간단하면서도 매끄럽게 읽힌다.

옆에서 지켜보면 더 잘 보이는 훈수가 그러하듯,

죽음을 앞둔 이가 남기는 말을, 아직 삶이

한참 남았을 젊은이가 듣고 있는 옆자리에서, 슬쩍슬쩍 듣는 즐거움이 제법 쏠쏠하다.

내 기억으로는

예전 그가 남긴 여러 말과 글들이 뒤섞여있다는 아쉬움보다는(최근, 지의 최전선, 80년 생각 등)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 날을 기다리는 노인의 태도가

모든 평범한 말을 특별하게 빛내주는 것같다.

그에게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는 모멘트의 그림자(‘마벳차라트,23:4,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누구도 피해갈 수는 없지만, 서둘러 기다릴 필요까지는 없다는 당당함도 보인다뿐만 아니라 저자는 그 죽음을 해찰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중하게 진지하게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다.  죽음의식memento mori을 삶을 견고하게 하는 토대로서 받아들이며 그는 죽음의 계곡을 전진한다. 


그렇게 봄이 오듯 시간이 왔고,

그는 고요한 중에 레테의 강을 슬며시 건넜다.

요즘같이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낫다'는 코헬렛의 말을 실감하는 시대를 겪지 않고 

돌아갔다는 점에서 그는 생각보다 더 행복한 사람일 것 같다.

그렇게 그의 삶은 돌아갔고,

우연히 나의 기억은 돌아왔다.


1.

그가 남긴 가장 산드러진 말은 신학은 시학(詩學)이다일 것 같다.

본래 나는 신학에 문외한이었다아니 신학 자체를 반기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나는 문학을 즐겼고 커가면서 수학과 원가계산에 몰입했다.

하지만, 압도하는 '우연'이 운명처럼 나를 신학으로 끌어갔다.

이유는 알 수 없고, 과정도 알 수 없다다행히 신학은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한편 글을 읽으면 서로 다른 삶을 두 편 떠올리게 자극했고,

고대 낯선 언어와 단어들은 늘 마주한 것 같은 생경한 의미를 되살려주었다.

나의 삶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적절한 비율로 블렌딩된 하우스커피처럼 달보드레했다.

신은 학문을 즐기지 않으셨겠지만그를 바라보는 인간에게는 ()’을 선물로 주셨다.

학자의 혀’(50:4)를 노래한 예언자도 있지만 나는 거대한 학문보다 작은 글 하나라도 디딤돌 삼아

저 높고 깊고 넓은 우주에 편만한 야훼의 옷자락 끝에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걸 배웠다.

도달할 수 없는 여정인줄 알았기에 신발을 벗은 채라도, 그 실체에 다가오도록 허락해 준

야훼의 세계를 숲길 걷듯 누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솔직히, 아직도, 나는 그를 알 수 없으며 내가 겪는 삶을 다 이해할 수 없었고,

심지어 동의할 수도 없으며

심각할 때는 그의 이미지가 허상처럼 불연듯 떠올라 크게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인식유한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인간으로 책과 삶에서 신학 언어를 선물처럼 누렸으니 다행이다.

신은 임의성으로 인간을 몰아붙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창조한 삶을 모든 이들이 유익하도록

신의 허상같은 품위를 내던지고 오늘도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그 신에게 한걸음 다가갈 방법으로 부족한 필력으로라도

몇몇 개념과 문장을 만들 수 있으니 다행이다.

그렇게 신학은 나의 즐거운 놀이터였다.

 

2.

신학 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어린 시절 뿌리내린 문학에서도 여전히 발을 빼지 않았다.

아니 그럴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틈나는 대로, 내키는 대로 한 두 문장 적어두는 것만으로는

문학의 심장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쓰지않으면 퇴색되듯 문학을 자주 내 삶의 변방으로 밀어두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다행이었다.

사라지지 않으면 어느 날 살아나는 법. 

나는 신학에 첫 이야기를 듣던 날로부터

나는 나의 신학이 문학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신학이 사색이라면 문학은 실천이었고, 실체였다.

모든 사고가 글로 표현될 수는 없지만

신학을 신학의 글로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강요받을 때,

나는 신학을 문학으로 결실하는 일은 너무 당연하다는 확신을 다시 가졌다.

저 고대의 글 히브리 성서, 타나크는 신을 향하면서

동시에 인간을 향한 문학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접한 신학'은 나에게 문학을 요구하지 않았다.

문학에 기웃하거나 받아들이는 일도 허용하지 않았다.

히브리 성서가 고대언어를 토대로 한 문학의 산물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있으면서도

여전히 문학에 기대지는 않으려는 자존심으로 나를 붙잡았다.

히브리 시를 시로 읽지 않고그 소설을 소설로 읽지 않으며,

가벼운 수필을 진중한 신앙고백으로만 읽는 일이 다반사였다.

히브리 성서에 쓰인 글들이 인간의 숨결같은

호흡과 리듬을 따라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감지하려는 의욕도 크지 않았다.

그것을 애써 설명해줄 마음도 없어보였다.

생각해보면 누구도 신학을 문학에 잇대어 두고 싶지는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문학은 신학과 다르고신학은 문학으로 평절될 것이 아니라고만 강변했다.

신학의 최종 산물이 문학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고집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어색한 변론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그것이 다행이다.

 

3.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확정했다.

내가 만난 '본래의 신학'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신학은 문학으로특히 시학으로 운율있는 산문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으로 정의내렸다.

지금 생각해도 나름 잘한 일이다.

신학은 문학으로 퇴행한 것이 아니라인간에게 걸맞는 옷을 입고 전진한 것이다.

신학이 신을 바라보기 위해서 존재한다면당연히 신이 이 세계를 항시 바라보고 있다는 걸 지나쳐서는 안될 것이다. 

신이 성육신하듯 신학이 세계에 공존하려면 그에 걸맞은 옷을 입어야 마땅할테니,

문학이야말로 그 적절한 옷이다.

나에게 이런 확신을 확정하도록 결정적으로 채근한 전달자가 

바로 저 한국판 마지막 수업의 주인공, 바로 그다.

삶은 알 수 없는 곳에서 운명같은 기억이 떠오를진대,

나의 어린 시절, 나는 저 패기넘친 문학평론가의 현학적 평론을 기회 되는 대로 조금씩 읽어두었다.

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어도

나의 삶은 나도 모르는 어느 한 시간,

나의 삶 어딘가에 세워진 저 이정표같은 글들에 터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가 소설가 이상의 시와 소설에서 상상력을 채굴하고 윤동주의 시들에서 시공간으로 뻗어가는

창조성을 발굴하고시대의 우상들을 향해 벽력같은 문력을 날렸던 것은 그저 스무살의 젊은 치기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현실에 갇혀 살아갈 위험이 다분한 나에게는 인간의 깊은 지적 세계를 향해

한걸음 내디딜 수 있는 디딤돌이었다.

나는 그의 평론을 호독(好讀)했다그가 식상할 정도로 반복했던 창조와 상상이라는 말을 되뇌였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은 그가 자기 문학에서 신학으로 외연을 넓힌 것이었다.

비록 노년에 주어진 삶이었다하지만 오히려 다행스럽다.

특별하고 개인적인 자기 실존 경험이었지만 사람이 바라보는 신에 대한 긍정적 의구심은

언제나 삶의 머리가 아니라 뿌리를 흔들 때 진실한 것이 되는 법,

그는 간증을 위한 것 아닌가 할만한 세례를 받았고

회심의 진위에 대한 의심도 감수해야했지만,

머뭇하지않고 과감히 신학을 문학으로 해체했다

세계 속에 머물면서도 골방에 들어가 빗장잠그고

세계를 논하는 저 신학을 문학으로 열어 다시 세계로 꺼내주었다.

노인이 자기 세계관을 변화시키기란

세계가 반대로 도는 것만큼이나 쉽지않을 것이다.


4.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신학神學에서 받침 하나만 빼면 시학 詩學이 되지 않습니까.

시를 읽듯이 소설을 읽듯이 성경을 읽으면 어렵던 말들이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은 사람이나

다 같이 읽을 수 있는 성경,

우리가 쓰러졌다 일어서는 법과 미움을 넘어서는 사랑의 수사법과

등 돌린 사람을 포옹하는 너그러운 몸짓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내일의 식탁에는 우리의 배를 불리는 밥

만이 아니라 빵만이 아니라

우리의 눈과 마음까지 환하게 밝혀줄

참으로 눈부신 햇살이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열림원, 2012),11.

 

그가 빼버리면 좋겠다는 은 두 가지다.

누구나 읽을 수 없는 성경’, ‘우리 배를 불리는 밥이나 빵’.

그것을 빼고 나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성경이며,

눈과 마음까지 환하게 밝혀주는

햇살로 가득 찬 식탁이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고, 이 말은 나의 확신을 확정해준다.

 

5.

신학을 시학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당연히 상상력이다. 신학을 운문있는 산문,

시학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신학적 상상력과 문학적 창의력이 조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학적 상상력이 위 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라면,

문학적 상상력은 옆으로 오락가락 하는 모양이다.

마치 야곱이 꿈속에서 오르내렸던 사다리같은 것이

신학적 상상력이라면,

야곱이 벧엘에서 길을 걷기 시작해 광야를 지나갔던

그 걸음은 문학적 상상력이라 할만하다.

이런 상상력 아래서 신학과 문학은

수직과 수평을 그어 벡타로 이행하며

평면은 공간으로 전환될 것이다.

신학이 신을 바라보는 한 지점을 찾기 위한 분투라면,

문학은 그 신학이 찍어준 좌표에

의미있는 토포스를 창발하는 역투다.

신학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현실화라고 한다면,

문학은 그 현실화를 가능하도록

신에게 부여받은 선물같은 도구다.

결국, 신학적 상상력이 아니라면

저 야훼의 실체를 떠올릴 수 없으니

그 떠올린 야훼의 실체를 손에 잡히게

만들어내는 것은

고대로부터 켭켭이 쌓여온 문학적 상상력이다.

신학이 야훼를 향해 들어가는 입구라면,

문학은 야훼로부터 쏟아지는 은총을 세계로 운반하는 출구다.

신학은 필연적으로 문학에 잇대야한다.

그럴 필요 없는 것이 당연하고,

그래야 할 근거없어 말꺼내마자

토론없이 기각되기 십상이라지만,

나는 이것을 한결같이 몽글한 신념으로

몸 속에 다지고 있다.

 

6.

신학하는 이는 매일 글쓰기를 연습해야 한다.

그 연습의 궁극적 목적은 신의 성육신을 돕기 위해서다.

신은 죽지 않는다. 다만 숨어있을 뿐이다.

글은 스스로 자기 몸을 은폐한 신을 당대에 불러내기 위해 쓰여진다.

돌이켜보면, 운율있는 산문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전매특허같은 글쓰기였다.

그들은 매일 아침의 야훼를 묵상하고,

밤의 야훼를 상상하며,

한 낮의 야훼를 글로 그려 남겼다.

글 위에 글을 얹었고,

문장 앞에 문장을, 문장 뒤에 문장을 덧이었다.

댓구와 평행과 말놀이, 반복은 물론이고

심지어 의도적 오류마저도

그들이 즐겨쓰던 기법이었다.

논지와 논거와 논리적 구조를

흐릿한 구성으로 덧씌워버리기도 했다.

한 번에 모든 글쓰기를 끝내지 않았다.

글을 독점하던 사람들의 시대도 있었으나,

그 때도 글을 쓰는 사람은 다른 이를 위한 글을 만들어냈다.

모든 글은 읽혀지기 위해 쓰였고,

낭독되고 암송되고 재현되는데

기여하도록 쓰여졌다.

기억을 위한 암송은 노래여야 했고, 시여만했다.

리듬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문학기법이었다.

글에 리듬이 들어가야만했던 필수불가결한 상황이었다.

뿐만아니다.

써놓은 글을 바로 수정하거나 첨삭할 수 없고,

단어도 제한적이었으니,

한 글자, 한 글자를 문장에 메꿔넣듯이

천천히 채워나갔다.

잘못된 표현은 누구나 수정할 수 있었으나

수정의 흔적을 남겨두어야했다.

글자 위에 글자 하나를 덧붙였다.

글자의 총 수를 헤아려두었으며,

어느 글자가 이 책의 한 가운데인지 확인가능했다.

그렇게 글은 기억으로 남아 전수되었으며,

그 글 속에 담긴 야훼의 모습은 퇴색되거나 왜곡되지 않게,

온새미로 있는 그대로 전달되었다.

이런 결실은

매일 글쓰기를 자기 책임으로 알고 지냈던

이들 덕분이다.

그들 덕분에 나는 지금 어디나 계시는 야훼의 흔적을 손에 만지듯 경험하고 있다.

 

7.

이어령 교수의 말을 글로 옮긴 책을 읽고

어느 주일 오후 책나눔 시간을 가졌다.

그 자신도 반성하며 회고했지만 그의 글은 태생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기에게로 굽어진 채 쓰여진 것이었다.

그의 글과 말의 세계 속에 조금이라도 겹쳐진 삶을 살았던 나는,

이제 그가 희구했던 문학으로서 신학,

시학으로서 신학이

더 넓은 세계로, 세계공동체로 확장될 날이 오기를 다시 희망한다.

세계는 연대해야한다.

세계는 지금 실시간 시대다.

그의 말대로 지난 생각(thought)이 아니라

지금 생각(thinking)이 유효한 시대다.

정치도, 사회도, 문화도 더 이상 과거로 회귀할 수 없어야 한다.

과거는 아름다울 수 있지만, 결코 돌아가지 않아야 할 세계이다.

정치도, 사회도, 문화도 더 이상 미래를 대출할 수 없어야 한다.

미래는 희망찰 수 있지만,

결코 먼저 나아갈 수 없어야 할 세계이다.

어느 시대나 누구에게나

세계는, '현재' 아름다운 세계여야 한다.

그래야 지난 과거를 아름답게 환송하고

다가올 미래를 아름답게 환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나는,

또 나를 위해 지금,

나아가 나의 아이들을 위해

어느 날 한 줄이라도 읽을 수 있는 글을 남긴다

내가 무엇을 이뤘는지,

어떤 사명을 완수했는지가 아니라

내가 여기에 이렇게 해찰한 듯 살아냈다는 것을

남기는 안추르한 흔적으로 말이다.


"내일의 식탁에는 우리의 배를 불리는 밥만이 아니라 빵만이 아니라
우리의 눈과 마음까지 환하게 밝혀줄 참으로 눈부신 햇살이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열림원, 2012),1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