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굴의 시대 - 침몰하는 대한민국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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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굴의 시대』(박노자, 한겨레출판, 2014.)

- 침몰하는 대한민국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1.

『비굴의 시대』는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가 정의한 21세기 한국사회의 단면이다. 그가 한 일간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서 2014년 출판했다. 제목이 다소 직설적이다. 부제는 '침몰하는 대한민국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이 제목만 보더라도 그는 ‘비굴의 시대’를 규정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마땅한 대안을 찾아보려는 의지를 내비쳤다.


2.이 책을 다시 꺼내본다. 나는 그가 지난 날 우리 시대의 비굴함을 어떤 유형으로 분석했는지 또 확인할 마음은 없다.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 '비굴'해지는 법을 더욱 터득하기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를 제대로 관통할 수 없다는 ‘불안’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음을 실감해왔다. 솔직히 나는 사회가 비굴하다는 것보다 나 자신이 오히려 비굴함에 더 익숙해져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러니 비굴의 시대는 우리의 문제이기에 앞서 나의 문제다.


3.

그는 본래 왼쪽에 서서 세계를 본다. 물론 그는 우리 시대의 비굴함이 '오른쪽'에서 부터 기인했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그 뿐만은 아니다. 동시에 엉성한 왼쪽에서도 초래되었다는 평가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가 주시하는 바는 우리 사회 겉으로 드러나는 숱한 현상들이 사실은 오랫동안 누적되고 마침내 길을 잃어버린 것들이라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똑바로 서 있어도 삶이 왜곡되고, 편향되었음을 진단한다. 불편하다

.

4.

나는 그의 책 4부를 관심 있게 본다. <아득하지만 가야 할 좌파의 길>이라는 제안이다.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그의 대안이기도 하다. 그는 앞뒤도 고려하고, 좌우도 살피면서 시대를 위한 대안적 '실천이념'을 제안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인간'의 '권리'가 정당하게 회복되는 사회적 이념 실현에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아주 쉽게 망각하는 사회이념이기도 하다. 그는 이것이 재생되고 재활되기를 제안한다.


5.

그가 제시하는 대안을 이념적 명명으로 하자면 '사회주의'다. 아직도 어감이 유쾌하진 않다하겠지만, 이 용어는 본래 ‘타인과의 관계’를 우선하자는 이념이었다. 그가 주장하고 싶은 바는 어정쩡한 좌파의 우유부단함과 겉만 요란한 피상적 개혁에 뜻밖에도 ‘인간성’이 소실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런 위기에 대해 인간 본연의 삶의 자리를 복구시키고 그 권리를 보전하는 대안적 이념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심지어 그가 주장하는 '사회적 이념이 '인생이다'라고까지 말한다. 그런 맥락을 따라 그는 인생의 세 층위를 이렇게 말한다.


"기본적 층위는 생물학적로 생존하는 것이다. 그 다음 층위는 기본적인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마지막 층위는 관계나 창조적 노동이나 어떤 애타적 실천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다." (303/304쪽)


그는 '사회적 이념'의 목적지도 설정한다. 바로 '애타적 실천'이다. 핵심은 온전한 '개인'의 확립이다. 이는 공동체의 단위로서 모든 애타적 실천의 출발이다. 저항과 혁명은 바로 이 견고한 '개인'에게서 발원한다.


6.

솔직히 나는 그의 글의 흐름을 견실하게 따라가는 편은 아니다. 그의 한국사회 분석은 선명하고, 정확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사회적 이념’이라는 틀에 경도된 것은 아닌지 의심을 갖는다. 문제 분석은 한국의 속살을 냉철하게 드러냈지만, 대립되는 이념사회인 우리에게는 그 대안이 아직 걸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7.

박노자의 분석이 아니더라도 21세기, 우리를 둘러싼 사회 환경은 더욱 푸석해지고 있다. 그가 비판한 것처럼 우리가 가장 힘겹게 직면하는 문제는 '애타적 삶'이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저자가 단호하게 종교적 삶마저도 제 길을 잃어버렸다고 말한 것은 지금도 정확하다. 종교는 특히 '타인을 배려하는 삶'이 사라지고 극단적인 '자기사랑'으로 왜곡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분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땅은 이 왜곡된 상황을 화석화하면서 정치화하여 이용하고 있다. 어느 분야든 ‘자기 의도를 감추고 타인을 이용하려는 웃음에 절어있는 사람’들이 우리 앞을 자유롭게 거닐고 있다. 이런 시대를 우리는 힘을 내어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너'나 '그들의'의 문제는 아니다. '나' 자신에게 잠복되어 나를 위협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나'도 언제든 나의 생존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정치화될 수 있는 변형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8.

전염병이 끝없이 진화하며 세계를 맴돌고 있다. 언제 끝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해결을 위해 노력하자면 여전히 장담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겪는 문제가 이 판데믹만은 아니다. 국가의 책임이 감지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묻혀가는 숱한 국가사고 이야기들이 여전히 있다. 이런 현상들은 더욱 '악의적으로 정치화'되어가고 있다. 가볍게 생각하더라도 사회가 발전해도 아직 우리 사회는 진지하게 '타인을 품어내는 사랑'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굽어진 실존들이 너무 많다.


9.

박노자교수가 '비굴의 시대'라고 명명한 것은 옳다. 물론 그가 '인간화'에 집중한 사회적 이념을 낯설게 여기는 경향이 많다고 해도 나는 그가 말하는 ‘인간의 시대’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나는 그가 말한 '사회적 인간화'를 ‘관계적 인간화’라는 말로 풀어 이해하고 싶다. ‘신이 창조한 인간’이라는 신앙 언어를 빌려서라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피조된 인간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 사회 속에 이미 퇴색해버린(?) 이 인간이해를 이 굽어진 현실에서 재활시키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책은 오늘 다시 나를 채근한다. 무엇보다, 나의 신앙을 경각시킨다. 나는 나에게 묻는다.


“'이 세계의 굽어짐을 공의와 정의의 ‘야훼’(YHWH)가 허용하고, 야훼 자신이 그 징계와 치유를 모른 척 아직도 유예하며 방관하고 있다면, 나는 지금 야훼의 행동의 의도를 어떻게 따라가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야훼의 카이로스는 지금 어디쯤에 있을까?”


서재 밖에서 공기에 흠칫하는 시간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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