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원고 - 논픽션 대가 존 맥피, 글쓰기의 과정에 대하여
존 맥피 지음, 유나영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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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무한책임이 있다. 여기서 ‘글’은 논픽션(non-fiction)이다. 이 글은 적확한 사실과 주밀한 관찰에 근거하여 자기 주장이나 세계관을 정치하게 구성하는 문학이다. 따라서 ‘글쓰기’는 작가가 지난한 고통 끝에 잉태한 생명이다.”


1.

『네 번째 원고』(Draft No.4 ) (번역.유나영)존 맥피(1931~)의 2017년 연속에세이모음집, 모두 여덟 편에 걸쳐 ‘글쓰기 과정’을 소개했다. 샘 앤더슨에 따르면 이 글은 본래 ‘1975년 이래 프린스턴에서 강의한 강연록’(16쪽)에 근거하고 있다. 말을 글로 다시 옮긴 것이다. 한편, 번역 제목 『네 번째 원고』는 ‘초고를 수정하고 수정해서 네 번째 단계에 이른 글’이라는 뜻으로 보인다. 한 편의 초고가 세상에 나올 글로 완성되는 마지막 과정이다. 동시에 이 제목은 이 글쓰기 과정에서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계를 함축한다.


2.

국내에 책이 출판된 이후 작가에 대해서 이미 충분히 알려진 듯 하다. 저자는 미국 유력 신문사와 잡지에서 기자와 전문칼럼니스트로서 돋보이는 경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그가 평생 몰두했던 글쓰기 분야인 ‘논픽션’을 염두에 둔다. 기사나 언론 등에 실릴 기사나 칼럼을 쓰는 매뉴얼같은 글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지 글쓰기에 필요한 기술을 일러주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그의 글쓰기를 ‘문학적 논픽션’이라고 평가한다. 이는 그가 게재한 기사와 칼럼이 ‘사실(fact)’과 ‘문학적 창의성’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려는 구조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반적인 소설이나 시, 또는 개인수필과 같은 글쓰기를 직접 논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글쓰기에 대한 일반적인 지침은 물론이고 우리 시대에 글쓰기의 의의에 대한 지나칠 수 없는 이념을 담고 있다.


3.

이 책은 모두 여덟 장에 걸친 저자의 글과 프롤로그 성격의 기고글(Sam Anderson, The Mind 0f John McPhee:A deeply private writer reveals his obsessive process. The New York Times Magazine, September 28, 2017.로 구성되었다. 특히 이 글은 서론 격이다. ‘존 맥피의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판에 유일하게 실린 이 기고문은 존 맥피의 글쓰기 속에 담긴 어떤 정신을 추적한다. 그 중 앤더슨은 ‘보존’을 언급한다. 좀 추상적이긴 하지만, 이 말은 ‘대립되는 삶의 단면’을 조화롭게 담아서 삶을 전진시키켜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의 글은 ‘삶을 보존’하려는 ‘연대기적 의미(과거-현재-미래)’를 전제하면서 그 글이 우리 시대에 갖는 의의(공시적인 의미로서 현재-과거-현재-미래)를 실현하는 글쓰기를 시도한다.


“맥피의 중요한 테마는 언제나 보존conservation이었다. 여기서의 보존이란 이 단어가 띠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보존, 즉 있음과 없음, 머무름과 떠남, 존재와 무 사이의 끝없는 긴장을 뜻한다. 물론 이것은 *지는 싸움이다.”(29쪽)(*‘지는 싸움’이란 표현은 아무래도 ‘져주는 싸움’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4

‘보존’이라는 주제는 맥피가 제안하는 글쓰기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에 언급된 여덟 개 주제는 맥피가 제안하는 글쓰기의 실제 과정이다. 비록 주관적인 관점이겠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글의 기획되고 완성된다는 점에서 보자면, 간과할 수 없는 적확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모든 글이 이런 과정을 기계적으로 따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중에서 특히 두 번째 장, ‘구조’와 여덟 번째 장, ‘생략’은 어떤 글쓰기에도 적용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우선 ‘구조’는 글의 뼈대이자, 글이 흘러가는 길이다. 독자들이 쉽게 눈치채지 못하게 하면서도 작가 스스로는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할 단계다. 특히 논픽션이 ‘문학’의 특징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보자면 이 ‘구조’는 핵심이다. ‘글을 완성시키기 위한 전략’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특히 이 구조에서 힘써야 할 부분은 ‘도입구’다.


“그러면, 도입부란 무엇인가? 우선 도입부는 글을 쓰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그리고 끔찍하게 형편없는 도입부를 쓰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104쪽)


도입부와 관련해서 맥피는 한 가지 재밌는 제안을 한다. ‘마중물’같은 도입부를 써보고 싶으면 ‘손으로 써본다’는 것이다. 생각을 자극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글은 어떻게 마감하는가?’라는 질문이 당연히 든다. 그는 답한다. ‘작가의 느낌이다.’


“사람들은 이게 끝이라는 걸 어떻게 아느냐고 자주 묻곤 한다. 언제 끝마무리에 다다랐는지뿐만 아니라, 초고를 쓰고 다시 수정하고 한 단어를 다른 단어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이제 더 이상 해 볼 게 없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언제가 끝일까? 그냥 안다.”(120쪽)


도입와 결론에 대한 확실한 구상이 끝났다면, 이제 그 사이를 정확하고 성실하게 배열한다.


5.

저자가 이 책에서 마지막으로 언급한 내용은 어느 글쓰기에서나 상당히 중요한 전략이다. 바로 ‘생략’이다. 글을 덜어내는 것이다. 동시에 단어를 교체하거나 함축, 요약, 개념화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선별이다. 글을 시작만하려 해도 언어에 존재하는 100만여 개의 단어 중에 한 단어, 딱 한 단어를 택해야 한다. 이제 앞으로 나아간다. 다음 단어로는 뭐가 올까?

(중략)

“글 한편의 분량은-더도 덜도 말고-그 글에서 택한 재료로 뒷받침할 수 있는 만큼이 적당하다.”(291쪽)


사실, 네 번째 초고에 이르는 과정은 결국 이 ‘덜어냄’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의도적인 여백 만들기라 할 수 있다. 이로써 저자는 “창의적인 독자”를 자극하는 셈이다. 


“창의적인 작가는 장과 장 사이, 절과 절 사이에 여백을 남긴다. 창의적인 독자는 이 여벽에 나타난, 적히지 않은 생각을 침묵 속에서 명료화한다. 이 경험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라.”(297쪽)


6.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글쓰기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공공성’이다. 비록 ‘논픽션’ 분야에 관한 글이지만, 이런 질문은 모든 글쓰기에서 유효할 것이다. ‘글쓰기’는 두 가지 개념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글’이다. 다른 하나는 ‘쓰기’다. 이 책에 따르면, ‘글’은 작가가 자기 몸으로 살아온 몸안과 밖의 경험을 실감나게 표현해내는 도구다. 그런 점에서 ‘쓰기’는 그 도구로서 우리가 지향하는 공공성을 자신과 타인에게 남겨두려는 아비투스(Habitus)다. 나는 이런 ‘글쓰기’와 관련해 맥피가 제안하는 두 가지 사실을 새겨둔다. 하나는 ‘진지한, 솔직함’이다. 다른 하나는 ‘친절한, 상세함’이다.

또한 나는 이 점에서 문학으로 논픽션이 가진 ‘공공성(公共性)’을 생각한다. ‘기사’나 ‘칼럼’이라는 글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맥피의 제안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가짜뉴스를 아무렇지 않게 써내는 글도 적지 않은 시대다. 그런 점에서 『네 번째 원고』는 공공을 위한 글을 써내기 위해서 더욱 절실하다. 글을 쓰는 이들이, 사실에 근거하고, 구도를 명확하게 하며, ‘참조틀’(196쪽)을 정직하게하고, 결론을 독자에게 남겨두는 여유가 있다면 좋을 것이다.


7.

이 책에서 유의할 것이 있다. 모든 예화를 소화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미국 사회 논픽션 기자가 겪은 경험을 토대로 한 강연이기 때문이다. 그가 소재로 삼은 에피소드들은 읽는 대로 곧바로 동감하기 쉽지 않다. 굳이 이런 예화들을 정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모국어 아닌 영어권 글들이 대체로 두괄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각 문단에서 맨 첫 문장에 특히 유념해도 좋겠다. 글 전체가 낯설지 않을 것 같다. 소개해 준 에피소드들은 과감히 ‘생략’하는 것도 묘미다.


이렇게 쓰고 나니 한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친애하는 조엘, 자네가 이를테면 회색 곰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치자. 그런데 한마디도 떠오르지 않는다.(중략) 벽에 부딪혔다. 막막하다. 가망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할가? 그럴 땐, ‘사랑하는 엄마에게’라고 써라. 엄마한테 글을 쓰다가 막혔다고, 막막하다고, 나는 무능하고 가망 없는 인간이라고 써라.(후략)”(257쪽)


문득, 이런 “‘글쓰기’는 마치 생명을 잉태하는 듯한 수고다.”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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