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령,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푸른역사, 2019/2020)


1.

어느 덧 넉 달이 지났다. 순식간이다. 무의미한 날이 있을까마는 요즘은 특히 그렇다. 뭘 바꾸기에는 짧다하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적당한 기간이었다. 삶의 방식 중 하나를 돌이켰다.


2019년 12월31일. 새해를 맞이하는 시간. 나는 올해 슬로건을 정했다. ‘오클라(ôkhlâ, 음식 그 너머)’. 나는 이렇게 덧붙였다.


“‘오클라(남성명사 '오켈'의 여성형)’. 고대 히브리어에서 음식을 포괄하는 단어. 이 여성형은 단지 음식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와 관련되어 있는 삶의 공유, 음식을 토대로 파생해서 펼쳐지는 삶의 질서를 포괄한다. 음식은 끼니를 메우는 일을 넘어 공적(公的)의의를 담고 있다.”


‘음식’과 관련한 공적 삶을 올해 내 삶의 주제로 삼았다. 바로 그 상황이 나에게 오기 전까지는 그저 평범한 뜻이었다.


2.

올해 1월7일. 정기건강검진을 받았다. 2년 전, 악성빈혈로 총체적인 검사를 받고, 치료받았던 적이 있었다. 다행히 1년 만에 치료를 잘 마쳤다. 몸이 회복된 것이다. 앞으로 정기건강검진을 통해 잘 관리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로부터 다시 1년이 지났다.


이른 아침, 미리 준비된 건강검진 문진표를 제출하고 몇 가지 검사를 받았다. 원래 오늘 내가 중점을 두는 검사는 위내시경이었다. 사전 혈압검사가 필요했다. 긴장할 필요 없이 가볍게 시작된 검사는 예상치 못하게 서너 번을 반복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고개를 연신 갸우뚱했다. 조금 간격을 두고 다른 검사를 먼저 하고 다시 혈압검사를 시도했다. 결국 위내시경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취소했다. 수축기 혈압은 물론이고 이완기 혈압도 경계를 가볍게 지나쳤다. 겨우겨우 기록표에는 조금 안정된(?) 상태를 기록했다. 여전히 위험영역이다. 혈당검사도 안 좋았다. 공복혈당을 포함해서 콜레스테롤, 중성지방도 악성이다. 그동안 걷는 운동을 자주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운동부족이 원인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런 악성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건? 바로 ‘먹는 것’이었다. 이 날 검사는 나에게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를 숫자로 직접 묻고 있었다. 의료진은 그 숫자를 해석하여 말로 전달해주었다. 심각하진 않지만, ‘위험하다’는 것이다. 원한다면 바로 약을 먹거나 엄중한 치료를 해도 좋다는 의견이었다. 나는 평소 생각대로 ‘당분간 약을 먹지 않으려고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혈압으로 위내시경검사가 취소되는 특이한 경우라는 걱정스런 말씀을 뒤로하고를 뒤로하고 집으로 되돌아왔다. 의료 일에 관여하는 한 분이 이 소식을 듣고 이렇게 격려 겸 걱정 문자를 보내주셨다.


“검진의 의의는 질병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미래 계획에 지침을 드리는 것이랍니다.”(J로부터)


병원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나였지만, ‘건강을 위한 미래 계획’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한 번도 고려하지 않은 지침이었다. 그래도 이제 행동해야했다. 운동은 아니었으니 남은 것은 하나다. ‘먹는 것’이다. ‘오클라’는 결국 의도하진 않았다해도 나를 향한 삶의 지침이었다. 다만 ‘음식’만은 아니었다는 것도 알았다. ‘오클라는 음식 그 너머’ 세계를 보게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내가 그동안 ‘먹어왔던 것’, ‘먹는 방식’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가져야만했다. 그렇게 나는 약이 아니라 내 ‘생활방식 변화’를 선택했다.


3.

나는 ‘음식’에 대해 철저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렇게 ‘오클라’는 음식과 관련하여 내 몸 안팎에 걸친 삶의 방식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의학 검진에 따른 불가피한 조처였다. 고혈압과 당뇨에 대한 당연한 처방이다. 나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총체로서 몸’을 질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내 삶의 과제다.


지난 140일 동안, 나는 두 가지를 유의했다. 먼저 그동안 진행해 온 운동을 계속했다. 일단 특정한 날 집중했던 과도한 운동을 지양했다. 모든 날에 적절하게 몸을 쓰며 가벼운 운동을 하며 집중된 운동과 병행했다. 걷는 일과 등산을 계속했고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자전거를 탄다. 다음으로 ‘먹는 것’이었다. 하루 세 끼, 모든 식사를 직접 만들어 먹었다. 처음 세 달은 거의 채소와 잡곡밥을 꼬박꼬박 챙겼다. 물론 가족들에게 불편하지 않도록 내 손으로 직접 했다. 동시에 먹지 않을 것을 잘 지켰다. 라면, 쿠키, 탄산, 흰밥, 떡과 빵, 매식 등. 간식도 철저히 줄였다. 수고한 결실인지, 혈압은 제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 혈압계, 혈당계를 직접 사서 손에 들려주며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봐주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혈당은 일부러 확인하지 않고 있다. 그 선물은 단지 기계를 넘어 내 삶을 경각시키는 은총이었다. 체중은 자연스럽게 15kg가 감량됐다. 외모는 핼쓱해 보여 가족들은 걱정하기도 하지만, 몸은 경쾌해졌다. 그렇게 숫자는 힘이 있다. 나를 경각시킨 것은 숫자였고, 나를 안심하게 하는 것도 숫자이다. 나는 이제 음식을 그리 걱정할 상태는 아니지만, 다시 예전 음식 먹는 법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는 않는다. 각해 보면 ‘오클라(음식, 그 너머)’는 ‘끼니, 허기’를 채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굳이 장엄한 각오로 말할 것은 아니다. 그보다 나는 이 시간을 보내며, 음식의 속, 인간에 비한다면 그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알아버렸다. 음식에 대한 나의 특별한 행동은 혼자 조용히 잘 지켜나가면 될 일이다. 그 음식 너머 세계는 상상 이상이다. 음식 하나하나에는 기억해 둘만한 삶의 이야기가 있다. 자기 삶이 각인된 것이다. 그것은 적어도 삶에 새겨진 ‘관계’의 흔적이기도 하다. 가볍게 말하듯이 음식은 무엇을 먹었는지 보다 ‘누구와’ 어떤 이야기로 그 음식을 나눴는지를 필연적으로 기억하게 한다. 그것은 생각보다 무거운 은총이다.


4.

나는 이 일이 발병한 후 가족들에게 말했다. ‘이 일은 내가 해결해 보겠다’고. 당찬 결심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지만, 그게 나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우선 지난 시간, 나는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예상외로 다행스러운 일도 있었다. 고혈압과 당뇨와 관련되어 먹는 문제에 고통 받는 이들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사실, 내 생애에 그것은 그들의 문제였다. 이젠 그들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그들 중 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내 삶에서 일단 먹을 메뉴가 없었다. 나로서는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문제다. 다 잘 먹고, 가리지 않았으며, 누구와도 어떤 메뉴로도 식사를 즐겼다. 하지만 지금, 나는 한 끼를 채우기 위해서는 ‘검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내가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자주 해 본 적이 없다. 설령 할 수 있다해도 과연 제대로 되었는지 검증할 수도 없다. 건강식이라 할 수도 없다. 문득 이런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누가 만들어주지 않으면 식사할 수 없다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이런 삶의 방식이라면 혼자 사는 이들에게 이 질병은 치유불가다. 질병은 다시 질병을 낳는다. 고치려는 의지가 있다해도 고칠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 내가 그들을 조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그들이 한 끼 음식을 누군가로부터 잘 대접받기를 고대한다.



5.

가끔 음식처럼 김서령의 글을 꺼내 읽는다. 아무 이야기나 펼쳐서 가볍게 훑는다. 눈으로 읽지만 마음에 그려진다. 불현듯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오른다. ‘음식, 그 너머’로 자연스럽게 여행을 떠난다. 기억에 남겨진 음식은 사람과 잇대어 있다. 맛과 함께 친밀한 이야기가 살아난다. 이 책 속에서 그의 글은 늘 맛이 좋다.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단 속엔 내 앞에 차려졌던 그 음식들도 담겨있다. 자연스럽게 그 음식들에서 내 삶에 스며들었던 거룩한 사랑이 다시 나를 다독인다. 


“외로움에 사무쳐봐야 안다, 배추적 깊은 맛을.”(9쪽)



가난하고 순박했던 시절 사람들은 돌멩이나 바람결처럼 단순하고 어질었다고 말하면 거짓이겠지만 때로 그 시절의 덤덤하고 구수한 사람들이 몹시 그리울 때가 있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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