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는 ‘음식’에 대해 철저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렇게 ‘오클라’는 음식과 관련하여 내 몸 안팎에 걸친 삶의 방식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의학 검진에 따른 불가피한 조처였다. 고혈압과 당뇨에 대한 당연한 처방이다. 나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총체로서 몸’을 질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내 삶의 과제다.
지난 140일 동안, 나는 두 가지를 유의했다. 먼저 그동안 진행해 온 운동을 계속했다. 일단 특정한 날 집중했던 과도한 운동을 지양했다. 모든 날에 적절하게 몸을 쓰며 가벼운 운동을 하며 집중된 운동과 병행했다. 걷는 일과 등산을 계속했고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자전거를 탄다. 다음으로 ‘먹는 것’이었다. 하루 세 끼, 모든 식사를 직접 만들어 먹었다. 처음 세 달은 거의 채소와 잡곡밥을 꼬박꼬박 챙겼다. 물론 가족들에게 불편하지 않도록 내 손으로 직접 했다. 동시에 먹지 않을 것을 잘 지켰다. 라면, 쿠키, 탄산, 흰밥, 떡과 빵, 매식 등. 간식도 철저히 줄였다. 수고한 결실인지, 혈압은 제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 혈압계, 혈당계를 직접 사서 손에 들려주며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봐주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혈당은 일부러 확인하지 않고 있다. 그 선물은 단지 기계를 넘어 내 삶을 경각시키는 은총이었다. 체중은 자연스럽게 15kg가 감량됐다. 외모는 핼쓱해 보여 가족들은 걱정하기도 하지만, 몸은 경쾌해졌다. 그렇게 숫자는 힘이 있다. 나를 경각시킨 것은 숫자였고, 나를 안심하게 하는 것도 숫자이다. 나는 이제 음식을 그리 걱정할 상태는 아니지만, 다시 예전 음식 먹는 법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는 않는다. 각해 보면 ‘오클라(음식, 그 너머)’는 ‘끼니, 허기’를 채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굳이 장엄한 각오로 말할 것은 아니다. 그보다 나는 이 시간을 보내며, 음식의 속, 인간에 비한다면 그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알아버렸다. 음식에 대한 나의 특별한 행동은 혼자 조용히 잘 지켜나가면 될 일이다. 그 음식 너머 세계는 상상 이상이다. 음식 하나하나에는 기억해 둘만한 삶의 이야기가 있다. 자기 삶이 각인된 것이다. 그것은 적어도 삶에 새겨진 ‘관계’의 흔적이기도 하다. 가볍게 말하듯이 음식은 무엇을 먹었는지 보다 ‘누구와’ 어떤 이야기로 그 음식을 나눴는지를 필연적으로 기억하게 한다. 그것은 생각보다 무거운 은총이다.
4.
나는 이 일이 발병한 후 가족들에게 말했다. ‘이 일은 내가 해결해 보겠다’고. 당찬 결심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지만, 그게 나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우선 지난 시간, 나는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예상외로 다행스러운 일도 있었다. 고혈압과 당뇨와 관련되어 먹는 문제에 고통 받는 이들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사실, 내 생애에 그것은 그들의 문제였다. 이젠 그들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그들 중 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내 삶에서 일단 먹을 메뉴가 없었다. 나로서는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문제다. 다 잘 먹고, 가리지 않았으며, 누구와도 어떤 메뉴로도 식사를 즐겼다. 하지만 지금, 나는 한 끼를 채우기 위해서는 ‘검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내가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자주 해 본 적이 없다. 설령 할 수 있다해도 과연 제대로 되었는지 검증할 수도 없다. 건강식이라 할 수도 없다. 문득 이런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누가 만들어주지 않으면 식사할 수 없다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이런 삶의 방식이라면 혼자 사는 이들에게 이 질병은 치유불가다. 질병은 다시 질병을 낳는다. 고치려는 의지가 있다해도 고칠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 내가 그들을 조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그들이 한 끼 음식을 누군가로부터 잘 대접받기를 고대한다.
5.
가끔 음식처럼 김서령의 글을 꺼내 읽는다. 아무 이야기나 펼쳐서 가볍게 훑는다. 눈으로 읽지만 마음에 그려진다. 불현듯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오른다. ‘음식, 그 너머’로 자연스럽게 여행을 떠난다. 기억에 남겨진 음식은 사람과 잇대어 있다. 맛과 함께 친밀한 이야기가 살아난다. 이 책 속에서 그의 글은 늘 맛이 좋다.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단 속엔 내 앞에 차려졌던 그 음식들도 담겨있다. 자연스럽게 그 음식들에서 내 삶에 스며들었던 거룩한 사랑이 다시 나를 다독인다.
“외로움에 사무쳐봐야 안다, 배추적 깊은 맛을.”(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