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날, 하늘도 오늘처럼 맑았습니다. 진녹색 산길은 물론이고, 파랑(波浪)마저 부드러운 회랑포 바닷길도 화창했습니다. 청산도 느릿한 길엔 아무도 없었고 여러 길을 나홀로 걸었습니다. 길과 나만 있던 길이었습니다. 길이 어디서 끝날 수 있나를 가볍게 생각하는 즐거움이 컸습니다. 그렇게 그 길을 걷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오래 병상에 계시던 어머니가 서둘러 숨을 멈추고 맑고 푸른 하늘로 돌아가셨습니다. 길을 걷는 것과 어머니의 귀천은 이제 나에게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리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반비, 2017/Wanderlust:the History of Walking, 2000), 화보 중>


오늘도 나는 말을 삼키고, 몸을 열어 ‘나에게 주어진 길’, 숲 길을 걸었습니다. 

리베카 솔닛의 글이 아니더라도 걷는 일은 인간, 무엇보다 자신을 이해하는 가장 진솔한 태도라는 것도 확증하고 있습니다. 


                                            


"보행의 리듬은 생각의 리듬을 낯은다. 풍경 속을 지나가는 일은 생각 속을 지나가는 일의 메아리이면서 자극제이다. 마음의 보행과 두 발의 보행이 묘하게 어우러진다고 할까. 마음은 풍경이고 보행은 마음의 풍경을 지나는 방법이라고 할까"(21쪽)


이런 말도 몸으로 잘 이해하게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2.

운동삼아 걷는 일로부터 시작했을지 몰라도, 이젠 ‘죽어가는’ 나의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오늘도 원시행동같이 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습관처럼 어머니를 추억합니다. 그날 저를 찾아와 따뜻한 위로를 건넸던 분들에게 마음으로 드렸던 인사를 오늘도 다시 읽습니다.


“꽃이 순식간에 지는 건 아니지만 한번 여려진 빛은 오래 걸리지 않아 바래진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86년간 곱고 정갈하게 피었던 노란 꽃이 천천히 져버렸습니다. 이제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련다고 여린 눈만 다정하게 껌뻑이다 마침내 입술을 굳게 닫았습니다.


돌아보면 함께 했던 어간 반백년은 짧은 시간입니다. 그렇지만 지난 세월 얽히고섥혀 몸에 남겨진 흔적들은 거침없이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합니다.


잘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지만 몸은 슬픔의 기미를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허나 이 행복한 이별이 가져올 부활의 소망도 슬픔의 두께만큼 견고합니다.


그 틈에 원근 벗들의 위로가 마음에 살갑게 내려앉아 평안을 햇살같이 흩뿌려 주었습니다. 품앗도 못했는데 사랑빚만 늘었습니다.”


오늘, 날이 참 좋습니다. 




어디에서 시작할까? 근육이 긴장한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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