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의 아틀리에 - 과학과 예술, 두 시선의 다양한 관계 맺기
김상욱.유지원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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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이 무엇인가?

흩어진 글들, 말들, 그림들을 가지런히 모아서 묶어놓은 집.

한 글자, 한 말, 한 사진, 한 그림 등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존재하는 장소.


이런 집은 너무 크거나 너무 작아도 불편하다. 적절한 규모가 있어야 한다.


흩어진 글자들을 모아 일목요연하게 배열하면 신기하게 사상이 태어난다. 글자들은 옆 글자와 어우러진다. 마침내 거대한 폭포처럼 인간의 이성에 떨어진다.


책은 글, 말, 그림 등의 조화이다. 조화란 질서다. 글쓴 이의 문학적 직관과 읽는 이의 문학적 상상이 알맞게 이어질 때 안정되게 체감된다. 마치 피아노 88건반을 적절한 손놀림과 발놀임으로 평화롭게 연주하는 연주자같이.


2.

『뉴턴의 아틀리에』(민음사, 2020). 440쪽.144x215x27mm. 573g. 총5부 26장. 책을 손에 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단어가 있다. “경이롭다.(432쪽)” 창의성을 유달리 강조했던 문학평론가 이어령님이 내린 평가다. 언어외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 짧은 문장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좋은 인상이 선명해진다. 물론 책을 읽기 전이라면 이 평가는 더욱 강인하게 들릴 것이다. 노로한 교수가 내린 평가여서는 아니다. 소설가 김초엽님의 말처럼 “서로 다른 영역에서 출발한 선이 무수히 교차하는 지점들이 펼쳐”(433쪽)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책자체로도 흔하지 않다. 예를들면, 책 구성(재밌다), 폰트(글씨에 대한 예술이라고 해야겠다), 종이질(후루룩 넘겨지지만, 뒷페이지가 비춰서 가독성은 조금 떨어진다), 종이감촉(부드럽다), 종이무게(분량에 비해 가벼워좋다), 판형(이것은 책디자이너의 의도가 무엇이든 독자로서는 조금 아쉽긴하다. 윗 여백이 너무 좁다. 책이 숨을 쉴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 중 한 분이 머리글에서 이 책에 관한 책제본 특징을 기술해 놓은 것을 보면, 이 책에 대한 첫 번째 경의는 책 외형에 대한 조심스러운 관찰일 것이다.


“책의 전반적인 그래픽디자인에 관해서는 『뉴턴의 아틀리에』라는 책의 정신에 일치하도록 처음에는 물리학의 개념을 응용한 디자인 프로세스를 고려했다.”(16쪽, 17쪽 그림참조)


이 말 속에서 나는 ‘책의 정신’이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어떤 정신일까? 그 다음에 이어지는 글을 읽어보면 관련된 의미를 찾을 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물리학 개념을 응용한’. 다시말해 이 책의 토대는 물리학이었던 것 같다. ‘물리학’의 관점. 따라서 두 저자 중, 조금 더 주도적인 관점은 물리학자의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책 외형에 대해서 한마디 덧붙인다면, 책디자인을 유심히 관찰하면 좋을 것 같다. 저자마다 폰트를 달리하고(15쪽), 글과 글 사이에 앞 글과 다음 글의 핵심 문장이 큰 글씨로 요약되어있다. 내 기억으로는 마치 오래 전 한 문예종합지가 시도했던 방식과 흡사하다. 따라서 이 부분은 앞 글에 대한 요약이자, 다음 글에 대한 안내라고 할 수 있다. 두 글이 대립되는 관점은 아닌 듯하다. 그림과 사진 자료가 적절하게 배치된 것도 읽는 재미를 돕는다. 미리 말하지만, 이 책은 두껍다해도 읽다가 덮다가, ‘다음에 계속 읽자’하지 않을 정도는 된다. 마지막 부분에서 조금 인내하면, 어느새 책 마지막 표지를 덮을 수 있다. 어쨌든 이 책은 여러모로 유익하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몇 가지 생각을 좀 덧붙인다.


3.

책의 모태는 알려진대로, 한 일간지에 일년간 연재된 글이다(2018.7-2019.7.). 모두 26주제를 다루고 있다. 연재 당시(나는 가끔 읽었는데) 거의 매월 두 편씩 실렸고, 해당 주제는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제시했다고 한다.(17장의 ‘점’은 김상욱님(K)이, 6장의 ‘결’은 유지원(Y)님이 제안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자신이 갖는 관심사가 적극 반영되었을지 모르겠다. 이를 토대로 보면, 첫 번째 연재 글인 ‘검정’은 K, 연재 마지막 글 주제인 ‘가치’는 Y가 제안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추론을 고려한다면, 전체 26개 주제의 제안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제안자가 되고, 다른 사람은 그 주제에 대한 대응자가 되는 식이다. 사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보면 연재글을 다시 모아 5부로 구성하고 소제목을 붙인 것은 다분히 후속 작업이었을 것이다. 연재글과 책의 차이는 사실 이 소제목이라 할 수 있다. 목차에 소개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부 관계 맺고 연결된다는 것:이야기/소통/유머/편지/시(1-5장)

2부 현실을 관찰하고 사색하는 마음:결/자연스러움/죽음/감각/보다/가치(6-11장)

3부 인간과 공동체의 탐색:두 문명/언어/꿈/이름/평균(12-17장)

4부 수학적 사고의 구조:점/구/스케일(17-20장)

5부 물질의 세계와 창작: 검정/소리/공간/재료/도구/인공지능/상전이/복잡함.(21-26장)


개인적으로 연재글이 책으로 나올 때는 항상 연재글부터 확인한다. 당연히 연재글과 책편집글은 다른 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작위로 쓰여진 연재에 비해 책은 의도된 편집의도가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목 ‘뉴턴의 아틀리에’보다 소제목이 이 책의 사고를 더 잘 반영한다. 1부에서 5부까지 제목을 보자면 일단 일관성이 보이지는 않는다. 이 분류는 연재된 26개 주제를 서로 공통점이 높은 주제들로 다시 묶어놓은 정도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크게 어긋나지는 않아 보인다. 물론 유사한 소재와 표현들이 반복되는 정도는 학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전체적으로 크게 어색하진 않는다.


4.

책 내용과 관련해서 조금 살피려고 한다.


4-1.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책은 인간-세계가 분리되지 않고 상호 관련되어 있는 존재라는 점을 밝혀주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나와 너, 나와 그것, 너와 그것’은 어울려있다. 이 세계를 이해하고, 나와 세계를 분리하지 않은 채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유쾌하게 밝혀주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글 한편 한편에 담긴 저자들의 수고가 돋보인다는 점이다. 언어디자인과 물리학, 나아가 미술이 사실 어느 한 지점에서 늘 만나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밝혀준 것은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두 사람이 이 책에서 함께 이룬 결실이라면(의도했을지도 모르겠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물리이며, 디자인이며, 예술(미술, 음악)이라는 것이다. 서로 분리되지 않고, 총합(holistic)구분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우리 삶의 터전인 이 세계, 현상이 전일성(全一性, holism)이자 처음부터 비국소성(非局所性, non-locality)으로 유지되었다는 점을 확증한 것이다. 저자들은 자기들의 독특한 분야를 토대로 ‘미술/음악’과 같은 예술에 제3지대를 설정하고 통합해 준다. 개인적으로, 이런 방법론은 이 책에서 다소 난해하게 읽히는 내용들을 내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유익했다.(cf.미술을 통한 학문적 견해를 밝히려는 시도는 수용해석학이란 관점에서 최근 적극 활용되고 있다.)


4-2. 이 책을 친근하게읽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글’과 ‘언어’가 사상을 담은 도구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뉴턴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계관의 변화를 인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결정론적 세계관이 불확정성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사실 큰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타이포그라피 분야나 양자물리학은 내가 전문적으로 공부한 분야가 아니어서 일천하다. 따라서 이 책에서 기술된 부분들은 두 사람의 견해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 미술에 더욱 안목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아울러, 유지원님의 글을 읽다보니, 오랜만에 한 가지 즐겁게 생각한 것도 있다. 내가 조금 공부한 고대언어(특히 고대 셈어 계열, 우가릿어나 고대히브리어)가 글자들과 ‘개념’(특히 이야기, 검정)에 관한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언어는 사상을 담지한다. 저자(Y)가 말하듯이 ‘낯선 언어’가 사고의 간극을 만들어주고, 유연하게 이끈다는 점은 적극 동의하는 부분이다. 나는 이 대목이 이 책 전체를 견인하는 중요구절이 아닌가 생각한다.


“낯선 언어는 서로 다른 것들 간의 뜻밖의 연결을 만들어 낸다. 이 연결을 자유자재로 적절히 구사하는 능력이 곧 창의력이다.”(13장, 213쪽)


동시에 다른 저자(K)가 이와 관련해서 덧붙인 말도 유의미하다.


“언어로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은 왜 수학과 예술이 존재하는지 설명해준다. 우주는 인간의 언어와 이해방식이 아니라 수학과 물리학의 방식으로 기술된다.”(222쪽)


이 말과 관련해서 한가지 덧붙이자면 내 견해로는, K가 말한 ‘언어’는 오히려 ‘단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왜냐하면, 한계가 있긴 하지만, 고대 히브리어라는 언어는 ‘언어로써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검정’(5부21장)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도 고대히브리어는 ‘어둠’에서부터 ‘새벽’, ‘간절함’, ‘새벽의 신’, 심지어 ‘다이아몬드’까지 아울러 표현하고 있다. 언어사상가인 토클라이프 보만의 견해를 빌리자면, ‘동사’가 명사에 선행하는 언어의 특징은 그 언어가 인간 삶의 바닥에서부터 역동적으로 파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비교』, 분도출판사,1975/ 2001) 그렇게보면 수학과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가 언어로 표현하기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어쩌면 ‘언어’를 회화로 표현함으로써 의미의 지평확장을 이룬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나는 독자로서, 이 책 전반에 걸쳐 견지해야 할 틀을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언어’라는 도구가 어떻게 온전하게, 편견없이, 나아가 배려하며 소통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글자에 대한 예술과 수학, 물리학이 잠재된 미술과 음악과 함께. 이 세계가 겸손하게 온전한 공동체로 살아가기 위해서.


5.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을 적어둔다. 독자의 미진한 능력 탓이겠지만, 다음에 읽을 분들에게서도 혹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1)1장 제목‘이야기’: 이 용어는 명확한 정의가 먼저 되었으면 좋았을 거 같다. 스토리인지, 내러티브인지.

(2)43쪽."그런데 이런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문장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3)102쪽. ‘결’:유익하게 읽었다. 다만, ‘결’이 가진 다층적인 의미가 뒤섞인 듯했다.

(4)131쪽. “혹독한 겨울을 밝히는 구세주의 탄생, 대림절의 간곡한 기다림,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긴 겨울이 저물고..”: 내가 이해할 때, 이 부분이 교회절기의 흐름을 순차적으로 염두에 둔 것이라면, 아예 ‘대림절의 간곡한 기다림, 혹독한 겨울을 밝히는 구세주의 탄생’으로 글 순서를 옮겨 읽는 것이 좋겠다.

(5)189쪽.‘이마누엘 칸트’: ‘Emanuel’이 칸트의 세례명이지만, 이후 그가 히브리식 이름인 ‘Immanuel’로 바꿨으니 이왕 발음한다면, ‘임마누엘’이 더 적절할 것 같다.

(6)220쪽. '하나의 전자는 두 장소에 동시에 존재한다.: 이 내용은 글 전체에 자주 반복된다. 연재된 글의 흔적이어서인지 글의 흐름을 조금 흐트린다.


6.

한 가지 주제를 두 사람이 자기 관점으로 써내려가는 글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예전에도 이런 방식으로 역사관점을 나눈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모처럼 그 때 그 즐거움을 다시 누린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실린 여러 그림 중에 두 가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처음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시 보는 것이다. 우선 책 표지에 실린 'Prat is Quality.'는 책 전체 성격을 보여주는 듯, 초현실적이며 새롭다. 다른 하나는 이응노 화백의 「군상」(1986)이다. 비록 ‘무제’라는 단락에 소개되었지만, 그 무명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역사가 지금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을 새삼 다시 일깨우는 그림이다. 다시 보니 마음을 일신하게 된다. 화가의 직접체험으로 잘 알려져있듯이, 1980년 5월18일이 운동이 그림 군상들에게서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이런 그림들을 소개해 준 두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글 전체가 유익한 책이다. 게다가 단숨에 읽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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