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조덕환(63세). 2016.11.14 본향으로 돌아간 사람.

밴드 들국화 기타리스트(1985-1987).

2011년 솔로 1집 The long way Home <수 만리 먼 길>발표.

2018. 10.11. 미발매곡들 중 2집 유작 <인생> 발표.(LP 발매)


<2집 수록곡>

1. 인생

2. Morning Rain

3. 새아침

4. Fire In The Rain

5. Goodbye Gloomy Sunday

6. I Don’t Wanna Sleep Here Alone Tonight

7. 봄


1.

지난 4년 전 나는 한 장례식에 참여했습니다. 마침 그 기간에 또 다른 이의 장례식에도 방문해야 했던 터였습니다. 죽음으로 환송하는 자리에서 또 다른 죽음이 겹쳐지는 것은 우연일테지만, 죽음은 죽음에 이어지고 있다는 당연한 생각을 파란 하늘 아래서 한번쯤 다시 가졌습니다. 삶이 끝나가는 날이야 회색빛 같으리라 짐작하겠지만, 사실 그 날 하늘은 무척 푸르렀습니다.


2.

그 후 2년 뒤, 그의 추도일이 다가오는 즈음에 유가족들이 고인의 유작 앨범곡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음악과 더불어 평생 살았던 이가 마지막까지 남겨 두었던 기억이자 흔적들입니다. 앨범에는 타이틀 곡 <인생>에 이어 6곡이 수록되었습니다. 모두 7곡입니다. 나는 이 유작앨범이 무척 반가왔습니다. 마지막 ‘죽어가는’ 길에서조차 그는 <인생>을 희망가득한 哀歌로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3.

타이틀 곡 <인생>. 이 곡은 이미 '본향'에 도착한 이가 아직 그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을 위한 '묵시적 기도'입니다. 이 타이틀 곡에 이어지는 여섯 노래들 모두 어쩌면 그가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죽음을 예고받으면 쏟아내고 싶었던 '노래하는 기도'였을지 모릅니다. 그가 살아서는 은닉해 두었던 기도문을 마음 깊은 곳에서 스스로 봉인해제시킨 고백이라고 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4.

track1 <인생>. 피아노 선율이 옛스럽게 흐릅니다. 가사를 읊조리는 노래가 따라붙습니다. 그가 노래합니다.


"인생은 연기, 세월,바람, 순간,영원, 시간, 자연, 계절 속에

저물어가는 들녁 저녁 석양 바라보며

내 마음도 따라서 춤을 추는데

가을 잎의 노래 울려 퍼지며

내 마음도 따라 울리네

(피아노 간주)

인생은 연기, 세월,바람, 순간,영원, 시간, 자연, 계절 속에

흩어내리는 저 가을빗소리 들으며

내 마음도 따라서 춤을 추는데

가을잎의 노래 울려퍼지면

내 마음도 따라 울리네

욕망의 열차는 끝없이 끝없이

날 깨워 달려오는데

내 마음의 열차는 흔~들리면서 천천히 가려하네

(피아노 격정 1)

욕망의 열차는 끝없이 끝없이

날 깨워 오라하는데

내 마음의 열차는 흔~들리면서 천천히 가려하네

(피아노 격정 2)"


피아노 마지막 파열음 노래 끝.


5.

모든 곡을 듣고 나니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이 노래들을 스스로 녹음해 두었을 때, 그는 이 노래들이 제 발로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이 노래들의 운명을 그가 알고 있었을까?' 그는 기대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아쉽게도 그 간절한 기대가 이뤄지기 전에 그는 삶의 행진을 마감해야했습니다.


노래 <인생>을 몇 번째 듣고 있습니다. 그의 노래는 낮고, 단조롭고, 거묵합니다. 나는 이 노래에서 그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흔들리는 생의 길에서 한순간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또박또박 봅니다. 말로 드러내지 못해도 어떤 위기감같습니다. 허나 그 목소리는 꾸며지지 않은 아이의 마음 같이 단순합니다. 따박따박 말하지만 마음은 애절합니다. 간절합니다. 말하지 않고서는 안되겠다는 여린 희망이 짙은 사투리에 실려 있습니다. 명쾌하게 떨어지는 도시 발음과는 처음부터 동떨어졌습니다. 비록 흔들리는 길이어도 생의 리듬은 조화롭게, 견실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선명한 소리 속에서 이 노래들은 희망을 소생시키고 있습니다.


6.

일곱 개의 노래들은 그가 말없이 수용하며 살았을 삶을 단순히 구조화하여 보여주는 듯 합니다. 피아노 선율에 실린 첫 곡 <인생>을 지나 기타와 하모니카를 거쳐 마지막 곡 <봄>에 다라릅니다. 역시 피아노 소리에 실렸습니다. 수미쌍관처럼 두 곡은 필연적으로 조우합니다. 기타소리와 하모니카가 뒤섞인 길 위에서 다시 피아노 선율이 정갈하게 흐르는 마지막 곡으로 넘어오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피아노는 격정적으로 등장했다가 다시 물이 흘러 내려가듯 조용히 페이드 아웃으로 사라집니다. 삶의 시작과 끝을 떠올립니다. 이 두 곡을 들으면 그가 '영원을 향해 가는 시공간'을 지나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마침내 '푸르른 생명의 숨소리 온 세상에' 가득찬 그 길에 다다릅니다. 마치 자기 생이 그렇게 마칠 것을 예견했던 것 같습니다. 죽음으로써 그는 다시 '새로운 인생'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하여 조심스럽게 나는 그가 그의 노래를 통해 죽음 앞에서 '죽음너머' 삶을 향한 분투흔적을 남겨두려고 했다고 받아들입니다. 이 두 곡 사이에 다섯 곡이 ‘길의 정점’처럼 자리합니다. 길에서 부르는 그의 노래들입니다. '본향을 향하는 길', '내리는 비', '쏟아지는 햇살', '화사한 아침', '새로운 일요일'을 붙잡고 있습니다. 앨범<인생>은 이렇게 절망의 옷을 입은 채로 희망의 길을 걸어 궁극적으로 <봄>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가 노래하듯 겨울같은 <인생>이라도 어김없이 <봄>에 다다를 것입니다. 그의 고백을 빌리자면 <새로운 일요일>이 시작될 것입니다.


7.

그 장례식을 마친 날 나는 이렇게 썼습니다.


" '새로운 일요일, 축복합니다'. 그가 남긴 이 노래들은 그가 수만리 먼 길을 노래와 함께 걸어온 흔적이자, 나그네로서 자신에 대한 축복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를 마지막으로 배웅하기 위해 모인 이들을 위해 들려주고 남겨주고 싶은 유언같은 축복의 노래였습니다."


다시 몇 년이 흘렀습니다. '새로운 일요일'을 앞둔 오늘 나는 이렇게 씁니다.


"나는 그의 노래 가사처럼 '흔들리는 삶'에 늘 직면합니다. 열차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따라오라는 손짓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만약 그가 일러주지 않았다면 그 열차의 이름이 <무한욕망>이라는 것을 몰랐을 겁니다. 흔들리는 길에서 '멈추지 않는 열차'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노래를 통해 나에게 남겨 준 유산이 있습니다. 이 무도한 열차에 저항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나는 그가 저항하는 방식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그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흔들리는 길에서 열차로 올라타고 싶은 유혹에 대해 노래로써 저항한 것입니다. 다행스럽게, 그의 은닉된 노래가 기도처럼 세상에 나와 나의 손에 들려졌습니다. 나는 지금, 다시 그가 부른 노래를 통해 그 저항지혜를 경각합니다."



오늘, 짙은 전염질병의 시대에 나는 나의 <인생>에서 다시 <봄>같은 <새로운 일요일>을 만끽할 채비를 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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