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행 20자*10행=200자 원고지. 70-80매. 이것은 대체로 단편소설 분량입니다. 출판에 유용하도록 글의 분량을 측정하는 도구는 원고지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1659년 일본 도쿄의 겐지로상점에서 그 유래를 겨우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특이한 종이형태는 가로쓰기보다 세로쓰기에 최적화된 바둑판모양의 격자에 글씨를 넣어 쓰면 출판사는 그 글을 따라 조판합니다. 대체로 원고지 한 장이 소책자 1쪽에 해당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원고지는 본래 세로쓰기를 즐겼던 일본식 글 처세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행정과 서식에 관한 문물을 일본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넘겨받았던 우리에게 원고지는

낯선 것이었습니다. 어린시절 학교 국어수업에서 원고지 쓰는 법을 연습했던 지루한 경험이 있습니다. 출판사에 필요한 교정기호들을 외우고 적용해보는 시험도 버겁기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떤 추억같은 것이 남아 있어서 어쩌다 빈 원고지가 눈에 띄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괜히 ‘연필’을 들고 끄적거려봅니다. 지금도 그 이름을 널리 떨치는 유명한 작가들도 얼마 전까지(아니 지금도) 손으로 원고지에 직접 글을 써서 출판했다는 후일담을 소개하곤 했습니다. 그런 정황들을 보면, 이 원고지는 우리 사회에서 글쓰는 멋과 아주 긴밀하게 공존했던 흔적임에 틀림없습니다. 물론 우리말 쓰기는 원고지와는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원고지가 사라진 것은 당연한 변화이지만, 추억마저도 사라지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2. 계간지「창작과 비평」2008년 여름호에 특집 기사 하나가 실렸습니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의 미발표원고였습니다. 당연히 지워지고, 교정된 흔적들로 가득한 원고지였습니다. 이 글 발표 이후, 미발표원고들이 발견될 때마다 사람들은 이제 원고지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이 원고가 초판 원본인지, 교정본인지를 파악하는데 유용한 근거이기도 했습니다. 초판과 교정본을 견주어보는 일은 글을 이해하는데 중요했습니다. 일단 시인의 처음 생각이 무엇이었고, 그 다음에 바뀐 것은 무엇이며, 왜 그랬는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원고지에 실린 원본과 교정 내용들은 한 글에서 시인의 생각의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 추이를 살펴보는데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단순한 맞춤법 교정이라면 그것은 국어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시어를 변경했다면 그것은 시인이 그 시에서 지향하는 글의 방향이 어떤 변화를 겪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모든 변화들의 흔적은 남아있는 종이, 원고지가 제공합니다.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시인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출전 『거대한 뿌리』,1974년)라는 육필원고를 보자면, 그는 원래 기름 덩어리'와 '설롱탕'으로 탈고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원고지에는 당시 맞춤법에 맞게 '기름덩어리'와 '설농탕'이라고 수정한 흔적이 있습니다. 최종교정자가 삽입한 단어였습니다. 그 바람에 그 육필원고는 원본이 아닌 교정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어떤 과정이든 원고지에 남겨진 흔적들은 기계로 글을 쓰는 시대가 오기 전, 아니 지금도, 한 글지기가 무슨 생각과 어떤 이야기를 어떤 과정을 거쳐 담아냈는지를 한눈에 알아보게 만드는 글의 사상궤적이라 할만합니다.


3.오래 전 서재 짐을 정리하다가 컴퓨터로 출력한 글들 사이에 한동안 묵혀있었을 원고지 뭉치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어느날 우연히도, 어느 분이 짐을 정리하면서 버릴까 하다가 혹시 내가 쓸지도 모른다고하면서 주고 간 원고지가 있었습니다. 이 원고지 뭉치를 보니 습하고 어두웠던 고등학교 문예반에서 습작처럼 써두었던 글들을 서로 돌려보고, 원고지 위에 이런저런 교정기호들을 그려가며 웃고 떠들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교지한권만드는데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수정과 편집이 간편해진 오늘날, 키보드 글쓰기는 솔직히, 어떤 점에서는 사고의즉각성을 키울 뿐, 사고의 점진성은 약화되기 쉬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고대 사람들의 책을 읽다보면, 한 글이 완성되기까지 고치고, 다듬고 흘러왔던 사고 궤적이 유적처럼 남아있는 글뭉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언제 어떤 사람들이 이 단어를 어떤 식으로 수정했는지, 또 한 표현을 어떻게 다르게 옮겨 적었는지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 글이 완성되기까지 수정 흔적과 변형의 예들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4.200자 원고지 1장에는 150자 정도의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원고지 10매(400자 원고지 5매)정도를 손으로 쓰면 그것은 평균 A4 한장(10pt, 줄간격 160인 경우, 장평0) 정도  될 듯합니다. 글 완성 속도에 사활을 거는 요즘 글쓰기 작업 환경에서 보면 원고지 10매를 손으로 쓰는 것은 두 손으로 자판을 두들겨 A4 한 장 작업 능률에 비할 것이 못됩니다. 

원고지에 글을 쓴다는 것은 수정에 대한 부담, 단어 하나의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 글을 이리저리 편집하려면 조판과정을 다 거쳐야 하거나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는 귀찮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오타에 대한 부담도 없고, 바로바로 수정이 가능한 키보드 작업은 글쓰기 부담을 훨씬 경감시켜 주었습니다.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 일도 거의 무감각적으로 이뤄져서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자판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구가 무엇이든 상관없다해도, 가끔 자기 손으로 직접 글씨를 그려보고, 엮어보며 한 편 글을 써내는 일도 지나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로서 문학은 자신의 손으로 남긴 글씨와 글들의 조합으로서 자신의 사유를 확정짓습니다. 동시에 문학의 사회적 자리를 고려한다면, 문학은 그 글을 통해 그 글의 완성되기까지 작가의 감정과 의식의 변화를 보여주고 더 나아가 그 글에 당대 정황들이 오롯이 담아낸다면 좋을 것입니다.


5. 사이토 다카시는 그의 책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루비박스, 2005)에서 사고의 무한 전개는 원고지 10장을 자기의 손으로 쓰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실용적인 제안을 합니다. 우리 사고가 자기 손으로 직접 써놓은 글을 통해 더욱 더 진솔하게 발전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허튼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문학은 글쓰기로서 일단 세계에 자기 존재를 드러냅니다. 이를 위해서 빠른 자판도 유익합니다. 그와함께 손으로 썼다지워가며 눌려낸 글도 좋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짧더라도 자기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를 원고지에 담아보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이든 한 단어를 선택하기 위해 원고지 앞에서, 키보드 위에서 어떤 시간 골똘히 고민해 낸 결실이 뭉그러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자기 손때가 묻은 글자들로 엮인 한 글은 곧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결실입니다. 자기 글을 씀으로써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 자신이 어떻게 엮여있는지를 반추해볼 수 있는 생생한 방증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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