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찬의 <새의 시선>이라는 단편을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몇 권의 장편을 세심하게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나름 그의 소설 속에 담긴 지향점을 생각해보기도 했습

니다. 예를 들어, 사순절 즈음에 읽어볼만한 <빌라도의 예수>, 5월 광주의 이야기를 담아낸 <광야> 정도만 봐도 그의 소설은 한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겪고 있을 사상 분투를 내면으로부터 추적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의 글은 인상적이었습니다.


2.

이번 글은 제42회 이상문학상(2018) 수상작에 들어있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내가 유려한 다른 작품들보다도 이 소설을 먼저 열어보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이 글은 두 가지 평범한 요소를 토대로 이야기를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사건'이라는 단어였고, 다른 하나는 '사진'(영상)입니다. 작가는 이 두 요소를 자연스럽게 묶어냅니다. 그는 '시선'과 '카메라'는 이 요소들을 묶는 도구입니다. 짧고 단순한 구조에서 이 소설은 '카메라의 시선'을 세심하게 따라갑니다. 인간의 손에 들려져 제한된 카메라 시선은 어느 사이 자유롭게 날아오릅니다. '새의 시선'으로 전환됩니다. 부감하듯 조망하며 사건과 사물의 속살에 다가갑니다. 비록 한 컷에 고정될 수 있는 카메라 시선일지라도, '새의 시선'은 독자를 더 높이 더 넓은 세계로 이끌고 있습니다.


3.

읽다보니 이 소설에서 작가가 지향하는 시선을 명시적으로 담고 있는 대목이 눈에 띕니다. 주인공의 손에 들린 카메라는 아주 우연히 한 사건을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그 시간을 기억합니다.


"내가 망루 안으로 들어간 것은 카메라가 원했기 때문이다. 난 단지 카메라를 따라 들어갔을 뿐이지. 카메라가 원하는 것을 거부할 힘이 나에게 없었어. 그 카메라를 잃어버렸어. 카메라를 따라간 나도 잃어버린 거지. 그가 어디로 갔는지 난 몰라.가끔씩 나타나기는 해. 새의 영혼이 담긴 카메라를 들고" (286쪽)


예측했겠지만, 주인공이 따라 들어간 곳은 '남일당'입니다. 2009년 1월20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4층짜리 남루한 건물. 강경한 진압, 망루 화재. 마침내 재개발의 축포를 울리다. 카메라는 그 날 그 현장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 후, 자기도 모르게 카메라는 그 사건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두었습니다. 그 남긴 흔적들은 시선입니다.


4.

정찬의 이 짧은 소설은 작가 자신이 묻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인 듯합니다. 나는 이런 질문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한 장의 사진에 남아있는 역사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사진 한 장에 살아남은 역사는 어떤 시선으로 읽어내야 하는가?' 물론 저자가 직접 답하지는 않습니다. 글의 끝으로 갈수록 한 답을 추론할 수 있을 뿐입니다. 나는 이렇게 답을 적어봅니다.


'프레임에 갇힌 그 세계를 새의 시선으로 살펴야 한다'.


5.

개인 경험이긴하지만, 돌이켜보니 그 즈음, 나는 이 역사의 현장 앞을 가끔 차를 타고 지나갈 때가 있었습니다. 현장을 바로 눈으로 보지 못한 내가 그 날 그 자리에서 피어올랐던 불의 정체를 제대로 알리 없습니다. 다만 그 다음 날부터 나는 그 길을 지날 때 일부러 차에서 내리거나 아니면 차의 속도를 아주 늦춰 슬쩍 눈으로 올려다 보곤 했습니다. 사실, 그게 전부였습니다. 가끔 도로를 지날 땐 그 불타버린 채로 남아있던 건물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6.

이제는 그 건물도 사라지고 그 날 역사기억도 흐릿해져 가고 있습니다. 꿈꾸던 대로 그 곳은 은빛 건물들이 촘촘하게 세워져 햇살에 번쩍거립니다. 어디에도 역사흔적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남아있는 것은 카메라와 시선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남겨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멈춰버렸고, 고정된 한 장의 카메라 사진을 '새의 시선'으로 여러 갈래에서 자유롭게 들여다보려는 나의노력입니다. 그리하여 그 사진 어딘가에 흘러들어와 있을 정의로운 시선을 추적하여 '남일당' 옥상 망루에 스스로 올라가보는 것입니다.


7.

지금도 우리 시대는 '새로운 남일당'이 명멸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솔직히, 나는 치열한 역사현장에 직접 몸으로 뛰어들어 싸우는 운동가는 되지 못합니다. 할 수도 없을 겁니다. 하여 이 역사에 몸을 내던진 이들에게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다만 그 자리를 많이 벗어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기억해두려고 합니다. 누군가가 사활을 걸고 남겨 놓은 사진 한 장, 글한토막을 제대로 읽어내려는 노력은 쉬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는 이 B급 참여의식에 운신하듯 머물러 있는 사람으로서 나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8.

이제 정찬의 소설, <새의 시선>은 나를 더욱 기분좋게 채근한다는 것을 압니다. 어떤 한

장의 사진이라도 그 프레임에 담겨 남겨진 역사의 흔적을 공의롭게 해독해내는 용기입니다. 나아가 그것에 일조할 <새의 시선>을 따라 가는 지혜를 놓치지 말도록 말입니다. 아직 강남역 사거리 25미터 위에 사람이 있고, 40년 전 5월 광주 하늘과 땅을 붉게 물들인 흔적이 여전합니다. 갇힌 이를 경시하고, 부정의를 위해 총성 뒤에 숨어 역사를 희롱했던 이들이 남부럽지 않게, 부끄럽게 건재합니다. 새의 시선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할 시대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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