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미, 『한밤중 개미요정』, 창비, 2016/『개미요정의 선물』, 창비, 2020.


1.‘그림’은 기억을 위한 도구로 시작했음이 틀림없다. 대상이 사라져도 언제나 어디서나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려는 욕구가 컸기 때문일지 모른다. 사라져도 아쉬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어떤 면에서 ‘그림’은 잊을 수 없는 그 대상에 대한 ‘그리움’을 내재하는 부득이한 생각저장고일지 모를 일이다.


2.시간이 흘러 그림은 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갔다. 상상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상상을 현실로 끌어들였다. 들여다볼 수 없는 내면을 떠오르게 했다. 이로써 그림은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버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림은 새로운 경계에 갇혔다. 그림판을 넘어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상을 현실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이제 고도의 함축과 집중이 필요해졌다.


3.그림은 멈추지 않았다. 갇힌 세계를 확장하는 법을 찾아냈다. ‘글자’다. 글자를 그림 옆에 적어두기 시작했다. 글은 그림 경계를 열어주었다. 그림은 글로써 경계를 넘어섰다. 하지만 다시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그림이 글에 갇힌 것이다. 먼저 그려진 그림이 나중에 덧붙여진 글자에 매여버렸다. 그림 속 상상이 흐릿해졌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대상을 자유롭게 재구성해냈던 그림의 묘미는 여려졌다. ‘글자’는 그림이 가진 상상 세계에 새로운 경계였다. 그림과 글자. 이 둘은 서로 상생했지만, 끝내 그림이 글에 종속되었다.


4.그림은 글자 뒤로 숨겨졌다. 글자가 그림보다 앞서기 시작했다. 하여 글자가 말하면 ‘그림’이 따라 나오기 시작했다. 이른바 ‘삽화’다. 사람들은 이 삽화들이 연속된 것을 ‘그림책’이라 불렀다. 정확히 말하자면 ‘글그림책’이었다. 비록 그림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글을 앞설 수는 없었다. 그렇게 그림의 시대는 저물었는가? 그럴 리가 없다.


5.다시 그림이 앞서갔다. 사람들이 현실너머 상상세계를 그리워했기 때문이다. 사라진듯한 인생그림을 기억하고 싶어했다. 저장고에서 그림을 다시 꺼냈다. 글이 새롭게 덧붙여졌다. ‘그림책’이 소생했다. 다행히 그림과 글자가 알맞게 공존했다.


6.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그저 ‘그림책’이다. 실제인지 상상인지 구분할 수 없는 날들도 많으니 마치 한 편 그림같을 때가 많지 않은가. 비록 우리시대가 ‘글’로서 존재감을 극대화시키는 시대일지라도, 그림의 자리는 더욱 견실해지고 있다. ‘글’의 조합으로 이뤄낸 문학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시대라할지라도, 그림은 물러나지 않았다. 애둘러 그림을 흘깃하고, 글과 말에 집중하기를 권장할지라도, 삶은 여전히 그림으로 선명하게 남아있다. 말을 찾아내느라 그림을 잊어버리는 일이 흔하고, 말을 쏟아내고, 글을 쓰고, 첨삭하여 자기 의도를 드러내는데 천착한다해도, 결국 그 말에 곁들여진 그림으로 자기 인생그림책이 기억된다.


7.삶은 그림책이다. 한마디 말/글없어도 충분할 때가 있다. 어떤 삶이든 자기 삶은 훌륭한 ‘그림책’이다. 이 사실을 수긍한다면, ‘말’보다도 ‘그림’에 가볍게 치우쳐도 좋을 일이다. 한권 그림책 속에는 무한한 상상과 사상의 세계가 저장될 수 있다. 그림과 글이 공존한 그림책은 초세계라 할만하다. 그림만으로, 또는 글만으로 존재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세계가 ‘그림책’에 담겨있다.


8. 이제 주변에 널려 있는 아무 그림책이나 한권 손에 잡아보라. 그 책안에 담긴 그림을 따라 자기 이

야기를 다시 집어넣어보라. 아니면 자기 이야기를 적어보라. 그 속에 아무렇지도 않게 적절한 그림을 그려넣어보라. 잘 쓰거나 잘 그리려고 하지 않아되 된다. 그림이 아니라면 사진도 좋다. 무엇이든 자신이 내뿜고 있는 말과 이야기에 어울릴만한 그림이면 충분하다. 어쩌면 가장 좋은 그림은 온 몸으로 하루하루 살아낸 자기 삶일 것이다. 하루가 끝나는 어느 순건에 지나온 삶을 상상해보라. 그려보라.


9.이 땅에는 ‘말’만이 인생의 전부를 그려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듯하다.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할만한 증빙도 여전히 많이 눈에 띈다. 그러나 그 ‘말’의 진정한 존재가치는 그의 인생이 그려내는 ‘그림’으로써 더욱 부각된다는 것도 지나치지 않으면 좋겠다. 삶을 ‘말’로만 읽어내려는 시대에 차라리 말없이 몸짓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지나가는 것도 무의미하지 않으리라.


10.글이 그림을 압도하는 시대를 거쳐 이제 그림이 글을 견인하는 시대로 들어섰다. 그림처럼 보이는 삶이 나타났다가 느닷없이 설명하고 풀어가며, 덧붙여주는 글자들이 전면에 나타나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그림책이 ‘글’이 아닌 ‘그림’으로 말하는 것처럼,(좀 더 정확히 말하면, 글이 없어도 그림책이 되니 그림책에는 ‘그림’만 있어도 충분하다) 사람의 삶 역시 그림만으로도 충분하다. 설명하지 않아도 기꺼이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최고 그림책은 ‘그림’으로서 ‘글과 그림’을 모두 표현해내는 것이리라. 자기 생애에 그런 ‘그림책’을 한 권 정도 찾아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가 지나온 삶이 가장 멋진 선물, 그림책이라는 것을 직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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