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준,『아름다운 그런데』, 창비시선409(창비, 2017)


1.

시대가 거칠다. 방향없는 바람같이 삶이 요동치고 있다. 고요한 폭풍같다. 부디 바람이 이 땅을 가볍게, 아주 가볍게 스쳐가기를 바란다. 평소엔 무심했으나 오늘은 한번 더 지나온 길을 둘러본다. 우연이지만, 한인준 시집『아름다운 그런데』, 창비시선409(창비, 2017)를 떠올렸다. 이미 회자되었지만, 이 시집은 별다르다. 그의 시 형태가 그렇다. 단어와 단어는 예상대로 나열되지 않는다. 주어와 동사라는 문법체계는 질서정연하지만, 단어들은 무질서하다. 아예 얽혀버려 의미가 숨어버렸다.


2.

예를 들면 이런 시다.


<종언:없>


내가 가족이다.

나는 ‘그러므로’와 화목하다. 어디서든 자세하게 앉는다, 하지만

방파제로 운다

주문진과 바다하지는 않는다. 아무도 몰래는 왜 자꾸와 함께 닫혀야 했나 <후략>


시집을 바로 덮을만한 시들이다. 무엇을 썼을지 알아채기 쉽지 않다. 이해하려면 해석이 필요하다. 시인의 말을 들어보자. 이 시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종언:없>이라는 시에 ‘나는 그러므로 화목하다’는 시구가 있는데요. ‘나는 가족 구성원같지 않아.’ ‘나는 화목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마음 아프고 그래서 오히려 마음에 가닿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가족은 화목해야 한다는 이 세계의 윤리를 깨고 싶었고,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문득 그러면 ‘그러므로’와 화목해보자라는 문장이 떠올랐어요. ‘주문진과 바다 하지는 않았다.’는 문장은 잊고 싶은 공간인데 잊고 싶다고 말하기 싫어서 쓴 문장이고요.”


3.

이 시집이 출간되던 날, 호기심에 곧바로 끝까지 읽었다. 예상대로다. 무엇하나 제대로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글자는 변절되었다. 의미도 뒤틀렸다. 문장은 의미를 상실했다. 이후 나는 틈나는 대로 이 시집을 펼쳤다. 일단 그냥 읽었다. 눈에 잡히는 어느 시를 가만히 읽어보는 것이 전부다.


시인 자신이 시를 풀어 주었다해도, 나는 그의 싯구가 여전히 모호하다. 평론가들에게도 난해했던 모양이다. 시를 세밀하게 해석하기로 정평이 난 그들에게도 이 시집은 방향을 정하기 어려웠다. 비록 시집을 추천한 황지우시인이 이 시들에 대해 ‘한국어의 관절을 꺾었다’고 호평을 했지만, 이 말조차 애매하다. 가볍게 읽어내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솔직하다.


4.

난해한 시는 자주 오래 읽는 것이 좋다. 그러다보면 시가 말하는 시간이 온다. 시인의 감정이다. 이 시집은 뒤로 갈수록 어떤 감정이 증폭된다. 아마도 시인은 불확정된 언어조합 틈에 자기 감정을 잠복시켜놓은 모양이다. 모호한 시어들은 그의 감정을 반영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짐작했다. 그 감정을 감지하는 것이 이 시를 읽어내는 한 방식이라는 것을.


시인은 글자로써 문장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독자로서 나는 시인이 파편처럼 펼쳐놓은 그 감정을 따라가본다. 변형된 언어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변형해놓은 시인의 시어를 폭풍같은 이 시대 속에서 ‘느낀다’. ‘그냥’ 그 수고를 기꺼이 감당해 본다. 어려운 퍼즐같지만 오늘도 여전히 나는 이 시집을 읽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