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물고기 빤짝이 뜨인돌 그림책 46
폴 코르 지음, 부희령 옮김 / 뜨인돌어린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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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코르,『꼬마 물고기 빤짝이』, 뜨인돌 그림책 46, (부회령 역), 뜨인돌어린이 2015년 3월


I

할망바당


1.

겨울바다를 가 본 적이 있다. 그 바다는 삼색으로 조화로왔다. 검고, 희며, 푸르다. 용암바위가 바다 사이사이에 박혀 빛난다. 바람이 바다를 밀어 파도가 인다. 파도는 바위 사이를 흐른다. 다시 바람이 바다를 쓸어주면 포말은 밀리듯 사라진다. 바다에게 이름을 물었다. ‘할망바당’이다. 해녀들이 만나는 마지막 바당이라 한다. 얕고, 잔잔하다. 먼바다로 나갈 힘이 있는 강한 해녀들이 여린해녀들을 위해 배려하는 바당이다. 그 여린 해녀들 중에는 한때 상군을 거쳤으리라. 세월은 그 바당에서 그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파도에 실어 흘려보냈다. 이 할망바당은 공존마당이다.


2.

사진작가 유용예가 있다. 그녀는 가파도에서 ‘할망마당’을 드나드는 해녀들을 위해 사진을 남겼다. 그 작품들을 모아 2017년 가파도 하동마을 길에서 사진전을 열었다고 한다. 가파도 해녀들은 이 여린 사진작가를 마침내 해녀로 받아들였다. 아기해녀는 스스럼없이 할망해녀들과 나란히 걷는다. 그들을 위해 스스로 사진해녀가 되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살았다. 그리고 해녀로서 같은 시공간을 산다. 하여 해녀는 이 이질적인 두 사람들을 위한 공존마당이다. 꽃테왁을 만들어 주고 집을 내어주었다. 바다로 한 걸음을 내딛으며 함께 들어갔다. 호맹이대신 카메라를 들어도 좋다고 했다. 그녀가 자기 물질을 담도록 했다. 사진은 공존이다.


3.

우연히 이 ‘할망바당’사진과 그 이야기를 다시 보았다. 최고 해녀가 마지막 만나는 이 바당은 낮고 얕다. 거친 숨을 내쉬며 깊은 바다 속을 내집처럼 물질하던 상군해녀들에게 마지막 바당은 어울리지 않는다. 다시 여린해녀다. 삶의 최고 지점에서 다시 낮고 얕은 세계로 기꺼이 되돌아갔다. 이 강하고 여린 해녀들이 만들어낸 ‘할망바당’은 가장 견고한 대동세계다.


II

그림책


1.

그림책을 펼쳤다. 이스라엘출신 폴 코르(1926-2001)의 작품이다. 그는 이스라엘 화폐를 도안했다. 자긍심이 높았다. 이스라엘인들의 주머니에 자기 그림이 들어있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의 화려한 경력이 무르익어갈 즈음, 그는 가장 여리게 보이는 작품을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그림책이다. 그는 삶이 끝나는 즈음에 그림책시리즈를 마감했다. 모두 세 권이었다. 1990년에 1권이 나온 이후 1999년 3권이 발간되었다. 10년이 걸렸다. 그의 책이 2015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히브리어 제목 그대로『꼬마 물고기 빤짝이』(뜨린돌어린이, 2015)다. 작가는 꼬마물고기가족에게 은광코팅을 입혀주었다. 거친바다 한 복판에서 이 꼬마물고기는 빛난다.


2.

폴 코르는 암에 시달린 거친 삶을 살았다. 그도 생애 끝으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숨비는 잦아들고, 물질은 짧아졌다. 그 틈에 상상은 높아지고, 이야기는 깊어졌다. 그림책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생의 끝에서 파란 바다, 은빛 물고기, 검고 흰 줄을 가진 거대한 고래를 상상했다. 타인을 위한 따뜻한 만남을 생각했다. 서로 역경을 헤쳐 나가는 꿈을 떠올렸다. 마침내 행복한 공존을 완성했다. 그의 임종 세계는 이 꼬마물고기에서 더욱 빛난다. 어쩌면 그에게 이 그림책은 ‘할망바당’이었으리라. 책을 펼치면 그가 그려놓은 파란 바다 속을 꼬마물고기를 따라 유영하는 것 같다. 좋다.


III

음식공존


1.

요즘 음식을 선별하고 있다. 거창한 일은 아니다. 살아가는 한 방식이 달라지고 있을 뿐이다. 먹고 싶은 것을 대할 때마다 먹지 않아보려고 하는 정도다. 즐겨먹고 맛있게 살았던 것들이 많았기에 이런 과정이 쉽지는 않다. 절식하는 결단도 필요하다. 삶은 당연히 건조해지는 듯하다. 먹을 거리를 먹지 않을 거리로 만드니 오죽할까싶다. 어찌되었든 먹을 거리에 있어서 내 삶은 낮고 얕아지고 있다. 눈이 휘둥그래지는 식탁이 즐비하다. 손을 거둘 수 없을 만큼 맛깔스런 요리도 산처럼 쌓였다. 일부러 비껴나지는 않는다. 이런 삶이 가볍진 않지만 어렵진 않을 것 같다.


2.

삶은 늘 역설적이다. 몇 가지 좋은 변화도 있다. 이 틈에 맛있는 것을 찾아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좀 더 상상을 발휘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보려는 호기심도 생긴다.귤하나를 나눠먹는 재미가 크다. 고구마를 다양하게 맛보는 기쁨도 크다. 지금은 잘 못하고 있지만, 정시정량을 먹는 일까지 하게 된다면 그것도 즐거우리라. 하루 세 토막 사이사이 꼭 맞게 챙기는 간식도 흥미로울 듯하다. 나의 먹거리를 누군가 기억해주는 일도 기대가 된다.


3.

먹거리에 있어서 나는 이제 낮고, 앝은 세계로 진입한 것인지 모른다. 거칠지만, 여린 바다같은 세계다. 격동하지도 않고, 깊은 숨비를 내뿜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물질이 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손에 잡히는 바당바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내세울 것 없는 할망바당같은 음식세계다. 이 세계에서 나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공존한다.


IV

공존세계


1.

삶은 시간이 흐르며 변화한다. 계절과 같다. 이변은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변화는 오히려 즐거움이다. 그 낮은 세계를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적응해내야만 할 과제는 아니다. 삶은 끝으로 갈수록 자연스럽게 낮고 얕아진 세계로 들어간다. 그 속에서 새로운 역동성이 보인다. 할망바다가 그렇고, 한 작가의 그림책이 그렇다.


2.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침보다 하늘이 푸르다. 가벼운 책과 간단한 간식, 시원한 물, 포크와 발라드가 번갈아가며 나오는 노래, 맛깔스런 이야기들이 여전히 좋다. 평범한 것들이었지만 이젠 새롭다. 그것들과 함께 손을 움직이고, 마음을 다독여 맛깔스런 하루를 누린다. 시간은 한결같이 변화하며 실감나게 흐른다. 시간 창시자도 자유로우며, 일관되게 예측불가하게 자기 세계를 주도한다. 그림책 같다. 그 속에서 나도 할망바다를 유영하듯 뒤따른다. 


즐거운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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