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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어 - 세상 사람들이 뽑은 가장 소중한 단어 50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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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설문으로 추린 '인생의 목적어' 50개는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가족, 사랑, 나, 엄마, 꿈, 친구, 행복, 우리, 돈, 여행. 작가는 이 평범한 단어들을 다시 곱씹는다. 카피라이터'답게' 간결하고 함축적이다. 독자는 편하고 아마, 작가는 치열했을 테다. 하지만 즐거웠던 것 같다. '치열'은 '고통'이 아니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즐겁고도 치열한 삶. 누군가 부러워야 한다면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었다.

 


책장을 가볍게 넘겨가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묵직해질 때가 있었다. 특히 '밥' 이야기를 할 때, 울지는 않았지만 울컥한 순간이 있었다. 독서 중에 기분이 차분히 가라앉는 경우는 많지만, 훅, 하고 치고 들어온 적은 별로 없으니, 특별하다면 특별했다.

"김밥 사세요!"
"김밥 사세요!"

그의 말은 쩌렁쩌렁 여의도를 흔든다. 사세요, 라고 말을 올리고 있지만 그건 선배사원이 신입사원에게 하는 존경심 없는 존댓말처럼 들린다..(중략)..

"천 원입니다!"
"천 원입니다!"

이 한 마디만 반복해서 외친다. 오랫동안 김밥을 팔아 와 가격만큼 경쟁력 있는 메시지가 없다는 것을 터득한 사람처럼 보인다. 이 가격에도 사지 않으면 너희가 손해야,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이번에도, 다음에 사지요, 하며 그냥 지나친다. 할머니 바로 뒤엔 아주머니 한 분, 그녀는 아직 김밥 파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듯 수줍게 외친다.

"저희 집에서 방금 싼 김밥입니다."
"제 딸아이랑 금방 싼 김밥입니다."

달랐다. 다르게 들렸다. 분명 김밥 사세요!랑 같은 말인데 그 말을 들은 내 귀는 금세 따뜻해졌다.(209,210)

나는 몇 번인가, 이런 이야기에 감동받은 자신을 부끄러워 하는 일들이 생기곤 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경험에 대해 숨기는 경향이 있다. 왠지 감동받았어, 라고 말하면 겨우 그런 이야기에 감동하다니, 라는 뉘앙스의 침묵이 따라온다. 나 역시 침묵으로 대응하지만, 그렇다고 상처받지 않은 건 아니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따져보면 이런 이야기에 언제나 귀를 열어주었던 사람들이었다. 아마 내가 이 에피소드를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이 김밥 파는 아주머니가 수줍게 외친 목소리의 따뜻한 온도, 그런 것을 기대하고 이야기하는 것일 테다. 

이 책의 부작용이라 한다면 잊고 지내던 소중한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는 것이다. 부작용은 엄연히 말해, 부수적인 작용이지 다른 불순한 뜻이 아니라는 걸 먼저 말해야겠다. 정말 오랜만에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을 떠올랐다. 지금보다 훨씬 젊은이에 가까웠던 10년 전 부모님, 밤낮으로 주구장창 컴퓨터로 음악을 서치하던 스무 살, 헤어진 사람의 자상했던 순간들, 남자친구의 돌고래 같은 웃음소리, 오빠를 따라 하루 종일 게임에 빠져들었던 어린 시절, 오후 5시 쯤이었나 천사소녀 네티를 보다가 학원에 가야해서 아쉬워 하던 순간 같은 것이 계속 떠올랐다. 상을 받거나, 좋은 성적을 받거나, 비싼 선물을 받거나 하는 그럴 듯한 일들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정말 아무 것도 아닌, 누구나 거쳐가는 그런 종류의 기억들이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아마도 독자는, 예민하건 그렇지 않건, 책을 통해 작가의 생활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파악하게 될 것 같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걸어온 길에 대한 이야기, 주변 친구에 대한 이야기 등 모든 글은 작가의 삶에서 시작한다. 작가의 삶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다는 느낌도 없다. 하지만 그가 삶을 대하는 방식에서 아,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구나 싶은 팁들이 종종 보인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를 꼽으라면 나는 워너브라더스행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던 그 1년을 꼽는다. 지금도 그 1년은 내 경력에서 지워지고 없다. 그 회사에서 뭐 했어?라고 누가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어서다. 분명히 1년을 열심히 달렸는데 무엇을 했는지 나조차 설명할 수 없어서다. 기차는 내가 내린 후에도 조금 더 달렸다. 멈추지 못해 움직이는 그런 꼴이었다.(330)

나를 성토한 놈들 줄줄이 다 엮겠다는 복수열전 같은 생각이 글 하나를 낳았다. 물론 억지스러운 글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하는 거다. 어제 하루 아무 것도 쓸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너무 거창한 생각만을 생각이라고 생각해서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내게 필요한 정보의 80%는 내 주위에 몰려 있다고 한다. 생각할 재료도 그렇다. 작은 것, 사소한 것, 가까운 것부터 생각한다면 생각의 빈곤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다. 처음부터 노벨상을 가져오겠다는 생각이나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생각을 방해하는 짐이 된다.(341)


책을 읽기 전까지 저자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지금도 별 정보는 없지만 분명한 건 이 책 하나에 '정철'이라는 작가의 '글'을 기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글'이란 참 솔직하다. 글쓴이의 이력은 중요치 않고, 쓰여있는 글만으로 마음에 들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니까. 글에서는 얼마나 열심히 살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한 순간이라도 얼마나 치열했느냐, 그것이 중요해진다. 좋은 작가들은 치열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 글 쓰는 대상의 이면을 꿰뚫 수 없을 테니까. 그 뜨거운 관찰력이, 그들에게 반하고 또 반하는 까닭이다.

 

이 책을 읽었다면 한 번쯤은 물어볼 것 같다. 내 인생의 목적어는 무엇인지. 그리고 문득 깨달은 것은,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 질문이 어마무시하게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답이 안 나왔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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