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5분 정리의 힘 - 삶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공간, 시간, 인맥 정리법
윤선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8월 초에 여름 휴가 였다. 어디 여행 가는 것도 아니고 집에만 있었다. 남들은 그게 휴가냐고 하는데, 나한테는 그게 휴가가 맞다. 아무 것도 하지 않기. 아마도 지난 2년 간 가장 소망한 일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지키지 못했다. 책이나 읽자고 고른 <하루 15분 정리의 힘>(이하 <하루 정리>)때문에 휴가 내내 '정리'만 했다.

 

사실 난 정리를 좋아한다.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걸 좋아한다. 왜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고,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친구 집에 놀러가면 인형놀이하다가 친구방 정리하고 그랬다. 혼돈계, 복잡계가 눈 앞에 선연한데 도저히 가만히 둘 수 없다. 그렇다고 정리의 '달인'이 될 만큼 특별한 정리법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또 움직이는 것이 '정리의 힘'이었다.

 

이런 내가 '정리법'에 눈을 뜬 계기는 대학시절에 읽은 '아무 것도 못 버리는 사람'이란 책이었다. 제목만으로도 강력했다. 그때의 나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여기서 저기로 옮기고 먼지를 닦는 일만이 '정리'라고 생각했다. 한 번 수중에 들어온 물건을 버린다는 건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책은 일단은 '버리라'고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내용이 집을 아홉 분할하면 각 구역마다 관장하는 기운이 있는데 가령 어느 한 쪽이 잡동사니로 막히면 건강이나 돈을 잃을 수 있다는 등 미신적인 부분이었다. 바로 그 부분에 설득당해서 집 안에 있는 것들을 버리고 또 버렸던 기억이 난다. 정말로 많이 버렸고, 심지어 버려서는 안 될 것들도 버린 뒤에 후회하기도 했다.(추억의 물건은 버리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버린 뒤에 느낀 '홀가분함'. 그 뒤로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지만 '물건을 갖고 싶다' 즉 견물생심에서 상당히 벗어났다고 할까.(그렇지만 갖고 싶은 것들은 끊임없이 생겨난다)

 

무소유 정신은 아니지만, 소유욕을 줄이면서 정말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건 중요하다. 결국 '버리는 과정'은 진짜 원하는 것에 '집중'하기 위한 작업일 것이다. 이번 기회에 <하루 정리>를 읽으면서 그 동안 잊고 있었던 '버림'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이 곧바로 실천으로 이어진 까닭은, 지금의 나는 뭔가 잘못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건 내가 원하던 삶의 방식이 아니다, 라며 매일 투덜거리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왜 투덜이가 되었지? 이런 나로부터 어떻게 벗어나지? 그때 돌아본 서재와 옷장과 서랍과 책상의 쌓여있는 물건들, 물론 정리벽 때문에 곱게 쌓여있지만 너무 많게 느껴지는 물건들을 보자 갑갑했다.

 

그때부터 아무 생각없이(정신을 차려보니) 정리를 시작했다. 그야말로 대대적인 작업이었다. 더이상 풀지 않을 영어 문제집(토익책)과 몇 년 동안 입지 않은 옷, 쓰지 않은 노트, 메모지, 펜, 샘플로 받은 화장품 등등.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무엇을 버릴 지 떠올랐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무 것도 없는 방에 몇 권의 책과 단순한 옷 몇 벌과 스탠드 아래 노트북만 놓인 채 가벼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나'를 꿈꾸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 모습이 내가 원하는 것인가? 이건 거의 승려인데.(무소유 쩌는) 불심이나 도심을 닦을 마음은 전혀 없지만, 거의 아무 것도 갖지 않은 상태가 많은 것을 자유롭게 가질 수 있는 상태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휴가가 끝난 지금까지도 나는 무엇을 버릴 지 의식하고 있다. 저번 주말에는 버리지 못하던 잡지 몇 권을 청산했다. (좋아하는 기사만 스크랩) 그래도 여전히 잡지들이 남아있다. 사실 <하루 정리>에는 정리에 관한 여러 방법이 들어 있는데, 내가 귀퉁이를 접어 놓고 반복해 읽은 부분은 -단 하나뿐인 소중한 삶을 남의 것으로 만들지 말자. 삶을 정리하여 비우고, 나눈 자리에 진짜 소중한 것들을 새로 채워가자(120)-이다. '진짜 소중한 것으로 채우기' 삶이 한 번뿐이라면 그럴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의 선택으로 채워진 공간을 비울 때 오는 조용한 쾌감도 느껴볼 만 하다. 한동안 나는 많은 물건을 의식적으로 대할 것 같다. 피곤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좋다. 나중에 빈 공간을 다시 채울 때는 정말로 좋아하는 것들이 거기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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