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새벽 2시까지 뒤척였다.
입이 바짝 말랐고 물을 조금이라도 마셔야 잠이 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몸이 무거워 물을 뜨러 갈 수 없었다.(이래서 자리끼가 필요!)
조금 더 뒤척거리다가 이대로 영영 잠 들 수 없을 것 같아 일단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갔다.
희미한 불빛에 비춰 물을 따라 겨우 세 모금을 마시고 방으로 돌아와 누우니 바로 잠이 들었다.
잠이 드는 순간까지 여러 가지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아니 분명히 있었고 
솔직히 말하면 요즘 피곤할 정도로 고민에 짓눌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어떤 문장에든 민감할 정도로 반응하고야 만다.
(내가 늘 원했던 그런 상태지만 결코 신나는 일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평소보다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어느 순간 내 눈은 흰자위를 다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 정도로 요즘의 내 눈은 빨갛기만 하다.)

그런 눈으로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김성중의 소설집 <개그맨>을 펼쳐 두 번째 단편을 읽기 시작했다.
제목은 <그림자>였다. 몇 장을 읽고서 예전에 한 번 읽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다음 이야기가 기억났다.
그러나 기억은 한 번에 모든 것을 재생시키지 못하고
한 페이지마다 다음 한 페이지를 기억하는 식으로 점진적으로 일어났다.
그래서 다시 소설을 끝까지 읽어야 했다.
소설의 끝문장까지 읽었을 때, 아 맞다 이런 이야기였어, 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다시 돌아온 기억이 읽는 시간을 단축시켜준다거나 더 이상 읽지 않아도 되는 효율을 제공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상황과 다소 맞지 않는 구절을 떠올린 것일지 모르겠으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서두를 아우르던,
'일생에 한 번은 없는 것과 같다'는 부분이 머릿 속을 스쳤다.
두 번을 읽고서야 정말로 읽은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번째 읽을 기회가 있다면 '두 번은 없는 것과 같다'는 식으로 쿤데라의 말을 빌려 쓸 수도 있을 테다.

김성중의 단편을 겨우 두 개 읽었지만 작가의 소설에 대해 뭔가 말하고 싶었다.
아니다. 겨우 두 개라고 할 수 없다. 그 안에 들인 작가의 공력을 생각한다면
그 두 편 속에 어쩌면 작가의 두 계절이 들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보통 한 계절에 단편 하나를 발표한다고 생각하다면 말이다.)
처음에 소설들이 독자를 이끌어가는 큰 요소는 '상상력'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곰곰이, 의도치 않은 생각을 거듭하면서 작가가 장악하고 있는 부분은
상상력이 아니라 상상력의 기반이 되는 '존재론적 물음'이라고 나름의 답을 내리게 되었다.
  

첫 번째 단편 <허공의 아이들>에서는 사라지는 세계에서 성장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26)였고
두 번째 단편 <그림자>에서는 자아라는 연속성이 사라진다면 인간은 대체 무슨 존재란 말인가(44)였다. 
그리고 그 물음을 끌어낸 매개체 혹은 묻기 위해 발견된 상징물이 '허공'이었고 '그림자'인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한 점이 시를 써보려 했을 때, 내가 흔히 겪었던 시의 메커니즘을 상기시켰다.
당시 나한테는 그런 심오한 질문 같은 것이 없었고, 그래서 빈약한 상상력과 언어의 조합에 기대려했기 때문에
쓸 때마다 자신을 소비시키는 혼곤함만 지속 될 뿐이었다.
혼돈 속에서 글쓰기라는 행위자체에 소비되지 않으려면 작가는 스스로에게 끝없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작가들에게 호감을 느끼는 부분이고, 좋아하는 작가들에게는 언제나 그런 것을 읽어왔다. 
 
김성중이 '좋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는 건 내가 부족한 독자이기 때문이다.
다만 앞으로의 소설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림자>에 대해서는 따로 정리를 할 생각이지만
시간을 더 갖는다고 해서 정연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대로 읽은 만큼 생각한 만큼 뒤죽박죽이 되겠지만
예전처럼 이 과정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그게 예쁘지 않다고 버리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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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1-10-1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그맨, 허공의 아이들, 내 의자를 돌려주세요(맞나요...?)를 각각 다른 곳에서 보았던 기억이 나요. 김토끼 님은, 토끼니까, 빨간 눈이 어쩐지 어울려요.

김토끼 2011-10-21 09:1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그 세 개의 소설 모두 김성중 소설가의 작품입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눈이 시리네요. 빨간 눈이 싫어요 ㅠ 그래도 어울린다는 말은 어딘지 듣기 좋은 것 같습니다 ;; 그래도.. 잠을 많이 자고 원래대로 돌아가야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