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158
하인리히 뵐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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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하인리히 뵐의 소설들을 읽어가겠다고 했는데, 이번이 두 번째 책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가난한 캐테와 프레드의 이야기다. 그들은 전쟁 이후에 가난해졌고, 비참해졌고, 회복이 좀 불능한 그런 부부이다. 그것은 물론 모든 소설이 관통해야만 하는 인간의 정신적인 결여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끊임없이 그들의 상황을 '묘사'하기보다는 '보도'하고 있으므로 독자가 인물의 정신적인 결여따위를 진중하게 고민하기보다는, 지켜보고 잊어버리려고 한다고 해야겠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거리를 걷고, 버스를 타고,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남편을 만나기위해 호텔로 향하고, 심지어 데이트를 하는 와중에(어쩌면 데이트를 하는 중에 가장) 전후 독일을 둘러싼, 광고문구들이 그들의 삶에 개입된다. 불쑥, 하늘에서 비행기가 연기로 하얀 광고문구를 그리고, 건물 벽에 글자들이 붙어있고, 갑자기 채소장수가 나타나 양배추가 얼마라고 외치는 식이다. 그 모든 것이 현실이 얼마나 기이하고, 소설이 얼마나 진지하지 않으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잡음이 많다고 해야할까. 지금 내가 이 소설에 대해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어느 거리에서건 그런 소리들이 누군가의, 진지해져보려는, 좀 더 행복해져보려는, 아니면 불행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여기는 이들의 귀를 뚫고 이미 그 삶 속에 추가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오늘 거리를 나간 동안 분명 그런 소리들을 혹은 광고문구들을 지나쳤을 테지만, 그것들 때문에 내가 어떤 타격을 입었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것은 그냥 그것대로 살아있고, 나는 나대로 살아있다. 다만 소설에서 그 소리들은, 너무나 눈에 띈다. 그 소리들은 끊임없이 다른 목소리로 반복되지만, 같은 목적을 가진 것들이다. 소설이 그들의 시간-소설의 내용상 2일에 불과한 시간-을 보도한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그것 때문이다. 이전에 읽은 뵐의 <카타리나 불룸의 잃어버린 명예>에서와 마찬가지로 한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한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임에는 분명해보인다. 

  

아이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이 두 부부에게서, 몹쓸 느낌을 받는다면, 아마도 그들이 가난이 아닌 불행을 그 자식들에게 물려주려하기 때문이다. 측은하게 바라보고, 측은하지 않아보이는 아이들을 걱정하고-너무도 정상적인 미소를 짓는 그들을 걱정하고-, 내심 아이들의 얼굴이 어둡기를 바라는 캐테가-그러나 소설에서 이런 식의 노골적인 정서 표현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무서웠다. 캐테는 다른 이의 불행을 통해 보상받고 싶은 것일지도 몰랐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은 소설과 현실의 맥락을 잇는, 인간의 본능 같은 것일까,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약100년 쯤 전에 프랑수아즈 사강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시몽을 바라보면서 했던 생각이,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일 뿐이다. 아마도 캐테가 그런 여자로 보였던 것은, 갑자기 사강의 소설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캐테를 아이들을 끔찍히 사랑하는 그저 어머니인 여자로 바라볼 수 없는 노릇이다. 그녀에게는 욕망이 좌절된 채로 남아있고, 어떤 삶에 대한 갈급증이 보인다. 어쩌면 그 삶은 프레드와 단 둘만 남아있는 상황이 연속되는 그런 삶이었을까. 그토록 자신을 아프게 하는 프레드-아픈 만큼 계속 사랑하고, 버릴 수 없고, 품을 수도 없고, 불행을 나눠가질 수도, 함께 행복해질 수도 없는 그 프레드-와 유보된 상태의 사랑을, 지속하고 싶어하는 캐테가 읽혔다. 그를 위해 더 예쁘게 보이고 싶고, 매춘부로 오인될지라도 꼬박꼬박 그를 만나기 위해 호텔을 찾는 것이다. 캐테는 이미 너무 많이 초라해진 여자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프레드는 그녀에게 몇 번이고 반하는 남자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프레드는 남편이나 아버지로 불리기에는 다소 부족한 사람이다. 그것이 그녀의 가장 큰 불행인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분명히 해피엔딩이다. 최근에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마음을 울리는 끝이었다. 다시 처음, 첫 페이지로 돌아가 소설을 다시 시작하고 싶게 만들었다. 아주 단순한 끝이지만, 단순하지 않으면 어떻게 끝냈을까 싶은 소설이었기에 이런 끝이 좋았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어쩌면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간 후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있는 소설인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아직도 프레드가 캐테와 한 침대에 누워, 자신에게 등을 보이고 그녀가 누워 있다는 이유로 상처받았던,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불을 끈 방에서 보이지 않는 그녀가 등을 돌리고 누웠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손을 뻗어보는 프레드. 사랑이 계속된다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약해서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빠져 있는 상태를 견딜만큼은 힘이 있기에 사랑에 빠지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이 소설을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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