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교회를 다니지는 않지만 한때 '내려놓음'이라는 주제에 깊이 빠져서 이용규 목사의 <내려놓음>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종교와 신앙을 조금 이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중 특히 마음에 든 부분은 신의 '예비하심'이었다. 말하자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까닭은 그 일을 신이 예비하셨기 때문으로 그 일은 고난일 수도 기쁨일 수도 있으며, 신은 그러한 예비하심으로 신의 어린 양들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는 이야기였다. (어쨌든 이후로 종교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를 읽으면서 자주 '신의 예비하심'과 '인간의 운명'이라는 말들을 떠올렸다. 이것이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 종교적으로 보면 신의 영역에 속해있지만 또 전적으로 과학의 영역에서 발생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복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복제'인간이 아니라 복제'인간'이라는 점이다.  

(스포일러 주의)
소설 전반을 정리하자면 복제인간들을 학습시키는 헤일셤에서 유년(그들에게도 유년이 있다면)을 보낸 캐시를 화자로 내세워, 캐시와 그 주변인물들인 루스와 토미, 루시 선생님과 에밀리 선생님, 마담, 코티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이 큰 틀이고 소설을 이끄는 문제적인 지점은 복제 인간의 '장기 기증'이다. 그러니까 장기 기증을 위해 복제된 그들이 한 인간으로서 정당하게 살아가고 싶어도 애당초 그들에게 부여된 '장기 기증'의 목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든 타의에 의한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그들 사이에서 떠도는 희망적인 소문조차 그러한 죽음의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대책(저항이나 내란)이 아니라 그것을 조금 미룰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얼마나 절망에 익숙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우리는 절망적이야, 라고 단언하지 않는다. 다만 캐시와 토미의 사례를 통해 그들에게도 영혼이 있으며, 그것이 보통의 인간보다 훨씬 여리고 예민하며 뛰어난 것이리라 예상할 수 있다.   

일단 정리를 했지만 이 소설은 복제라는 SF적인 요소나 그에 따른 일반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으로 마무리 되지는 않는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소설은 예정된 미래, 곧 그 미래와 동의어라고 볼 수 있는 '공포와 슬픔' 앞에서조차 삶을 포기할 줄 모른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보다 인간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복제라는 미지의 소재에 천착하지 않으며(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뒷부분으로 가면서 드러나는 헤일셤과 마담의 존재에서 서스펜스가 약하다) 오직 인간에 대해, 인간과 인간의 관계 맺음의 사소함과 미묘함에 대해 쓰고 있다. 그것은 곧 나에게도 있는 것, 너에게도 있는 것, 공통의 경험으로 묶인 인류에게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밥을 먹으려고 늘어선 식당의 긴 줄 안에 서 있을 때 그러한 시끄러움과 산만함 속에서 오히려 (아무도 없는 방 한 구석의 집중과 고요보다) 상대방의 비밀을 끌어내기에 더 적합하다는 것을,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주변 세상을 겁내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 따위를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된다. 독자를 두 번 세 번 돌아보게 하고 두 번 세 번 뜨끔하게 만들면서 나아간다. (아마도 좋은 작가가 때때로 독자에게 힘든 경험을 선사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지 모르겠다.)

 네버 렛 미 고. 
가고 싶지 않을 때, 
그것은 이 곳을 떠나고 싶지 않는 것과 그 곳만큼은 가고 싶지 않다는 두 가지 경우를 갖는다. 어느 쪽이 더 불행하고 덜 불행한지는 알 수 없다. 누군가는 떠나고 싶지 않은 '이곳'을 가졌고 누군가는 가닿고 싶지 않은 '저곳'을 가졌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자의 경우가 훨씬 인간적인 선택 사항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거기에는 이곳을 떠난 이후에 또 다른 '이곳'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고 싶지 않은 그곳으로 나를 보낸다면, 나는 오직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갈 뿐이다. 그래서 네버 렛 미 고. 그러나 여기에는 인정이 없다. 소설 속 루스와 토미, 캐시는 그곳으로 갔거나 아직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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