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밀로의 어머니처럼

카밀로의 어머니(그녀도 자그마한 발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는 뭐든 가리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집을 찾아가니 풀밭 나무의자에 앉아 뭔가 열심히 읽고 있는 그녀의 주변 여기저기에 하얀 종이가 흩어져 있었다. 카밀로가 한 출판사에서 비평을 청탁받은 미출간 소설의 교정쇄였다. 어머니가 읽기도 전에 종이가 바람에 흩어져 순서가 뒤섞여버린 것이다. 엄마, 이러면 줄거리를 알 수 없잖아요, 라고 카밀로가 말하자 그녀는 아니야, 순서 같은 건 몰라도 상관없어, 하고 합죽한 입가에 부끄러운 듯 미소를 띠고는 흩어진 종이를 한 장 한장 주워모아 계속 읽었다. 우리는 그것을 카밀로 어머니의 누보로망적 독서라 이름 붙이고는 밀라노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떠올리며 웃었다.

스가 아쓰코, 밀라노 안개의 풍경 중 철도원의 집 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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