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숨은아이 > 반품되는 책의 운명

내게는 지금, 바꿔달라고 서점에 요구해도 될 만한 책이 두 권 있다. 표지에 먹박으로 찍은 제목 글자가 두 번 겹쳐져 눈이 조금 어지러운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와...


앞부분 면지와 내지가 철심 종이찍개로 찢긴 듯한 시공주니어판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이다. 왜 이런 상처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내지는 상당히 여러 장에 걸쳐 찢어졌고, 그 뒤에도 찢어지진 않았지만 눌린 자국이 꽤 여러 쪽 있다.




하지만 글을 읽는 데는 큰 불편이 없기에 반품하지 않았다. 다만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를 샀을 때는, 책을 열어보지 않아도 첫눈에 알 수 있는 것이므로 앞으로 책을 보낼 때 주의하길 바란다는 메일을 알라딘에 보냈다. (알라딘에서는 흠이 있으면 반품하라는 정중하지만 형식적인 답장이 왔던 걸로 기억한다. --;)

물론 책의 내용이 있는 부분에 인쇄가 잘못되었다거나 제책이 잘못되어 몇 장이 빠졌다면 당연히 반품하고 새 책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반품 사유가 분명한데도 이들 책을 바꾸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전에 다니던 한 출판사에서는 전 직원이 한 달에 한 번, 사무실 근무를 오전에 마치고 우르르 찾아가던 곳이 있었다. 책의 보관과 유통을 대행해주는 회사의 책 창고였다. 매달 결산을 앞두고 전국 각지의 서점에서 반품한 책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서점에서 책을 반품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책에 흠이 있는 경우. 곧 인쇄가 잘못되거나 책이 찢어졌다든가. 둘째, 오래도록 팔리지 않은 책이라서. 셋째, 책은 잘 팔리지만 그달 출판사에 지불할 금액을 낮추기 위해. 이 경우는 아주 악질적이라고 볼 수 있다. 잘 나가는 책을 자기들이 대량 주문해놓고는, 출판사에 돈을 줄 날짜 직전에 왕창 반품해버린다. 출판사에서는 그 서점이 주문한 책들의 값에서 반품한 책들의 값을 뺀 액수를 받는다. 그것도 전액 다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서점에선 그 날짜가 지나면 똑같은 책을 또 주문한다.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책은 상하고, 일시적으로 그 서점에선 그 책이 품절된 탓에 독자도 놓치고, 또 책을 서점으로 배송하는 비용뿐 아니라 반품 비용까지 출판사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출판사로서는 이중 삼중 손해를 보게 된다.)

산처럼 쌓인 반품 상자를 풀고, 반품 명세서와 상자 속에 든 책이 일치하는지 확인한 다음, 종류별로 책을 쌓는다. 멀쩡한 책은 다시 유통하고, 흠이 있거나 너무 오래되어 독자가 다시 찾을 가능성이 없는 책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다. 버려지는 책들.

흠이 있거나, 너무 오래되어 독자가 다시 찾을 가능성이 없는 책, 너무 안 팔려 출판사 쪽에서 영업을 포기한 책은 한데 모아 빨간색이나 까만색 라커를 뿌린다. 책을 확실히 더럽혀 불법 유통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순간, 지은이와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열정이 빚어낸, 어떤 지혜나 지식, 재미와 웃음, 감동을 담은 책 한 권이 몇 십 원짜리 폐지가 된다. 폐지를 전문으로 다루는 회사에서 이것들을 싣고 가서는 며칠 뒤, 이 책(이었던 것)들을 조각조각 자른 사진을 보내온다. 불법 유통하지 않고 틀림없이 폐지 처리했음을 알리기 위해서다.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래서, 정말 책을 함부로 만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렇게 쉽게 버려질 책은 만들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웬만한 흠 가지고는 반품 교환도 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일차로 독자의 손때를 묻히며 읽히다가, 이차로 헌책방이나 도서관 같은 곳에서 쓰임새를 다하다가, 수명을 다해 낡고 해어져서 버려지는 건 괜찮다. 책으로서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바람구두 > 마감한 뒤에 오는....

겨울호를 마감했습니다.
이제부터 제게는 새로운 겨울이 시작되었고, 이미 다가오는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 인민에 의한 '새로운 헌법 만들기'의 첫 시동을 걸자는 맥락에서 "헌법을 생각한다" 특집을 기획한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편협한 민족주의를 벗어나서 작게는 동북아, 동아시아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보자는 한중일 삼국 지식인들의 역사적 연대와 민중적 결합을 첫 시동을 걸어보자는 취지에서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를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들과 허심탄회하게 나눠 본 대화가 될 겁니다.

다가오는 봄에는 더욱 문제적인 특집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황해문화 2004년 겨울호 (통권45호)

권두비평/ 지식부재시대의 지식 - 김동춘(황해문화 편집자문위원, 성공회대 교수)

특집/ 헌법을 생각한다
1. 헌법은 우리에게 무엇인가_ 헌법의 정의, 헌법의 정신/ 김종철(연세대 법대 교수)
2. 헌법의 어제와 오늘/ 이경주(인하대 법대 교수)
3. 헌법재판소, 한국의 “원로원”? / 이석태(변호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회장)
4. 미래지향적 헌법 전문 다시쓰기
서동진, 하종강, 이필렬, 정희진, 복거일, 정욱식, 김진호, 이란주, 변연식 / 기획의도(김명인)

창작/ 시/ 백무산, 최창균, 고두현, 이윤학, 이병률,
소설/ 마을버스를 타고 / 송영

황해네트워크/ 수도 이전의 전후이야기/ 김광현(동아일보 기자)

통일을 준비한다/ 북한이탈주민과 어떻게 지낼 것인가?/ 이우영(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인천, 이 사람/ 김윤식

기획/ 동아시아 평화와 역사읽기(황해문화 주최)/ 기획의도(백원담)
과거로서의 미래의 재구축-민족서사, 발전주의, 그리고 아시아 상상 / 왕후이(칭화대학(淸華大學) 중문과 교수)
어떻게 동북아의 ‘전후(戰後)’를 논할 것인가-고구려문제가 불러일으킨 생각 / 쑨꺼(중국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연구원)
미래지향적 민족주의와 신국제주의 / 췌이즈위안(중국 칭화대학 공공관리학원 교수)
동아시아 평화 구축을 위한 역사 읽기: 몇 가지 제언 / 백영서(연세대 사학과 교수)
중국 동북공정의 논리와 대응방향 / 이남주(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동북아평화에 대한 문화적 상상과 역사문제 / 백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고구려사 문제’와 일본의 동북아시아 인식 / 권혁태(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지상중계 - 동북아 평화와 역사읽기 / 박자영

기고/ 문학과 종교/ 윤영천(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

문화비평
1.영화/ 영화의 정치성 - 폭력에 대한 카메라의 수사학/ 박명진
2.음악/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의 개작(리메이크)과 재발매에 대한 만감/ 신현준
3.건축/ 아키토피아의 그림자, ‘건축도시’는 가능한가?/ 전진삼
4.연극/ 관객이란 연극의 언어/ 안치운
5.미디어/ 국가보안법/ 김창남
6.사진/ 경성은 어떻게 재현되었나-경성시구개정사업과 도시계획사진아카이브/ 이경민
7.문학/ 이효석 문학관 운영에서 배워야 할 몇 가지/ 김경수
8.미술/ 박생광-한국미술의 잃어버린 영성을 그린 작가/ 박영택
9.출판/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과 인천/ 최성일

서평
1. 덩샤오핑 평전/ 성근제(연세대 강사)
2. 테러시대의 철학(하버마스, 데리다와의 대화)/ 황훈성(동국대 영문과 교수)
3.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현대사/ 이승환(민화협 정책위원장)
4. 인천이야기 100장면/ 김창수(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문학평론가)


“헌법재판소, 정당성 위기에 처했다”

[한겨레] 헌법학자 등 ‘황해문화’서 헌재 비판적 재구성 주문

헌법을 생각하는 일은 그러나, ‘헌법 전문 다시 쓰기’ 같은 생산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행 헌법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독점되고 있기 때문이다.
뜻있는 헌법학자와 법률가들은 계간 <황해문화> 겨울호를 통해 헌재의 민주적 재구성을 주문한다. 김종철 교수(연세대 법대)는 헌재가 ‘정당성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한다. “헌법이 정치적·사회적 이해관계에 따라 견강부회의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헌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없이 정치적 주장의 포장물로 이용”됐기 때문이다. 최근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재 결정은 “우리 헌법의 기본인 성문헌법주의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일이었다.

헌재 스스로 입헌주의의 정당성을 갉아먹는 사태를 막기 위해 헌재의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려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게 김 교수의 문제의식이다. “시민단체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인사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법관 인사에 활용하는 것”도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는 한 대안이다.

다만 김 교수는 헌재를 비롯한 사법권에 대한 ‘직접민주주의적 열정’이 성급한 개헌논의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한다. (직접)민주주의와 함께 근대 헌정질서의 또다른 축인 입헌주의의 중요성을 가볍게 본 결과라는 것이다. 섣부른 개헌은 오히려 일부 극우세력의 준동 등 민주화의 후퇴로 귀결될 수도 있다고, 그는 경고한다.

이석태 변호사는 헌재를 ‘한국의 원로원’이라 꼬집는다. 민주주의를 가장한 고대 로마의 귀족정을 빗댄 표현이다. 87년 6월 항쟁의 끝에서 마련된 현행 헌법은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를 자임하고 있는데, 정작 헌재 재판관들은 이 ‘민주주의와 기본권’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부족하거나 오히려 적대적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국가안보와 개인의 기본권 보장이 충돌할 때마다, 대체로 국가안보의 측면을 우선시하는 결정들이 내려졌다. ‘자잘한 것은 위헌, 굵직한 것은 합헌’이라는 비아냥도 여기서 나왔다. 사립학교 교원노조 금지, 제3자 개입금지, 양심적 병역거부 불허 등의 근거법률에 대한 합헌판결이 대표적 사례다. 국제인권규약 등을 위헌 여부 판단의 준거로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보수적’관행도 여기에 작용했다.

결국 법치가 민주주의를 따라잡지 못하거나 이를 거스른 셈이다. 그래서 이 변호사는 “헌재의 민주적 구성과 국민 대표성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한다. “헌법 적용·해석을 사명으로 하는 헌재 재판관 가운데 몇사람은 반드시 헌법전공 학자를 임명”하자는 제안도 덧붙였다.

이경주 교수(인하대 법대)는 “건국 이후 올바른 헌법 주체 형성에 실패했다”고 짚었다. 헌법재판소가 제 노릇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국민을 중심으로 한 ‘헌법 주체’의 형성이 필수적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황해문화’ 겨울호 특집
“… 모든 권력은 백성으로부터 나오며 헌법기관은 백성의 대표자로서 백성이 맡긴 권한의 범위 안에서 법률의 규정에 따라 국정을 수행하며 … 이러한 근본정신에 반하는 모든 행위를 백성의 힘으로 바로잡는 저항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백성의 마땅한 권리임을 밝힌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들머리)의 일부다. 다만 아직 헌법 개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초안’이다. 변연식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대표가 썼다. 현행 헌법의 ‘대한국민’ 대신 ‘백성’을 헌법 주체로 삼았다. 직접민주주의의 정신과 저항권을 강조했다.

이런 전문은 또 어떤가. “… 대한민국은 인류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 가난과 국가폭력에 신음하는 모든 이들의 생명을 위해 … 전 지구적 존재의 보전과 안전을 위한 국제적 행동에 동참해야 한다. …” 김진호 목사는 인권의 가치를 앞세웠다. 평화헌법의 초안이다. 그것은 일국적이 아니라 세계적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고통의 지구화’에 맞서는 한 주체다.

저항권에 생명사상·평화주의에 차별반대
새로운 삼권분립까지‥다채로운 내용 담아
이 밖에도 7편의 헌법 전문이 더 있다. 계간 〈황해문화〉 겨울호는 ‘헌법을 생각한다’는 주제 아래, 각계각층의 인사들로부터 헌법 전문을 받아냈다.

이 작은 기획 자체가 우리 헌법에 대한 유쾌한 비틀기다. 근대 입헌주의 헌법의 역사는 인민의 피로 쓰여졌다. 우리 헌법은 다르다. 인민의 피를 딛고선 소수의 권력자들이 썼다. 그래서 ‘헌법 주체’가 국민인지 인민인지 백성인지 시민인지조차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구성원 각자가 나라의 지향을 고민하고 토론을 통해 국가규범의 기초를 닦는 ‘사회계약적’ 과정이 비어 있는 헌법이다. 〈황해문화〉는 이 기획을 통해 헌법을 다시 세우는 첫걸음이 무엇인지를 웅변한다. 정치학자·헌법학자 등의 헌정체제 논의와는 별개로, ‘헌법 다시 쓰기’를 둘러싼 국민적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헌법 전문은 나라의 꼴을 갖추는 일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인민의 한 사람’에 불과한 각 필자들의 헌법 전문을 읽어보면, 현행 헌법의 근본문제가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대다수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본권 개념의 공백 메우기를 시도했다. 평화와 노동의 가치도 등장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혈연적 민족 개념과 국민 국가주의에 기반한 우리 헌법의 ‘국민’ 범주”를 비판하며, 소수자를 헌법 주체로 당당히 격상시켰다. 새 헌법을 만드는 주체는 이제 “여성·장애인·동성애자·특정 지역민 배제의 역사와 근대국민국가의 욕망을 극복하고자 하는 남한 사회의 ‘우리’ 시민”이다.

노동문제 전문가 하종강은 아예 ‘국가(행정부)-대표체계(의회)-시민사회’로 이뤄지는 새로운 삼권분립의 원칙을 제시한다. 제4부로 독립한 검찰·감사원·선거관리위원회 등 권력감시기구들은 의회와 시민의 통제 아래 놓인다. 사회법과 평등의 정신도 강화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안보지상주의를 넘어서는 평화주의를,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는 국민국가의 폐쇄성 극복과 인종·민족차별 반대를, 환경운동가 이필렬 교수는 모든 생명이 서로 의지하는 생명사상을 헌법 전문에 녹였다. 보수적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소설가 복거일은 “전문에 너무 중요한 뜻과 임무를 부여하는 것은 현명한 판단으로 보기 어렵다”며 ‘우리 대한민국 인민들은 우리 삶을 인도할 원리와 규칙을 마련하기 위해 이 헌법을 제정한다’는 한 줄의 문장을 제시했다. 이들의 초안은 거칠고 도발적이지만, 분명한 점이 하나 있다. 필부가 쓴 어떤 헌법 전문도, 장황한 내용을 원고지 2장 분량의 한 문장에 우겨넣은 현행 헌법 전문보다 훨씬 읽기 쉽고 의미가 깊다는 것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1.20.토 이라크 학살 미국규탄 만민공동회에 함께 해요

 

이라크 학살 미국 규탄! 파병한국군 즉각 철군!
부시·블레어·노무현을 전범심판대로!
전쟁에 반대하는 우리의 목소리를 높입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발~* 2004-11-18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almas 2004-11-18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

비발~* 2004-11-18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AZ에 실렸던 사진입니다. 이라크 부상자 사살.

balmas 2004-11-18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기자 앞에서 이렇게 할 정도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정말 .........
 
 전출처 : 숨은아이 > 그들이 던진 한마디..

그들이 던진 한마디.. 2004/11/17 17:34

 

 

 

노무현은, 민주노총을 향해 "그들만의 노동운동" 세력이라고 했다. 노무현이 그런 말을 한 것은 한 두번이 아니지만, 외국에 나가서 그렇게 말했다. 노동행정 책임자인 김대환은 노동운동이 과거 민주화운동에 편승해 성장했으며, 대기업 노동자들은 그렇게 편승으로 과도하게 그 성과를 챙겨 먹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 장관이 아니라 한 사회과학자로 보아도 자기 말은 틀림이 없다 했다.  

 

그들의 말이 대기업노조를 비판하고 또 일부가 가진 의식에 대한 말이기에 그 범위 안에서는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들의 말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할 말로 보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말이다.

 

먼저, 따져 보아야 할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힘을 갖지 못하고 권리 찾기를 못한 것이 민주노총만의 책임인가 하는 점이다. 언제 해고될지, 언제 파견계약이 해지되어 일자리를 잃게 될지 전전긍긍하며, 적은 임금에도 일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한 책임이 모두 민주노총에게 있는가 ?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자기 권리 찾기를 싫어할까 ? 그들은 힘도 없고 빽도 없어 그런 생각 아예 접고, 적은 임금에도 먹고 살기 위해 더러운 꼴 다 보더라도 참고 산다. 그리고, 노조만들고, 또 다른 방법으로라도 사용자와 대등한 관계, 즉 헌법, 민법, 노동관계법에서 그렇게 주구장창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대등한 계약과 자유로운 계약을 요구하면 어떻게 될지 그들이라고 모를까 ?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안다. 잘리고 길거리에 나앉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 안다. 누구한테 하소연해 봐야 들어줄 사람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그들은 또 참고 산다.

 

그런 면에서 대기업과 대기업 노조는 낫다. 그렇지만, 민주노총을 들여다 보면, 노무현과 김대환이 함부로 지껄여도 될만한 그런 노조 많지 않다. 노동자 연대 관점을 포기한 몇몇 대기업노조나 집행간부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없는 노조는 당장 민주노총을 떠나라고 나도 말하고 싶다. 그러나, 민주노총에는 그렇지 않은 노조가 더 많다. 비정규직 노조도 많고, 소수 조합원이 있는 노조도 많다. 노무현과 김대환이 싸잡아 비난해서 죽여버려서는 안되는 노조가 더 많다. 

 

그리고, 앞서 말한대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관계에서 노동법적 권리 행사를 자유로이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 비정규직 노동자도 노동3권과 노동관계법상 권리를 보장받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노동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고 그 권리 행사로 어떤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더 비정규직 노동자가 어렵고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렇게 못하는지 대통령과 노동부장관은 그 이유를 정말 모르는가 ? 정말 이땅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기본권 행사를 할 수 있는 조건이 충분히 마련되었다고 보는가 ? 천만의 말씀이다. 제발 대통령이나 노동부장관 정도면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판은 자유이나,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도 노동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나 제대로 하고 나서 뭐라고 해라.

 

두 사람은 모두 노동법을 한번씩 읽어 보았을 테니 한두개만 적어 보자.

 

사용자는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하거나 노조 활동을 하거나 단체행동을 한 것을 이유로 불이익한 처우를 해서는 안된다는 규정과 단체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규정을 잘 알 것이다(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두 사람은 위 규정이 노동현장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 그렇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 특히 어렵게 일자리를 구한 비정규직 노동자라면 말이다.

 

당신들 같이 힘있는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는, 당신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비정규직 노동자를 죽일 수 있다. 그렇게 모든 노조가 다 씹혀서 다 힘을 잃어버릴 때가 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 향상이 뒤따라 오기나 한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된다는 가능성이 어디 있기나 한지 한번 구체적으로 제시해 보라. 

 

그나마 민주노총을 기댈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고 전화하고 상담하고 찾아오는 노동자를 간혹 만날 때가 있다. 그것을 생각하면, 두 사람이 한 말을 생각하면 정말 열 받는다. 청와대가, 노동부가 그런 노동자를 다 만나서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지도 않을 거면서 함부로 말하지 말았으면 한다.

 

헌데, 언제부터 그들이 그렇게 비정규직 노동자를 끔찍하게 생각해 주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네그려.

 

자본을 위해서는 재경부, 산자부 등이 있으니, 노동자를 위해서는 노동부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전임 장관 권기홍의 말이 새삼 생각난다. 노동부는 노조부가 아니라는 말로, 대화마저 하지 않겠다는 김대환의 생각은 장관도, 민주노총 내의 대기업노조에 쓴소리를 한 것은 좋다만 그 안에 있는 작은 노조나 비정규직 노조, 그리고 그나마 기댈 곳을 찾아든 노동자에게까지도 폭탄을 날린 노무현도, 참 답답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공무원 노조의 총파업을 보고


조합원 수가 14만이고, 파업투쟁 기금이 백억이나 된다고 하던 공무원 노조의 총파업이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지리멸렬해지더니 17일에는 결국 스스로 파업 중단을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종결되었다. 그런 경과를 보며 씁쓸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건 공무원 노조의 파업 실패가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공무원 노조를 둘러싸고 드러난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들 때문이다. 어디서나 국민의 공복이 웬 파업이냐 혹은 ‘철밥통’들이 웬 파업이냐는 시민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공복 운운하며 공무원 노조를 비난하는 것은 민원 처리를 위해서 직접 만나면 상전처럼 여겨지는 공무원에 대한 원한의 전도된 표출이며, 상전과 공복 사이를 오갈 뿐 도무지 그들을 같은 동료 시민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전근대적인 사고의 표현일 뿐이다. 철밥통 운운하는 비난도 문제다. 그간의 가혹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를 생각하면 우리 사회의 남은 철밥통에 대한 사회적 질시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서로 질투를 심화시켜가는 것은 다시 부메랑이 되어 노동조건 전체를 침식할 위험이 있다.

언론매체들의 행동도 유감스러웠다. 보수적 신문들의 행태는 그렇다고 쳐도 〈한국방송〉이나 〈문화방송〉이 공무원 노조의 법제화를 둘러싼 쟁점들을 상세히 다루지 않았다. 〈한겨레〉조차 단체행동권이 노-정 간 갈등의 핵심인 듯 잘못된 보도를 했는데, 그런 점에서 한겨레 또한 쟁점을 제대로 짚으며 우리 사회에 맞는 공무원 노조 모형과 노-정 간의 타협지점을 모색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했다고 하기 어렵다. 보수적인 매체들이 공무원 노조에 대한 대중적 반감에 불을 지피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면, 개혁적인 매체들은 대중의 반감을 추수할 뿐 공론 형성 구실을 충실히 하지 않았다.

그러나 더 실망스러운 것은 공무원 노조 자체였다. 그들은 우선 자신들의 대의를 일반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공무원 노조의 주축인 중하위직 공무원들이 엄격한 상명하복 체계의 국가기구 안에서 갖은 부조리와 불합리를 경험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 또한 사회 위에 군림하는 국가기구의 일원이었다. 따라서 자신의 권리 주장에 앞서 대다수 국민이 가진 공무원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을 불식하기 위해서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공무원 조직의 유연화와는 다른 방향에서 국가기구를 혁신하고 양질의 대민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자신들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알려야 했다.

선전 활동에서뿐 아니라 운동 과정에서도 공무원 노조는 전략적 취약점을 드러냈다. 냉담한 언론매체들이 비록 공세적인 비난의 기조일망정 공무원 노조에 관심을 보인 것은 노-정 협상이 깨지고 공무원 노조가 총파업을 예고하면서부터다. 그렇다면 이 기간을 길게 끌며 자신들의 대의와 노-정 협상에서의 쟁점 등을 알리고 사회적 토론을 유도하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노조는 총파업이라는 카드를 쉽게 꺼내고 말았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26일로 예정되어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파업을 그때까지 끌고 갈 수 있다고 과신한 것일까? 전략적으로 서툴러 보일 뿐 아니라 민주노총 편에서도 연대투쟁의 효과를 극대화할 전략이 있었는지 의아스럽다.

그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일단 총파업에 뛰어들었다면 그 투쟁의 열렬함을 통해서 자신의 진정성을 입증해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중의 지지도 없는 상황에서 전략도 치밀하지 못하고 거기다 자신의 대의에 헌신하는 열정과 용기마저 없는 셈이다. 이렇게 열정마저 없다면 대의와 진정성조차 의심받게 되는 법이다. 근대 사회의 역사를 통해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희생과 고통 없이 공짜로 얻은 적은 없거니와, 이렇게 근로대중이 수세에 몰리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공무원 노조의 파업 실패가 그간 우리 노동운동이 펼쳐온 용기와 열정의 쇠퇴를 보여주는 증좌가 아니길 바란다.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