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홉스 사회계약론의 요소들


  근대 사회계약론은 세 가지의 이론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사회계약론은 인간의 자연적 존재조건으로서 자연상태라는 병리적 상황, 또는 반사회적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 둘째, 사회계약론은 이러한 병리적 상황으로부터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지, 이를 통해 어떻게 국가라는 인공적 질서를 구성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이론을 포함한다. 이것이 바로 계약의 도출과 체결에 관한 이론이다. 셋째, 사회계약론은 또한 이렇게 해서 구성된 국가의 권력과 제도의 체계에 관한 이론, 곧 주권에 관한 이론을 포함하고 있다. 홉스는 이러한 의미에서의 사회계약론에 관한 최초의 이론가, 또는 한 홉스 연구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계약이론의 발명가”(Terrel 2001, p. 135)로 간주될 수 있다. 방금 지적한 사회계약론의 세 가지 계기에 따를 경우 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1) 자연상태에 대한 최초의 이론가 홉스


  홉스는 자연상태에 관한 최초의 이론가로 간주될 수 있다. 홉스 이전에 그로티우스의 저작에서 계약에 관한 논의가 엿보이고, 장 보댕의 저작에서 근대적인 주권 개념의 단초가 마련되지만, 자연상태라는 개념은 홉스에 의해 비로소 철학적, 정치적 개념으로 등장한다1). 자연상태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의 자연적 실존에 함축되어 있는 병리적 조건이 해명될 수 있고, 그리하여 (자기보존이라는 인간학적 공리와 결부되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는 것, 곧 계약을 통해 사회상태 또는 국가를 구성하는 것이 인간의 근본적인 실존적 과제라는 점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자연상태 개념은 사회계약론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가 된다. 

  자연상태 개념이 지니는 중요한 의의는 이 개념이 아리스토텔레스, 스콜라철학에서 나타나는 정치사상의 핵심 원리로서 인간의 자연적 사회성이라는 관념과 단절했다는 점에 있다. 사실 홉스는 1642년 처음으로 출간된 [시민론De Cive] 「서문」에서부터 자신의 정치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거의 아무런 변화 없이 지속되어온 정치철학의 원리들2)을 과학적으로 개조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그 자신이 기하학적 방법mos geometricus이라고 부르는 근대 과학의 방법을 채택하여 “사회철학(또는 정치철학)civil philosophy”을 구축하고자 했다3). 따라서 목적론에 따라 위계화된 우주론적 질서에 근거하고 있는 자연적 사회성이라는 관념(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로서의 인간이라는 규정에서 유래한다)은 일체의 목적론을 배제하는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출발하는 홉스, 또는 좀더 일반적으로는 근대 정치철학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홉스는 이러한 자연적 사회성이라는 관념 대신 자연적인 권리를 지니고 있는 고립된 개인들이 살아가는 자연상태라는 가설적 조건에서부터 자신의 정치철학적 논의를 시작한다. 홉스가 그리고 있는 이 자연상태는 몇 가지의 주목할 만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4). 첫째, 자연상태는 모든 개인이 모든 사물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있는 상태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자연적 불평등을 전제했던 것과 달리 홉스에게 인간은 본성적으로 평등한 존재이며, 각 개인은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이나 능력을 동원할 권리 또는 자유를 지니고 있다. 둘째, 이처럼 자연상태에서는 각각의 개인이 동등하게 절대적인 자유와 권리를 행사하기 때문에, 공동의 법률이나 규약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상태에서는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어떤 것이 정의롭고 부정의한지 판단해줄 수 있는 공통의 척도나 객관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으며, 각자는 자신의 관점에서 옳고 그름과 정의, 불의를 판단하고 이에 따라 행위하게 된다.

  홉스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연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이 벌어지고 있는 전쟁상태로 특징짓고 있다. 자연상태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첫째, 자연상태가 희소성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곧 생존을 위한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각자는 불가피하게 경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홉스가 “공포” 또는 “불신 내지는 확신의 결여diffidence”라고 부르는 정념도 이것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홉스가 말하는 불신 내지는 확신의 결여는, 자원이 결핍되어 있고 객관적인 안전장치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각자가 언제 다른 사람이 자신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져 있는 사태를 가리킨다. 비록 지금 내가 아무런 공격도 받지 않고 피해도 입지 않고 있지만 나는 언제 어디서든 적으로부터 공격을 당할 수 있으며, 이 공격이 치명적인 피해, 곧 죽음을 야기시킬 경우 나는 그에게 반격할 수도 없다. 따라서 불신 내지는 확신의 결여에 빠져 있는 자연상태의 인간에게 최선의 행동방식은 적을 먼저 공격하는 것이 된다5). 마지막으로 “헛된 공명심vain glory”이나 “자부심pride” 역시 사람들 사이의 경쟁을 부추겨 평화를 위협하고 전쟁상태를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2) 법적 계약이론의 창안


  홉스를 사회계약론의 발명가로 볼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그가 계약이론을 고안해냈다는 데 있다. 계약이라는 관념 자체는 홉스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를 통해 사회의 성립을 설명하려는 시도도 존재했지만6), 홉스는 사회계약을, 자연상태와의 전면적인 단절을 통해 인위적으로 시민사회 또는 국가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전의 사상가들과 구분되는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인 계약에 대한 관념에 따라 지레 짐작하는 것과는 달리 홉스의 계약 개념은 일의적이지 않으며, 계약의 절차 역시 단선적이지 않다. 먼저 홉스는 계약과 관련된 몇 가지 용어들을 구분하고 있다(EL 1부 15장, DC 2장, L 14장 참조). 홉스는 계약contractus/contract을 매우 간결하게 정의하고 있다. “권리의 상호 양도가 사람들이 계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DC 2장 9절; L 14장 9절, p. 82) 이에 비해 홉스가 “협정pactum/pact” 또는 “신약(信約)covenant”이라고 부르는 것은 권리의 일방적인 양도로 특징지어진다. “계약자들 중 한쪽이 계약된 것을 이행하고 다른 한쪽이 일정한 기간 이후에 자기편의 [약속을] 이행하도록 남겨둘 때(그리고 그 동안 그를 신뢰할 때), 이행자 편에서 보면 이 계약은 협정 또는 신약이라 불린다.”(L 같은 곳) 또는 홉스는 [법의 원리] 같은 곳에서는 이를 좀더 세분해서 말하고 있다. 곧 1) 계약의 두 당사자가 현재 계약의 내용을 이행하는 경우가 있고, 2) 한 당사자는 계약 내용을 즉각 이행하고 다른 한 쪽은 나중에 이행하기로 약속만 해두는 경우가 있으며, 3) 두 당사자 모두 현재 계약 내용을 이행하지 않고 나중에 이행하기로 약속하는 경우가 있다(EL 1부 15장 8-9절). 이 세 가지 경우 중 첫번째 경우가 홉스가 말하는 엄밀한 의미의 계약에 해당하고, 나머지 두 경우는 협정 또는 신약에 해당한다.

  계약의 절차 역시 단선적이지 않다7). 홉스는 두 가지의 절차를 구분해서 말하고 있다. 첫번째 절차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맺어지는 “예비 계약”으로서, 이는 자연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첫번째 단계에 해당한다. 자연상태에 만연해있는 갈등과 위험, 곧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 상태에 처한 개인들은 이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욕구, 곧 자기의 존재를 보존하려는 욕구를 느끼게 된다. 홉스는 바로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제1 자연법이 유래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사람은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는 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얻을 수 없을 때에는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도움과 유익을 추구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이성의 계율 또는 일반 규칙이다. 이 규칙의 첫번째 부분은 평화를 추구하고 그것을 따르라는 자연의 첫번째 근본적인 율법을 포함한다. 두번째 부분은 자연권의 요약으로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우리 자신을 보호하라는 것이다.”(L 14장 4절, p. 80―강조는 홉스)8) 그리고 이 제1 자연법에 뒤이어 평화를 달성하고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기 위한 구체적 지침으로서 제2 자연법이 도출된다. “평화와 자기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한, 모든 것에 대한 이 권리[곧 자연권]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기꺼이 포기해야 하며, 그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허용한 자유만큼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허용한 자유에 만족해야 한다.”(L 같은 곳―강조는 홉스) 이러한 자연법의 명령에 따라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무제한적인 자유, 곧 자연권을 포기하거나 유보하자는 데 동의를 하게 되며, 이러한 동의는 계약을 지켜야 할 의무를 낳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계약이 어떠한 강제도 동반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의무 역시 강제되지는 않는다. 이 의무는 자연법의 명령으로부터 유래한 도덕적이고 자발적인 의무에 불과하다. 따라서 당연히 이 예비적 계약은 쉽게 파기되거나 위반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원래의 계약의 목표인 평화와 안전을 달성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 때문에 계약을 위반했을 때 이를 처벌할 수 있는 힘과 권력을 지닌 제 3자를 설정해서 개인들 사이의 상호 권리 양도가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성이 생겨나게 된다. 이처럼 제 3자, 곧 주권적인 권력의 보유자를 세우는 것이 바로 두번째 단계의 계약이며, 이것을 고유한 의미의 사회계약 또는 정치적 계약이라고 부를 수 있다. “외적의 침입이나 [성원들] 상호간의 침해로부터 성원들을 보호할 수 있는 ... 공동의 권력을 세우는 유일한 길은 자신들의 모든 역량과 힘을 한 사람 또는 하나의 회의체에 부여하는 것이다.”(L 17장 13절, p. 109) 이 두번째 계약은 각각의 개인이 서로간에 어떤 사항이나 권리와 관련하여 맺는 계약 또는 신약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모든 사람과 더불어 공동의 권력을 세우기로 합의하고 자신의 권력 및 힘을 한 사람이나 하나의 회의체에게 양도한다는 점에서 첫번째 단계의 계약과 구분된다. 홉스는 바로 다음 구절에서 이를 좀더 명확하게 부연하고 있다. “이는 동의나 합의 이상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과 맺는 신약을 통해 만들어진 하나의 동일한 의인(擬人, person)으로 모든 사람을 실재적으로 통일하는 것이다. 마치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당신도 나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모든 권리를 이 사람 또는 이 회의체에게 주어 그가 하는 모든 행동에 권위를 부여한다는 조건 하에 나는 나 자신을 통치하는 권리를 그에게 양도한다고 말하는 것처럼.”(L 같은 곳―강조는 홉스) 이처럼 모든 사람이 한 사람이나 하나의 회의체, 곧 하나의 동일한 의인에게 자신의 권력과 힘을 양도하기로 약속하고 이를 부여했을 때, 자연상태에서는 불가능했던 공동의 권력이 창출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유한한 신으로서의 리바이어던, 국가이며, 이를 통해 주권자와 신민 또는 시민 사이에 복종과 통치의 관계가 성립하게 된다. 


3) 홉스 주권 이론의 독창성


  세번째로 홉스는 주권에 관한 개념화에서도 독창성을 보여준다. 앞에서 말한 계약의 과정은 홉스에 따르면 동시에 주권자에게 “권위부여하기authorization”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권위부여하기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홉스는 의인person에 관한, 따라서 대표representation에 관한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홉스에 따르면 의인은 “그의 말이나 행동이 그 자신의 것으로 간주되거나,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 또는―진실로이든 허구적으로이든 간에 그에게 귀속되는―다른 어떤 사물의 말이나 행동을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사람을 가리킨다.”(L 16장 1절, p. 101) 의인에는 자연적 의인과 인공적 의인이 존재하는데, 전자의 경우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그 자신의 것으로 간주될 때, 또는 귀속되는 것으로 인정될 때를 가리키고, 후자의 경우는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될 때를 가리킨다. 홉스의 의인 이론은 홉스의 정치철학이 갖는 법적 인공주의를 잘 보여준다.

  홉스의 의인 이론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점이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신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늘 동일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신체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어떤 행동이 늘 같은 존재자에 의해 수행된다고 생각되는 것은 우리가 그에게 어떤 동일성을 부여하고, 이러한 동일성을 지니고 있는 그를 이 신체, 또는 그가 수행하는 이러저러한 행동의 주인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를 통해 자연권과, 시민사회 또는 국가 속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인공적 권위의 차이가 설명될 수 있다. 곧 자연권은 생물학적 원리에 따라 어떤 개인이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제한적인 권리를 뜻하는 반면, “어떤 행위든 할 수 있는 권리”(L 16장 4절, p. 102)로 정의되는 권위는 자연적 의인이든 인공적 의인이든 간에 법적으로 규정된 의인이라는 개념을 전제하며, 따라서 상호개인적 관계를 함축한다. 따라서 자연적 의인이든 인공적 의인이든  간에9) 이처럼 어떤 동일성을 상정하고 그에게 말이나 행위를 “귀속시키는attribute” 법적 절차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국가 속에서 인간의 행위를 평가하기 위한 기준을 획득할 수 있으며, 따라서 대표나 권위부여를 통한 공동의 권력의 설립도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권위부여의 절차가 갖는 중요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권위부여의 절차는 주권자의 권위가 각각의 개인들이 주권자에게 양도한 권리에서 나온다는 점을 분명히 해준다. 홉스는 장 보댕Jean Bodin과 마찬가지로10) 주권의 절대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자연법에 근거하여 주권자의 권한을 확립하려고 했던 보댕과 달리 홉스는 주권자의 권위를 피통치자, 곧 신민 또는 인민의 동의에 근거지으려고 했다. 곧 홉스의 주권자는 각각의 개인들이 계약을 통해 양도하는 권리들 이외의 독자적인 역량이나 권력을 지니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바로 이러한 자발적 양도를 통해 자신의 절대적인 권위를 획득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홉스의 권위부여의 절차는 주권자에 대해 법적 규범성을 부여하려는 절차로 이해할 수 있다11).

  둘째, 권위부여의 절차는 홉스의 주권이론의 목표 중 하나가 대중들multitudo/croud을 해체하고 이를 인민으로 구성하는 또는 포섭하는 데 있음을 잘 보여준다. 사실 홉스는 [시민론]이나 [리바이어던] 같은 저작에서 인민과 대중들에 대한 엄격한 구분의 필요성을 여러번에 걸쳐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그는 [시민론] 12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인민과 대중들을 충분히 명료하게 구분하지 않는 것은 사회체제, 특히 군주정에 대해 해롭다. 인민은 단일한 의지를 가진 단일한 실재single entity다. 여러분은 이것에게 하나의 행위를 귀속시킬 수 있다. 하지만 대중들에 대해서는 이것들 중 어떤 것도 말할 수 없다.”(DC 12장 8절, p. 137―강조는 홉스) 또한 [시민론] 6장에서는 대중들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첫번째 결정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로 이루어진] 대중들이란 실제로 무엇인가? ... 왜냐하면 그들은 단일한 실재가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며, 이들 각자는 모든 문제에 관해 자기 자신의 의지와 자기 자신의 판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각각의 사람이 특수한 계약들을 통해 자기 자신의 권리와 소유를 갖게 되어, 어떤 사람은 어떤 것에 대해, 그리고 다른 사람은 다른 어떤 것에 대해 그것이 자기 자신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해도, 대중들 전체가 각각의 개인과 구분되는 하나의 의인으로서, 이것은 다른 이의 것이라기보다는 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대중들에게 그들의 행위로서 귀속되어야 할 어떤 행위도 존재하지 않는다.”(DC 6장 1절, pp. 75-76)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홉스가 대중들을 문제삼고 있는 것은, 통일성이 존재해야 비로소 공동의 권력이 형성될 수 있고, 이에 따라 평화와 안전이 성립할 수 있는데, 대중들은 하나의 단일한 실재로 환원되지 않는 다수의, 또는 다양한 사람들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계속해서 대중들에게 행위를 귀속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는 데서 잘 드러나듯이 홉스는 대중들에게 유효한 정치적 행위자로서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대중들이 정치적 행위자로서, 또는 하나의 의인으로서 행위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인간들로 해체되어야 하며, 이들 각각이 자신의 권리와 힘을 양도함으로써 하나의 동일한 의인, 곧 국가를 구성해야 한다(같은 책, p.76).

  하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대중들이 유효한 정치적 행위자일 수 없다면, 그리고 대중들은 다수의 개인들의 집합에 불과하다면, 무엇 때문에 인민과 대중들을 구분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가? 이에 대한 답변의 실마리는 [시민론] 12장 8절에서 찾을 수 있는데, 여기서 홉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국가에서는 인민이 지배한다. 왜냐하면 군주정들에서도 인민이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는 인민이 한 사람의 의지를 통해 의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들, 또는 신민들은 대중들이다. 민주정과 귀족정에서 시민들은 대중들이지만, 평의회는 인민이다. 군주정에서 신민들은 대중들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왕은 인민이다. 일반 사람들 및 이를 주목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은 항상 많은 숫자의 사람들을 인민이라고, 곧 국가commonwealth라고 말한다. 그들은 국가가 왕에 대해 반역했다고(이는 불가능하다) [...] 말한다. 그들은 인민이라는 호칭 아래 국가에 반대하는 시민들, 곧 인민에 반대하는 대중들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같은 책, p. 137)

  “역설적이게도”라는 삽입구에서 볼 수 있듯이, 홉스는 자신의 구분법이 사람들에게 기묘하게 들릴 수 있음을 충분히 의식하면서도 집요하게 인민과 대중들을 구분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그가 두려워하는 것이 인민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 또는 대중들이 국가에 반역하고 통치권을 찬탈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홉스가 두려워하는 것은 대중들이 충분히 유효한 정치적 행위자라는 사실, 사실은 너무나 영향력 있는 행위자여서 국가를 위협하고 전복할 수도 있는 행위자라는 사실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12). 따라서 홉스가 권위부여의 절차를 통해 주권자의 절대적 권한, 절대적 권위를 확립하려 하고, 대중들이 법적 의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중들에게 유효한 정치적 행위자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하는 데에는 대중들이라는 위협적인 정치적 행위자를 해체하고 법적 질서 안으로 포섭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

1)

이에 관해서는 특히 Strauss 1952, p. 15 이하 참조.

2)

그는 키케로에서부터 토마스 아퀴나스 및 프란시스코 수아레즈에 이르는 서양 정치철학의 전통이 모두 아리스토텔레스로 환원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 관해서는 특히 DC 「서문」 참조.

3)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홉스의 비판은 특히 「헛된 철학과 공상적인 전통에서 유래하는 어두움에 대하여Of Darkness from Vain Philosophy and Fabulous Traditions」라는 신랄한 제목이 붙은 󰡔리바이어던󰡕 46장을 참조하고, 홉스 정치철학의 과학적 기초에 관한 좋은 논의로는 특히 Herb 1996을 참조.

4)

이에 관해서는 특히 L 13장을 볼 것.

5)

홉스에게는 과거나 현재보다 미래 시제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은 홉스의 인간학 및 정념론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이에 관한 좋은 논의로는 Moreau 1994, p. 407 이하 및 Lazzeri 1998 1장을 참조할 수 있다.

6)

 이에 관해서는 Terrel 2001, 1-3장 및 Matheron 1984를 참조.

7)

홉스 계약론의 절차에 관한 좀더 상세한 논의는 Kavka 1986, p. 179 이하 및 Terrel 1994, 8장, 특히 p. 214 이하 참조.

8)

홉스에서 자연법은 총 19가지([시민론]에서는 20가지)가 있는데, 제1, 2 자연법, 특히 제1 자연법이 그 핵심을 이룬다. 이런 의미에서 김용환 교수가 홉스의 정치사상을 “평화애호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일리가 있다. 김용환 2001, 170쪽 이하 참조.

9)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말과 행동을 전유한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인정받는다면, 그는 자연적 의인이 되는 셈이며, 그가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대표한다면, 그는 인공적 의인이 된다.

10)

보댕은 1576년 출간된 󰡔공화국 6서Six Livres de la République󰡕라는 저서에서 국가란 무엇이고 어떤 의미에서 주권이 국가의 본질을 이루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공화국 또는 국가란 “주권적인 군주 아래 존재하는 인민의 통합체”이며, 따라서 주권은 국가의 “부분들” 또는 “지체(肢體)들”을 하나의 전체로 결집하는 통합의 원리를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주권은 국가의 진정한 “토대이자 축”이라고 할 수 있다(Bodin 1993, pp. 65-69). 아울러 주권을 정의하고 있는 1권 8장에서는 주권을 다음과 같이 좀더 정확히 규정하고 있으며, “주권이란 국가에 부여된 절대적이고 영속적인 권력을 가리키며, 로마 사람들은 이를 ‘마예스타템majestatem’이라고 부른다.”(같은 책, p. 111) 주권자의 권한 또는 “진정한 표시vraies marques”를 다루는 10장에서는 주권자의 권한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주권에는 법을 제정하거나 폐기할 수 있는 힘, 평화와 전쟁을 선포할 수 있는 권리, 법원의 판결에 대해 청문할 수 있는 권리, 공직의 임명과 해임권, 조세권, 특권의 부여권, 화폐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충성 서약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등이 포함된다.”(같은 책, pp. 160 이하) 이러한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보댕이 이 책을 저술한 목표는 주권의 절대성을 이론적으로 확립함으로써 프랑스 군주정에 교의적 기초를 제공하려는 데 있었다.

11)

보댕의 주권 개념과 홉스의 주권 개념의 차이점에 관해서는 Goyard-Fabre 1992 및 김용환 2001, 236-239쪽을 참조하고, 홉스 주권 개념의 규범적 성격에 관해서는 Foisneau 2001을 참조.

12)

홉스가 [리바이어던]을 저술한 시기는 1647-48년 사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홉스는 자신이 󰡔리바어이던󰡕을 저술하게 된 이유는 다중들이 지배하는 무정부상태에서 벗어나고 위험에 빠진 국왕의 주권을 보호하는 데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리처드 애쉬크라프트Richard Ashkraft는 홉스의 원전들을 인용하면서 이 점을 매우 명료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홉스에 따르면 이 시기는 “주권이 쟁탈되고” 국가 안에는 어떠한 “주권”도 평화도 존재하지 않는 시기이다. 영국은 “각자의 이성 내지는 각인된 빛이 제안하는 바에 따라 아무것이든 자행하는 분산된 다중들이 지배하는 무정부상태가 되었다.” 따라서 “내전이 존재하는 곳에는 ... 법도 공동체도, 사회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무법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다중만이” 존재할 뿐인데, 다중을 구성하는 각각의 개인은 “어떠한 의식의 복종도 없이 자신의 사적 이익”에 따라 인도된다. ... 동시에 홉스는 “[리바이어던]은 왕의 세속적이고 영적인 권력을 방어하기 위해 쓰여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Ashkraft 1978, p. 30. 그 이외에 홉스의 정치학이 등장하게 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배경에 대해서는 퀜틴 스키너의 연구들도 매우 좋은 참고자료들이다. 특히 Skinner 1972, 2002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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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쓴 논문 두 편을 올립니다.

날마다 찾아왔다 그냥 가는 분들께 좀 미안해서, 없는 것보다는 나을 듯해서요.^^

두 글은 연작 논문인데, 제목은 [스피노자 정치학에서 사회계약론의 해체]입니다. 이 중 1편은 [철학사상]이라고,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에 (축약된 형태로) 발표되었고, 2편은 내년 상반기 중에 [트랜스토리아]라는 역사학 학술지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두 편 모두 제 학위 논문의 일부로 수록될 예정입니다. 두 글이 상이한 지면에 발표되기 때문에 내용상 약간 중첩되는 곳이 있기는 한데, 여기서는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1편이야 이미 발표된 글이니 어쩔 수 없다 해도, 2편은 손볼 곳들이 있어서 그대로 올리기가 좀 창피하지만, 관심 있는 분들이 한번 읽어보시고 댓글을 좀 달아주시든가 하면 고칠 때 도움이 될 듯합니다.

 그리고 1편을 인용하실 때는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홈페이지에 실린 글을 인용하시기 바라고(19집이 올라왔는지는 모르겠군요), 2편은 아직 확정된 판본이 아니기 때문에 인용은 불허합니다.

한 가지 광고를 하자면 내년 상반기 [트랜스토리아]는 스피노자 특집호로, 제 글과 김은주 씨가 쓴 [스피노자라는 장소에서 두 현대 철학자의 마주침: 알튀세르와 들뢰즈]라는 글이 실리고, 프랑스의 저명한 스피노자 연구가들인 앙드레 토젤(Andre Tosel)의 [스피노자라는 거울에 비친 마르크스주의]와  피에르-프랑수아 모로(Pierre-Francois Moreau)의 [운과 역사이론]이라는 글이 번역되어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제 글은 보다시피 좀 허접하지만(^^;;;), 스피노자 정치학에서 사회계약론이 수용, 변용, 해체되는 과정을 검토한 글이고, 김은주 씨의 글은 알튀세르와 들뢰즈의 철학 체계에서 스피노자 철학이 어떻게 수용되고 있고, 양자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검토하고 있는 보기드문 글입니다. 토젤의 글은 마르크스에서 알튀세르에 이르는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스피노자 철학이 어떻게 수용되어 왔는지를 검토하고 있는 매우 의미 있는 글이고, 모로의 글은 스피노자 철학에서 역사이론의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매우 독창적인 시도입니다. 이번 [트랜스토리아] 특집호는 국내의 스피노자 수용과 관련하여 나름대로 의미 있는 기여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앞으로 관심을 가져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신학정치론]에서 홉스 사회계약론의 수용과 변용:

스피노자 정치학에서 사회계약론의 해체 I





서론: 정치철학자로서 스피노자


  국내에서 스피노자는 대개 형이상학로, 곧 [윤리학]이라는 대표작으로 집약되는 방대한 형이상학적인 체계를 구축한 철학자로 간주된다. [윤리학]이 스피노자의 철학 체계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감안한다면, 그리고 이 저서가 이후 철학사, 지성사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다면, 이는 매우 당연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스피노자의 형이상학,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대한 배타적 관심 때문에 그의 철학의 다른 부분들이 무시되거나 간과되는 일이 생기곤 하는데, 이는 특히 스피노자의 정치철학에 대해 사실이다. 스피노자는 그가 남긴 매우 적은 수의 저작들 중에서 정치학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남겼지만, 사람들은 대개 그가 정치학에 관한 저작들을 남겼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학에 관한 그의 저작들이 그의 체계에서 부차적인 의미만 지니고 있거나 그의 다른 저작, 특히 [윤리학]에 대해 매우 종속적이고 파생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면 이러한 무관심이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피노자 철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서 그의 정치학 저술은 본질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으며, 실제로 스피노자 정치학에 관한 연구들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어떤 의미에서든 정당한 태도로 평가하기 어렵다. 

  사실 지난 1960년대 이후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스피노자 연구1)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업적을 배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스피노자의 인간학과 정치철학에 관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스피노자의 인간학과 정치철학이 스피노자 철학 체계의 외재적이거나 부수적인 논의가 아니라 본질적인 구성요소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스피노자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은 알렉상드르 마트롱의 [스피노자에서 개인과 공동체](Matheron 1969) 이후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네그리나 프랑스의 에티엔 발리바르, 앙드레 토젤André Tosel, 피에르-프랑수아 모로Pierre-François Moreau, 로랑 보베Laurent Bové, 샤를르 라몽Charles Ramond 또는 미국의 리 라이스Lee C. Rice 같은 연구자들은 주목할 만한 연구들을 통해 스피노자 정치철학의 새로운 면모를 부각시켜주었다. 뿐만 아니라 루이 알튀세르나 질 들뢰즈, 또는 발리바르나 네그리 같은 철학자들은 독창적인 작업을 바탕으로 스피노자의 철학, 특히 그의 인간학과 정치철학이 비단 철학사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현재의 사회, 정치적 문제들을 새롭게 사고하는 데도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스피노자의 정치학 저작들, 곧 [신학정치론Tractatus Theologico-Politicus](1670)과 [정치론Tractatus Politicus](1676-77)에 대한 연구는 국내 철학계가 하루빨리 메워야 할 중요한 공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우리가 이 글에서 특별히 다뤄보려고 하는 것은 스피노자 정치학에서 사회계약론이 수용되고 변용되고 해체되는 양상들에 대한 검토이다.

  스피노자의 정치학 저술들에 관해 제기되는 주요한 질문들 중 하나는 두 저작이 보여주는 명시적인 차이에 관한 것이다2). 그 동안 여러 주석가들이 이 점을 지적해왔는데, 예컨대 발리바르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까지 한다. “스피노자의 죽음 때문에 미완성으로 남은 [정치론]과 [신학정치론] 사이에는 몇 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주가 변화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Balibar 1997a, p. 63) 실제로 두 저작 사이에는 여러 가지 차이점이 존재한다. 우선 스타일의 차이가 있다. [신학정치론]은 당대의 네덜란드 정세에서 오란여Willem d'Orange 공(公)을 중심으로 한 군주정의 지지자들과 칼뱅주의 신학자들의 공모에 맞서 드 비트de Witt 형제를 중심으로 한 공화파의 정치적 노선을 지지하고 이를 내재적으로 교정하기 위한 목적에 따라 저술되었다. 따라서 [신학정치론]은 엄밀한 의미의 연역적 질서에 따르기보다는 당대의 지식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역사적 사례들(알렉산더 대왕이나 로마사, 특히 히브리 국가의 역사)이나 실천적 효용에 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반면 [정치론]은 [윤리학]처럼 엄격한 연역적 질서에 따라 서술되지는 않았지만, 인간 본성 및 자연권에 관한 논의에서부터 국가의 본성에 대한 논의, 군주정과 귀족정, 민주정 같은 정체들의 유형에 관한 상세한 논의들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질서에 따라 서술되고 있다. 

  하지만 두 저작의 중요한 이론적 차이점은 무엇보다도 계약론의 문제와 관련된다. [신학정치론], 특히 16장 이하에서 집중적으로 전개되는 정치학에 관한 논의들은 명시적으로 사회계약론이라는 이론적 틀을 차용해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반면 [정치론]에서는 사회계약론의 문제설정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데, [정치론]에서 계약contractus이라는 용어가 단 한 차례만 사용되고 있고(TP 4장 6절)3) 22번 사용되고 있는 “양도하다transfero”라는 단어(TP 3장 3절; 4장 6절; 6장 8절, 14절; 7장 2절, 5절, 9절, 14절, 17절, 23절, 26절; 8장 3절, 17절) 역시 사회계약론과는 달리 국가의 창설이나 설립이라는 의미로는 전혀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를 잘 엿볼 수 있다.4)   

  사회계약론의 부재와 현존 여부가 두 저작의 이론적 차이점을 측정하기 위한 주요 기준이 되는 것은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사회계약론은 주지하다시피 그로티우스와 홉스에서부터 루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다시 현대에 이르러 존 롤즈 등에 의해 복권되기까지 근대 정치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이론적 모체 중 하나로 기능해왔다5). 따라서 사회계약론이 [신학정치론]에는 현존하는 반면, [정치론]에는 부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근대 정치철학, 특히 자유주의 전통의 정치철학과 관련하여 스피노자가 어떤 위치에 있고 또 스피노자가 이러한 사상 노선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있었는지 평가해볼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된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스피노자가 홉스의 정치철학을 수용, 변용하고 해체하는 양상에 관한 문제다. 스피노자 당대의 네덜란드 지식인들, 특히 반(反)칼뱅주의와 반(反)군주정의 입장을 취하고 있던(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드 비트 형제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던) 지식인들에게 홉스의 정치철학은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저작들은 네덜란드로 신속히 소개되고 널리 논의되었다6). 스피노자 역시 홉스의 정치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정치철학의 상당 부분은 홉스의 정치철학을 수용하고 이를 내재적으로 교정하려는 작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이 점에 관해서는 특히 Lazzeri 1998을 참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홉스가 이론적으로 발명해낸 사회계약론을, 스피노자가 [신학정치론]에서는 (비록 비판적으로 변형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명시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가, 몇년 뒤 [정치론]에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충분히 주목해볼 만한 이론적 가치가 있다.

  더 나아가 사회계약론의 존재 유무에 관한 문제는 자유주의 정치철학 전통에 대한, 또는 홉스의 정치철학에 대한 스피노자의 관계라는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스피노자 정치철학, 더 나아가 그의 철학 전체의 전개과정을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한 중요한 한 가지 기준을 제공해준다. 사실 마트롱 같은 대표적인 스피노자 연구자는 [신학정치론]에서 [정치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대해 “진화/발전évolu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며(Matheron 1990), 네그리 역시 [정치론]에서 스피노자의 정치학 및 그의 철학 체계 전체의 이론적 기획(그가 ‘구성constitution’의 기획이라고 부르는)이 가장 완성된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고 평가한다(Negri 1990; 1994 참조). 그리고 그밖의 많은 연구자들 역시 어떤 식으로든 [신학정치론]에서 [정치론]으로 나아가는 시간적 과정에서 스피노자의 정치학과 철학이 좀더 정련되고 성숙해졌다는 데 대해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스피노자가 이 몇년의 기간 동안 중요한 이론적 변화 및 발전을 이룩했다는 데 대해서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일치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7). 

  우리가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에서 홉스의 사회계약론이 수용되고 변용되는 양상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1) 홉스 사회계약론의 요소들을 살펴볼 생각인데, 특히 그의 자연상태 개념과 계약의 절차, 그리고 권위부여하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주권적 권력의 구성에 관해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그의 계약론은 인공주의 또는 ‘법률주의juridisme’(Terrel 1994; 2001을 참조)에 기초하고 있고, 이러한 인공주의의 이론적 목표(중 하나)는 대중들multitudo을 정치의 영역에서 배제하는 데 있다는 점이 해명될 것이다. (2) 그 다음 우리는 󰡔신학정치론󰡕에서 제시되고 있는 계약론의 형식이 홉스의 계약론과 매우 상이하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이 논의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질 텐데, 우선 [신학정치론] 16장에 나타나는 스피노자의 사회계약론이 홉스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볼 생각이다. 이 논의는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과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3) 하지만 이러한 논의만으로는 왜 스피노자가 홉스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신학정치론]에서 사회계약론의 틀을 채택하고 있는지 제대로 해명이 되지 않으므로, 우리는 17-18장에 나타나는 히브리 신정국가에 대한 스피노자의 분석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스피노자에게 계약은 정치적 계약과 종교적 계약의 이중적 형식을 띠고 있고, 그의 계약론은 국가의 원초적 토대에 관한 허구적 계약에 관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계약에 관한 것임이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스피노자가 이처럼 홉스의 계약론을 변형함으로써 보여주려는 것은 법적 제도화의 조건으로서 대중들을 규율하는 문제임이 해명될 것이다.

 

주

1)

 1960년대 이후 인간학과 정치철학을 비롯한 스피노자 연구 동향에 관해서는 진태원 2001, 2004를 각각 참조.

2)

 󰡔신학정치론󰡕과 󰡔정치론󰡕에 나타난 스피노자 정치학에 관한 전반적인 고찰로는 Balibar(2004)(스피노자 정치학 전반 및 물티투도 개념에 관한 문헌학적․분석적 연구) 및 Den Uyl(1984)(스피노자 정치학 전반에 관한 개론서); Lazzeri(1998)(홉스 정치철학과 치밀하게 비교하면서 스피노자 정치철학을 소개); Tosel(2000)(스피노자 정치철학을 자유주의 및 공화주의의 흐름과 비교, 검토)을 참조. 그리고 󰡔신학정치론󰡕과 󰡔정치론󰡕의 이론적 차이점에 관한 논의로는 Matheron(1969), pp. 307-330; Matheron(1990); Negri(1990); Moreau(2003); Balibar(2004) 1부 2-3장 등을 참조하라.

3)

 지금부터 스피노자의 저작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약어들을 사용하겠다.

󰡔신학정치론󰡕 → TTP 예) 󰡔신학정치론󰡕 16장 2절 → TTP 16장 2절

󰡔정치론󰡕 → TP 예) 󰡔정치론󰡕 4장 6절 → TP 4장 6절

󰡔윤리학󰡕 → E. 정의(D) 공리(A) 정리(P) 증명(d) 따름정리(c) 주석(s) 보조정리(l)

예) 󰡔윤리학󰡕 4부 정리 37의 주석 1 → E IV P37s2

아울러 스피노자의 고증본 전집(Spinoza 1925)은 G라는 약어 아래, 권수는 로마자로, 쪽수는 아라비아숫자로 표기하겠다. 󰡔신학정치론󰡕의 경우는 1999년 출간된 새로운 고증본 전집(Spinoza 1999)을 사용할 것이며, 인용의 경우는 “모로판”이라는 약어 다음에 쪽수를 표시하겠다.

홉스의 저작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약어들을 사용하겠다.

󰡔법의 요소들󰡕 → EL 예) 󰡔법의 요소들󰡕 → 15장 8-9절 → EL 15장 8-9절

󰡔시민론󰡕 → DC 예) 󰡔시민론󰡕 5장 11절 → DC 5장 11절

󰡔리바이어던󰡕 → L 예) 󰡔리바이어던󰡕 17장 4절 → L 17장 4절

필요한 경우, 각 저서의 쪽수를 표시해두었는데, 우리가 사용한 홉스 저서에 관해서는 논문 끝에 붙여둔 참고문헌을 보라. 

4)

 스피노자 철학의 어휘들의 빈도와 용법에 관한 표준적인 참고문헌으로는 Giancotti 1970을 참조하고, 특히 사회계약론의 문제와 관련하여 󰡔신학정치론󰡕과 󰡔정치론󰡕의 어법상의 차이에 관해서는 Matheron 1990을 참조.

5)

 사회계약론의 역사에 대한 좋은 논의로는 특히 Terrel(2001)을 참조. 그 외에 Gough 1936; Boucher & Kelly 1994 등도 참조할 만하다.

6)

 이에 관해서는 특히 Petry 1984; Secretan 1987을 참조. 이들에게 홉스의 이론은 주권의 분할 불가능성과 절대성에 관한(따라서 종교를 감독할 권리를 국가에게 부여할 수 있게 해주는) 이론적 기초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것이었다.

7)
 특히 주목할 만한 논의로는, Balibar 1985, 1997a, 1997b/발리바르 2004; Curley 1995; Den Uyl 1984; Lazzeri 1998; Matheon 1969, 1990; Moreau 1994, 2003; Ueno 1991 등을 참조할 수 있다. 하지만 영미권 연구자들 중 일부는 󰡔신학정치론󰡕과 󰡔정치론󰡕 사이의 이론적 차이점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는 특히 리 라이스와 스티븐 바본의 개별 연구 및 공동 연구에서 잘 나타난다(Rice 1990; Rice & Barbone 2000). 이들에 따르면 두 저작 사이에는 어떠한 이론적 단절도 존재하지 않으며, 두 저작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은 기본적으로 서술이나 언어의 변화”(Rice & Barbone 2000, p. 20)에 불과하다. 이들은 Matheron(1969; 1990)이나 Balibar(1988; 1997), Negri(1994), Feuer(1958), 또는 Tosel(2000)과 같은 많은 스피노자 연구자들의 주장과 달리 계약론의 현존과 부재 여부 역시 두 저작 사이의 차이점을 식별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신학정치론󰡕 17장에 보고되어 있는 모세와 히브리인들 사이의 추정상의 계약, 합의는 계약이 아니라 공포에 기초하고 있는 대중의 반응일 뿐”이며, 따라서 “두 저작 사이의 변화는 앞의 저작이 실제로 일종의 사회계약을 다루고 있다는 데 있지 않고, 단지 계약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데 있”(같은 글, pp. 22-23)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이처럼 두 저작 사이의 차이점을 최소화하는 것은 몇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는 주장이다. 첫째, 이들은 󰡔신학정치론󰡕에서 모세의 사회계약에 관한 논의가 수행하는 이론적 기능에 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둘째, 󰡔신학정치론󰡕 이후 스피노자의 정서론의 발전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맹목적이다. 더 나아가 이들은 두 저작 사이의 또 하나의 차이점으로서 대중들 및 대중들의 역량이라는 개념의 현존과 부재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전혀 주목하고 있지 않다. 이들의 이런 입장은 이들이 택하고 있는 방법론적 개체론 및 특히 스피노자 정치학에 대한 자유주의적 해석에서 비롯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컬리나 덴 우얼 같이 자유주의적 입장을 공유하는 다른 해석가들에 대해 제시하는 비판은, 실제로는 매우 사소한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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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2004-12-22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긴 글이, 그것도 여럿으로 나뉘어서 주르륵 올라온 걸 보니 압박이 느껴지는군요; 당장은 좀 졸립고 할 일도 있고 해서 그 가운데 서문만 읽고 말았지만, 그 서문이 상당히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서 조만간 끝까지 읽어볼 참입니다. =) 철학에 대해서라면 99% 문외한인지라(나머지 1%는 물론 허영이지요)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흐흐.



내용에 관해서는 물론 제가 왈가왈부할 입장이 못 되고(다 읽지도 않았으니..), 굳이 지적하자면 다소 어색한 문장들이 눈에 띄네요. 가령 "이는 특히 스피노자의 정치철학에 대해 사실이다" 같은 문장은 비문은 아니지만 번역체 같고, "스피노자는 그가 남긴 매우 적은 수의 저작들 중에서 정치학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남겼지만" 같은 말도 어색하네요. 이런 부분들을 좀 살펴보시면 좋을 듯.. 그저 지나가다가 하는 소리니 너무 괘념치는 마시고요. -.- (왠지 민망)



건강하세요

urblue 2004-12-22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안 보이셔서 바쁘신가 했습니다.

논문과는 별로 친하지 않아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만, 한번 읽어보렵니다. ^^;;

가을산 2004-12-22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단 퍼갑니다.

balmas 2004-12-22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모모님, 너무 콕 집어서 말씀하시는 거 아녜요?^^

그렇잖아도 문장들이 좀 찜찜했는데 바로 지적해주셔서 부끄럽기도 하지만, 정말 고맙습니다. 이게 다 80년대 사회과학 번역본들을 탐독한 탓이라니까요.^^;;;

그나마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지적하신 부분은 발표한 논문에 들어가지 않은 부분이라는 점이군요(ㅋ).

블루님, 가을산님, 전문적이지만 별로 볼품없는 글에까지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MANN 2004-12-25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선생님 논문이네요 +_+ 일단 서문만 읽었는데... 퍼 갈게요 ^^;

비로그인 2004-12-26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퍼갑니다. [안톤 라이저] 읽다가 보니, 칼 필립 모리츠가 레싱을 읽고 스피노자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는 주석이 나오더라구요. ㅎㅎ

balmas 2004-12-28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레싱은 독일 관념론의 스피노자 수용에 전기를 마련해준 인물이죠.

좀더 정확히 말하면 하인리히 야코비와 모제스 멘델스존의 논쟁의 단초를 제공했는데,

[안톤 라이저]에도 그 반향이 미쳤나 보군요.^^

비로그인 2005-02-11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선생님.
철학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글 두편을 퍼갑니다.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balmas 2005-02-12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처음 뵙는 분인 듯한데, 반갑습니다.^^
공부에 다소나마 도움이 된다면 다행입니다. 사실은 두 글 모두 손을 좀더 봐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형편이랍니다.^^
 
 전출처 : 릴케 현상 > 신들의 고향

神들의 故鄕

의 기획연재입니다.
이 연재는 제주의 유력 일간지인 제민일보에 1994년 6월 2일부터 1996년 1월 3일까지 매주 수요일 총 75회에 걸쳐 동일 제목으로 호평리에 연재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관련한 전문지식도 없는 이 취급하기에는 벅찬감이 있었지만 이를 직접 기고한 제민일보의 高大卿기자께서 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도와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高大卿기자께서는 이미 제민일보 연재가 끝났음에도 관련 주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수년에 걸친 조사ㆍ연구의 결정을 에 아낌없이 제공하여 주신 선처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제민일보에 게재되었던 내용을 원문 그대로 연재하도록 하겠으며 '미니해설'도 물론 高大卿기자가 쓰신 원문의 내용 그대로이며 매회마다 본문과 함께 게재된 김재경 서양화가의 그림도 함께 올립니다.
다만, 주제의 성격상 한자를 완전 배제하기가 어려워 본문에서 사용한 한자를 모두 한글로 바꾸고 괄호안에 원문의 한자를 표기하였으나 Mac o/s Hangul 7.1에 초과되는 한자는 부득히 괄호안에 한글로 남겨두었습니다.


【제민일보 高大卿기자】


「神들의 고향」출간!


【제민일보 편집자주】
제주도의 민속은 이 작은 섬이 갖고 있는 보배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민간신앙은 아직도 많은 도민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있는 산 신앙이며 이에 따른 신화도 광범위하게 전승되고 있다.
여느 다른 나라나 지역의 민속 못지않게 풍요로운 제주도신화의 세계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神들은 살아있다!'

[제79회 전국체육대회의 성화점화차 강림한 설문대할망]
"제주의 神들은 神話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현재도 제주도민과 함께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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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진/우맘 > 국보법 폐지-연우도 맞짱!



20년 후의 연우야, 미안. 네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엄마가 생각하는 좋은 일에 네 얼굴을 팔았다.
엄마가 정치경제쪽엔 좀 약해서, 제대로 된 논거를 들어가며 왜 폐지해야 하는지를 설명 못하겠지만....엄마 생각엔 그래. 국보법은, 나라를 지키는 데 보다는 권력을 지키는 데 너무 많이 악용된 것 같아. 애꿎은 빨갱이로 몰려서 다치고 아픈 사람이 그리 많다면, 그 취지가 아무리 그럴듯하다 해도, 이건 뭔가 잘못된 일 아니겠니? 나중에 울 예진이 연우가 자라서 살아갈 세상엔 무고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그런 법은 없었으면 좋겠다.

연우, 너도, 나중에 동의해 줄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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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조선인님 힘내세요!



저는 정치 얘기 가급적이면 안하려는 주의지만요. 그래도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사람을 보호해야 하는 법이 사람을 억압하는 것으로 작용한다면 그 법의 폐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국가보안법뿐 아니라 호주제 폐지를 비롯한 다른 사안들도요.

이것은 오늘도 추운 날씨에 고생하시는 조선인님 옆지기분과 조선인님, 마로를 위해 제가 쓴 글입니다.

힘 내세요!!! 반드시 태양은 떠오르는 법이니까요. 우리도 진짜 좋은 세상에서 한번 살아보자구요.

그리고 정치인들, 당신들 세비 주는 거 진짜 아깝다. 일 좀 해라. 반말한다고? 그럼 내가 존댓말하게 생겼냐...

국가보안법을 위시한 모든 악법들의 철폐를 위해 이렇게 애쓰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마음을 보탭니다. 마음만 보태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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