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진보누리
이름 자유석공 (2004-08-17 16:58:17, Hit : 208, 추천 : 5)


제목
Judicial Reveiw


1, Malbury v. Madison
1800년도 초기 우리나라 순조 임금시기 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미 대법원에 하나의 소송이 올라왔다. Writ of Mandamus 우리말로 억지로 번역하자면 금관청원이라고 해야 겠지만 간단이 말하면 국가 공무원에게 어떤일을 하도록 아니면 어떤일을 하지말도록 하던지 둘중 하나를 서민이 요구할때 올리는 청원이다. 몇사람의 원고가 같이 소송했지만 대표청원자의 이름은 말버리였고 피고는 당시 국무장관이던 Madison이 지목됐기 때문에 Malbury v. Madison 사건으로 부른다.

2. Facts Behind the Facts
내용은 간단했다. 국무 장관에 의해 추천되어 아담스 행정부에 의해 워싱턴 디씨 지방법원의 판사로 임명받은 임명장이 수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고는 대통령에 의해 추천되어 상원의 인준을 무사이 통과한 임명장 수여를 거부한 것은 잘못이라며 대법원 명령으로 임명장 수여를 강제 집행하게 해달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임명장 수여는 왜 거부되었을까? 아담스 대통령은 당시 제퍼슨과 경쟁관계였고 제퍼슨에게 자리를 내주며 물러나게 된다. 제퍼슨 내각이 들어서기 하루전 아담스는 마지막으로 전격 인사를 단행해 판사를 포함한 백여명의 연방관리를 새로 임명했는데 원고는 그중의 한명이었다. 새로 들어선 제퍼슨 내각이 전임 행정부에 의해 하루전 임명된 관리들을 곱게 봐줄리 없었고 그중 반 제퍼슨 성향을 보이던 소위 악질적 인사 몇사람에게는 사소한 기술상의 문제를 이유로 임명 무효화를 선언해 버렸다. 즉 행정부가 임명했으니 행정부가 보류 내지는 파직하겠다는 것이다. 원고인 말버리가 이에 반발, 판사 임명장을 꼭 받아야 겠다면서 소송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제퍼슨 정부의 임명장 거부 조치는 다분이 감정적 정서가 배어난 정쟁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말버리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원래 부터 지방법원 판사직 따위는 별로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다. 조지 워싱턴의 사업 파트너였으며 아담스의 개인적 친구였고 연방주의자들에게 정치 자금을 스폰서했던 그는 워싱턴 정계에서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돈줄이자 거물이었다. 소송 자체도 새로 들어선 제퍼슨 행정부에 스캔들을 더해서 이들의 정치적 위상이나 신용도를 실추시키려는 목적이었을 뿐 정말 판사로 잡범들을 상대하며 종신 근무할 생각은 꿈에도 없는 사람이었다.

더우기 원고 말버리는 법이외의 이유로도 자신만만 했는데 그 이유는 이 사건의 심의를 맡은 연방 대법원의 최고 수장이 바로 존 마샬로 마샬이야 말로 말버리와 같은 연방주의자였으며 개인적으로 절친한 친구였고 더우기 바로 자신을 아담스에 추천해 아담스로 하여금 상원의 인준을 받게 만들었던 전임 행정부의 국무 장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마샬은 자신이 임명한 사람이 정적에 의해 임명장을 받지 못한 케이스의 소원을 다루게 된 것이다.

3. Simple Issues and Answers, but…
사건심의를 시작한 대법원장 마샬은 판결문 서두에 세가지 이슈를 내놓는다.
1. 과연 전임 행정부에게 원고를 판사로 임명할 자격이 있었는가?
2. 과연 신임 행정부는 원고에게 법관임명장을 수여해야 하는가?
3. 행정부의 임명장 수여를 연방 대법원이 판결로 강제할수 있는가?

물론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었고 관련 법도 없었지만 상식적으로 보자면 사실 어려울 것도 없는 이슈였다. 전임행정부에서 헌법에 따라 연방관리를 임명한 것이고 임명 자체에 하자가 없을 뿐더러 임명장도 이미 전임 대통령의 사인이 다 들어 있는데 이를 백악관에서 보관하며 배달만 안한 것이다. 1번과 2번에 대해 마샬은 간단이 Yes 라고 답한다. 그런데 3번이 문제 였다. 물론 마샬은 여기도 Yes 라고 답한다. 간단한 이슈 그리고 간단한 답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샬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다. 즉 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는 행정부에 임명장 수여를 강제할 판단을 내릴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대법원은 아예 이사건을 심의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했다. 심의자체가 부당하다고 잘라 버린 것이다. 절차법상의 이유였다.

4. Procedural Faults?
절차법이라 함은 간단히 말해 jurisdiction, 즉 관할권상의 문제로 대법원은 지방법원 판사의 임명에 대해 1심부터 가타 부타 할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헌법상 대통령에 의해 임명받는 사람들은 외교관등 몇몇 주요 보직( principal officer) 으로 이들은 상원인준을 통해 임명된다. 만일 지방법원 판사가 헌법에 명시된 주요 보직중 하나라면 모르지만 아니라면 설사 상원 인준을 받았다 해도 이는 대통령 직권 임명이므로 지방법원에서 행정 소송을 해야지 대법원으로 이를 가져올수는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미 헌법은 대통령과 행정부 부처장이 직권으로 필요에 따라 상원 인준 없이 하급관리( inferior officer) 를 임명할수 있다고 되어 있다. 마샬은 같은 사법부 관리라도 연방 대법원 판사는 헌법에 명시된 principal officer 이므로 연방대법원 판사직의 임명이 헌법의 문제가 된다면 헌법기구인 Federal Supreme Court로 문제를 가져올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방법원 판사의 경우 헌법 조문에 직책이 명기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는 행정법상의 이슈는 될지언정 헌법상 심의할 이슈가 아니라는 것이다. 헌법과 상관없는 주제 이므로 그 임명과 관련된 법적 타당성 문제는 1심부터 연방 대법원에서 처리할 문제가 아니며 만일 소송 절차를 밟아 올라온 케이스라면 모르되 이사건은 1심부터 연방 대법원에 소를 제기한 것은 잘못 이라는 논리였다. 즉 임명장 수여를 거부받은 사람이 만일 지방 법원을 통해 소송을 했고 지방법원 소송이 불만족 스러웠다면 소정의 절차를 거쳐 어필하는 과정을 택해야 했었다는 것이다.

‘…원고 말버리의 임명장은 법적 효력이 있으므로…임명장 전달에 실패한 신임정부의 행동은 잘못… 원고는 임명장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지방법원에서 다루었다면 충분이 임명장 전달을 강제할수 있었을 것…그러나 연방 대법원은 상기의 이유로 이문제에 대한 관할권이 없으므로 원고의 Mandamus 청원을 거부한다…

판결 자체 즉 Holding은 한줄로 요약될수 있는 내용이었다. [연방 대법원은 원고의 소를 심의할 관할권이 없으므로 원고의 Mandamus 청원은 각하 한다. ( dismiss) ] 한마디면 될 것을 마샬은 쓸데 없이 세개의 질문을 이슈로 던진후 자문자답 형식으로 장장 40 페이지에 걸쳐 장광설을 늘어놓은 것이다. 당연이 판결문 전문은 임명장 전달에 실패한 정적 제퍼슨 행정부에 대한 암시적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도 결론은 원고 패소니 사법부가 행정부에 대해 정치적으로 보자면 치고 빠지기 전술을 한 것으로도 볼수 있다. 물론 충분이 제퍼슨을 괴롭힌 말버리는 다시 소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단순했을까?

5. The Issue within the Issues
존 마샬은 개인적으로 말버리, 아담스와 친구였으며 같은 연방주의자 진영에 속해 있었다. 그의 모친은 제퍼슨과 사촌이었다고 하니 사실 마샬은 정적이던 제퍼슨과도 친척 관계였다. 그러나 이같은 사소한 개인배경과는 별도로 이판례가 오늘날에도 미 연방 대법원의 헌법 소원 판결의 기본이 되는 Seminal Case 로 강력한 파워를 과시하고 있는 이유는 마샬이 판례에 담아놓은 견해였으니 이를 Marshall’s View라고 한다.

그당시 미국은 건국 초기였고 법관들이 가진 법이라곤 영국의 전통법인 Common Law 그리고 고대의 Justinian Code 와 함께 미국 헌법 Constitution 밖에는 없었다. 물론 소소한 지방법이나 정부관련 법들이 있었지만 당장의 필요를 위해 만들어진 이같은 법들은 새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연방정부의 권력을 둘러싸고 별 도움이 안되었을 뿐 아니라 Malbury 케이스에서도 보이듯 오히려 갈등의 단초만을 제기했다. 더우기 마샬과 제퍼슨의 갈등은 단순 정파적 이해관계만은 아니었다. 미국이라는 신생국가의 정부 조직이나 권력 구조를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에 대한 이견이 심각했다. 마샬은 연방 정부론을 제기한데 비해 제퍼슨은 유럽식 중앙 집권적 정부에 대한 비젼을 갖고 있었으며 제퍼슨 행정부 시대에는 심지어 사법부를 행정부안의 일개부서로 편입하려는 움직임마저 있었다. Marshall 의 견해는 새로운 연방정부 내부의 권력 분할과 상호견제에 대한 대법원의 위상과 사법적 심의의 기초를 놓았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말버리 케이스에서 마샬은 대통령이 관리를 임명할수 있다고 확인하며 그 근거로 헌법의 조문을 들었다. 그는 대통령이나 의회 그리고 대법원은 모두 헌법상 기능과 조직이 명시된 헌법기구라는 점을 상기함으로써 미 헌법에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는 삼권분립이란 단어를 개념적으로 투사해 이에 따른 상호 견제관계를 분명히 인정했다. 흔히 법이라고 하면 조문이나 Prima Facie case 를 위한element (조각요소) 만을 생각하지만 사실 조문이나 element는 실제 법리 해석에서는 15% 정도만 복무할 뿐이다. 하나의 케이스가 Reasoning에서 Prima Facie( 모든 조각요소를 만족한 경우) 를 논리적으로 깨고나면 그 케이스는 그 성격에 따라 overruled case 나 distinguished case가 되어 새로운 판례법이 생기는 과정이 연속되는 것이다.

6. Supervisory Power
그런 의미에서 마샬의 견해는 Judicial Review: Supervisory Power라는 룰을 새로 만든 것이었다.

미 행정부나 의회의 권한은 헌법에 의해 주어진 것이듯 헌법에 대한 심의권한은 헌법에 따라 대법원에게 부여된 고유권한이므로 입법부던 행정부던 헌법을 넘어서는 행동을 할 경우 대법원은 이를 교정할 권한, 즉 감독하고 심의할 권한- Supervisory Power를 <헌법에 의해 갖고 있음>을 밝힌 것이었다. 특히 말버리 케이스에서 마샬은 Dicta 를 통해 < 의회가 헌법에 위헌적 입법권을 행사할 경우 대법원은 이같은 법을 Overrule 할 권한이 있음>을 명시적으로 밝혔는데 이는 <행정부의 대통령이 위헌적 행정권을 행사할 경우 대법원은 이같은 행정권 행사를 막을 권한도 있음>을 암시적으로 시사한 부분이었다. 오늘날 미국 대법원 판사들에게 위헌 소원 판결의 전범을 보여주는 마샬의 무서운 점이 바로 이부분 이었다. 제퍼슨 이라는 신임 대통령과 대립이 심화되던 시절 그는 아무 상관없는 의회를 판결문에 끌어들여 의회가 잘못하면 대법원이 교정한다고 했지만 사실 진짜 메시지는 행정부가 잘못할 경우 대법원이 교정할수 있다는 Supervisory Power를 곁두리로 선언한 데 있었다. 정치적 갈등을 피해 행정부 수장이던 제퍼슨을 직접 자극하지 않으면서 사법부를 행정부에 복속시키기를 꾀하던 제퍼슨에게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이었다.

여담이지만 개척민 측량사의 아들이던 마샬은 어린 시절 공식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12세 무렵에 어느 교황의 교서집을 암송함으로써 라틴어를 독습했다고 하는데 그의 판결문의 문장이 고전적인 것은 아마 그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윌리엄앤 매리 대학을 나와서 변호사가 되었는데 옷을 하도 남루하게 입고다녀서 길에서 그를 본 어느 사업가가 저런 촌스런 인간은 절대 내 사무실에 고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핀잔을 주었다. 나중에 그가 변호사라는 것을 알게된 이 실업가는 저런 변호사는 분명 엉터리 일 것이라며 나중에 소송이 생기자 당시로써는 최고 비싼 수임료인 100불을 부르던 금단추 양복의 변호사를 찾아간다. 그러나 금단추는 소송에 이기지 못했다. 마샬이 최고라는 주변사람들의 권유로 사업가는 법정을 찾아 마샬이 다른 사건에서 변론하는 것을 듣고 그의 변론에 반하게 된다. 그리고 마샬을 찾아와 제발 사건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는 이미 파산 직전이었고 변호사 비는 단돈 5불 밖에 낼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마샬은 아무말 없이 5불로 이 사람을 위해 변론해 소송에서 이겼다는 말이있다. 그가 공직에 발을 들여놓기 전의 이야기다. 장관을 역임했지만 마샬은 대법원 판사시절 보조 판사였던 조지 워싱턴 조카의 권유로 선금을 받고 내키지 않는 자서전을 썼을 정도로 돈에 쪼들리며 살았던 주변머리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7. Holy Trinity v. Ultimate Source of Power
로크와 몽테스키외를 판결문의 각주로 삼았던 마샬이 추구했던 권력구도는 삼권 분립의 조화된 정부 였다. 행정부와 입법부 그리고 사법부가 하나의 삼위일체를 이루어 권력을 교환하며 상호 견제를 통해 수립, 집행, 심의 기능을 나누는 체제였다. 마샬은 특히 사법부에 위헌 심의권을 삽입함으로써 삼위일체를 운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마샬이 수립한 대법원 심의권은 1940년대 루스벨트가 뉴딜 정책을 수립하면서 도전을 받게 된다. 뉴딜 정책에는 국가의 경제 개입이 전제되어 잇었는데 보수적이던 대법원은 국가의 경제 개입에 반대하는 의견으로 뉴딜관련 입법을 번번히 무산시켰다. 그러나 콜롬비아 법대 출신의 루스벨트 역시 헌법 조문주의의 맹점을 잘 알았고 대통령으로써 자신에게 부여된 헌법상의 권한을 십분 활용해 대법원 판사의 정원을 늘리며 우호적인 정치 판사들을 대거 충원한다. 내부의 의견차이로 법원이 가장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법리의 일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지경에 이르자 대법원은 마침내 행정부에 백기를 들고 사법적 일관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행정부의 법안을 인정하기로 일종의 신사계약을 맺는다.

즉 삼권 분립이라는 삼위 일체는 어느정도 깨진 것이다. 그 이유는 물론 1차적으로 대법원 판사 임명권을 대통령에게 귀속시킨 헌법 조문상의 근거조항이었고 이를 적절히 활용할줄 알았던 루스벨트의 두뇌였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대법원이 심의기능을 시대와 민의에 역행해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루스벨트가 민의에 역행하는 입법안과 정책을 추진했다면 의회의 반대에 부딪혔을 것이고 탄핵까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루스벨트는 의회의 지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공황 시절 미국은 너무도 비참했던 것이다.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는 이 비참했던 기록의 증언이다. 일례로 당시 소련에서 5천명의 철강 노동자 이민을 받겠다고 제안했을때 25만명이 지원해 소련은 1만 5천명으로 이민 정원을 늘렸다고 한다. 어떤 형태로든 정책적 경제 복구와 사회보호가 필요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미 대법원은 Commerce Clause 의 한계를 심의하며 무엇이 Commerce 이고 무엇이 아닌지에 대한 탁상공론만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추진하던 정책이 Commerce 가 아니면 연방 정부는 그같은 정책을 추진할수 없으며 Non Commerce 법안은 주 자치 기구인 지방정부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심각한 필요에 직면했던 정부 정책에 대한 급박한 현실과 민의에서 너무나 동떨어진 논리였고 결국 가진자가 유리한 자유 무역 주의나 개인주의적 지평의 경제복구라는 구시대적 전제를 확인하는 논리였다. 민심을 등에 업은 루스벨트 행정부를 이길수 없었다. 사법부는 행정부에게 진것이 아니라 민심에 역행하는 길로 들어가 스스로 패한 것이었다. 삼위일체에만 연연한 나머지 궁극적 권력의 원천은( Ultimate Source of Power) 백성들에게 있다는 Constitutional Preamble을 망각한 댓가였다. 여론과 투표권이 결부된 정치적인 이슈는 가급적 Substantive Law 의 지평에서 다루지 않는 관행이 생긴 것이 이즈음이다. 그리고 이같은 관행은 오늘날로 이어져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에 대한 위헌 소원을 대법원은 <정치적 문제>라는 이유로 답변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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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0-22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분이 몰래 저에게 퍼다주셨는데, 저 혼자만 보기가 아까워서 공개합니다.
퍼온 분께는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전출처 : 로쟈 > 러시아문학 20세기의 책 20권(2)

(11)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1928-1940). 드디어 불가코프! 그의 작품집은 어디서나 눈에 띄고, 또 희곡들은 거의 끊이지 않고 공연되기 때문에 과연 이 작가가 스탈린 시절 이후 오랫동안 탄압 받고 금지됐던 작가였던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거장과 마르가리타>는 그의 생전에 발표될 수 없었던 작품이다). 어쨌든 <불가코프 백과사전>까지 고골, 도스토예프스키 사전과 같이 나올 정도의 지명도를 그는 갖고 있고, 또 누리고 있다. 그는 프랑스의 극작가 몰리에르를 (권력과의 관계에서) 자기 삶의 모델로 삼았었지만(그는 <몰리에르의 생애>란 전기도 썼고, 몰리에르가 등장하는 드라마 작품 <위선자들의 밀교>도 썼다), 그가 뒤늦게 누리는 영광은 몰리에르에 뒤지지 않는 듯하다.

 

우리말로 번역된 불가코프도 제법 적지 않다. 혁명을 풍자한 <개의 심장>, <운명의 알> 등의 중편들에서 <백위군> 같은 소설, 그리고 <극장>, <위선자들의 밀교> 같은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여전히 <투르빈가의 나날들> 같은 대표 희곡들이 아직 번역되지 않았고(출간예정이라는 소문은 있다), 여러 러시아 교수들이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거장과 마르가리타> 또한 현재로선 품절이다. 우리에게서 불가코프가 그 정도의 대접을 받지는 못하는 걸로 봐서 우리의 불가코프 수용에는 어떤 장벽이 있는 듯하다.

 

(12)이반 부닌의 <어두운 가로수길>(1937-1945). 러시아에서는 얼마전에 이반 부닌의 새 전기가 출간됐는데(아직 구경하진 못했다), 러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부닌은 20세기 전반기의 유능한 시인/작가의 한 사람이다. 부닌은 그가 러시아 사람이 아니라 인도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동양적인 외모를 갖고 있는데, 외모뿐만 아니라 정신세계에 있어서도 부닌은 지극히 동양적이다(특히 불교적이다). 러시아나 서구인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여겨질 수도 있는 그의 문학이 우리에겐 오히려 친숙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나의 도식적인 이해에 의하면, 부닌은 체홉, 고리키와 함께 거대한 작가 톨스토이의 문학적 계승자의 한 사람인데, 체홉이 톨스토이의 문학성을, 그리고 고리키가 민중성을 이어받았다면 부닌은 그의 종교성을 계승하고 있다.

 

내 기억에 <어두운 가로수길>은 우리말로 번역돼 있으며(<비밀의 나무>란 제목으로 나왔던가), 기타 그의 단편들(<사랑의 문법>으로 번역돼 있다) <마을> 같은 중편들도 번역돼 있다(그의 단편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이며, <일사병>이란 단편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견주어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아직 <아르세니예프의 삶> 같은 자전적 대표작은 번역되지 않았다. 더불어 지적하자면, 나보코프도 그랬지만 부닌도 문학적 출발은 시인이었다. 그의 시들도 번역된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지만, 가능할는지  

 

(13)A. 트바르도프스키의 <바실리 테르킨>(1941-1945). 드디어 내가 처음 듣는 작품이 나왔다. 사실 트바르도프스키란 이름을 내가 기억하는 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1962년에 잡지 <노브이 미르>에 실을 수 있도록 한 편집장 트바르도프스키로서이다(또 다른 트바르도프스키가 있는 게 아니라면). 그가 솔제니친에 맞먹을 만한 작가였다는 건 모르던 사실이다. 제목으로 봐선 바실리 테르킨의 일대기를 다룬 듯싶은 장편소설인데, 아마도 그가 혁명과 내전기를 관통하는 듯하다. 수히흐 교수는 죽음과 전쟁, 운명, 조국에 대하여란 장제목을 달았다.

 

(14)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1945-1955).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작품이다. 1956년에 이 작품을 해외에서 먼저 출간하고, 이어서 1958년에 (다소간 정치적인 선정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작가 파스테르나크는 다소간 은둔적인 성격에 걸맞지 않은 문학적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다(그는 스톡홀름에 가는 걸 포기한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 때문에 그는 1960년에 사망하고 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이 작품 때문에 그는 조국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자신의 목숨마저 재촉한 것이다. 지바고 때문에!(지바고는 러시아어 의 고어(古語) 형용사형이다)

 

시인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사실 소설로 씌어진 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그런 의미에서 푸슈킨의 시로 씌어진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과 마주보고 있다), 지바고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유고시 25편은 작품 전체를 이해하는 데 참조물이 아니라 핵심이다(이걸 빼놓은 번역서들도 있었는데, 좀 어이없는 경우이다). 이 말은 소설미학적인 기준에서 이 작품을 판단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뜻이다(이 작품에는 어이없는 우연들이 남발되고 있다). 푸슈킨이 특이한 소설을 썼다는 의미에서 파스테르나크는 특이한 시를 쓴 것이며, 러시아 소설의 전통은 그렇게 열리고 닫힌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망명작가에 의해서.

 

<닥터 지바고> 1988년쯤에야 해금되며(그 이전에는 그의 초기 시들만이 출판될 수 있었다) 그맘때쯤 저명한 러시아 문학자 드미트리 리하초프의 편집하에 간행된 최초의 파스테르나크 전집에는 빠져 있다(나는 이 전집과 <닥터 지바고>를 따로따로 샀다). 굳이 찾으러 돌아다니진 않았지만, 이 작품이 포함된 전집은 아직 보지 못했다. 한편, 1930년대 이후 생계를 위해서 옮긴 번역작품들(그는 셰익스피어와 괴테 등을 주로 번역했다)은 요즘 따로 출간돼 있다. 우리말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 외에, <나의 누이, 나의 삶>이란 번역시집(그의 시들은 상당히 난해하지만, 좀 이해하면 재미있다), 그리고 <어느 시인의 죽음>이라고 옮겨진 그의 자전적 기록 정도(마야코프스키와의 교우와 그의 죽음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그리고, 라라의 모델이었던 올가 이빈스카야의 회고록 정도.

 

(15)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1958-1968). <수용소군도>가 출간된 건 1972년 겨울 파리에서였고, 이 때문에 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소비에트로부터 망명을 강요받게 된다(그에겐 강제출국 당하거나 망명하거나의 선택이 있었다). 흐루시초프 시대의 해빙 분위기를 타고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출간될 수 있었지만, 1970년대는 이미 (해빙은 물 건너 간) 브레즈네프의 시대였고, 이 새로운 시대는 자신의 조국을 거대한 수용소라고 고발하는 작가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다.

 

<수용소군도>는 소비에트뿐만 아니라 책이 출간된 프랑스에서도 파문을 일으켰는데, 과거 소련을 지지했던 좌파 지식인들에게 결정타를 안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지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회의해야 했다(상당수는 스탈린주의의 수용소 대신에 마오쩌뚱의 문화혁명을 선택하며, 한편에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을 비판하는 신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서는 프랑수아 도스의 <구조주의의 역사>에서도 기술되어 있었던 듯하다). 물론 솔제니친이 망명지로 안착했던 곳은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의 시골마을이었으며, 거기서도 그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연설들을 늘어놓는 바람에 곧 여론의 관심밖에 놓이게 된다(흔한 오해와는 다르게 솔제니친은 공산주의자이다. 다만 그의 공산주의는 종교적 공산주의일 따름. 현대인은 신을 잊었다!는 게 그의 단골 레퍼토리이다).

 

한때의 신화였던 작가였지만(한 문학작품이 한 시대의 표정이 되고, 한 시대의 좌표를 바꾼다는 건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그는 너무 뒤늦게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으며 (좀 무례한 말이지만) 너무 오래 살고 있다. 몇 번 추진되던 한국방문이 무산될 정도로 건강이 썩 좋은 건 아니면서도 나름대로 장수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엔 <신화와의 작별>이란 제목으로 방대한 분량의 평전까지 출간됐는데, 그는 생전에 자신의 신화가 탄생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고 있는 드문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망명문학으로서의) 러시아문학이 푸슈킨에서 시작해서 파스테르나크에서 끝난다고 했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서의) 소비에트 문학은 고리키에서 시작해서 솔제니친에서 끝난다. ,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수용소에서 끝난다. 솔제니친 이후의 소비에트 문학은 잠시 농촌문학(발렌친 라스푸친)과 일상문학(유리 트리포토프)에 의해 채워지면서 소비에트 러시아의 종말을 맞는다.

 

우리말로 번역된 솔제니친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수용소군도>(5권이던가?)를 비롯하여 아주 많다. <암병동> <1>, <붉은 수레바퀴>(이 대작도 나오다 만 것 같다)까지가 그의 주요 장편들이라고 한다면, <마트료나의 집> 등과 같은 초기 단편들도 여럿 번역돼 있고, <사슴과 라게리의 여인>(라게리수용소란 뜻이다) 같은 희곡작품도 번역돼 있다(오늘 헌책코너에서 산 그의 희곡집에는 안 들어 있는 걸로 봐서, 그는 희곡작품도 꽤 여럿 쓴 모양이다). 그리고 그의 에세이집까지. 

 

(16)B. 샬라모프의 <콜르임 이야기>(1954-1973). 샬라모프는 이름만 들어본 작가인데, 이 정도로 지명도가 있는지는 몰랐다. 콜르임은 수용소가 있었던 지명이고(그러니까 아마도 시베리아 어디일 것이다), 콜르임 이야기는 콜르임을 배경으로 한 연작이다. 웬만한 작품집에 들어가 있는 <콜르임 이야기>가 다 발췌인 걸로 봐서 이 연작으로 작가가 얼마나 많은 걸 썼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사실, 샬라모프 자신이 15년간(1937-1951) 거기에서 유형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그 이후에 그는 그 기간보다도 더 긴 시간 동안(꼬박 20년이다!) 자신의 유형생활을 되새김질하는 이야기들을 쓴 것이다. 그런 사실만으로도 예의상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샬라모프에 대한 논문들이 국내에서도 나오고 있으므로 번역본들도 곧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17)안드레이 비토프의 <푸슈킨의 집>(1964-1971, 1978) 최근에 비토프의 2권짜리 작품선집이 새로 나왔는데, 물론 장편 <푸슈킨의 집>은 제외한 것이다(원제인 푸슈킨스키 돔은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문학연구소로 보통 푸슈킨연구소라고 부른다. 거기엔 푸슈킨의 데드마스크가 많은 육필 원고와 함께 보존돼 있다고 한다). <푸슈킨의 집>은 작가가 계속 버전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확정된 연도를 아직 표시할 수 없다. 내가 갖고 있는 건 그나마 작년인가 새로운 장정으로 출간된 것인데, 현재까지는 최종본이라고 할 수 있다.

 

비토프의 이 소설 역시 아직 읽지 않았지만, 이 작품은 전형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다(좀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의 고전이다). 그건 각종의 텍스트들이 교직되어 새로운 텍스트를 축조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그러니까 나보코프의 소설에서와는 달리, 진정한 문학적 유희, 텍스트의 즐거움(바르트의 용어)이 실현되고 있는 것. 물론 제목이 암시하는 바대로, 그것을 통칭할 수 있는 것은 푸슈킨의 집이다. 푸슈킨의 문학적 유산으로서의 러시아문학 전체가 이 소설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인자이거나 잠재적 인자들이다. 실제로 비토프는 나름대로의 푸슈킨 연구자이기도 하며, 푸슈킨에 관한 두 권의 책, 1825년의 푸슈킨, 1836년의 푸슈킨을 편집하기도 했다(1825년은 제카브리스트 봉기가 일어난 해이며, 1836년은 푸슈킨의 생애 마지막해이다. 그는 1837 1월에 사망했기 때문에).

 

물론 내가 아는 한, 비토프의 작품은 아직 우리말로 번역된바 없다(어디 잡지에 소개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수년 전에 한국 펜클럽 초청으로 방한할 뻔했으나 역시 무산됐다(그러니까 그는 아직 한국과는 아무런 인연을 갖고 있지 않다). <푸슈킨의 집>에 대한 연구서들은 이미 러시아와 미국 등지에서 나오고 있으며, 국내에도 연구논문들이 있다. 작품도 번역돼 나올지는 두고 봐야겠다.  

 

(18)바실리 슉쉰의 <성격들>(1973). 짐작에 <성격들>은 특정한 작품이 아니라 슉쉰의 문학을 총괄하는 작품집인 듯하다. 또 그래야 말이 된다. 그의 문학은 그의 삶 전체로 웅변하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검게 탄 얼굴에 고지식하고 무뚝뚝한 농부 같은 (한 성격 할 것 같은) 인상의 슉쉰은 70년대 초반 소비에트 문화계의 간판이었다(우리 작가로는 딱 황석영 같은 타입이다. 황석영이 영화감독도 겸했다면). 그는 영화계에서도 유명인사였는데(감독으로도 유명하다), 1973년에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쓰고 주연과 연출까지 맡은 영화 <칼리나 크라스나야>(사전적 의미로는 빨간 까마귀밥나무란 뜻이다)는 각종 영화상을 휩쓸며 수천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대학원 시절에 이 영화를 봤을 때는 그렇게 유명한 영화인 줄 몰랐다). 그건 그만큼 슉쉰이 러시아 나로드(민중)의 정서에 가장 잘 호소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수히흐 교수의 장제목은 한 영혼이 아프다. 작가-예언자란 평까지 듣는 슉쉰은 러시아의 영혼이면서 한 시대의 영혼이었던 것. 

 

하지만,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내용은 별로 많지 않다. 얼마 전 그의 사망 30주년을 맞는 특집기사들을 보고 새삼 작품집과 영화CD 등을 사두었고, 엊그제 헌책코너에서 우연히 그의 전기를 구입했을 뿐이다. 그러니 알 준비가 되어 있을 뿐인 것. 한국에서의 사정도 크게 다르진 않은데, 몇 편의 단편이 소개돼 있는 게 전부이다. 스첸카 라진의 농민반란을 소설화한 <나는 너희에게 자유를 주러 왔노라> 같은 대표적 장편소설은 한국 독자들의 구미에도 맞을 듯하므로, 한번 기다려봄 직하다(이 작품의 번역은 오래 전에 한번 추진되었다가 무산됐던 걸로 안다. 분량 때문에). 참고로, 슉쉰을 추모하는 기고문에서 한 작가는 러시아문학에서 다섯 명의 위대한 작가를 꼽았는데, 푸슈킨, 고골,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슉쉰이 그 다섯 명이다.    

 

(19)발렌친 라스푸친의 <마쪼라의 이별>(1976)(20)유리 트리포토프의 <노인>(1978)은 한꺼번에 언급하기로 한다(막간이 너무 긴 것 같으므로). 브레즈네프 시대인 1970년대 러시아문학의 대표적인 경향은 농촌문학 (도시의) 일상문학이었는데, 라스푸친과 트리포노프는 각각 이 두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지명도에 있어서는 라스푸친이 한 수 위인데(제정 말기의 괴승 라스푸친과 성이 같지만 무관하다고 한다), 러시아의 중학교(1학년부터 11학년까지 같은 학교에 다닌다) 교과서에는 그의 작품들이 다수 수록돼 있어서 <학교에서 배우는 라스푸친>이란 책도 나올 정도이다. <마쪼라의 이별>은 우리말로 번역돼 있는데(<소련동구문학전집>), 댐건설로 수몰 예정인 한 농촌마을 사람들의 얘기이다.

 

라스푸친은 농촌문학에 심리적, 철학적 깊이를 부여한 걸로 평가되는데, 우리의 전통적인 무속신앙과 유사한 지킴 신앙 등이 다뤄지기 때문에, 비교적 친숙하게 읽힌다. 라스푸친의 작품으로는 <마쪼라의 이별> 외에도, <마리아를 위하여>(원제는 마리아를 위한 돈), <마지막 기한>,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등이 우리말로 번역돼 있고, 트리포노프의 작품으론 <긴 이별>, <또 다른 삶> 등이 번역돼 있다(<소련동구문학전집>에 실려 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이지만, 페테스트로이카 이후의 러시아문학, 혹은 포스트-소비에트의 문학은 선정에서 빠져 있다. 그건 걸작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음 세기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20명의 작가와 작품 목록에 (국내에서 다소 과대평가된) 친기스 아이트마토프(<하얀배>, <백년보다 긴 하루>, <처형대> 등이 번역돼 있다)가 빠진 것이 반갑고, 블라지미르 보이노비치(<병사 이반 촌킨의 모험>, <2040> 등이 대표작이다)가 빠진 것이 아쉽다. 또 하지만, 서두에서 얘기했듯이, 이러한 선정이 편파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일을 벌이면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으므로

 

04. 10. 20.

 

P.S.1. 대략 본문에서 나열한 목록을 볼 때, 시의 경우가 제외되긴 했지만, 러시아문학의 20세기가 결코 다른 나라에 뒤질 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19세기와 비교해 보면 다소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인데(이건 1910-20년대 시인들의 목록이 추가돼야 카바될 수 있다), 그래서 러시아문학사에서는 넓은 의미에서 19세기를 금세기라고 하고 20세기를 은세기라고 한다. 그런 논리에 따르자면, 21세기는 동세기가 된다. 아직은 거의 출발선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동세기라고 해서 (경쟁이) 널널한 건 아니다. 무릇 작가라면 상당한 재능과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무장하고 목숨을 걸고 써야 동세기 문학사에라도 이름을 걸 수 있을까 말까이다(물론 내 생애에는 그 문학사의 종결을 보지 못하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근대문학 100년을 갓 넘긴 한국의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축복 받은 편이다. 적어도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를 상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보코프나 불가코프를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일까?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적당한 재능과 적당한 문제의식으로 무장하고 팔릴 만한 것에만, 혹은 사소한 것에만 목숨 걸며 써대는 것처럼 보이는 건? 한국문학의 황금시대는 이미 지나가버렸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언제? 언제였단 말인가?..

 

P.S.2. 지난 통신문 (46), (47)에도 이런저런 오류/오타들이 있었는데, 중요한 내용상의 오류들만 교정한다. 먼저, (46)에서 푸슈킨 동상에 새겨진 <기념비>의 시구가 1연과 3연이라고 했는데, 3연과 4연이다. 3연은 확실했고 나머지는 미심쩍었는데(그래서 내 기억이 맞다면이란 단서를 달았었다) 지난주에 근처에 간 김에 확인해봤다. 동상의 받침대 왼편에 새겨진 것이 3, 나의 명성은 위대한 러시아 전역에 퍼져 가리라,/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민족이 그들의 언어로 나를 부르리라,/ 자랑스러운 슬라브족의 자손과 핀족, 지금은 야만적인/ 퉁구스족, 그리고 초원의 친구인 칼미크족까지.이고, 오른편에 새겨진 게 4, 그리고 오랫동안 나는 민중의 사랑을 받으리라,/ 내가 리라로 선량한 감정을 일깨우고,/ 이 가혹한 시대에 자유를 찬양하고,/ 쓰러진 자들에게 자비를 호소했으므로.이다  

그리고 통신문 (47)에서 노벨문학상 후보가 될 만한 동시대 러시아 작가들을 거명하면서, 드미트리 피로고프, 레프 루빈슈타인 등의 개념주의 시인/작가들이라고 했는데, 피로고프가 아니라 프리고프이다. 피로고프는 고골의 <넵스키> 거리에 나오는 속물 장교로 그 이름의 어원은 피로기(고기만두란 뜻)이다. 가장 저명한 개념주의 시인을 고기만두로 만들 뻔했는데, (음성학적으로) 두 이름이 헷갈릴 만하지만 그건 실례라고 해야겠다. 참고로, 프리고프는 수년 전에 방한해서 문학강연을 한바 있는데, 마치 무슨 주술사처럼 신들린 듯한 시낭송을 겸했었다(하지만, 무당은 아니고 상당히 똑똑한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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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러시아문학 20세기의 책 20권(1)

몇 달 전 통신문에서 잠깐 언급한바 있는데, 막간을 이용해서(이래저래 무거운 머리도 비울 겸) 러시아문학 20세기의 책 20을 꼽아본다. 선정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페테르부르크대학의 이고르 수히흐 교수가 한 것인다. 그는 체홉 전공자로서, <체홉 시학의 제문제>(1987, 박사학위논문)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시간, 장소, 운명>(1995) 등의 저서를 갖고 있는 중견학자이다(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에 망명했던 작가 도블라토프는 이미 클래식 작가의 리스트에 올라 있고, 4권짜리 전집과 함께 대부분의 작품이 문고본으로 나와있다. 그 자신은 작가 체홉을 가장 닮고 싶어했다고).

 

러시아의 체홉 연구에 있어서는 차세대 선두주자로 꼽히는 수히흐 교수는 페테르부르크에 소재한 출판사 아즈부카에서 나오는 문고본 클래식의 편찬에도 적극 관여하고 있기도 하다(이 문고본의 체홉 등은 그가 편집하고 해설을 붙였다). 그는 올 초에 <20세기의 책 20>(544/ 5,000부 발행)이란 책을 출간했는데, 말 그대로 20세기 러시아문학의 고전 20권을 선정하고 각 작품에 대한 자신의 품평을 곁들인 에세이이다. 물론 그의 취향이 어느 정도 반영돼 있는 선정일 테지만, 내가 보기에 어느 정도의 객관성은 유지되고 있는 듯하며, 따라서 우리가 외국문학으로서의 20세기 러시아문학을 이해하고자 할 때 유익한 참고가 될 만하다(이와 다르게 참고할 만한 것은 이곳의 문학 교과서들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로선 그의 목록을 보고서야 처음 알게 된 작가와 작품이 없지 않으며, 절반 정도의 작품은 아직 읽지 않았다. 다소간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자극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목록에 없는 작품들을 읽었다고 변명하는 수밖에). 20권의 목록을 차례로 나열하면서,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국내 소개현황도 함께 언급하도록 하겠다(<러시아문학사전>을 현재 안 갖고 있기 때문에 작가들의 생애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달지 못하며, 그저 떠오르는 몇 가지 인상만을 적는 식이 되겠지만).  

 

(1)안톤 체홉의 <벚꽃동산>(1903). 체홉 전공자답게 체홉의 마지막 작품 <벚꽃동산>을 제일 처음으로 꼽았다. 그리고 <벚꽃동산> 20권 가운데 유일하게 드라마 작품이기도 하다. 나머지 19권의 작품들은 전부 장편소설이거나 단편소설집들이다(그러니까 이 20에 시는 빠져 있다). 사실, <벚꽃동산> 20세기를 시작하는 작품이라기보다는 19세기를 마감하는 작품이다(정확하게는 그 경계를 표시하는 작품이다). 물론 <벚꽃동산>은 우리말로도 여러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으며 자주 공연되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을 간혹 <벚나무동산>으로 번역/공연하는 경우도 있는데, 원작의 제목이 벚꽃이나 벚나무 둘 다 의미하기 때문에 오역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벚꽃동산>이라고 옮겨야 한다. <벚나무동산>이라고 옮기는 건 미적 가치보다는 경제적/실용적 가치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서 이 작품의 주인공을 로파힌으로 볼 경우에나 유력한 번역이다(그건 독창적인 해석이지만, 상식적이지는 않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 작품은 라예프스카야(=귀족계급)의 아름다운 벚꽃동산이 그걸 고작 벚나무동산으로 간주하는 로파힌(=상인계급)에게 넘어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는 이 동산을 별장지로 개발하고자 하며, 4막의 배음(背音)으로 이 벚나무들을 찍어내는 소리가 들린다. 참고로, 작가 체홉은 객관적인 관찰자였지만 인간 체홉은 아름다움의 예찬자였다.   

 

곁다리로 말하자면, 체홉의 (성공한) 첫 장막극인 <갈매기>는 전세계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 다음으로 무대에 자주 올려지는 작품이라고 한다. 어제 날짜 <문학신문>의 한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알게 된 건데, <갈매기>에는 세 가지 버전이 있다. 물론 체홉 원작의 <갈매기>가 있고, 이걸 비틀어서 트레플료프가 (체홉 <갈매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살에 실패하지만, 나중에 누군가에게 타살 당한 걸로 이야기를 다시 쓴 보리스 아쿠닌의 희곡 <갈매기>(2001)가 있다. 주로 탐정소설을 쓰는 아쿠닌은 드물게도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는 가장 인기 있는 동시대 작가이다(그의 작품들은 연극으로 공연될 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또 하나 오페레타 버전의 <갈매기>가 있으며, 이건 알렌산드르 주르빈의 작품이다. 그는 1990년부터 12년간 미국 뉴욕에서 살다가 왔으며(그러니까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먼저 공연된 그의 <갈매기>는 이번 시즌에 러시아에서 초연된다. 이 세 <갈매기>를 나란히 무대에 올리는 곳은 극단 <슈꼴라 사브레멘노이 삐에스이>(동시대 희곡학교란 뜻)이며, 연출자는 이오시프 라이헬가우스이다. 언제 시간을 내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겠다(하여간에 이번 시즌 안에). 안톤 팔르이치(안톤 파블로비치 체홉을 그렇게도 줄여 부른다)가 당신의 작품을 본다면, 이란 질문에 주르빈은 이렇게 말한다. 아주 만족할 겁니다!

 

(2)막심 고리키의 <어머니>(1906-1907). 물론 더 이상의 설명이 불필요한 작품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대학신입생들의 필독서 목록에서는 빠져나간 듯하지만, 그리고 러시아에서의 평가 또한 예전에 못 미치지만, 고전으로서의 가치는 유효하다. 하지만, 이때 고전이란 말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시대를 초월한 작품이란 의미가 아니라, 시대를 환기시키는 작품이란 뜻이어야 한다(때문에 <어머니> 1980년대 우리의 대학가에서 필독서였다. 대학가 축제 때면 <파업전야> 같은 영화를 보는 게 당시의 문화였고).

 

한 시대와 운명을 같이하는 작품이 고전이란 이름에 값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개인적으론, 어떤 작품에 들어맞는 시대/시점이 있는 것이지 시대를 넘어선 작품이 있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작품이 우리의 DNA에 새겨진 것이 아닌 이상. 그건 우리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베스트로 꼽는 작품들이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그러한 당대성을 감안하지 않고 지금의 시점에서 이 작품을 읽는다면 너무 도식적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그러니까 <어머니>도식적이었던 시대에 어울리는 작품이며, 우리의 80년대는 도식적인 시대였다).

 

한 가지, 사회주의 리얼리즘(정식으로 공포되는 것은 1934년이다)의 효시로도 평가되는 작품이지만, <어머니>에는 종교성도 중요한 테마로 등장한다(수히흐 교수가 <어머니>에 대한 장의 제목을 마르크스와 성모 사이라고 붙인 건 그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새로운 시대의 복음서였다). 그와 관련된 것이지만, 사실 고리키의 이념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휴머니즘이었다(그에게 인간은 언제나 대문자 인간이었는바, 그는 인간을 숭배했다). 그리고 그 휴머니즘의 최대치는 그가 쓴 드라마 작품들 중에서 최고작으로 평가되는 <밑바닥에서>(1902)에서 선언된다. 체홉의 섬세한 드라마들과 비교한다면 투박하기 이를 데 없지만, 고리키의 이 드라마에는(특히 4) (유머 대신에) 박력과 (페이소스 대신에) 에너지가 넘친다. 해서, 나는 러시아문학의 20세기가 벚꽃동산이 아닌 밑바닥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고리키는 국내에 꽤 소개돼 있는 편이다. <어머니>만 해도 최소 2종의 번역서가 있다. <밑바닥에서>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인가 <밤주막>이란 제목으로 번역/공연돼 온 걸로 안다(작품의 배경은 빈민굴이다). 고리키의 자전 3부작(<어린시절> <세상속으로> <나의 대학>)부터 미완의 장편 <포마 고르제예프>까지 어지간한 고리키의 작품들은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물론 30여권에 이르는 그의 러시아어 전집에 비한다면 약소한 것이겠지만. 참고로,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고리키의 본명은 페슈코프이며 고리키는 러시아어로 /쓰라린이란 뜻의 형용사이다. 막심맥시멈이란 뜻이고. 해서 막심 고리키그토록 쓰라린이란 뜻이 된다. 젊은 시절 룸펜 프롤레타리아였던 페슈코프의 삶이 바로 그토록 쓰라린 삶이었으며, 그는 권총자살까지 시도한바 있다(폐에 구멍이 뚫렸지만, 다행히 살아난다).  

 

고리키의 문학적 삶은 레닌과 운명을 같이 한다(고리키는 문학에서의 레닌주의를 대표한다). 레닌 사망(1924) 이후 스탈린 시대의 고리키는 사회주의 작가로서라기보다는 문학적 전통의 보호자 역할에 더 충실했다. 그가 주로 했던 일은 소련문학의 얼굴 마담 역과 작가들의 후견인 역이었다. 스탈린 시대 숙청 리스트에 올랐던 작가들 가운데 여럿이 그의 구명(救命) 운동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의 생명은 연장할 수가 없었는데, 한편으로 그의 죽음(1936)에는 스탈린에 의한 암살설이 떠돌기도 했었다.

 

참고로, 올해 러시아에서 나온 고리키 연구서는 고리키연구소(=세계문학연구소)에서 출간한, 젊은 연구자의 <고리키: 새로운 시선>(264)과 지난 2002년 니즈니 노브고로드에서 개최됐던 국제학술회의의 발표논문들을 모은 <막심 고리키와 20세기 문학의 모색>(669)이 있다. 니즈니 노브고로드는 볼가강변의 항구 도시인데(고리키 초기 단편들의 주된 배경이다), 고리키 사후에 고리키시로 개명되었던 곳이다. 한데, 사회주의 몰락 이후 레닌그라드가 페테르부르크라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듯이, 니즈니 노브고로드도 고리키란 이름을 벗겨냈다(그래도 학술대회는 거기서 하는 모양이다). 레닌과 고리키는 그런 사후의 운명까지도 나눠 갖고 있다.  

 

(3)안드레이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1911-1913). 나보코프가 조이스의 <율리시즈>,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함께 세계 3대 소설에 꼽기도 했던 작품이다(이어서 나보코프가 꼽는 작품은 카프카의 <변신>이다). 산문작가로서 벨르이는 시인인 알렉산드르 블록과 함께 러시아 상징주의의 최대 작가이며, <페테르부르크>는 그의 대표작이다(더불어 그는 고골에 대한 고전적인 연구서를 갖고 있다). 푸슈킨의 서사시 <청동기마상>에서 시작된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문학적/문화적 신화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거쳐서 완결되는 작품이 또한 이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직 이 작품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언급은 삼가도록 하겠다.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지만(물론 영역은 돼 있다), 조만간 번역서가 나올 거라는 얘기도 들린다. 시적이고 장식적인 그의 문체가 얼마만큼 우리말로 옮겨질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벨르이의 소설 가운데 우리말로 번역된 건 <은빛 비둘기>(3문학사)이다. 이미 절판된 지 오래된 책이지만, 도서관 등에서 구해볼 수 있을 듯하다. 더불어, 러시아문학에서의 페테르부르크 텍스트에 대해서는(이전에 나도 짤막한 기고문을 쓴 적이 있다) 블라지미르 토포로프 교수의 연구가 독보적이다(그의 소개 논문은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작년에 이 주제에 관한 논문들을 모은 <러시아문학의 페테르부르크 텍스트>(616)란 책이 페테르부르크 300주년에 즈음하여 출간된바 있다(물론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도 다루어진다). 더불어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필독서는 솔로몬 볼코프가 쓴 <상트 페테르부르크 문화사>이다. 원래 영어로 먼저 씌어진 이 책의 러시아어본이 지난 여름에 출간됐다. 볼코프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저술가로 시인 브로드스키와의 대담집과 함께 역시 지난 여름에 나온 <쇼스타코비치와 스탈린> 등의 저서를 갖고 있다(그는 본래 음악 전공자였다).

 

(4)예브게니 자먀친의 <우리들>(1920). 자먀찐(혹은 자먀틴)으로도 읽히는 이 작가의 대표작으로, 흔히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의 원조(元祖)가 되는 안티-유토피아 소설로 알려져 있다(이 작품을 <멋진 신세계>와 나란히 묶은 러시아어본도 있다). 내전의 와중이던 1920년에 이미 혁명의 불행한 종국을 예견하고 있는 이 작품은 29세기 단일제국이란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유토피아, 즉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관리되는 세계의 극단을 예시해 보인다. 같은 러시아문학으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와 상호텍스트적으로 읽히는 작품(수정궁 비판과 2*2=4란 테마). 자먀친은 다른 단편들과 함께 에세이들도 남기고 있지만(단편 두어 편이 우리말로 더 번역돼 있다), 역시나 기억되는 건 <우리들>의 작가로서이다. 우리말로는 두 차례(중앙일보사, 열린책들) 출간된바 있지만, 지금은 모두 품절된 걸로 보인다. 몇 년 전에 개최되었던, 자먀친에 관한 국제학술회의 논문집을 보니까 한국에서의 자먀친이란 발표문도 실려 있었는데, 석사학위 논문까지 총동원됐지만 (당연하게도) 몇 건 되지 않았다.

 

(5)이삭 바벨의 <기병대>(1923-1925). 바벨은 러시아 남부의 항구도시 오뎃사(영화 <전함 포템킨>에 나오는 도시) 출신의 유태계 작가로서 <기병대>는 내전(1918-1920) 시기를 다룬 연작이면서 그의 대표작이다(이 연작의 화자가 내전에 참전한 유태계 지식인이다). 우리말로는 중앙일보사에서 나온 <소련동구문학전집>에 수록돼 있으며, 조만간 그의 선집이 다시 나오는 걸로 안다. 에이젠슈테인과 같이 작업하기도 했으며(<베진초원>의 시나리오를 썼던가?),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영화화하기에 적당한 테마와 문체를 갖고 있다. 다른 연작 <오뎃사 이야기>의 경우(오뎃사 마피아 이야기쯤 된다), 내 기억에 그는 시나리오도 따로 썼던 것 같다. 그의 문학세계는 2권짜리 전집에 다 수록될 만큼 간명하다(이에 견줄 만한 작가는 좀 두꺼운 한 권에 다 정리되는 자먀친, 그리고 같은 오뎃사 출신의 유리 올레샤가 있다). 우리말 선집이 출간된다면, 좀더 자세하게 조명될 수 있을 것이다.  

 

(6)A. 파제예프의 <궤멸>(1925-1926). 역시 내전 시기를 다룬 작품이지만, 바벨의 <기병대>처럼 좀 삐딱한 시각의 작품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선정자인 수히흐 교수가 아마도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궤멸>을 꼽은 듯하다. 지금은 줄거리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궤멸>(예문출판사)은 아주 오래 전, 내가 대학 2학년 때인가 우리말로 번역 소개된 바 있다. 지금은 당연히 품절된 책이다. 작가 파제예프는 역시나 스탈린 시대에 숙청당한 바벨과는 달리 소위 메인 스트림에 속해 있던 작가이며, 작가동맹의 의장인가 부의장을 역임한 문학권력자였다.

 

(7)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체벤구르>(1926-1929). 요즘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연극 연출가 레프 도진의 레퍼토리에도 들어가 있는 <체벤구르>는 러시아에서도 재발견된 작가 플라토노프의 대표작이다(그러니까 러시아에서도 소개/해금된 건 내가 알기에 80년대 중반 이후이다). 그렇게 재발견된 작가로 미하일 불가코프와 비교되기도 하는 플라토노프이지만, <체벤구르> <거장과 마르가리타>만큼 폭넓게 읽히는 것 같지는 않다(출판되는 걸 보아도 그렇고, 공연되는 걸 보아도 그렇다).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어서 자세하게 언급할 수 없지만(역시 우리말로 번역중이라는 풍문은 있다), 이 작가의 몇몇 단편들은 우리말로도 번역 소개돼 있는바 참조해 볼 수 있다(책세상에서 단편집이 나와 있다). 내가 인상적으로 읽은 작품은 <포투단강>이란 단편. 철도노동자 출신의 플라토노프는 사회주의 이념의 철저한 신봉자로서 오히려 소비에트 권력층에 부담을 주었던 작가였으며(스탈린이 싫어했다던가), 한편으론 작품의 매우 형이상학적인/유토피아적인 주제들 때문에 20세기의 도스토예프스키로도 불린다.       

 

(8)미하일 조셴코의 <감상적인 이야기들>(1923-1930). 조셴코 혹은 조시첸코로 표기될 수 있는데, <감상적인 이야기들>은 단편모음집 이름이고, 장편소설(roman)을 쓰지 않은 작가이기 때문에, 굳이 어떤 한 작품을 거명하기는 어렵다. 플라토노프가 20세기의 도스토예프스키라면 조셴코는 20세기의 고골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작가이다. 예상할 수 있는 바이지만, 정말로 코믹하고 유머러스하며 풍자적이고 그로테스크하다. 정식화하자면, <조셴코=고골+체홉>이다(이 세 작가를 사소한 것들의 시학으로 묶어서 다룬 연구서도 있다). 나는 단편 몇 편을 읽었을 뿐이지만, 보다 본격적으로 소개되어도 좋은 작가이다. 거꾸로 말하면, 조셴코의 단편들이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건 미스터리라 할 만하다.   

 

(9)블라지미르 나보코프의 <재능>(1937-1938). <재능> 혹은 <선물>은 나보코프의 러시아 시절은 마감하는 장편소설이다(러시아어 다르Dar재능이란 뜻과 선물이란 뜻 모두를 갖고 있다. Gift란 영어 단어가 그렇듯이). 주인공이 시인으로서 성장해가는 자기발견적 이야기이면서 나보코프가 러시아문학의 전통과 마지막으로 대화하는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을 끝으로 나보코프는 러시아어 시절을 마감하고 영어로 언어를 바꿔서 작품을 쓴다. 그렇게 처음 쓴 소설이 우리말로도 번역된 <어느 망명작가의 참인생>이다(원제는 세바스챤 나잇의 참인생이며, 이 작품에 대해서는 이전에 감상문을 쓴바 있다). 나보코프에 대해서는 작품을 읽지 않고도 할 얘기가 너무 많지만, 여기선 간단히 줄이도록 한다.

 

우리에겐 <롤리타>의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이 작품은 스탠리 큐브릭과 에드리안 라인에 의해 두 번 영화화됐다. 영어로는 영어본과 러시아어본 <롤리타>를 비교하는 사전까지 나와있고), 그리고 간혹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로 오해 받기도 하지만, 그는 제임스 조이스의 계보에 속하는 전형적인 모더니즘 작가이다(그는 언어를 다루는 작가적 재능에 있어서 조이스 정도를 질투했을 것 같다. 하지만, 조이스는 러시아어로는 작품을 쓰지 않았다). 적어도 문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작가의 죽음을 전제로 한 텍스트의 유희/게임을 주요한 특징으로 갖는다면 말이다. 나보코프의 문학세계는 진정으로 신적인 작가 나보코프에 의해서 자신을 작가로 착각하는 주인공들이 징벌받는 세계이다. 그 세계는 대단히 유희적이지만, 포스트모던적 유희와는 거리가 있다.   

 

현재까지 나온 나보코프의 전기로 가장 방대하며 탁월한 것은 브라이언 보이드의 영어본이다. 그는 나보코프의 삶과 문학을 러시아 시절미국 시절로 구분하여 두 권의 책으로 상술했는데, 얼마 전에 러시아어로도 번역돼 나왔다(여기서의 평가도 최고의 전기라는 것이다). 두툼한 양장본 2권의 가격이 4만원 안팎(나는 영어책을 복사했었다). 나보코프 애호가나 전공자에게는 필독서이다. 나보코프의 러시아소설 가운데는 <마셴카>(<첫사랑>으로 번역됨), <루진의 방어>(단행본으론 나오지 않고 한 문예지에 소개됐었다) 등이 우리말로는 번역돼 있는데, <재능> 이외에도 <절망>, <단두대로의 초대> 등이 모두 번역될 만하다. 하지만, 저작권이 까다로운 작가이기 때문에(물론 번역도 까다롭다) 정말로 번역될지는 미심쩍다. 영어소설 가운데는 <롤리타> 외에도 <어둠 속의 웃음소리>(언젠가 오래 전에 TV미니시리즈로도 만들어진바 있다. <창밖엔 태양이 빛났다>란 제목이었던가. 기억에, 황인뢰 PD의 작품이었다), <투명한 물체들>, <, , >, <창백한 불꽃>, <아다> 등이 번역돼 있다. 전문가 수준이었던 그의 나비수집에 대한 얇은 책도 한 권 번역돼 나온바 있고. 물론 나보코프에 대한 학위논문들은 상당수에 이르며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도 있다.

 

러시아에는 물론 각종의 너무 많은 나보코프가 있다. 2개의 언어로 작품활동을 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의 거의 모든 작품이 영어와 러시아어로 거의 완벽하게 번역돼 있다. 그 중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 번역/주석(이 작품에 대한 주석으로는 러시아의 기호학자/문학연구자 유리 로트만의 것과 쌍벽을 이룬다)과 함께, 러시아어로는 3권으로 나온 문학강의가 기록해 둘 만하다(그는 <롤리타>의 인세 덕분에 팔자가 피기 전까지는 코넬대학 등지에서 문학선생 노릇을 했다. 미국 작가 토마스 핀천이 그의 강의를 들은바 있다). 3권은 각각 <러시아문학강의>, <서구문학강의>, <돈키호테에 대한 강의>이다. 나는 이 강의들도 우리말로 번역되길 바라지만, 가능할는지

 

(10)미하일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1925-1940). 요즘은 대학에서의 러시아문학사 전공강의에서도 빠지는 수가 많지만(부담스런 분량 때문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비교되기도 하는 대하장편소설이다(당연히 영화화됐고, 얼마 전에도 이곳 TV에서 시리즈로 나왔다). 나는 학부에서 20세기 문학사 강의를 들을 때 읽었는데, 우리말로는 7권으로 번역돼 나와 있었다(러시아어로는 보통 2). 지금은 품절이지만. 한 권짜리 만화로도 나와 있었고(기말고사 시험문제가 이 작품의 줄거리를 쓰는 것이었는데, 그때 만화를 본 게 도움이 되었다). 수히흐 교수는 <고요한 돈강>을 다룬 장의 제목을 카자크 햄릿의 오딧세이라고 붙였는데, 그럴 듯하게 여겨진다. 그 햄릿의 이름은 물론 주인공 그레고리이다.

 

숄로호프의 다른 작품으론 <인간의 운명>, <돈강 이야기> 등도 우리말로 번역돼 있는데, 나는 읽지 않았다. 사실 그다지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문학권력자였다는 점 때문이었다. <고요한 돈강>을 정말로 그가 썼는지에 대한 의혹들도 그래서 나왔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반 부닌에 이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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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갈대 > 국내출판 유감

『에릭 호퍼 자서전』에는 호퍼가 몽테뉴의 『수상록』을 외울 정도까지 탐독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호퍼가 그렇게까지 열광했다는 건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 얼마 전에 박홍규 교수가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 』를 출간하셨기에, 나중에 수상록과 함께 구입해서 읽어볼 요량으로 알라딘에서 '몽테뉴'로 검색을 했더니 비교적 최근 것으로 99년 혜원출판사, 96년 청목사에서 나온 수상록이 있다. 그런데 먼저 것은 324쪽, 나중 것은 430쪽에 불과했다. 호퍼는 자서전에서 몽테뉴의 수상록이 엄청나게 두껍다고 설명했기에 뭔가 이상해 아마존에 가서 다시 검색을 해봤다. 역시나 그러면 그렇지, 검색된 수상록 원본은 1400쪽에 육박한다. 영어판이 폰트를 대략 30정도로 잡고 자간과 행간을 어린이 책 마냥 지나치게 늘리지 않았다면(당연한 얘기지만 그랬을 가능성은 제로다), 국내에서 출간된 수상록은 모두 요약본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소규모 출판사로서는 1400쪽의 엄청난 분량을 번역, 편집해서 고가의 가격을 붙여 내놓을 만한 여력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출간했더라도 국내 독자층을 고려해 볼 때 얼마 팔지도 못했을 것이다(최근 승산출판사가 '파이만의 물리학 강의'를 내놓아 출판관계자와 독자 모두를 놀라게 했지만 이는 극히 드문 경우이다). 그렇다고 해서 원본을 1/3, 1/4로 확 줄여서 출간해도 되는 걸까? 국내 요약본이 국내 출판사에서 편집했다고 생각할 수도 없는 게 영어판 중에도 국내본과 비슷한 분량의 요약본이 몇 권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원본도 아닌 요약본을 그대로 가져와서 번역만 한 것이다. 번역의 질은 읽어보지 않았기에 뭐라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김화영님, 이세욱님 말고는 제대로 된 프랑스어 번역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아무튼 나는 요약본 수상록은 청소년용 '토지'나 '장길산'처럼 불쾌하지 그지없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이지만 국내 출판은 거의가 외국서의 번역 일색이고(번역의 질은 둘째치고라도) 독자적으로 무언가를 연구하고 투자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껏해야 어떤 학자가 혼자 죽도록 연구해서 이룩한 결과물을 출판사 이름만 붙여서 출간하는 게 전부다. 우리가 정말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만한 기획물이 단 하나라도 있는가? 국내 출판사에서 독자적으로 만든 책 중에 호평을 받으며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된 책이 있는가? 원래 있는데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건지, 도무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세계에서 1년 동안 출간되는 수많은 책 중에 명저를 100권만 추려낸다고 했을 때 국내서가 그 안에 한 권이라도 들어갈 수 있을까? 나는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대답 못하겠다. 이게 국내 출판의 현실일 것이다. 세계 출판시장에 변방이 있다면 바로 우리 나라가 변방이다. 물론 내가 좋은 책 정성스레 번역해서 내놓는 출판사들의 노고를 폄훼하는 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작업과 더불어 독자적인 출판 영역을 개척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영원한 변방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 '양자역학의 모험'이라는 책이 있다. 550쪽에 달하는 이 두꺼운 책을 누가 썻는지 아는가? 일본 TCL이라는 단체에서 10주 동안 양자역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썼다. 이렇게 말하면 TCL이 물리학 단체인 줄 알겠지만, 물리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7개 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이다. 그럼 책의 질이 좀 떨어지지 않느냐고? 안타깝지만 국내에서 출간된 양자역학 관련 책들 중에 전공책을 제외하면 이 책보다 뛰어난 책은 없다. 이게 바로 일본과 우리의 차이이다. 하늘과 땅이 아닐 수 없다. 정보화 시대, 인터넷 시대 하는 말들이 많지만 제대로 된 책이 없는 나라의 미래가 밝을 리 없다. 결코. 제대로 된 책을 내려면 우선 요약본 수상록 같은 책은 아예 만들 생각을 말아야 하고, 독자들도 사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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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나를 이길 자 누가 있으랴

나를 이길 자 누가 있으랴"

천지왕(2)
부도덕한 인간(人間)과 권위의 신(神) 싸움

천지가 생겨나고 인간들이 일어섰으나 아직 질서가 잡히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생과 사도 제대로 구분이 안됐으며 짐승과 나무잎들도 말을 했고 귀신이 말을 하면 사람이 대답하고 사람이 불러도 귀신이 대답하던 시절이었다.
땅에는 천하거부로 잘 사는 「쉬멩이」라는 자가 있었다.
욕심많고 방자한 쉬멩이는 하늘을 향하여서도 『나를 이길 자 누가 있으랴』하고 큰소리를 치곤 했다.
쉬멩이는 아버지가 60세를 나는 해부터 하루에 한 끼밖에 대접하지 않았다.
『웬일로 하루에 한 끼밖에 주지 않느냐』
『사람은 한 대가 설흔인데 아버지는 금년으로 예슨 두해째를 사니 너무 많이 살았습니다. 죽어 삼년상에 제사 명절 안 지내도 좋으면 대접을 잘 하겠습니다』
그래서 쉬멩이 아버지는 죽은 후 대접을 안 받기로 하고 산 때 대접을 잘 받고 죽었다.
쉬멩이는 장래도 제대로 치르지 않고 아버지를 바다에 띄워 보냈다.
어느 해 섣달 그믐날이었다.
명절을 맞은 저승의 귀신들은 제사를 받아먹기 위해 모두 이승으로 올라갔는데 쉬멩이 아버지만 혼자 어둠 속에 앉아 흐느껴 울었다.
『어데서 옥퉁소를 부는 소리가 들리느냐』 괴이하게 여긴 저승대왕이 물었더니 쉬멩이 아버지라는 것이다.
그래도 명절때는 그러는 법이 아니라고 타이르고 올려보냈으나 쉬멩이 아버지는 물한모금 얻어먹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이를 전해 듣고 노한 천지왕은 쉬멩이를 잡아오라고 군졸들을 보냈다.
그러나 군졸들은 쉬멩이의 집을 지키는 개·말·소따위에 쫓겨 문전에도 못 가보고 돌아왔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천지왕은 쉬멩이를 처벌하기 위해 벽력같이 달려 내려왔다.
그러나 집어귀에 당도하자마자 개들이 짖기 시작했다.
달려들어 물려는 개들이 있는가 하면 말들은 발길질을 하고 소들은 뿔로 받으려 했다.
문도 두드려보지 못한 천지왕은 올래밖 멀구슬나무 가지 위에 올라 앉아 군사들에게 열두가지 흉험을 내리도록 했다.
쉬멩이집 부엌에는 갑자기 개미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러나 쉬멩이는 놀라지 않았다.
느진덕 정하님[여자 하인]이 『솥앞으로 개미가 기어 다닙니다』하고 말했다.
『거 뭐 대수냐. 아무 것도 아니다』
이번에는 집이 폐가가 된 듯 습기가 차고 「용달」버섯이 무수히 생겨났다.
『솥뒤에 용달버섯이 났습니다』
『허허 반찬이 떨어져 가니 초기대신 용달이 나는구나. 반찬으로 볶아라』
쉬멩이 기세가 죽지를 않으니 천지왕은 솥이 걸어다니게 했다.
『큰 솥이 밖에 나가 엉기덩기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부잣집에서 매일 불을 때 놓으니 더위 먹어 식히러 나갔을 것이다』
그래도 안 되니 천지왕은 가축들이 미쳐 날뛰게 했다.
『황소가 지붕위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부잣집에서 잘 먹이니 힘이 넘치는 모양이구나』
아무리 흉험을 내려봐도 끄덕을 않으니 천지왕은 급기야 쉬멩이의 머리에 쇠철망을 내리 씌워 버렸다.
머리가 깨지도록 아픈 쉬멩이는 아들들에게 머리를 도끼로 내리치라고 말했으나 아무도 감히 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종년을 불러 명령을 하니 종년은 차마 주인의 머리를 찍지는 못하고 옆에 있는 대문 지방을 덜커덕 내리찍었다.
도끼를 찍는 서슬에 놀란 천지왕은 엉겁결에 쇠철망을 거두어 버렸다.
하는 수 없이 천지왕은 화덕진군(火德鎭君) 해명이를 불렀다.
해명이는 사람의 모양으로 변장하고 쉬멩이집으로 가서 『곡식과 옷을 준비하여 한 일년 밖에서 생활할 각오로 바람위로 피난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쉬멩이는 『대궐같은 집을 버리고 어데로 나간단 말이요』하고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다면 칠대도록 쌓은 재산을 모두 거두어 가겠다. 불여막심한 죄를 단 한번에 깨닿게 하겠다』
해명이가 집지붕 네 귀퉁이에서 새 한줌씩을 빼어 천지왕에게로 가니 천지왕은 바람을 일으켜 집에 불을 질렀다.
궁궐같은 집은 삽시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뒤늦게 후회를 한 쉬멩이는 박우왕의 집에 가서 빈 방을 빌려달라고 애걸을 했으나 박우왕은 『실화(失火)한 사람에게는 방을 빌려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살아갈 길이 막막한 쉬멩이는 가족들을 모아 놓고 『우리는 이제 다 살았구나』하고 통곡을 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천지왕이 나타나 『앞으로 부모 제사날이 오면 경건하게 지내시오. 가난한 사람에게 밭을 빌려주면 병작을 하시오. 죽은 곡식을 빌려주고 받을 때는 여문 곡식으로 받지 마시오. 금전을 타인에게 빌려주어도 이자를 너무 많이 받지 마시오. 노인을 존중하고 아들 칠형제를 잘 가르치시오. 일생을 타인게 부드럽게 대하고 마음씨를 곱게 먹으면 후손들도 안락하게 될 것이요. 나는 천지왕이니 잘 기억하시오』하고 말했다.
천지왕은 하늘로 올라가고 쉬멩이는 천지왕이 지시한 말을 잘 따르니 다시 부자가 되어 오래도록 살았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인간에 대한 신(神)들의 권위획득ㆍㆍㆍ 지상(地上)에 도덕률 세워

천지창조의 이야기는 세상에 아직 권위를 못 세운 신들과 비도덕적이고 욕심이 많은 인간과의 투쟁으로 이어진다.
신들은 자신의 권위를 획득하고 세상에 도덕률을 세우기 위해 패륜아 「쉬멩이(壽命長者)」를 처벌하기로 결정했다.
쉬멩이의 죄는 채록본에 따라 세가지로 나타난다.
어떤 본에서는 아버지의 제사를 모시지 않는다는 것이며 다른 본에서는 천지왕에게 식사를 대접할 쌀에 모래를 섞어 빌려줬다는 것.
또 다른 본에서는 『이 세상에 날 잡아갈 이 있느냐』고 할 정도의 호언으로 신의 권위를 인정치 않는 것이었다.
쉬멩이의 잘못은 신화의 구도상 신이 인간세계에 개입하기 위한 빌미를 주고 있으며 이를 징치한다는 구실로 신은 인간세계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신은 지상에 대한 통치권을 획득하고 사람들 사이에는 도덕률이 확립된다.
천지왕은 쉬멩이에게 신의 존제를 인식시키기 위해 열두가지 흉험을 준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부엌에 개미가 꼬인다」는 징조는 제주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나쁜 징조중 하나이다.
두번째의 용달버섯은 습기가 많이 차고 썩은 곳에 자라는 식물로 폐가가 된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러한 징후에도 불구하고 쉬멩이가 각성을 하지 않자 천지왕은 쉬멩이집에 큰 솥이 걸어다니는 흉험까지 준다.
끝내 쉬멩이가 반성을 하지 않자 파멸시킬수 밖에 없어지는데 바람과 불을 이용하여 처벌한다.
채록본에 따라서는 천지왕이 벼락장군·우뢰장군을 불러서, 즉 벼락을 치고 불을 붙여서 처벌하고 쉬멩이의 가족들은 벌레가 돼 버린다는 얘기도 있다.
또 다른 본에서는 쉬멩이 하인의 기지로 쇠철망이 벗겨져 신이 결국 처벌을 하지 못하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의 재앙을 연상케 하는 이 사건의 목적은 인간들이 신을 두려워하고 경배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보아 여기서는 신의 처벌을 받은 다음 각성하여 순화된다는 내용의 「풍속무음」상의 줄거리를 따랐다.
마음이 착해진 쉬멩이는 그후 3천8백년을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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