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길 자 누가 있으랴"
천지가 생겨나고 인간들이 일어섰으나 아직 질서가 잡히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생과 사도 제대로 구분이 안됐으며 짐승과 나무잎들도 말을 했고 귀신이 말을 하면 사람이 대답하고 사람이 불러도 귀신이 대답하던 시절이었다.땅에는 천하거부로 잘 사는 「쉬멩이」라는 자가 있었다. 욕심많고 방자한 쉬멩이는 하늘을 향하여서도 『나를 이길 자 누가 있으랴』하고 큰소리를 치곤 했다. 쉬멩이는 아버지가 60세를 나는 해부터 하루에 한 끼밖에 대접하지 않았다. 『웬일로 하루에 한 끼밖에 주지 않느냐』『사람은 한 대가 설흔인데 아버지는 금년으로 예슨 두해째를 사니 너무 많이 살았습니다. 죽어 삼년상에 제사 명절 안 지내도 좋으면 대접을 잘 하겠습니다』그래서 쉬멩이 아버지는 죽은 후 대접을 안 받기로 하고 산 때 대접을 잘 받고 죽었다. 쉬멩이는 장래도 제대로 치르지 않고 아버지를 바다에 띄워 보냈다. 어느 해 섣달 그믐날이었다. 명절을 맞은 저승의 귀신들은 제사를 받아먹기 위해 모두 이승으로 올라갔는데 쉬멩이 아버지만 혼자 어둠 속에 앉아 흐느껴 울었다. 『어데서 옥퉁소를 부는 소리가 들리느냐』 괴이하게 여긴 저승대왕이 물었더니 쉬멩이 아버지라는 것이다. 그래도 명절때는 그러는 법이 아니라고 타이르고 올려보냈으나 쉬멩이 아버지는 물한모금 얻어먹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이를 전해 듣고 노한 천지왕은 쉬멩이를 잡아오라고 군졸들을 보냈다. 그러나 군졸들은 쉬멩이의 집을 지키는 개·말·소따위에 쫓겨 문전에도 못 가보고 돌아왔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천지왕은 쉬멩이를 처벌하기 위해 벽력같이 달려 내려왔다. 그러나 집어귀에 당도하자마자 개들이 짖기 시작했다. 달려들어 물려는 개들이 있는가 하면 말들은 발길질을 하고 소들은 뿔로 받으려 했다. 문도 두드려보지 못한 천지왕은 올래밖 멀구슬나무 가지 위에 올라 앉아 군사들에게 열두가지 흉험을 내리도록 했다. 쉬멩이집 부엌에는 갑자기 개미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러나 쉬멩이는 놀라지 않았다. 느진덕 정하님[여자 하인]이 『솥앞으로 개미가 기어 다닙니다』하고 말했다. 『거 뭐 대수냐. 아무 것도 아니다』이번에는 집이 폐가가 된 듯 습기가 차고 「용달」버섯이 무수히 생겨났다. 『솥뒤에 용달버섯이 났습니다』『허허 반찬이 떨어져 가니 초기대신 용달이 나는구나. 반찬으로 볶아라』쉬멩이 기세가 죽지를 않으니 천지왕은 솥이 걸어다니게 했다. 『큰 솥이 밖에 나가 엉기덩기 걸어다니고 있습니다』『부잣집에서 매일 불을 때 놓으니 더위 먹어 식히러 나갔을 것이다』그래도 안 되니 천지왕은 가축들이 미쳐 날뛰게 했다. 『황소가 지붕위를 넘나들고 있습니다』『부잣집에서 잘 먹이니 힘이 넘치는 모양이구나』아무리 흉험을 내려봐도 끄덕을 않으니 천지왕은 급기야 쉬멩이의 머리에 쇠철망을 내리 씌워 버렸다. 머리가 깨지도록 아픈 쉬멩이는 아들들에게 머리를 도끼로 내리치라고 말했으나 아무도 감히 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종년을 불러 명령을 하니 종년은 차마 주인의 머리를 찍지는 못하고 옆에 있는 대문 지방을 덜커덕 내리찍었다. 도끼를 찍는 서슬에 놀란 천지왕은 엉겁결에 쇠철망을 거두어 버렸다. 하는 수 없이 천지왕은 화덕진군(火德鎭君) 해명이를 불렀다. 해명이는 사람의 모양으로 변장하고 쉬멩이집으로 가서 『곡식과 옷을 준비하여 한 일년 밖에서 생활할 각오로 바람위로 피난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쉬멩이는 『대궐같은 집을 버리고 어데로 나간단 말이요』하고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다면 칠대도록 쌓은 재산을 모두 거두어 가겠다. 불여막심한 죄를 단 한번에 깨닿게 하겠다』해명이가 집지붕 네 귀퉁이에서 새 한줌씩을 빼어 천지왕에게로 가니 천지왕은 바람을 일으켜 집에 불을 질렀다. 궁궐같은 집은 삽시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뒤늦게 후회를 한 쉬멩이는 박우왕의 집에 가서 빈 방을 빌려달라고 애걸을 했으나 박우왕은 『실화(失火)한 사람에게는 방을 빌려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살아갈 길이 막막한 쉬멩이는 가족들을 모아 놓고 『우리는 이제 다 살았구나』하고 통곡을 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천지왕이 나타나 『앞으로 부모 제사날이 오면 경건하게 지내시오. 가난한 사람에게 밭을 빌려주면 병작을 하시오. 죽은 곡식을 빌려주고 받을 때는 여문 곡식으로 받지 마시오. 금전을 타인에게 빌려주어도 이자를 너무 많이 받지 마시오. 노인을 존중하고 아들 칠형제를 잘 가르치시오. 일생을 타인게 부드럽게 대하고 마음씨를 곱게 먹으면 후손들도 안락하게 될 것이요. 나는 천지왕이니 잘 기억하시오』하고 말했다. 천지왕은 하늘로 올라가고 쉬멩이는 천지왕이 지시한 말을 잘 따르니 다시 부자가 되어 오래도록 살았다.
천지창조의 이야기는 세상에 아직 권위를 못 세운 신들과 비도덕적이고 욕심이 많은 인간과의 투쟁으로 이어진다. 신들은 자신의 권위를 획득하고 세상에 도덕률을 세우기 위해 패륜아 「쉬멩이(壽命長者)」를 처벌하기로 결정했다. 쉬멩이의 죄는 채록본에 따라 세가지로 나타난다. 어떤 본에서는 아버지의 제사를 모시지 않는다는 것이며 다른 본에서는 천지왕에게 식사를 대접할 쌀에 모래를 섞어 빌려줬다는 것. 또 다른 본에서는 『이 세상에 날 잡아갈 이 있느냐』고 할 정도의 호언으로 신의 권위를 인정치 않는 것이었다. 쉬멩이의 잘못은 신화의 구도상 신이 인간세계에 개입하기 위한 빌미를 주고 있으며 이를 징치한다는 구실로 신은 인간세계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신은 지상에 대한 통치권을 획득하고 사람들 사이에는 도덕률이 확립된다. 천지왕은 쉬멩이에게 신의 존제를 인식시키기 위해 열두가지 흉험을 준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부엌에 개미가 꼬인다」는 징조는 제주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나쁜 징조중 하나이다. 두번째의 용달버섯은 습기가 많이 차고 썩은 곳에 자라는 식물로 폐가가 된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러한 징후에도 불구하고 쉬멩이가 각성을 하지 않자 천지왕은 쉬멩이집에 큰 솥이 걸어다니는 흉험까지 준다. 끝내 쉬멩이가 반성을 하지 않자 파멸시킬수 밖에 없어지는데 바람과 불을 이용하여 처벌한다. 채록본에 따라서는 천지왕이 벼락장군·우뢰장군을 불러서, 즉 벼락을 치고 불을 붙여서 처벌하고 쉬멩이의 가족들은 벌레가 돼 버린다는 얘기도 있다. 또 다른 본에서는 쉬멩이 하인의 기지로 쇠철망이 벗겨져 신이 결국 처벌을 하지 못하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의 재앙을 연상케 하는 이 사건의 목적은 인간들이 신을 두려워하고 경배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보아 여기서는 신의 처벌을 받은 다음 각성하여 순화된다는 내용의 「풍속무음」상의 줄거리를 따랐다. 마음이 착해진 쉬멩이는 그후 3천8백년을 살았다고 한다.